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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59 – 은퇴한 전대영웅의 모험기담>

     

    이 세계에는 영웅이라는 존재가 있다.

     

    -너, 누구보다 재능이 뛰어난 인간의 아이야. 대륙의 유일신 태양의 소페미아가 너를 선택하나니, 용사가 되어 구마의 여정을 떠나도록 하여라.

     

    신은 인간의 재능을 꿰뚫어보는 재능감별의 눈을 지녔기에 자신의 사제들을 통해 용사의 자질을 지닌 아이를 발견하거든 냅다 용사의 가호를 내린다.

    가호를 받은 용사는 플레이어처럼 상태창도 보고 퀘스트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용사에게만 주어지는 강력한 특전이 있다.

    바로 “너, 내 동료가 되어라!” 선언을 통해 다른 NPC를 용사의 동료로 삼는 기능이다.

    신이 고른 용사가 고른 동료들도 일단은 용사라고들 불리지만 그들은 진짜 용사와 달리, 여신의 인도라 불리는 ‘퀘스트’를 받지 못한다.

    진짜 용사가 죽거나 그의 여정이 끝날 경우, 무엇을 향해 정진해야할지 모르고 길을 잃는다는 뜻이다.

    은퇴한 전대용사 <디스트로이어>도 그런 길 잃은 아류용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안 힘드냐? 그 미친 조각상 녀석에게 방금 막 학대를 당하고 왔으면서?”

    “전혀요! 오는 동안 쉬엄쉬엄 뛰었는걸요.”

     

    교수용 마법시계를 꺼내 확인한 학생의 교육현황에는 강의를 째고 도망쳤다는 낙인이 아니라 우수한 성적으로 강의를 따라왔다는 상점표시까지 찍혀있다.

    자신의 체력을 한계까지 소모할 줄 알면서 회복력 또한 예사롭지 않다.

     

    ‘흔히 말하는 용사의 자질. 그 최저한의 조건을 갖춘 인재로군.’

     

    심지어 얼굴 한 번 찌푸리는 일도 없고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힘든 시련을 즐거운 일과처럼 수행하는 용사 특유의 마조스러운 정신력도 지녔다.

    심신 양면에서 모두 우수한 인재라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쫓는다. 마치 진짜 용사처럼.’

     

    자신에 찬 동선과 행동은 전대용사 니알라토텝이 보이곤 했던 기행들이 떠올랐다.

     

    ‘그 용사도 상당한 마이페이스였지. 어쩌면 신에게 사랑받는 진짜 용사는 전부 저런 성격인 건가?’

     

    탁 소리 나게 책을 덮으며 쓸데없이 복잡해지는 생각도 함께 접었다.

     

    “좋다. 그렇게 강의를 원한다면 해주지.”

    “와아~”

     

    박수까지 치며 좋아하는 아이 오크노디에게 디스트로이어 교수는 아니꼽다는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퇴한 전대영웅의 모험기담>은 어느 용사파티가 모험도중 보고 듣고 직접 겪은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와 관련된 과제를 수행하는 강의다.”

    “첫 번째 강의를 장식할 첫 번째 이야기는 <줄지 않는 양>. 역전의 용사에게도 아주 섬뜩한 기분을 느끼게 했던 기담이지.”

     

    디스트로이어는 자신의 먼 과거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 *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궁핍한 벽촌의 한 초원에서 양치기들이 모여 양을 방목하는 마을이 있었다.

    인간의 발이 닿지 않는 험한 지형에는 강한 몬스터가 출몰하지만 살기 좋은 평야에는 영주들의 수탈이 있기에 몬스터의 이웃이 되기를 선택한 양치기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마을이었다.

     

    <토벌의뢰>

    저희 마을의 양이 사라지는 이유를 찾아서 해결해주세요.

    보수 : 금화 5매, 길드의 감사패, 칭호 [산간마을의 구원자]

     

    당시 길드에 이름을 올리고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신생 용사파티는 돈도 돈이지만 하나라도 더 많은 실적이 필요했다.

