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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애가사가 방문을 뛰쳐나가고, 몇 분 후.

   복도 끝에 숨어 있던 한 시녀가 불쑥 튀어나왔다.

     

   검은색 드레스에 흰색 프릴이 달린 전형적인 시녀 복장인 그녀는 다름 아닌 리리나였다.

   하지만 오늘의 리리나는 그녀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 까마귀 한 마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림,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거 같죠?”

     

   리리나가 질문하자 까마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리리나는 그것을 보고, 한차례 숨을 내쉰 뒤 재빠르게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사람들은 아슬란의 분신자살로 인해 죄다 그쪽으로 몰려간 상황이다.

     

   아무도 없는 지금만이 기회.

     

   그녀는 문도 닫지 않고, 뛰쳐나간 애가사 덕분에 손쉽게 그녀의 방에 들어설 수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들이었다.

     

   책장을 빼곡히 채운 책들은 하나 같이 마법과 관련된 책들이었고, 그러한 책들 사이에는 사람에게 타고난 지체를 설명하는 책들도 여럿 있었다.

     

   애가사의 열정이 보이는 방과 함께 책상 위에는 몇 가지 서류들이 어질러져 있었다.

   거기에 오래전 단란하게 찍은 세 가족의 사진도 하나 보였다.

     

   아슬란이 무척이나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와 애가사가 아슬란을 끌어안고 찍은 사진.

     

   리리나는 그 사진을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서둘러 방 전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서랍이었다.

     

   “……없네요.”

     

   우선, 잠기지 않은 서랍들은 전부 다 열어봤다.

   당연한 거긴 하지만 역시 열리는 서랍 안에 크라슈가 말한 도로시의 결정은 없었다.

     

   정령이 죽을 때 남기는 결정.

   그것은 정령이 다른 후대의 정령에게 기억과 경험을 넘겨주고자 남기는 결정이다.

     

   크라슈가 혼돈의 정령의 핵에 깃든 세계 침식을 흡수했을 때 그녀의 기억을 엿보게 된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이었다.

     

   크라슈의 경우 핵을 부숴 정령을 죽이는 방법과 달리 핵을 보존시켰기 때문에 결정은 남지 않았지만.

   도로시는 핵이 불타서 부서진 만큼 그러한 결정이 남아 있었다.

     

   리리나는 그런 결정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남은 건.”

     

   리리나의 눈에 서랍이 닿았다.

   자물쇠가 채워져 잠겨 있는 서랍.

     

   분명 중요 서류들이 들어 있을 서랍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러한 서랍의 자물쇠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는 점이다.

     

   리리나는 일반인이다.

   마법은 마도사들이 쓰는 걸 본 적이나 있지 사용할 줄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린 그때.

   리리나의 어깨에서 까마귀가 가볍게 도약해 내려왔다.

     

   “크림?”

     

   리리나가 까마귀의 이름을 부르자 까마귀는 어느새 자물쇠의 앞에 있었다.

   그러더니 부리로 툭툭 두 번 치자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툭하니 떨어졌다.

     

   리리나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크림에게 이런 능력이 있는 줄 몰랐다.

     

   이래서 크라슈가 크림을 데려가라고 한 것이구나라고 리리나는 납득했다.

     

   하지만 거기에 의문을 가질 틈은 없었다.

   애가사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마당.

     

   그녀는 서둘러 서랍을 열어 보았다.

     

   “찾았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쾌재를 불렀다.

   서랍 안쪽, 새파란 결정이 하나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결정을 서둘러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남은 건 돌아가는 것뿐.

     

   그러니 그녀는 재빠르게 자물쇠를 다시 잠가 두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러는 순간이었다.

     

   화르르르륵!

     

   갑자기 창문 바깥에서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그것을 본 리리나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그녀의 얼굴이 점점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큰일 났다.”

     

   그녀는 서둘러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 불기둥이 누구의 마법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불기둥이 치솟은 장소가 아슬란이 있던 곳이란 것도 말이다.

     

   확실하다.

