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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새벽녘의 차가운 코발트빛이 가시고, 아침 햇살을 받아 점점 생기를 얻는 부천 연구소 부지.

    이른 아침의 정적을 깨는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스마일 테마파크 전단지 사건이 해결되었대요!”

    뛰느라 발갛게 상기된 뺨을 한 금발 소녀가 검은 요원에게 신문을 건네주었다.

    <스마일 테마파크 전단지 사건 해결!>

    <세희 연구소에 격리된 것으로 알려진, ‘스마일 테마파크 인형’의 완전 파괴를 지난 새벽 2시에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기쁜 듯이 웃는 소녀가 건넨 신문에는 전단지 사건의 종료를 이야기하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검은 요원은 신문을 받은 뒤 살짝 미소를 지으며, 무릎에 손을 얹고 숨을 고르는 금발 소녀에게 말했다.

    “정말 다행이군요. 아가씨.”

    받아 든 신문을 넘기자, 사납게 생긴 여성의 사진이 보였다.

    사형을 피하기 위해 오브젝트로 투입된 사형수.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한 일이겠지만, 저 사형수로 인해서 서울은 한 시름 덜어놓게 되었다.

    “아저씨. 누군가가 오브젝트에서 탈출한 것만으로도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건가요?”

    “보통은 그렇게 단정 짓기는 힘듭니다. 탈출 조건이랑 파괴 조건은 보통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이번에는 왜 동일하다고 보는 거예요?”

    “두 가지 조건이 겹쳤기 때문이죠. 우선 사형수가 탈출한 뒤, 관련 오브젝트가 힘을 잃고 파괴된 일이 발생한 점. 이게 제일 중요한 첫 번째 조건입니다.”

    검은 요원은 신문을 펼치고, 관련 자료를 짚어가며 이야기했다.

    “여기, 탈출한 사형수의 증언이 적혀있군요. 9종류의 기구를 클리어 해야 탈출할 수 있었다. 보통 탈출이 어려울수록 탈출 조건과 파괴 조건이 같은 경향을 보입니다. 9종의 미션을 클리어 해야 하는 건 탈출형 오브젝트 중 꽤 어려운 편입니다. 탈출이 지나치게 어렵다는 점이 2번째 조건입니다.”

    흠흠.

    검은 요원의 설명을 들은 금발 소녀는 뭔가를 알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

    눈을 뜨니, 익숙한 천장이다.

    나를 위해 준비된 격리실의 천장.

    어제 테마파크에 돌아오자마자 세희랑 예린에게 격리실로 납치됐었지….

    냠냠.

    왼쪽을 보니 예린이가 내 머리카락을 씹고 있었다.

    오른쪽을 보니 세희가 내 팔을 보물이라도 되는 양 껴안고 있었다.

    움직일 수가 없네….

    유령화로 빠져나갈까? 생각했지만 그냥 오늘은 가만히 있기로 했다.

    테마파크가 재미는 있었지만, 인간이 너무 없어서 인간성분이 부족해.

    게다가 침대 안이 따뜻하고 편안하기도 한 점에 더해서, 장작도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고 있으니 조금은 더 있어도 괜찮겠지.

    이번 테마파크에서는 괜찮은 능력을 챙겼다.

    굉장히 강력한 능력.

    아니, 강력한 게 아니라 내 마음에 드는 능력인가?

    황금 사신 저장고가 생겼다.

    눈을 감으면 황금 사신이 잔뜩 있는 공간이 보인다.

    이름을 붙이자면 황금 사신 정원.

    황금 사신들이 가는 발할라 같은 곳이었다.

    푸딩과 케이크의 연회가 언제나 열리고, 코코아로 된 강이 흐르는 곳.

    푹신푹신한 침대로 된 대지가 끝없이 펼쳐지고, 황금 사신들이 그 위에서 뛰어노는 곳.

    침대 캐노피로 된 하늘과, 은은하게 빛나는 광원이 펼쳐진 곳.

    언제나 몽롱한 분위기가 가득한 곳.

    꿈속 정원.

    꿈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는 실체가 없는 공간이었다.

    황금 사신 정원으로 들어서자, 황금 사신 하나가 폴짝 뛰어서 달라붙었다.

    정원에는 이미 많은 인간들과 황금 사신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잠이 든 인간 중에 황금 사신에게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나도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아서 푸딩을 하나 집어 먹었다.

    역시 좋은 곳이다.

    푹신하고 맛있는 음식도 많다.

    황금 정원에는 어느새 잠이 든 상태의 세희와 예린이 소환되어 있었다.

    각자 황금 사신이 한 마리씩 달라붙어서 뺨에 뚜시뚜시를 날리고 있었다.

    ‘빨리 일어나서 놀자!’가 느껴지는 펀치였다.

    황금 정원에서 깨어난 둘은 정원을 보고 깜짝 놀라서 두리번거리다가 무언가 납득을 한 것 같았다.

    아마 꿈이라고 납득을 한 것 같았다.

    뭐, 꿈이 맞긴 하지만.

    꿈이라고 생각하는 둘은 어깨에 황금 사신을 한 마리씩 얹고 황금 사신들의 정원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같이 침대에 뒹굴고, 뛰어다니다가, 지치면 누워서 쉰다.

    나도 황금 사신과 황금 정원에서 질릴 때까지 뒹굴뒹굴했다.

