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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학생회장을 만나는 데 쓴 시간이 생각보다 짧았기 때문에, 오늘 방과 후에는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못 한다는 핑계는 댈 수 없었다.

        

       사실 핑계를 대볼까 생각은 해봤는데, 내가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 쯤에는 이미 양쪽에서 하늘이와 이수아가 내 팔을 잡고 체육관 쪽으로 질질 끌고 가는 중이었다.

        

       ……오늘은 절대로 공이랑 싸워보겠다고 까불지 말아야겠다.

        

       최소한 그렇게 다짐하면서 체육관으로 질질 끌려갔더니,

        

       신소희가 축구공을 발끝으로 차서 띄워 올리고 있었다.

        

       “엥?”

        

       발로 띄워 올린 공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다시 차올리고, 높이 올라간 공을 이마로 받아 다시 위로 올린다. 머리 뒤쪽으로 떨어진 공을 발뒤꿈치로 찼지만, 공이 발에 제대로 맞지 않았는지, 공은 그대로 신소희 등 뒤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아, 씀, 오랜만에 하니까 잘 안되네.”

        

       “오오, 꽤 하잖냐!”

        

       그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있던 부장이 말했다.

        

       “혹시 학교에서 축구부 활동이라도 하는 거냐?”

        

       “내가 왜? 학교 끝나고 집에 가기도 바쁜데.”

        

       신소희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 말했다. 부장은 그런 신소희에게,

        

       “그래? 그거 아쉽네.”

        

       부장은 딱히 강요하지도 않았다. 사실 부장만 해도 축구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걸 업으로 삼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저 사람도 딱히 외부 입학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화영 고등학교 바깥의 일은 거의 모를 것이다. 정말 축구를 하고 싶어도 집에서 지원받을 형편이 되지 못해 축구를 하지 못한다거나, 형편이 어려워서 얼른 취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거나 해도 별로 공감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공감하지 못한다기보다는 아예 그런 생각 자체를 못 하겠지. 자신은 평생 돈 많은 집에서 살아왔을 테니까.

        

       물론 신소희가 목숨 걸고 축구를 하고 싶다거나 꿈을 가졌는데 좌절했다거나 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딱히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캐릭터도 아니고, 그저 눈앞에 있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향해 직진하는 캐릭터였다. 그 시원한 성격 때문에 원작에서도 유하늘의 고민을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캐릭터이기도 했고……

        

       아니, 그런데.

        

       “……소희?”

        

       내 부름에, 부장과 대화하던 신소희가 내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시큰둥하던 표정이 바로 확 펴졌다.

        

       그리고 자신이 표정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얼른 헛기침하며 표정을 가다듬어 다시 평소의 시큰둥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실로 훌륭한 금태양 츤데레 캐릭터였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내가 신소희 쪽으로 다가가면서 물어보자, 신소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담 넘었는데?”

        

       그 한마디에 주변 분위기가 쩌적 얼어붙었다.

        

       “뭐……?”

        

       내가 멍한 목소리로 다시 물어보자, 신소희는 집게손가락으로 옆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니, 정문으로 들어가려는데 직원이 막더라고.”

        

       그야 당연히 다른 학교 학생이 허락도 없이 들어오려고 하면 막겠지.

        

       일반 고등학교도 아니고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 자식들만 다니는 학교니까.

        

       “……못 들어오게 막아서 담 넘어서 들어왔다고.”

        

       “그런데?”

        

       “…….”

        

       뭐라고 반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본인이 너무 당당하게 선언해버리니까 오히려 할 말이 없었다.

        

       “어디로?”

        

       “너희들이 항상 넘어가던 곳.”

        

       “…….”

        

       다시 한번 주위가 침묵에 휩싸였다.

        

       어, 그러네. 나도 매일같이 담을 넘어가고 있긴 해.

        

       “여기까지 오는데 아무도 뭐라고 안 했어?”

        

       “학교 관계자는 만난 적 없고, 애들은 니 이야기 하면 전부 피하던데.”

        

       사실 학교 관계자도 내 이야기했으면 피했을지도 모르겠다.

