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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단번에 끝난 승부. 고요한 파티장에서 툭, 깔끔하게 절단된 카서스의 오른팔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

         

       침묵. 모두가 외마디 소리도 내지 못했다. 마치 도서관이라도 온 것 같군.

         

       그렇게 10초 정도 흘렀을까.

         

       “크흑, 소미레……!”

         

       카서스의 잘린 팔에서 피가 울컥하며 쏟아졌다. 파티장의 바닥은 금세 붉은색으로 물들였고, 카서스는 소미레를 부르며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봤다.

         

       “저, 저게 대륙제일검…?”

       “소드 마스터인 페르시아 소 공작을 단번에?”

       “저런 위험한 자가 이곳에 있어도 되는 겁니까?”

       “…전쟁에서 저자를 피한 이유를 알겠군요.”

       “보이셨나요!? 저는 전혀 볼 수 없었어요…!”

         

       이를 구경하던 귀족들의 감정에는 감탄, 경악, 두려움이 동시에 공존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페르시아 공작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폐하! 팔을 자르는 건 너무 과도한 처사 같사옵니다! 이게 무슨…!”

         

       그러나 황제는 끄떡없었다.

         

       “공작, 지금은 잘 판단하게. 그대의 후계자는 미쳐도 단단히 미쳐버렸소. 황족과 대귀족이 모이는 파티에서 오러 블레이드를 꺼내다니, 이건 역모와도 같소.”

         

       눈을 질끈 감으며 관자를 짓누르는 페르시아 공작. 이젠 좀 받아들여라. 여기까지 온 이상 네 아들은 가능성이 없어.

         

       “페르시아 소 공작, 여기서 더 하실 겁니까?”

         

       휙. 오러가 진동하는 오른팔을 쳐내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카서스는 자신의 팔을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은 채 대답이 없었다.

         

       카서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순간적으로 오러가 충돌하면서 막대한 반동이 몸으로 돌아갔기 때문. 전신이 파열된 느낌일 거다.

         

       상황 종료. 전투 불능인 걸 확신했기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황제가 외쳤다.

         

       “페르시아 소 공작! 그대의 죄는 알고 있겠지? 원래라면 목숨을 가져가야 마땅할 대역죄지만, 그대의 가문을 생각해 이 정도로 끝내겠다.”

         

       황제의 말에 반론을 제시하는 어리석은 귀족은 없었다. 페르시아 공작도 그저 바닥만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내쉴 뿐이었다.

         

       “…….”

         

       말이 없는 카서스. 황제는 그를 보며 고개를 휘저었다.

         

       “황실 수호 기사단은 이 자를 포획하라. 그리고, 판옵티콘에 가두어라.”

         

       판옵티콘. 제국 북방에 위치한 거대 감옥.

         

       마수가 몰려오는 재앙의 파도와 맞닿은 지역이다. 즉, 저곳에 갇힌 범죄자들은 시간을 벌기 위한 미끼가 된다는 거다.

         

       ‘페르시아 소 공작인데도 저런 곳에 갇히다니.’

         

       그러게 선은 넘지 말았어야지.

         

       기사단은 경계를 풀지 않고 카서스에게 다가갔다. 그는 조용히,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얌전히 포획당했다.

         

       사태가 끝났다는 걸 확신한 황제가 소리쳤다.

         

       “파티에 참여한 이들은 듣게! 이번 파티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기에 안타깝게도 여기서 끝마치겠네.”

         

       파티가 끝난 건가. 뭐, 상관은 없다. 어차피 목적도 끝났고.

         

       “타국에서 온 귀빈들에게는 추태를 보인 점에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소. 다음에는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테니 염려 마시오.”

         

       황제의 말이 끝나자 귀족들은 하나, 둘씩 파티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타국에서 온 사람들은 황실 공무원들이 인도했다.

         

       “우리도 돌아가자.”

       “예.”

         

       그렇게 돌아가려 했건만…….

         

       “기다리게.”

         

       황제가 우리를 멈춰 세웠다.

         

       “폐하? 무슨 일이신지요.”

       “내 따로 할 말이 있어 그러네.”

         

       나와 프란체는 시선을 마주하며 눈을 끔뻑였다. 얼떨떨하게 황제와 남게 되었다…….

         

       “우선, 이 사태를 손해 없이 끝나게 해준 점에서 고마움을 표하고 싶네. 그리고,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네만.”

         

       프란체는 황실 예법을 사용하며 고개를 숙였다.

         

       “말씀하시지요.”

         

       황제는 나를 지그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대의 노예. 아니, 호위기사 말이네만. 진 바렌베르크는 정말 그대가 통제할 수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강력한 노예 각인이 새겨져 있으니 저항은 불가능합니다.”

