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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밤이 지나갔다. 낮에 다시 한 번 모인 수색대에서, 파라메르 공략에 관한 간단한 브리핑이 지나갔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도를 통해 진입할 루트를 설명하는 것.

         

       "수색대의 목적은 검은 연기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자, 생존자들의 유무를 탐색하는 겁니다."

         

       허드슨의 브리핑에 수색대 대장 제국 기사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 중앙의 시계탑을 중심으로 모두 살펴보는 게 좋겠군."

       "…예?"

         

       허드슨이 반문했다.

         

       "그러면 너무 넓은 지역을 탐사해야 합니다. 예상했던 보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네가 말하지 않았나? 생존자들의 유무를 탐색하고, 검은 연기의 정체를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중요한 것을 밝히려면, 하나라도 많은 정보가 필요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전부를 볼 수는 없는…"

       "조를 세 개로 쪼갠다."

       "예?"

         

       이안이 인상을 팍 썼다.

         

       "원래 보려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려면 조를 세 개로 나누는 게 좋겠지. 구역을 셋으로 나누면 좋겠군. 먼저 첫 번째."

         

       피자를 나누듯 바닥에 그려진 원형의 도시가 셋으로 쪼개졌다.

         

       "여기서 북쪽은 우리가 본다. 청색 마탑과 제국 기사가 적당히 둘러보면 좋겠군."

       "…하?"

         

       블루 펑크 용병단의 다니엘이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다.

         

       "그러면 두 번째 조는 뭐, 어떻게 하려고?"

       "존칭을 제대로 붙여라. 용병."

       "…뭐 어떻게 할 겁니까?"

       "레인저와 용병단을 붙인다. 너희가 남동쪽을 맡으면 되겠지. 불만 있나?"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청색 마탑이 여기서 제일 중요한 전력인데, 그걸 혼자 쏙 빼가겠다고?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물론 처음 입구까지는 함께한다. 진입하고 나뉘는 건 그다음이지. 길을 뚫는 건 함께다. 거기다가 이건 수색 임무. 전투는 최대한 피하고 정보를 차지하는 게 우선이다. 네놈에게는 분명 엘프를 붙여주었을 텐데? 레인져들은 유용하다. 수색전에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 그리고 무엇보다…"

         

       제국 기사 이안이 검에 손을 올렸다. 처음 보는 기운이 주변에 들끓었다.

         

       "세 번은 없다. 용병. 다음엔 참지 않겠다."

       "…진짜 미치겠네. 수색전이니 뭐니 말장난이잖아. 저 안에 전투가 가득하게 안 가봐도 뻔한데 전투를 알아서 피하라고?"

         

       다니엘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래. 우리야 좋지. 그쪽 양반들 안 보면 차라리 속이 시원할 거 같거든. 엘프 누님들이랑 같이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고."

       "우리는 들어가는 즉시 따로 행동하겠다."

       "아! 진짜 지랄 좀!"

       "달라붙지 마라."

         

       하도 웃긴 상황이라 나는 슬쩍 말을 꺼냈다.

         

       "저 그러면요. 기사님."

       "뭐지?"

       "남서쪽은 교단들이 뭉쳐서 보는 건가요? 숫자도 제일 적은데?"

         

       시선이 몰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있는 게 뭔지 몰라도 사악한 것들이겠지. 그렇다면 오히려 사제인 너희에게는 쥐약이나 다름없겠지. 소수 정예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만."

         

       응. 말장난.

       개소리다. 나는 웃겨서 토가 나올 뻔했다.

         

       저 안에 뭐가 있을지 알고 교단들만 따로 내세운다는 걸까. 애초에 이건 대놓고 쓸모없으니 챙겨줄 여유 없다-하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아 그래 뭐.

         

       지들끼리 알아서 잘하겠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속마음을 모른 채, 로즈메리가 인상을 썼다.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지휘 중이다."

       "지휘? 그냥 냅다 죽으라고 버리는 게 지휘인가요? 이안 경?"

       "지휘다. 적재적소에 걸맞은 인재를 투입하는 게 지휘가 아니고 뭐지?"

         

       이안이 인상을 썼다.