    용사다운 번듯한 모험을 하려면 우선 마을의 구원자 칭호를 여럿 모아서 <벽촌의 구호자> 칭호를 얻는 편이 모험가길드에서 승급하기 가장 빠른 길이었다.

     

    “늑대라도 나온 거 아니야?”

    “시시해. 벌써 늑대 털 나왔잖아.”

    “흐음~ 이번 의뢰, 꽤 재밌네.”

     

    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 겸 주술사, 니알라토텝.

    그의 첫 번째 동료이자 뛰어난 전사, 알파.

    두 번째 동료이자 만사에 시큰둥한 도적, 디스트로이어.

     

    세 사람은 단숨에 늑대의 소굴을 찾아내어 양을 노리고 모여든 늑대 열두 마리 중 다섯을 죽이고 일곱을 쫓아내었다.

    기이한 점은 늑대들은 모두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말랐으며 양을 사냥한 흔적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른 괴물인가?”

    “골치 아프네. 다른 괴물의 흔적은 없는데.”

    “재밌어. 역시 기대했던 대로야. 후후.”

     

    니알라토텝은 말했다.

     

    “다들 눈치 채지 못했어?”

    “뭐를?”

    “괴물 말이야.”

    “실은 늑대가 아니라 사람을 말하는 거였다거나?”

    “디스트로이어의 발상도 나쁘진 않지만 좀 더 흥미로운 구석이 있잖아. 어째서 다른 괴물의 흔적이 없었던 걸까? 이런 벽촌에 먹음직스러운 양이 수백 마리나 있는데.”

    “듣고 보니 이상하군. 영주가 주기적으로 몬스터를 소탕하는 마을이라면 모를까, 납세의 의무를 등진 도망자들의 마을에 그런 혜택이 있을 리 없는데.”

     

    양치기들은 이유를 모르는 눈치였고, 미숙했던 당시의 초짜 용사파티는 문제의 근원에 도달하지 못하고 도중에 의뢰를 끝마쳤다.

    양들을 노리던 늑대는 잡았으니 의뢰는 해결한 셈이라며 그때는 위안 삼을 수 있었다.

     

    “이 마을에 돌아오는 것도 10년 만인가.”

     

    셋이 찾아왔던 양치기들의 마을에 혼자가 된 디스트로이어가 다시 방문했다.

    모험을 마치고 과거를 곱씹던 도중, 과거의 일이 떠올라 호기심에 발을 들인 것이었다.

    마을에는 여전히 양의 실종을 알리는 의뢰가 붙어있었고, 촌장은 시름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어라?”

     

    베테랑 용사가 된 디스트로이어는 마을의 모습에서 강렬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촌장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촌장은 날이 늦었으니 세 가지만 답해주고 일을 보러 간다고 전했다.

     

     

    * *

     

     

    “그럼 여기서 오크노디 신입생이 나설 차례다. 본인이 베테랑 용사 디스트로이어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촌장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져라.”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직접 촌장의 입장이라 생각하고 답해주마.”

     

    역시 흥미롭다.

    <은퇴한 전대영웅의 모험기담> 강의는 용사의 모험담을 듣고 자신이 용사가 된 것처럼 생각하며 대응하는 기묘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자비 없이 육신을 학대하고 온 뒤에 이루어지는 두뇌학대시간이지만 고인물에게는 그래서 더 좋다.

     

    ‘디스트로이어 교수의 이야기는 매 회차마다 달라진단 말이지.’

     

    한 번쯤은 같은 수순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매번 이야기가 달라진다.

    심지어 그 내용도 매번 흥미롭다.

     

    “힌트는 이미 주어졌네요. 이건 ‘줄지 않는 양’에 대한 이야기. 용사가 느낀 위화감은 양과 관련된 것이겠죠. 10년 전과 같은 의뢰가 걸려있다는 것도 사건의 근원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암시하고요.”