       “저 진 바렌베르크가 저항할 수 없다라, 대체 무슨 각인을 받은 것이지?”

       “제가 듣기론 초월 마법사가 직접 새긴 노예 각인이라 하더군요.”

         

       초월 마법사의 얘기가 나오자 납득한 듯 고개를 주억이는 황제.

         

       “그래, 그랬던 거였군.”

         

       그러고는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대의 호위기사 덕에 국력이 더 올라가겠군. 제국에서 대륙제일검을 이용할 수 있으니 말이야.”

         

       이용? 내가 뭐, 물건이야? 어처구니가 없군. 프란체도 황제의 말이 불쾌한 듯 순간 미간을 찌푸렸지만, 금세 표정을 되찾았다.

         

       “…제국의 도움이 될 수 있어 영광입니다.”

       

       황제가 호탕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진 바렌베르크, 그대의 무력은 잘 봤네. 실로 압도적인 힘이더군. 우리 제국에도 그대 같은 초월자가 등장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야.”

       

       여기서 뭐라고 딱히 할 말은 없기에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생각보다 싱거운 사내군.”

         

       황제는 인자한 미소를 짓더니 프란체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충 요약하자면, 큰 선물을 주겠다. 나중에 재앙의 파도가 오면 도움을 줘라. 특혜를 내리겠다.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너무 오래 잡아두었군. 이만 가봐도 좋네, 데카르트 공녀.”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사옵니다. 폐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우리는 드디어 파티장을 나올 수 있었다.

         

       “후,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네.”

       “그러게 말입니다.”

         

       진짜 카서스가 저 정도까지 또라이일 줄은 몰랐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황족이 있는 곳에서 오러를 활성화하다니.

         

       ‘뭐, 그래도 목적은 이뤘으니 됐나.’

         

       이번 파티에서는 엄청난 수확을 얻었다. 원래의 목적이었던 의류점 홍보도 대성공이고, 프란체가 나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위상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 황제와의 인연까지. 좀 불쾌하긴 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해야지.

       

       “그런데 너 정말로 강하더구나.”

       “대륙제일검이니까요.”

       

       사실 이런 별명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뭐, 고려제일검도 아니고 대륙제일검은 뭐야? 근데 좀 멋있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러던 그때.

         

       “프란체.”

         

       지루했던 황제와의 대화가 끝나고, 이대로 집으로 좀 돌아가나 싶었더니 에덴이 말을 걸어왔다.

         

       “…소 공작님.”

         

       둘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에덴은 눈을 얕게 뜬 채 침묵을 유지했다.

         

       “무슨 일이신지요.”

       “사업이 잘 흘러갈 거 같더군. 이럴 줄 알았나?”

       “처음부터 성공을 확신하고 움직인 거니까요.”

       “…그렇군.”

         

       딱딱한 분위기가 어색하다 못해 불편하다. 괜히 나까지 눈치를 보게 되잖아…….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마.”

         

       ……음? 너무 예상치 못한 말이라 일순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야?

         

       에덴은 그리 말하고 휙 등을 돌려 미련 없이 떠나갔다. 가문의 위신만 올릴 수 있다면 뭐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건가.

         

       ‘쟤도 강박증 같은 게 있는 거 같단 말이지.’

         

       뭐, 일이 잘 풀렸으니 신경 쓸 바는 아니지. 근데 프란체의 반응이 없다.

         

       “공녀님?”

         

       프란체가 뚱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녀의 표정이 지금 심정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턱이 빠져버릴 정도.

         

       ‘내가 들은 게 전부는 아니지만…….’

         

       프란체는 말했다. 8살 때부터 20살까지 가문에서 배척당하고, 학대를 받았다고. 그럼 자그마치 12년의 세월동안 고통을 받은 거다.

         

       그녀가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던 곳은 황도에 있는 데카르트 공작가의 별채.

         

       프란체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 것이다.

         

       사업 얘기가 나왔을 때도 기회를 줬던 공작과는 달리, 에덴은 가문의 위신을 떨어트린다며 강제로 혼처를 들이밀고,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왔다.

         

       그런데 이렇게 응원한다고?

         

       차라리 질투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며 부정했더라면 가치를 입증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속이 시원했을 텐데.

         

       ‘애초에 이 일을 시작한 이유가…….’

         

       프란체의 가치를 그들에게 알리고, 데카르트 공작가의 모두를 후회하게 만들어 복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간단하게 인정을 받아버렸다. 현재 흐름이 좋다곤 하지만, 제대로 된 성과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저런 태도라니?

       

       어처구니가 없을 만도 하다.

         

       “공녀님?”

       “응.”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그냥. 좀 허탈해서.”

         

       씁쓸하다. 우리가 자의식 과잉으로 행동한 것 같잖아.