         

       "우리는 저 안에서 반드시 해내야만 할 일이 있다. 원인을 밝히고, 파라메르의 비밀을 알아내야만 한다. 뒤처지는 이들을 보살필 여유는 없지. 애초에 교단 또한 그걸 알면서도 이곳에 나온 거 아닌가?"

       "…보자보자하니까 진짜!"

       "라의 교단은 어디까지나 제국의 밑에 있음을 잊지 마라. 그리고 너희 같은 애송이들 따위는…"

         

       이안이 검을 반쯤 꺼냈다.

         

       "제국의 검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명심해라."

       "……"

         

       로즈메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녀의 편을 들어줄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용병들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마법사들이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면서도 아무도 선뜻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엘프들은 오히려 보란 듯이 콧방귀만 꼈다.

         

       이야.

         

       개판이다. 개판.

         

       이안이 말했다.

         

       "출발은 정오다. 모두 그때까지 필요한 물품들을 정리해라. 계획에 변경은 없다. 만반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와.

         

       지휘를 따르지 않을 것 같으니까 애초에 내다 버리고, 주요 전력은 혼자 독점. 거기다가 마법사들 정찰 덕분에 미리 훑어본 가장 괴물들의 숫자 수가 적은 곳을 혼자 독식한다라.

         

       대놓고 혼자 공 독차지하겠다는 지휘관은 처음이네. 너무 속 보여서 웃겨 죽겠다.

         

       근데 어쩌냐.

         

       네가 무시하는 그룹이 힘숨찐인 거 같은데?

         

         

         

       . . .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요. 로즈메리 선배님."

       "그 같잖은 선배님 소리 좀 빼요. 온몸에 소름이 돋으니까."

       "에이. 저 구해주셨잖아요. 로즈메리 선배님. 인제 와서 모른 척하시겠다?"

         

       나는 끈적끈적하게 속삭였다.

         

       "우린 한배를 탄 거나 마찬가지예요…우리 사이를 두 글자로 말한다면…"

       "…말한다면?"

       "동료…아닐까요?"

       "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더러운 단어라도 들었다는 듯 로즈메리가 연신 귀를 후벼 팠다. 이쪽은 대놓고 싫어하는 게 보여 좀 재밌지.

         

       "마스크나 사죠. 저 말이 맞으니까."

       "손수건이라면 이미 있어요."

       "격렬한 전투를 걸치면 풀릴 걸요? 그냥 마스크가 나아요. 귀에 걸면 잘 안 빠지니까."

         

       나야 뭐, 광증에 시달릴 걱정은 안 해도 다른 사람들은 다르다. 등을 맡기고 싸우던 동료가 한순간에 돌변하는 건 이쪽에서 사양이지.

         

       "그쪽도요."

         

       움찔.

         

       졸졸 따라오던 이시스의 사도가 담벼락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어, 언제부터 아셨어요?"

       "그냥 대놓고 보이던데 무슨. 마스크 사요."

         

       이시스의 사도. 아직 햇병아리지만, 분명히 사도인 그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는 의문이다.

       뭐, 아이린처럼 꼬이든가 한 거겠지. 너무 큰 의미는 두지 말자.

         

       나는 쓱 마스크를 내밀었다. 인연을 맺어둬서 나쁠 건 없지. 사도는 사도니까 분명 도움이 될 테고.

         

       "감사합니다!"

         

       게임 속에서도 알아봤지만 참 뭐랄까…

         

       "싹싹하네."

       "네? 아,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에헤헤 웃는 게 진짜 소년 같다. 소년의 얼굴을 한 나랑은 완전히 다르다.

         

       "로즈메리님."

       "뭐요."

       "에헤헤."

       "시발, 내가 뭐 잘못했어요?"

         

       세상은 참 불공평하군.

         

       나는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정확히 말하면, 여기 특산품을 샀다.

         

       솔직히 준비물은 이미 저쪽에서 다 준비해서 왔다. 딱히 가지고 갈 게 없단 말이지.

         

       "여기 건포도 맛있네."

       "…건포도가 맛있어요?"

         

       로즈메리가 질색했다. 나는 슬쩍 여기 특산품인 롤케이크 안에 든 건포도를 쓱 내밀었다.

         

       "달콤한 게 두 배?"

       "으으으…진짜 싫어…"

       "노아. 먹을래요?"

       "네? 아! 감사합니다!"

