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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커뮤니티 활동을 하다보면, 사고를 치거나 무언가 한심한 짓을 들키는 등, 더 이상 과거의 자신과 동일시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사건을 겪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어떤 사람들은 그 커뮤니티 자체를 떠난다. 회사나 학교도 아니고, 인터넷 커뮤니티 따위- 새로운 커뮤니티에 정착하면 그만이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사과나 한 번 하고 (혹은 그조차 하지 않고) 당당하게 커뮤니티 활동을 이어나간다. 여태까지 쌓아온 커뮤니티 내의 관계와 지위를 내버리기도 아깝고- 평소에 잘 지내왔다면, 흑역사 한 둘이야 그냥 흘러가기도 하니까.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닉세탁’을 감행한다. 그러니까, 아이디나 아이피 등을 갈아버리고, 신입 유저인 양 새로 스며드는 것이다.

        

       그 동안 쌓아온 모든 관계를 다 포기해야 하고- 때때로, 말투나 아이피 탓에 세탁 사실을 들키면 몇 배는 더 큰 수치를 당하게 될 수 있으나- 어찌되었든 당장은 조롱이나 비난을 받지 않으며 커뮤니티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거대한 메리트가 있다.

        

       지하빵을 패배한 광질, 이후남이 최초에 선택한 것은 세 번째였다.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거친 욕설과 과격한 발언으로 점철된 갤러리 생활을 이어온 그에게는 추종자도 있었지만, 건수를 잡았다며 하루종일 물어뜯는 적들도 많았기에. 

        

       정든 닉네임을 버리고, 자괴감을 곱씹으며 뉴비 행세를 했고- 짬짬이, 갤러리에서 자신의 얘기가 나오면 제3자인 척 쉴드도 쳤다.

        

       매번 추하다 광질아, 도게자나 해라 따위의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며 이를 악물게 되었지만.

        

       아따먹이 실제로 버그나 핵을 사용했다는 증거를 잡을 때까지만 참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절치부심, 와신상담의 자세로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며 견뎠다.

        

       그렇게 그는 우연히 발견한 ‘아따먹 팬튜브’부터 시작해서,

       ‘따아한잔’이라는 쇼츠 팬튜브는 물론,

       아크의 방송에 출연한 분량까지 세밀하게 살펴보고는,

       아따먹의 생방송까지 당연하다는 듯이 챙겨보았고-

        

       머리가, 조금. 아니, 상당히 깨졌다.

        

       언제였는지는 스스로도 정확히 몰랐다.

        

       일대일 실력이 진짜배기인 여자라는 걸 알게 된 때, 조금.

        

       첫 날 방송의 마지막에, 카메라 각도가 훅 내려갔던 순간에, 제법.

        

       방송에서 그 레반을 짓밟다시피 이겼던 때, 상당히.

        

       레반을 찍어누르며 ‘도적 좋죠?’ 라고, (이예나는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티배깅을 하는 모습에서는 대리만족의 음습한 쾌감마저 느꼈다.

        

       평소 자신을 까내리는 갤러리 유저들의 레퍼토리에는, 항상 ‘광전사는 레반이지 뭔 광질이여 ㅋㅋㅋ’ 따위의 비교가 동반되어 있었기에, 더더욱.

        

       정신을 차렸을 때, 광질은 ‘도적부흥운동회’ 위게더 게시판에서 방송 언제 하냐고 난동을 부리는 팬들의 대열에 합류해버린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가지고 있었던 반감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애초에, 더 이상 반감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버그도 아니었고. 핵도 아니었고.

        

       자신에게 알몸 도게자를 요구한 것도…… 어떤 개같은 남자 놈이 아니라, 홀리는 듯한 미성과 몸매를 가진 여자였다는 점에서, 오히려 어떤 은밀한 취향이 생겨날 것만 같은 일이 되어버렸으니.

        

       그렇기에,

        

       그는 아주 약간 정들었던 세탁닉, 겉바속촉을 버리고-

        

       갱생광질이라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담은 닉으로 당당히 팬질을 하기로 결심한 채, 활동을 개시한 것이다.

        

       나름 네임드였고, 결투까지 했던 자신을 기억하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갱생광질님. 10만원 감사합니다. 리액션으로 큐 돌려서 도적 보여드릴게요.》

        

       『10만원 리액션의 상태가……?』

       『선생님 큐는 원래 돌릴 거였잖아요』

       『창렬 창렬 해도 이 정도인 리액션은 처음 보네 싯팔』

       『방장 기준으로는 큐 돌리는게 최고의 리액션이긴 하지……』

       『팩트) 방장이 얼마나 게임을 안 했나 생각하면 이건 리액션이 맞다』

        

       벌때같이 달려들어 아따먹을 공격하는 채팅창.

        

       스트리머 본인이 사실상 조장한 것에 가까운 문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광질이었다.

        

       ‘돈은 쓰지도 않는 새끼들이.’

        

       다년간의 갤러리 활동으로 다져진 키보드질을 시작하려던 순간.

        

       《그런데, 혹시……광질님 본인이신가요? 챌린저에서 그 캐릭이랑 성기사 하시는?》

        

       언제나와 같은 나른한 목소리가 속삭이듯 물어왔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광질은 아따먹이 반가워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아주 조금 톤이 높아지고, 속도도 빨라진 것을 캐치할 수 있는 건, 모든 방송을 빠짐없이 챙겨본 자신 뿐이리라.

