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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클라이스가 부대로 복귀했다.

         

       전설이 돌아왔다. 그 소식 하나만으로도 전세는 뒤집힌다. 환영식을 마친 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1차 저지선에 있던 철탑이 사라졌네.”

       “자기들이 철거했나 보죠.”

         

       전선 시찰을 마친 클라이스는 연대급 규모의 병력을 차출받았다.

         

       전투 총원은 326명. 전원 상급 이상의 마도사들이다. 그 외의 인원은 의무, 통신, 지원 및 보급으로 채워졌다.

         

       한 번에 3백 발이 넘는 플레어를 격발할 수 있는 대군. 그 군세가 주변 사단들의 호위를 받으며 3차 저지선까지 단숨에 돌격하는 작전이 입안됐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후퇴로를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만반의 준비를 한 군대는 파죽지세로 북상했다. 엘랑카야 소산맥 중 하나를 넘고, 눈으로 뒤덮인 고원을 넘었다.

         

       그리고, 단 몇 시간 만에 1차 방어선을 돌파했다.

         

       이어서 2차 저지선에 다다랐다. 상급 마수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고, 그만큼 재앙급이 나타났다. 하지만 플레어 앞에선 재앙급이라고 할지라도 가을 바람의 낙엽처럼 쓰러져갔다.

         

       이긴다. 이길 수 있다.

         

       어쩌면, 수백 년간 이어졌던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2차 저지선은 작전 개시 후 나흘 만에 무너졌다. 가르강튀아 여섯 마리가 관문을 지키고 있었지만, 모두 에테르의 플레어 앞에서 허무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여기서 더 나아갈까요?”

       “보급로를 충분히 확보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세요. 여기부터는 절멸급이 수시로 나타날 수 있어요.”

         

       그렇게 3차 저지선을 향해 나아갔다. 이제 클라이스의 부대를 막는 마수들은 전부 재앙급이었다. 상급 마수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상대는 안 된다. 플레어가 있는 한 인적 손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일반 작전교리에선 보기 힘든 진격속도였다.

       

       클라이스의 부대가 거대한 탑을 발견한 건 작전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1차 저지선 부근에 있던 탑 아닙니까?”

       “원래 여기 있었던 모양인데요.”

       “어떡할까요?”

         

       주저할 건 없었다.

         

       저 탑을 무너뜨린다.

         

       첫 번째 사격. 50발의 플레어가 장전되었다. 시뻘건 빛줄기가 탑을 향해 도약했다.

       

       플레어를 일제히 얻어맞은 탑이 기우뚱거린다. 필사적으로 중심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였다.

         

       탑의 바로 앞에서 웬 금안족 소녀 하나가 나타난 건 2차 포격이 끝난 직후였다.

         

       “저거… 금안족 아닙니까? 어떻게 할까요?”

         

       클라이스는 저 소녀를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자신을 찾아와 3차 저지선을 넘지 말라고 했던 소녀.

         

       동시에 에테르와 닮았지만, 머리색이 정반대인 수수께끼의 존재. 저 소녀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건 예후가 좋지 않음을 의미했다. 전쟁터에서 오래 구른 클라이스에겐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판단을 내리기엔 찰나의 시간이었다. 부관이 소리쳤다.

         

       “저건 인간의태다! 여기 있는 놈들은 전부 마수다! 사격을 준비하라─!!”

         

       다음 스크롤이 예열됐다. 플레어가 장전되고, 격발된다. 백발 금안의 소녀가 있는 곳을 향해 수십 무리의 빛줄기가 일제히 날아든다.

         

       십자포화였다. 피할 방도가 없었다. 막아내거나, 광선의 방향을 바꾸거나. 둘 중 하나라도 하지 않으면 소녀는 죽은 목숨이었다.

         

       금안족 소녀는 세 번째 방법을 사용했다. 그녀가 한 번 손짓하자 맹렬히 날아들던 플레어가 일제히 사라졌다.

         

       “뭣…!”

         

       반응할 틈은 없었다.

         

       다음 순간, 곁에 있던 동료들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이런 미친…!!”

       “뭐냐! 뭐가 일어난 게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다만 질량이 있는 무언가가 동료의 두개골을 꿰뚫고 지나갔다는 것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시체가 된 동료 주변에는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진한 스파크가 일었다.

         

       “당황하지 마라! 적은 고작 한 명이다!”

       “본부에 지원 요청하고 전열부터 가다듬으세요!!”

         

       눈앞의 소녀는 비릿하게 웃었다. 그녀의 손바닥에는 쇠로 된 탄환이 몇 개 들려있었다. 그것을 가지고 놀던 소녀가 팔을 뒤로 빼는 자세를 취했다.

         

       “제가 누누이 말씀을 드렸을 텐데요.”

         

       파바바박! 다음 마법을 장전하려던 사수들이 일제히 쓰러진다. 누구는 머리가 사라졌고, 누군가는 상반신과 하반신이 끊어졌다. 그들이 쓰러진 자리 주변에는 미세한 스파크가 튀었다.