    ***

    거울을 바라보면 생소한 얼굴이 비춰보였다.

    문신투성이의 엄청난 장신의 여자.

    아마 영체를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내 얼굴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눈과 입을 꿰맨 흉측한 인형 얼굴.

    아마 영체를 볼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못 보고 지나치기 힘든 얼굴.

    이 세계에는 영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아예 없거나, 거의 없어보였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법원’이라는 곳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여자의 목을 자르고, 내 인형 머리를 얹는 것만으로 이런 기적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하다니….

    확실히 ‘마도서’의 능력은 그 한계를 알 수 없다.

    아니, 이곳에서는 ‘오브젝트’라고 불렀던가?

    물로 대충 얼굴을 씻은 뒤, 법원 밖으로 나서자 달빛이 나를 반겨줬다.

    7개가 아닌 단 1개뿐인 달.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육신.

    기름이나 가스 혹은 오브젝트를 사용하지 않고 길을 밝히는 가로등.

    그 가로등의 불빛에는 처음 보는 벌레가 펄럭이며 그림자를 만들었다.

    거리에서 들리는 생소한 음악, 익숙하지 않은 건축물.

    빛이 잔상을 그리고 움직이며, 빛이 물처럼 흐름을 그리는 도로.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이곳이 내가 나고 자란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법원에서 나오며 받은 것은 무죄라고 증명한다는 종이 쪼가리.

    그리고 생소한 ‘나의 물건’들과 주소 등을 적은 문서들.

    오브젝트의 영향으로 기억이 애매하다고 해서 그런 걸까, 썩 친절한 안내였다.

    테마파크에서 ‘손님’들을 위화감 없이 안내하기 위해 주입받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종이에 적힌 주소를 더듬어나갔다.

    ‘집’이라.

    도대체 집을 가진 것은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군.

    주소를 더듬어 도착한 곳은 법원 근처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어둡고, 칙칙하고, 불행과 가까운 곳.

    오히려 이런 곳에 오니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쿵쿵쿵.

    주소에 쓰여있는 문을 두들긴다.

    쪽지의 정보가 정확하다면 이 집에는 이 몸의 여동생이 살고 있었을 터.

    “나가요.”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약간 주눅 든 것 같은 표정의 작은 여자였다.

    “… 언니.”

    “그래.”

    가족일 텐데, 별로 환영받지는 못 하는 것 같네.

    이것도 다 이 세계에 인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겠지.

    오브젝트에 인간이 1/100토막이 나면 가족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할 텐데.

    내가 말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꼴을 보니 말을 붙이기도 힘들었다.

    생소한 가족과 생소한 식기로 생소한 음식을 먹고 좁고 생소한 방안에 눕는다.

    그렇게 내 이세계에서의 첫날은 끝이 났다.

    ***

    눈을 뜨니, 새로 생긴 여동생이 나를 칼로 찌르고 있었다.

    “죽어! 죽어! 죽어어어어!”

    배와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는 방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이 육신은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이토록 원망 받는 것인가?

    “흐음, 그렇게 해서는 죽지 않아.”

    내 말소리에 흠칫 떠는 소녀의 손을 쥐고, 그 칼날을 목까지 들어올린다.

    “나는 목을 자르지 않으면 죽지 않거든. 자, 목은 여기다.”

    나는 테마파크의 주박에서 풀려났지만, 여전히 오브젝트다.

    테마파크에서 탈출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했다.

    정작 탈출하고 나니, 얻은 것은.

    전혀 모르는 세계, 사회, 육신, 가족.

    오브젝트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이미 고향은 없다.

    그럼 이 소녀에게 죽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육체의 원래 주인은 절대로 그러지 않았을 테니까.

    ***

    큭큭큭.

    “30년만의 재회가 이렇게 돼서 정말 안타깝구나, 아들아.”

    소장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난장판이 된 공동묘지에서 울려 퍼졌다.

    몸통에서 억지로 쥐어뜯은 것 같은 머리통을 하늘 높이 치켜든 남자가 내는 소리였다.

    “아들아. 아들아. 다시 한번 말해보거라.”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내가 준 선물을 돌려 받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 나는 지극히 합리적인 사람일 텐데?”

    퍼석. 

    양 옆에서 프레스로 누른 것처럼 머리통이 터져버렸다.

    피를 뒤집어쓴 남자는 악마같이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나는 중앙 연구소 소장이야. 그리고, 이름… 이름은 모르겠군! 뭐, 연구랑 비교하면 사소한 일이지.”

    큭큭큭.

    연구소장은 삽으로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한 때 소장의 아내였던 사람의 무덤이었다.

    돌로 만든 관 뚜껑을 들어내자, 드러난 것은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연구소장은 삽으로 시체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핏물이 돌로 된 관을 가득 채우고, 시체가 잘게 부서졌을 때 소장이 외쳤다.

    “여기 있군! 내가 준 선물!”

    시체 속에서 떠오른 것은 작은 구체였다. 

    “부패를 막고 상처를 천천히 회복시키는 오브젝트, 이게 필요했어. 죽은 사람에겐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지.”

    소장은 총상으로 피투성이가 된 채 비틀거리면서 걸었다.

    바닥에 떨어진 지팡이를 주워 든 소장은 바닥을 두 번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남은건 목이 잘린 부소장.

    그리고 경호하던 사람들의 참혹한 시체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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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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