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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지난 며칠 간, 멜리나는 묘한 기시감 속에서 살았다. 사건의 발단은 키엘 공작과 대면했던 바로 그날이었다.

       

       기억이 뚝뚝 끊어진 기분.

       

       단순한 기억 상실이라기엔 상황이 너무 공교로웠다. 마치 누군가 ‘올리비아’와 관련된 기억만 지우는 것처럼.

       

       ‘까먹은건 아니다.’

       

       까먹었을리 없다. 대마법사의 기억력은 범인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하므로.

       

       멜리나는 며칠에 걸쳐 그 원인을 알아내려 노력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가설은 올리비아의 소멸이었다. 그것도 단순한 소멸이 아닌,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소멸 말이다.

       

       하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분명 올리비아는 시간선을 넘어오기 위해 막대한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아직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 멜리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다고 해도 존재 자체가 소멸하는 것은 너무 과하다. 

       

       애초에 과하고 말고를 따지기 전에, 올리비아가 그것을 용인했을 리가 없다. 

       

       ‘다른 모든 것보다, 내 기억에서 잊혀지는걸 두려워할 아이니까.’

       

       기껏 노력한 결과가 잊혀지는 것이라면, 시간선을 넘어오지는 않았을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올리비아의 존재를 지우고 있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이 가설이 가장 유력했다.

       

       하지만 대체,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멜리나의 손에 들린 연필이 산산조각났다. 그녀는 지금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올리비아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사람이던가?

       

       아니, 절대로 아니다.

       

       올리비아와 삼 분만 대화해보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따뜻하고, 배려심이 깊고, 헌신적이며, 겸손하다. 

       

       선(善) 그 자체였다.

       

       이건 비단 멜리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금탑의 다른 마법사들도 같은 생각일것이다.

       

       근 2년간, 금탑의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탑주인 멜리나의 성정이 온화하게 바뀌니, 그 밑의 사람들도 그에 영향을 받아 부드럽게 변했다.

       

       오죽했으면 다른 마탑의 탑주들이 금탑에 올때마다 적응이 안된다며 혀를 내두를까.

       

       ‘다 내 제자의 덕이지.’

       

       사람의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아는 것이 많고, 나이가 많을수록 이 성향은 도드라진다. 그리고 금탑은, 단연 고집 세기로 유명한 이들만 모인 마탑이었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며, 편협한 마탑.

       

       신성왕국의 성녀가 와도 금탑은 교화시키지 못할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금탑의 마법사들은 답이 없었다.

       

       그런 마탑을, 불과 2년 만에 바꾼 게 바로 올리비아다.

       

       멜리나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악독해야, 그 사랑스러운 아이를 소멸시키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는가.

       

       [탑주님.]

       

       수정구가 울렸다.

       

       [급한 일이 생겨서, 잠시 내려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아래층은 시끄러웠다. 엉덩이가 무겁기로 유명한 고위 장로들이, 기품에 어울리지 않게 연장들을 들고 날뛰고 있었다.

       

       “빠루 가져와!”

       “해머! 해머어어!”

       

       가히 시장을 방불케하는 소란. 하지만 그들이 모여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확인한 순간, 멜리나도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이 두드리는 방은 분명 올리비아의 실험실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란이냐!”

       

       멜리나의 일갈에 복도가 일순간 침묵으로 물들었다. 멜리나는 그 중 그나마 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4장로를 가리켰다.

       

       “4장로, 지금 당장 무슨 상황인지 내게 설명해…….”

       

       멜리나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

       

       발걸음을 내딛은 순간 머리가 아찔해졌다.

       

       마치 그 때처럼.

       

       4장로가 다가와서 상황을 설명했지만, 멜리나의 귀에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사라진다.

       

       잊어서는 안되는 기억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끄윽.’

       

       멜리나는 안간힘을 쓰고 버텼다. 

       

       잃고 싶지 않아서, 잃어버릴 수 없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버티고 버텼다.

       

       ‘내가 사랑하는 제자.’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제자.’

       

       ‘내게 진리를 가르쳐준 제자.’

       

       하지만 기억하는 속도보다 잃어버리는 속도가 더 빨랐다.

       

       멜리나는 다급히 올리비아가 남긴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는 눈을 부릅뜨고,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하나, 둘, 셋, 넷……여덟.

       

       읽었다. 무슨 뜻인지 해석하는 것조차 버거웠지만, 계속해서 읽었다.

       

       하나, 둘, 셋…….

       

       올리비아가 남겨준 유산.

       

       하나, 둘…….

       

       올리비아.

       

       유산.

       

       하나…….

       

       그러니까.

       

       ‘……올리비아?’

       

       멜리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시선은 더 이상 종이를 향해있지 않았다.

       

       “방금 뭐라고 했느냐? 우리 올리비아가 뭐라고?”

       “키엘 공작이 올리비아를 실험실로 끌고 들어간 다음, 문을 잠그고 농성중입니다.”

       “……뭐라?”

       

       정신을 차렸을 땐, 실험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올리비아가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 이후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성을 잃었다는건 확실했다.