         

       우리를 졸래졸래 작은 시장을 구경했다. 작은 마을이지만 은근히 볼 게 많았다. 파라메르를 구경하러 온 모험가들이나 마법사들이 자주 들리는 만큼, 작지만 관광업이 발전한 모양.

         

       "…어."

         

       다니엘과 마주쳤다. 우르르 몰려든 블루 펑크 용병단이 우리를 감쌌다.

         

       "저. 그러니까. 음."

         

       다니엘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까 일은 미안하게 됐어요. 사제님."

       "됐어요. 당신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요. 무능력한 저희 잘못이지. 신경 꺼요."

         

       우와. 신랄한 독설. 최고다. 로즈메리.

         

       대놓고 꼽주는 말에 다니엘은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슬쩍 고개를 숙이는 것이 끝.

         

       그래도 양심은 있네. 굳이 사과까지 하고 말이야.

         

       그들이 떠났다. 로즈메리는 신랄하게 비꼬왔던 것과는 달리, 영 걱정스러운 듯했다.

         

       "저희 어쩌죠?"

       "이거 먹고 화 풀어요."

       "…냠…아 시발! 아까 그거잖아요! 건포도 롤케이크! 퉤퉤퉤."

       "전 맛있어요!"

       "그쵸? 이걸 왜 싫어한담. 혹시 민트초코는 좋아해요?"

       "그건 좋아하는데요?"

       "맛알못이네."

       "뭐요?"

         

       다른 건 몰라도 민트초코는 죄악이지.

         

       "아무튼 걱정 마세요. 후배이자 로즈메리님의 대스승인 제가 있잖아요?"

       "…더 걱정되네. 진짜."

         

       로즈메리의 한숨이 깊었다. 나는 빵을 베어 물었다. 건포도는 쏙쏙 빼내 노아에게 건네주었다.

       날름날름 다 받아먹는 녀석. 적어도 하나의 쓸모는 찾았군.

         

       너는 내 건포도 셔틀이다. 롤케이크는 좋아하지만, 건포도는 싫어하니까.

         

         

         

       . . .

         

         

         

       우리는 곧바로 출발했다. 더 이상의 토론은 없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게 거의 적이나 다름없는 상황.

       독선적인 제국 기사의 횡보에 모두 치를 떨고 있었다. 인간들의 일이라며 한 발짝 물러섰던 엘프들마저 저런 인간은 처음 본다고 깔 정도였으니.

         

       파라메르가 보였다. 검은 안개에 휩싸인 도시. 그 변경 선부터 이미 슬금슬금 검은 안개가 뻗쳐져 있었다.

         

       "…잠시 정지하겠습니다."

         

       도시 파라메르. 외곽에 크나큰 성벽이 세워져 있는 곳.

         

       정확히 말하면, 성벽은 파라메르의 몰살 다음에 세워진 것이었다. 제국에서 세운 봉인벽이나 마찬가지. 그 외벽을 타고 슬금슬금 기어 내리는 검은 안개를 수집한 마법사 허드슨이 유리병 안에 표본을 담았다.

         

       다니엘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마법사님. 그건 이미 많이 채취한 거 아닙니까? 마탑에서 이 주변을 자주 들른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하지만 채취한 지 오래된 것과, 방금 막 채취한 것은 다르기 마련이죠. 이것 또한 중요한 연구 샘플이 될 겁니다."

       "뭘 연구하는 겁니까?"

       "마탑 기밀입니다."

       "전쟁 병기라도 만드나…?"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진 다니엘의 말에 허드슨이 굳었다. 단호하게 말했다.

         

       "마탑은 전쟁 병기를 만드는 데 절대 일조하지 않습니다. 다니엘 단장님. 부디 말씀을 가려서 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조용."

         

       제국 기사 이안이 입구 부근에 말을 묶었다. 거대한 방벽 앞에서 허드슨에게 눈짓했다.

         

       "문을 열어라. 마법사."

       "알겠습니다. 모두 준비는 되셨습니까? 연 직후, 곧바로 들어가야 합니다. 문이 닫히는데 대략 1분 정도 걸리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허드슨이 모두를 돌아보았다.

         

       "모두…행운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문이 열렸다. 파라메르. 몰락한 도시를 가두고 있던 방벽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좋아. 어디 한 번 해볼까.

         

       파라메르 수색전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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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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