         

       ‘에덴 이 새끼는 끝까지 열 받게 만드네.’

         

       뭐, 어차피 나중에 내가 따로 복수할 예정이니 괜찮다마는. 프란체가 문제다.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진 상처는 쉽게 치료되지 않으니까.

         

       “너무 깊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일은 잘 풀렸잖아요?”

       “그래, 그랬지. 그런데 너무… 억울하고 열이 받아서…….”

         

       울먹이는 프란체. 그녀를 바라보니 마음이 쓰라렸다. 전부터 느껴졌던 가슴속의 실뭉치가 더 꽉 조인 느낌.

         

       [플레이어의 몰입도가 상승합니다.]

         

       [동기화가 심화합니다.]

         

       ‘이런.’

         

       [인물 – 진 바렌베르크.]

         

       [인물의 기억과 인격을 계승합니다.]

         

       쿵! 이번에는 늘 느끼던 두통이 아니었다. 거대한 트럭에 치인 것처럼, 당장이라도 내 존재 자체가 부서질 것 같다.

         

       “커흑!”

         

       나도 모르게 심장을 부여잡고 몸을 움츠렸다. 프란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커헉, 커헉! 쿨럭!”

         

       새빨간 피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며 각혈까지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음성.

         

       「내가 이뤄주지. 킬킬킬.」

       「네가 날 어떻게 돕겠다는 거지?」

       「킬킬, 한 번 믿어 봐. 후회하지 않을 거야.」

       「…좋다. 따로 방법이 없으니…….」

       「대가는 영혼이 손상될 거야. 킬킬킬.」

         

       ‘대체 이게 무슨 대화야…?’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눈으로 보이는 세상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과격하게 흔들렸고, 뼈마디를 부수는 듯한 고통은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정신……! 진……! 진……!”

         

       프란체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긴 한데…….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심각할 정도로 고통이 몰려들었고, 제정신을 차리지도 못할 만큼 어지러웠다.

         

       “진! 정신 차려!”

       “컥, 커헙!”

         

       시간이 좀 지난 뒤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프란체가 울먹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좀 괜찮은 거니?”

       “예…….”

         

       아직도 고통은 느껴진다. 이거 가면 갈수록 받아들이는 인격과 기억도 강해지고, 고통도 심해진다.

         

       ‘이런 식으로 내가 없어지는 건가…….’

         

       원래는 프란체의 걱정이 더 강했다만, 지금 이 고통으로 두려움이 몰려왔다.

         

       내 몸도 사라졌는데, 인격과 기억마저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돌아가는 건가?’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다. 이게 내가 잠들어서 꿈을 꾸고 있다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야, 꿈이었다면 진작에 깼을 테니까.

         

       나도 모르게 손이 덜덜 떨려왔다. 이를 프란체도 알았는지 내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진정해. 심호흡하고.”

         

       프란체의 손길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흔들렸던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

         

       “나 바라봐.”

         

       시선을 마주쳤다. 녹음의 눈동자에 진의 얼굴이 비쳤다.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가? 이제는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원래 어떻게 생겼었더라……?

         

       “가만히 있으렴.”

         

       프란체는 곧장 손수건을 꺼내 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 주었다. 그런 와중에도 손은 놓지 않았다.

         

       “말한 것과 달리 더 심각한 병이구나.”

       “아닙니다. 이번이 좀 특별한……”

       “아니. 내가 느낀 게 있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프란체.

         

       “사실대로 말해.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거지?”

       “…….”

         

       알아챈 건가. 하긴, 못 알아채는 게 이상하지.

         

       “맞습니다.”

       “하아…….”

         

       프란체는 큰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넘겼다.

         

       “제발, 나를 두고 가지 말렴.”

       “…….”

         

       미안, 그건 대답해주지 못할 거 같다.

         

       “진?”

         

       애절하게 나를 바라보는 프란체에게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살기 위해선 떠나야 한다.

         

       하지만…….

         

       너는 내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을까.

         

       이미 너의 삶에서 많은 축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대체 어떤 결정을 해야 올바른 것일까.

         

       오랜 고뇌 끝에 생각을 정리한 나는 입을 열었다.

         

       “공녀님을 두고 죽지는 않을 겁니다.”

         

       죽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언제나 곁에 있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 바로 돌아가자. 치료받으러.”

       “예…….”

         

       프란체와 걸으면서도 복잡한 마음은 여전했고, 두려움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두기로 했다. 지금은 내 걸음을 붙잡는 시답잖은 감정이니까.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

         

       프란체 키우기는 이제야 첫걸음을 내디뎠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무슨 한이 있어도, 약속은 지킬 거다.

       

       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절대 하지 않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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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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