     

   붉은 마탑주

   염왕(炎王)

   아돌프 이그리트

     

   그가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아슬란이 자살 소동을 벌였을 때.

   아돌프는 잠시 일이 있어 몇 달 정도 가문을 비운 상태였다.

     

   그 덕분에 아슬란의 소식은 아돌프의 귀에 아직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가 공간 마법으로 돌아온 때마침.

   아슬란의 분신자살이 그의 귀에 들어가고 만 것이었다.

     

   타이밍이 이렇게 엇갈릴 수가 없다.

     

   ‘아슬란 님이 자살 기도를 했다는 걸 알면 절대로 가만두시지 않을 거야.’

     

   어쩌면 가문의 수치라며 아슬란을 이그리트 가문에서 내쫓아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초조함과 함께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렇게 달리기를 한참 그녀의 발걸음이 어느새 아슬란이 머물던 관에 도착하였다.

   그러자 거기에는 하인들이 사색에 질린 표정으로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영락없이 보면 안 될 것을 피해 빠져나가는 모습이었다.

   리리나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들이 이렇게 반응한다는 것은 이그리트 가문의 중대사를 엿보면 안 되기에 나온 반응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하인들 사이를 지나쳐 관 내부로 들어섰다.

     

   마도사들이 마법 연습을 위해 사용하던 훈련장에 그녀가 들어선 순간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아슬란 님!”

     

   그리고 그녀는 무심코 비명을 내질렀다.

   타오르는 불꽃의 구체안, 아슬란이 고통스럽게 자기 목을 감싸 쥔 채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한 노인이 서 있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새빨간 붉은색 머리카락.

   얼굴을 가득 메운 붉은 수염과 성격 나빠 보이는 눈매.

     

   거기에 마도사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덩치를 지닌 그가 바로 염왕, 아돌프 이그리트였다.

     

   그는 무척이나 노한 표정으로 아슬란을 보고 있었다.

     

   “감히, 내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이런 부끄러운 짓거리를 벌여?”

   “아버지! 그만, 그만 하세요!”

     

   아돌프의 앞으로 뛰쳐나온 애가사는 애가 타는 표정으로 외치고 있었다.

   불꽃의 구체 속에 갇힌 아슬란은 실시간으로 산소 결핍 상태에 빠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아슬란이 죽는다.

   그걸 두고 볼 수 없었던 애가사를 보고, 아돌프는 허하고 소리를 내었다.

     

   짝!

     

   그 순간 애가사의 고개가 거칠게 옆으로 돌아갔다.

   아돌프에게 손찌검당한 애가사는 그대로 굳은 채 있었고, 아돌프는 그녀를 노려보며 노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래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 저놈은 마탑개도 못될 놈이라고! 이그리트 가문 부끄럽게 직계라는 놈이 자살 소동을 벌여?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몇 번이고!”

     

   그의 눈에는 진한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어미라는 놈이 자기 자식 하나 관리 못한 너도 문제다. 부가주가 되어서 대체 뭘 한 거냐!”

     

   아돌프의 거센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훈련장 안을 가득 메웠다.

   하인들이 자리를 피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그리트 가문에 치부를 듣고 있어서는 안 되니 말이다.

   애가사는 돌아간 고개를 차마 들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하는 말이었지만 수치스러웠고, 부끄러웠으나 평생을 이그리트 가문의 여식으로 살아온 그녀다.

   부가주 자리에 올랐다곤 하나 여전히 아버지라는 벽은 너무 높았고, 두려웠다.

     

   이그리트 가문에서는 그의 말이 곧 법이었으니까.

     

   “하, 하하.”

     

   그러는 순간 불꽃의 구체 속 갑자기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분노로 일그러져 있던 아돌프와 주저앉아 있던 애가사의 시선이 천천히 구체안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눈에 비춘 것은 아슬란이었다.

   아슬란은 어째선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을 본 아돌프의 눈이 와락 일그러진 순간.

     

   “제가 노, 력한다 한들 뭔가 알아주신 적 없더니 이, 꼴이 되어서야 알아주시는군요.”