        

       대화하지 않은 애들이 신소희를 의심하지 않은 이유는…… 신소희 본인이 너무 당당해서 오히려 누구 허락받고 들어왔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잠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부장이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너는 이 학교에 무단침입하고 있다는 말인가?”

        

       “무단침입이라면 무단침입이겠지.”

        

       신소희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니, 무단침입이라고 안 해도 무단침입인데.

        

       “애초에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 애들 온다고 해서 무작정 안 막거든? 아침에는 조기축구회 아저씨들도 와서 축구 하고 간다고. 정문 막아두고 아무도 안 받는 건 너무 빡빡한 거 아니야? 무슨 초등학교도 아니고.”

        

       아니, 그야 당연히 그런 학교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도 주말에는 아저씨들이 빌려서 축구 같은 걸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건 학교 측에서 허락해서 가능했던 거잖아!

        

       “그래서, 싫어? 내가 여기 있는 거. 나 나가?”

        

       “어? 아, 아니…….”

        

       이 상황에서 나가라고 하면 나만 나쁜 사람 되는 거 아니냐.

        

       “둘이 아는 사이냐?”

        

       어제 날 굴린 뒤로 뭔가 놔 버린 듯한 부장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마치 내가 축구부 부원이라도 된다는 것 같은 말투였다.

        

       “우리는— 부엡.”

        

       “어젯밤을 함께 보낸 사이.”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신소희가 얼른 그렇게 대답하면서 팔로 내 목을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나를 끌어들여서 내 얼굴을 자신의 옆 가슴에 붙여버렸다.

        

       말랑말랑하고, 따뜻하고, 조금은 축축한 감각. 섬유유연제인지, 아니면 본인이 따로 뿌리고 다니는 것인지, 향긋한 과일 향이 났다. 어디선가 맡아본 적 있는 냄새였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았지만.

        

       “응? 그치, 그치?”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내 머리를 마구 쓰다듬는다. 바로 조금 전까지 공을 가지고 놀고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굉장히 따끈따끈했다.

        

       “읍, 잠깐, 말 좀.”

        

       내가 발버둥 쳐봤지만, 아무래도 신소희는 운동 신경도, 힘도 예사라보다 훨씬 좋은 모양이었다.

        

       내가 손으로 자신을 밀어내려고 하자, 신소희는 아예 양손으로 내 머리를 꽉 껴안았다.

        

       ……아, 그래. 마음대로 해라. 마음대로 해.

        

       이것도 다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 위한 행동일 테니까.

        

       결국 그 품에서 벗어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손을 축 늘어뜨린 다음에야 신소희는 팔을 풀어주었다.

        

       “푸하.”

        

       겨우 해방되어 크게 숨을 쉰 뒤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늘이와 이수아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신소희를 노려보고 있었다. 신소희도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긴 했지만, 표정에서는 뿌듯하다는 감정이 넘치고 있었다.

        

       “…….”

        

       부장은 입을 헤 벌리고 우리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축구부 애들도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고.

        

       “……대단하네.”

        

       우리 둘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남다운이 감탄했다.

        

       “저기, 신입.”

        

       부장이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나를 불렀다.

        

       “네?”

        

       부장은 조금 부담스럽게 내 쪽으로 고개를 내리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 넷은, 그렇고 그런 사이냐?”

        

       “……어…….”

        

       이젠 아주 티격태격 싸우고 있는 신소희와 하늘이, 그리고 그 두 사람 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갈팡질팡하는 이수아를 보면서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렇, 죠?”

        

       본인들이 대놓고 저렇게 행동하니, 그냥 이렇게 대답해도 괜찮겠지?

        

       “제법이잖아, 신입!”

        

       부장이 갑자기 내 등을 팡팡 때려서 나는 순간 앞으로 휘청거렸다.

        

       “그, 뭐냐. 혹시 인기 끄는 법 같은 거 가르쳐 줄 수 있냐?”

        

       그렇게 묻는 부장을, 남다운이 뒤에서 조금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어…….