         

       “3차 저지선까지 기어들어오지 말라고.”

       “역시… 그때 그 금안족이군요. 아니, 마수라고 보는 편이 맞나요?”

         

       클라이스는 이를 갈며 앞으로 나섰다. 양손으로 잡은 스태프 끝에서 불꽃이 일었다.

         

       “마수라니요. 제가요?”

         

       소녀는 큭큭거리며 가슴팍을 툭툭 쳤다. 소녀의 광대뼈가 올라가자 뺨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여과 없이 본 클라이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등골이 오싹했다. 정말, 금안족이, 진짜로?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마수는 성격이 포악하고 자신과 다른 모든 종족을 증오한다. 금안족이 마수라면 에테르도 마수라는 소리가 된다. 만약 자신의 전 조수가 마수였다면 지난 3년 간 자신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었다.

         

       “좋아요. 어차피 곧 절명하실 분들이니 특별히 알려드리도록 하죠.”

         

       소녀는 남은 탄환을 로브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마력초 연기를 한 무더기 집어삼켰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네요.”

         

       소녀는 팔을 치켜들었다. 스태프를 소환할 때의 준비 동작이었다.

         

       “대령님, 15분 이내로 원군이 온다 합니다.”

       “…그때까지 버팁니다. 여기서 등을 보이면 적에게 허리를 내어주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작성 : 스태프]

         

       슈우웅. 아공간에서 가느다란 철막대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을 띠는 이형의 스태프였다. 끝은 창처럼 날이 서 있고, 그 중심으로 세 개의 못이 거꾸로 박혀 있는 형태였다. 중심의 쇳날과 나머지 쇳날은 각각 Y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전열의 마도사들은 근접전에 대비하세요!”

         

       적의 수는 단 하나. 뒤에 있는 철탑에선 다른 마수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백발의 소녀를 제압하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푸욱!

         

       소녀가 땅을 접어 달리더니, 스태프를 내빼려던 젊은 마도사의 안구를 뚫어버렸다.

       

       그 마도사는 단말마와 함께 여신의 품으로 돌아갔다.

         

       “마, 마르코…!”

       “너 이 새끼이이이─!!”

        “멈춰! 이성을 잃지 마라!”

         

       이어진 순간에 두 중견 마도사의 명치와 턱이 꿰어졌다.

         

       뚜두둑, 하고 연골이 짓이겨지는 소리가 난다. 인간의 눈으로는 쫓기 어려운 속력이었다. 그만한 쾌속으로 단번에 셋, 다섯, 열, 스물…. 창날과도 같은 스태프의 끝에 살점과 뼈가 엉겨붙었다. 백발의 금안족은 사람의 머리를 한데 모아 미트볼을 만들었다.

         

       부하의 진심 어린 부탁에 후열로 끌려나 있던 클라이스는 다른 부관들을 밀쳐내고 다시 앞으로 나섰다. 아니, 아예 소녀를 죽여버릴 기세로 튀어나갔다. 눈에는 핏대를 잔뜩 세운 채였다.

         

       자세를 낮게 잡고는 소녀를 향해 불꽃을 휘둘렀다. 소녀는 그 불길을 단번에 막아냈다.

       

       촤앙! 대지를 찢는 소리가 났다. 클라이스는 품에서 스크롤을 꺼내 소녀의 얼굴에 때려박았다.

         

       때려박으려고 했다.

         

       [중급 전계마도 ─ 축전(Capacitance)]

         

       불발. 스크롤이 작동을 멈췄다. 클라이스는 당황하지 않고 왼손으로 마력을 끌어쳤다.

         

       [최상급 화계마도 ─ 코로나(Corona)]

         

       화르륵, 섭씨 6천 도에 이르는 불꽃이 소녀에게로 내리꽂힌다.

         

       “아, 재밌는 걸 쓰네?”

         

       [중급 전계마도 ─ 코로나(Corona)]

         

       “근데 어쩌나, 나도 똑같은 걸 쓰는데.”

       “이, 이건…!”

         

       고온 고압의 플라스마가 역으로 올라온다. 클라이스는 어깨가 탈골될 정도로 몸을 비틀었다. 간발의 차였다. 피하긴 했지만 야전용 로브의 위쪽이 타들어갔다.

         

       “누천년 묵은 기술이지만 꽤 쓸만하죠? 이런 레트로 감성을 원하셨나?”

         

       클라이스의 눈에 핏대가 세워졌다.

         

       “이건 우리 가문에서 개발한 마도에요! 그쪽이 어떻게 알고 있…!”

       “코로나는 화계쪽 이론으로 접근하면 개발하는 데 오래 걸리거든요. 설마하니 멍청하게 그쪽으로 돌아가셨나 봐요? 안타까워라, 이미 있는 마도였는데.”

       “이, 이……!!”

         

       퍽, 하는 소리가 났다. 방심한 사이 늑골을 걷어차였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클라이스는 스태프를 놓친 채 설원을 나뒹굴었다.

         

       되지도 않는 신음을 토해내며 땅을 짚고 일어났다. 소녀는 어느새 자신의 코앞까지 와 있었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건 재앙급이 아니다.