     

   숨을 쉬기 힘든 탓인지 아슬란은 목을 감싸면서도 자기 말을 내뱉었다.

     

   “그거 아, 십니까? 저를 수치스러워하던 말던 저는 이그리트 가문의 직계고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이그리트 가문의 직계가 하는 일이 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실소를 내뱉었다.

   그 웃음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 자랑하던 이그리트, 가주님께서 죽기 전까지는 분명 이름을 날리겠죠. 그런데, 그 뒤에도 같을 거 같습니까?”

     

   동시에 아슬란의 눈에 선명한 독기가 서렸다.

     

   “내가 정말 가만둘 거 같아?”

   

   

   

   

     

   그의 눈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독기는 지독한 원한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월음지체라는 점 하나 때문에 가문에 외면받았다.

   자신에게 언제나 사랑과 따스함을 베풀던 어머니는 자식의 소중한 친구마저 제 손으로 죽일 만큼 혹독한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원초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지금 눈앞에 있는 염주.

   아돌프 이그리트 때문이라는 것을 아슬란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애가사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기 아들 속에 깃든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원한에는 분명 자신 또한 없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았다.

     

   ‘잘못됐구나.’

     

   모든 게 잘못되었다.

     

   저 아이에게는 이그리트 가문 따위 아무런 가치도 없었는데.

   그저 자신을 위해줄 사람이 한 명 있었으면 됐는데.

     

   이 가문을 물려주겠다고 자기 손으로 아들을 망가트렸음을 깨달은 그녀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결국 자신도 아돌프와 다를 바 없이 아들에게 강요만 했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이다.

     

   “네놈…….”

     

   그것을 본 아돌프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분노를 주체 못하겠다는 듯이 그는 서서히 손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오냐,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은 애가사의 뒤늦게 번쩍 팔을 뻗었다.

   아돌프는 지금 이 자리에서 아슬란을 죽일 작정이었다.

     

   “안돼!”

     

   그녀의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애가사의 손에서 마법이 쏟아진 순간이었다.

     

   “까악!”

     

   까마귀 한 마리가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까마귀의 깃털이 흩날린 그 순간.

     

   까마귀에서 소년으로 변한 이가 순식간에 불꽃의 구체를 향해 검을 내려쳤다.

     

   화르르륵!

     

   검에서 터져 나온 흑염과 함께 아돌프의 불꽃 구체가 반토막이 나며 잘려 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아돌프의 눈이 크게 떠진 순간.

   구체 뒤로 뻗어져 나온 손이 아슬란의 옷을 콱하니 잡아당겼다.

     

   불꽃 사이로 비춘 것은 다름 아닌 검은색 머리카락의 소년이었다.

     

   검 위에 푸른 불꽃을 두른 소년의 등장에 아돌프조차 순간적으로 반응이 늦은 찰나.

   소년은 순식간에 아슬란을 데리고 그대로 바닥을 박차 버렸다.

     

   “저놈이!”

     

   자기 앞에서 아슬란을 데려가는 그를 보고, 아돌프가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하며 손을 돌렸다.

   그러나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은 다름 아닌 애가사였다.

     

   양손에 마법을 깃든 채 아돌프를 노려보고 있는 애가사를 보고, 아돌프는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부가주, 제정신이냐.”

   “……아들이 살아 보겠다고 저렇게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비통함을 담아 처절히 외치던 아슬란의 말은 애가사의 마음속 깊이 남았다.

   더 이상 그녀는 아슬란이 고통 속에 사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런 아들을 죽이려 하는 사람 막았다고 해서 세상에 절 손가락질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애가사는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염왕과는 무려 한 클래스나 차이나는 그녀지만 어머니로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좋다.”

     

   아돌프는 그런 그녀를 보며 손에서 불길을 피워 올렸다.

     

   “너희 모자 둘 다 혼쭐이 나면 조금은 정신 차리겠지.”

     

   그리고 훈련장 안 두 개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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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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