        

       인기 끄는 법이라.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나는 서로 노려보고 있는 신소희와 하늘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게. 진짜 모르겠네. 나는 그냥 몇 마디씩만 했을 뿐인데. 그 외에는 오히려 내가 저 세 사람에게 휘말리고 있고.

        

       혹시 그건가?

        

       악역영애로 환생하면 되는 거?

        

       ……에이, 설마.

        

       *

        

       양혜인은 최근 들어 매우 큰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째서 갑자기 아가씨가 저런 밝은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어째서 저렇게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지.

        

       자신을 압박하는 존재들을 거부하고 싸우는 법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상했다.

        

       지금까지 예사라 아가씨의 곁을 3년간 지킨 양혜인이 보기에, ‘계기’라고 보일만 한 사건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예사라 아가씨는 언제나 그저 조용히 지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굳이 사건이라고 한다면, 갑자기 병원에 실려 갔을 때. 아마 자학으로 추정되는 상처를 보게 된 그 날.

        

       하지만 그것도 ‘계기’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지금까지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자학이건,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건, 그 ‘사건 자체’가 일어나게 된 계기는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

        

       그래서, 양혜인은 한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가씨가 활발해진 것은 좋다. 친구가 생기고 웃게 된 것도 좋다. 자신에게 말을 걸게 된 것도 분명 좋은 일이다.

        

       어쩌면 그 친구들이 아가씨를 조금 다른 의미로 좋아하고 있다는 것도— 너무 선을 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는 있겠지만.

        

       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회장에게 반할만한 일을 하게 되었는지.

        

       그걸 알지 못하면, 자신은 아가씨를 온전히 도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양혜인은 지금까지, 다른 사용인들과 같이, 그저 가해자로 남아있었다.

        

       마음을 바꾼 것은 고작 한 달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도, 그 한 달도 되지 않는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 때문에, 양혜인은 앞으로 예사라의 곁에 있게 되지는 못할 것이다.

        

       양혜인이 사라진 자리에는, 다시 표정 없는, 잘 교육된 전문 메이드가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메이드는 당연히 회장의 편일 가능성이 컸다. 지난 3년 동안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한 달 정도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 회장이 마음을 바꾸면서 그것도 어려워졌다. 아마 그녀는 이번 주를 버티지 못하고 해고되리라.

        

       “…….”

        

       양혜인은 예사라 방문 옆의 도어락에 자신의 지문을 가져다 대었다.

        

       삑삑삑삑, 하고, 자동으로 번호가 입력되는 소리가 들렸다.

        

       잠금이 풀리고, 문을 열고 아가씨의 방으로 들어간다.

        

       예사라 아가씨의 방을 정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은 전속 메이드인 양혜인뿐이었다. 물론 양혜인도 청소와 정리만 할 수 있을 뿐, 아가씨의 물건을 함부로 뒤져볼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권한을 조금 넘어보자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가씨를 위한 일이라는 핑계는 댈 생각 없다. 돕고자 생각하곤 있지만, 사실 그보다는 그저 이유를 알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앞선 행동이었다.

        

       하지만—

        

       양혜인은 문을 다시 닫았다. 도어락 안의 잠금장치가 돌아가며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돌려, 넓은 방 안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아가씨가 개인적인 물건을 넣어 둘 곳이라면, 딱 한군데밖에 없다.

        

       옷장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세탁물을 넣을 때마다 양혜인이 열어보게 된다. 화장실과 샤워실의 찬장도 양혜인의 몫이다. 당연히, 아가씨가 철저하게 개인적인 용도로 쓸 곳은 책상 서랍뿐이었다.

        

       양혜인은 망설이지 않고 곧장 책상 앞으로 갔다.

        

       책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첫 번째 서랍을 열었다. 필통과 볼펜, 연필 몇 자루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언제 사다 모은 것인지 모를 값싼 장신구가 몇 개 굴러다니고 있었다.

        

       “…….”

        

       그리고 마지막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두꺼운 노트 하나와 뜯어진 편지 봉투, 그리고 알약 통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

        

       양혜인은 잠깐 그것들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그 물건들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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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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