         

       괴물.

         

       이 소녀는, 여기까지 오며 상대했던 재앙급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괴물이다.

         

       머릿속에서 주마등이 지나갔다. 대략 5년 전, 메리가와 함께 1차 저지선을 넘어섰을 당시 자신들을 가로막던 거대한 하늘의 요새. 그 요새를 눈앞에서 보는 기분이었다.

         

       교감신경계가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한다. 긴장, 공포, 흥분. 죽음에 가까운 감정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클라이스는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전군 후퇴하라─!!”

         

       전선에서 사령관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살아남은 이들은 저마다 입술을 짓이기며 뒤로 물러났다.

         

       자신은 병법서에 나온대로 후퇴를 지시했다. 한 명이라도 더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러나 그 지시가 적에게 들린 순간부터 의미를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딜 내빼려고.”

         

       소녀는 스태프를 땅에 처박고 영창을 읊었다. 그 모습은 마치 메리가가 최상급 마도를 사용할 때 잡는 자세와 비슷했다.

         

       “하스펠트 공작님, 모처럼이니 뒤를 보길 바라요. 제가 재미있는 걸 보여드릴 테니까.”

         

       클라이스는 소녀에게로 눈을 뗄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소녀는 자신을 걷어차서 억지로 뒤를 보게 만들었다.

         

       평탄했던 소녀의 어조가 싸늘하게 바뀐다.

         

       “내 조언을 귓등으로 들은 결과가 뭔지 알려줄게.”

         

       소리 없이 도망치는 마도사들. 그들은 저 멀리, 지평선 너머 소실점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비명은 없었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감에 소리를 지르는 것도 잊어버린 채 후퇴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구름이 끼인다.

         

       지금은 밤이었다. 비록 극지방이라서 밝은 편에 속했지만, 그럼에도 밤이었다.

         

       태양의 고도가 가장 낮아진 시점.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는 소녀의 말 한마디에, 그 태양이 아예 설산 아래로 종적을 감춘다. 그렇게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려나 싶을 때였다.

         

       소녀가 영창했다.

         

       [전설급 고유마도 ─ 백야(白夜)]

         

       하늘에서 형형색색의 띠가 만들어진다. 띠는 하늘의 시작에서 하늘의 끝으로, 고위도에서 저위도로 흐르며 거대한 서브스톰을 형성했다.

         

       그리고, 켜켜이 쌓인 전리층 사이로 방전이 일어났다. 수백 수천의 낙뢰가 도망을 가던 마도사들의 머리 위에 하나, 둘, 셋, 내려꽂힌다.

         

       천지가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다 날벼락이었다.

         

       낙뢰를 맞은 병사들은 피를 토하며 자리에서 쓰러졌다. 살갗이 타들어가고, 다시 재생된다. 그렇게 같은 번개가 몇 번이고 같은 장소에 내리치며 무한한 고통을 선사했다.

         

       한 번 맞을 때마다 몸은 점점 부패해지고, 인간들의 몸은 점차 숯처럼 변해갔다. 클라이스는 그 모든 모습을 눈앞에서 전부 담아야만 했다.

         

       “아, 아아…….”

         

       말이 안 나온다. 기억 저변에 묻어두려고 했던 기억이 삽으로 파내지는 느낌이었다.

         

       1분? 그만한 시간도 안 걸렸다.

         

       퇴각하려던 250명의 마도사들, 그들 중 누구도 없었다.

         

       다 죽었다.

         

       5년 전, 거대한 철갑선이 하늘에 출현했던 그 날처럼. 모두가 주검으로 변했다. 클라이스 자신만 남기고 부대원 전부가 이 대륙에서 사라졌다. 형용할 수 없는 탈력감이 엄습해왔다.

         

       “너, 너, 너…. 대체 무슨……..”

         

       클라이스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장딴지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눈에 파묻혀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어쩌다 순식간에 이렇게 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조차도 감을 잡지 못했다.

         

       단지, 에테르의 얼굴을 빼다박은 눈앞의 소녀에게 처음으로 공포를 느껴서. 그래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남이 만든 마법으로 재앙급을 썰어버리며 오면 절멸급도 쉽게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나요?”

       “당신, 설마…….”

       “난 많이 봐줬어요. 근데 저에게 가장 소중한 분을 건드린 것도 모자라, 저희 홈그라운드에 침입해서 날뛴 건 진짜로 선 씨게 넘은 거거든요.”

       “당신…. 설마 그 소중하다는 사람이…….”

       “으음, 이제 어떡할까요. 제 정체를 알려드린 이상 곱게 사시진 못하실 텐데요. 죽거나, 평생 우리와 같이 살거나. 보통은 둘 중 하나거든요.”

         

       백발의 소녀는 잠깐 침음을 흘렸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퍼억! 클라이스의 의식은 거기서 끊겼다.

         

       “흣차.”

         

       백발 금안의 소녀는 클라이스를 둘러멨다. 그러고는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텅.

         

       마탑의 문이 닫힌 건 그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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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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