     

    디스트로이어 교수는 제 턱수염을 긁적거리며 요놈 봐라? 하는 눈으로 이쪽을 쳐다봤다.

     

    “양치기들은 예전에 있던 사람들이 그대로 있나요?”

    “촌장에게 던지는 질문인가?”

    “맞아요.”

    “촌장은 이렇게 답하겠군. 대부분은 마을을 떠났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양치기들이 메웠다네.”

     

    꽤 가치 있는 대답이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새로운 양치기들은 몰랐나보군요. 영주도 마찬가지고요. 이곳에서의 사건은 아주 은밀하게 일어나고 있고요.”

     

    검지와 중지를 동시에 펼쳤다.

     

    “두 번째 질문이에요. 10년 간 의뢰를 받고 온 모험가들은 몇이나 됐고, 그들은 어떤 식으로 의뢰를 완수했었고, 생환율은 어떤가요?”

    “벽촌까지 오기엔 애매한 보수 탓에 매번 매해 한두 번 찾아올까 말까 했지. 누구는 근처의 야생동물이나 몬스터를 잡았고, 누구는 목책을 두르는 법과 가시넝쿨을 치는 법을 알려줬다네. 가끔 깊은 곳에서 괴물을 만났는지 돌아오지 않는 모험가도 있었지.”

    “의뢰지를 볼 수 있을까요?”

    “그건 세 번째 질문인가?”

    “음… 아뇨! 마을에 걸려있을 최신 의뢰지는 질문 없이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렇군. 이걸 받아라.”

     

    교수가 품에 손을 집어넣더니 코팅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꺼낼 땐 백지종이였던 것이 넘겨받는 사이에 낡은 모험가의뢰서로 변했다.

     

    <토벌의뢰>

    저희 마을의 양이 사라지는 이유를 찾아서 해결해주세요.

    보수 : 금화 6매, 은화 15매, 길드의 감사패, 칭호 [산간마을의 구원자]

     

    플레이어라면 흔히 <반복퀘스트> 아니야? 하고 넘기기 쉬운 의뢰지만 이건 플레이어가 아닌 NPC 용사파티의 경험담.

    이해하기 힘든 퀘스트가 10년 간 반복해서 주어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보수가 올랐다.

    마을에서 키우는 양의 숫자도 같고 기존의 양치기도 대부분 떠난 마을에서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보수를 지급해왔을 것을 감안하면 이 금액은 지나치다.

     

    “마지막 질문이에요. 이 마을의 양을 사가는 상인은 누구이고 그와는 언제 만날 수 있죠?”

    “벤자민이라는 친구인데 겨울이 되거든 곧 만날 수 있네. 겨울까지 머무를 텐가?”

     

    대충 알았다.

     

    “질문은 이상이네. 그리고 디스트로이어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 뒤, 사건을 해결했지. 오크노디 신입생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겠나?”

    “저도 하나만 돌아보고요.”

    “마을을 돌아보며 뭘 확인하고 싶지?”

    “양을 직접 살펴보고 싶어요.”

    “그럼 자네는 보게 되겠군. 초원에 엎어져 잠을 자거나 우두커니 서있거나 이따금 뒤뚱뒤뚱 움직이는 양들의 모습과 한가로운 양치기들의 일상을.”

     

    뭐, 그래도 첫 강의답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풀을 뜯는 양은 없었죠?”

    “감을 잡았군.”

    “정답 말해도 돼요?”

    “얼마든지.”

    “처음에 줄어든 것은 양이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든 것은 양치기였어요. 모험가들에게 꼬리를 밟힐까봐 아주 섬뜩한 지혜를 발휘했겠죠.”

    “그 지혜가 뭐지?”

    “양의 가죽 속에 사람의 시체나 실종된 사람 따위를 집어넣은 거예요.”

     

    디스트로이어가 씨익 웃었다.

     

    “정답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싹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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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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