       

       키엘을 내쫓았다. 쓰러진 올리비아를 안아들고 소파에 눕혔다. 치유 사제를 불러달라고 소리쳤던 것 같기도 했다.

       

       멜리나는 쓰러진 올리비아의 양손을 꽉 붙잡았다. 이 손을 놓는 순간, 또 다시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멜리나가 멈칫했다.

       

       또, 라니.

       

       분명 올리비아를 잃어버렸던 적은 없거늘. 멜리나는 올리비아의 손을 붙잡은 채로 생각했다. 

       

       “……스승님? 무슨 일이세요?”

       

       올리비아의 손에 온기가 돌아올 때까지.

       

       “혹시 제가 쓰러졌었나요?”

       “……기억이 안나니?”

       

       이상했다. 분명 올리비아에게 하는 질문인데, 기이하게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키엘 공작이 너를 해코지했단다.”

       “……키엘 공작님이요?”

       “그렇단다.”

       

       화가 났다. 올리비아에게 해를 입힌 키엘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왜?’

       

       이상했다. 너무나도 이상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이상했다. 

       

       왜 스스로에게 화가 난단 말인가? 올리비아를 지켜주지 못해서? 다쳤을 때 곁에 있지 못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방금 떠올린 이유 중에 답은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도대체…….’

       

       멜리나는 반사적으로 말을 계속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올리비아, 자고로 사람 속내는 알 수 없는 법이란다.”

       “아니요, 키엘 공작님은 저를 절대로 해코지하지 못해요. 절대로요.”

       “세상에 절대라는 말은…….”

       “있어요.”

       

       올리비아가 가까워졌다. 그녀의 입술이 속삭였다.

       

       “스승님은 저를, 절대로 상처입히지 못해요.”

       “…….”

       

       멜리나는 까닭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절대’라니. 이 어찌나 오만한 발언인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멜리나의 마음 속에서 올리비아가 차지하는 지분은, 옛적에 진리보다 커져버렸으니까.

       

       다만.

       

       ‘나의 제자는, 그렇게 말할 수 없을진데.’

       

       왜인지, 올리비아가 낯설었다.

       

       “제 말이 맞죠?”

       “…….”

       

       멜리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했다는게 옳은 표현이리라.

       

       마음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남은 것은 이 아이뿐이라고. 이 아이까지 잃게 되면, 영영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만약 허락 안 해주시면, 저는 더 이상 스승님을 스승님이라고 부르지 않을거예요.”

       

       저항하지 않았다.

       

       “키엘 공작님과 못 만나게 하시면 저는 정말 슬퍼질거에요. 매일 밤마다 울지도 모르죠. 그리고 저를 그렇게 만든 누군가를 평생…….”

       “…….”

       

       멜리나가 기억하는 올리비아는 누군가를 협박할 아이가 아니다. 하지만 눈 앞의 올리비아는 분명히 스승을 겁박하고 있었다.

       

       승리를 확신한 듯한 미소까지 지으면서.

       

       “허락, 해주실거죠?”

       

       

       

       *****

       

       

       

       그 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스승님, 잠시 나갔다 올게요.”

       

       올리비아는 어느 순간부터, 마탑 안에 있는 날보다 바깥에 있는 날이 더 많아졌다.

       

       “키엘 공작님 좀 만나고 올게요. 스승님.”

       

       다시 몇 주가 지났다.

       

       “죄송해요 스승님. 오늘은 키엘 공작님과 약속이 있어서요. 금방 다녀올게요.”

       

       그리고 몇 달.

       

       멜리나는 올리비아가 조금씩 낯설어졌다.

       

       그날, 올리비아가 쓰러졌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만 그리고 겁박.

       

       그 단어들은 분명, ‘올리비아’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설마.’

       

       머릿속에서 한가지 끔찍한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어린날의 치기 어린 실수에 불과하니.

       

       애써 합리화한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끔찍한 가능성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또 잊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 반드시 말해드릴게요. 스승님.

       

       이러다가 언제 또 잊어버릴지 모른다. 

       

       문득 두려워졌다. 이대로 가다간, ‘올리비아’와 관련된 모든 기억이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스승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는데, 정작 그 스승에게 잊혀진다니.

       

       ‘……안된다.’

       

       그렇게 되면, 죽어서도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멜리나는 편린을 펼쳤다. 올리비아가 들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기에, 온전히 진리에 몰두할 수 있었다.

       

       “스승님…….”

       “어, 그래. 다녀오려무나.”

       

       1년이 지났다. 여전히 ‘올리비아’는 돌아오지 않았고, 진리에는 진전이 없었다.

       

       2년이 지났다. 여전히 변한 것은 없었지만, 멜리나의 초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3년.

       

       그리고.

       

       “아…….”

       

       멜리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양손을 꼬옥 모은 채, 기도하듯 몸을 웅크렸다.

       

       “……제자야.”

       

       멜리나는 웃으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다오.”

       

       여기까지 4년.

       

       마침내 깨달았다.

       

       아홉 번째 편린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PTS12님 5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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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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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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