        

       역시, 그녀도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

       『유명인임?』

       『걍 흔한 갤 네임드 아닌가』

       『갤 네임드(병신)』

       『추하다 광질아~』

       『??누구임?』

       『핵무새짓 할 땐 언제고 육수가 되었느냐 광질아』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다. 그를 질투하고 폄훼하는 채팅들조차도 이제는 아름답게 보일 정도.

        

       도네이션 사이트의 잔액을 확인하고, 빠르게 키보드를 두들겼다.

        

       -갱생광질 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 땐 제가 오해를 했네요… 항상 방송 잘 보고 있어요 ㅎㅎ】

        

       《아, 광질님 맞으신가요? 괜찮아요. 오해할 수도 있죠. 또 10만원……너무 많이 주시네요.》

        

       스트리머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는 핵 논란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흘려보내는 아따먹.

        

       역시, 조금 짓궂을 뿐이지 실제론 착한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라고 생각한 광질이, 다시금 스윗함을 듬뿍 담은 멘트를 적어 도네이션을 보내려던 순간.

        

       《그런데, 알몸 도게자는 하셨나요? 갤러리에 검색하면 나오려나?》

        

       『???』

       『뭔 도게자요?』

       『????그게 무슨』

       『아니 둘이 대체 무슨 사인데』

       『알몸 도게자???』

       『????』

       『이게 여스…? 이게 여스…? 이게 여스…? 이게 여스…? 이게 여스…?』

       『여자 스트리머 입에서 나올 단어가 아니잖아……』

       『그게 대체 무슨 소리니 따먹따먹아……』

       『광질아 지금이라도 사진 찍자~』

       『알몸 도게자 사건도 모르면 방송 왜 봄? (진짜 모름)』

       『2차 도적부흥운동 유입 뉴비들은 나가라~』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보여주겠다는 듯이, 아따먹은 무려 세 개의 브라우저 탭으로 갤러리에 접속하고는 ‘광질’ ‘도게자’ ‘인증’ 따위의 키워드로 검색을 시작했다.

        

       《안 하신 것 같은데.》

        

       그리고 실망감이 잔뜩 배인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올렸어도 그게 갤에 남아있겠니 따먹따먹아……】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대체 왜 알몸 도게자를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거임(진짜 모름)】

        

       《보고 싶은 건 아닌데……사나이대 사나이로 한 약속이었어요. 이러면 딱히 갱생한 것도 아니지 않나. 아이디에 갱생 떼세요.》

        

       광질의 아이디 중 ‘갱생’ 부분을 드래그하더니, 직접 떼어내겠다는 듯이 이러저리 마우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랜덤하게 움직이는 듯하던 마우스 커서가 슬금슬금 ‘유저 차단’을 향해 가는 걸 본 광질이, 다급하게 메시지를 수정한 도네이션을 보냈다.

        

       -갱생광질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그건 올리면 통매음으로 잡혀갑니다 선생님ㅠㅠ……한 번만 봐주시면 다른 거 무엇이든 하겠습니다ㅠㅠ】

        

       《무엇이든……요?》

       

       백지수표가 먹힌 걸까.

        

       -흐흫.

        

       잔뜩 설렌 듯한 목소리로 웃음을 흘린 이예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메모장을 켜며 요구사항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하루에 3판 이상……아니, 5판 이상. 본캐로, 도적하시고요. 위게더 게시판이랑 갤러리에 전적 인증샷 올리시고……아, 인증샷 올릴 땐 제가 나중에 검색하기 쉽게 제목을 이렇게, ‘최고에요 도적도적’으로 해주세요.》

        

       『미친 도악귀……』

       『대체 얘한테 도적은 뭐냐』

       『캠 다시 키자 4번 말했다』

       『도적이 남친이라도 됩니까』

        

       《바쁜 날 못하는 건 이해할 건데, 불시검문해서 그 날 광전사 했으면 영구차단할 거예요.》

        

       * * * *

        

       -갱생광질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넵! 매일 인증샷 올리겠습니다】

        

       시작이 좋다.

        

       느낌이 좋아.

        

       챌린저 등반런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지난 도적부흥운동의 성과가 이렇게나 아름답게 돌아오다니.

        

       오늘도 세상에서 광전사 하나를 줄이고, 도적을 하나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아주 악성……다른 광전사를 독려하고 양산하던, 광전사 백인장 정도는 되는 인물을 전향시켰으니까-

        

       오늘 분 도적부흥운동은 이미 완료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지 않을까.

        

       ……챌린저노방종 선언만 아니었으면, 바로 게임 종료하고 술을 마시러 갔을 텐데.

        

       그래도, 채팅창도 다 함께 ‘최고에요 도적도적’을 외쳐주고 있으니까. 이런 분위기, 나쁘지 않다.

        

       -맛춤뻡성샌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최고에요가 아니고 최고예요입니다~】

        

       음…….

        

       패자들한테만 시키는 거라서, 그냥 나중에 내 성과를 검색해보기 더 쉽도록 틀린 철자로 만든 문구라는 거……설명해야 되려나.

        

       안 해도 다들 알고 있겠지. 방송 키고 검색도 몇 번 했었고.

        

       “아. 큐 잡혔네요. 갱생광질님, 앞으로 지켜볼거예요.”

        

       도적을 픽하고, 어깨를 가볍게 스트레칭 해주었다.

        

       지금부터는, 게임에 집중할 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SnowOne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월요일 휴재분입니다. 이번주 일정이 살얼음판이네요.

    다음화 보기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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