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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숙취로 인해 이틀을 앓아 눕고 있는 아리엘에 의해 이틀째 오전부터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오전엔 늘 독서벗과 독서 시간을 가졌지만, 숙취에 녹다운되어버린 독서벗께서 도서관에 행차하지 아니해 오전부터 훈련에 임하고 있는 것이었다.

       

       치직!

       아그작!

       

       사과를 크게 베어물며 손바닥 위로 흑색 마력을 피워올렸다.

       책에서 마력의 특성이란 건 타고난 기질과 같다 했다.

       마력의 색깔이 머리카락 색상과 동일하듯, 특성 또한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의 특성은 ‘전류’ 계열인 듯 했다.

       

       중세시대에서 ‘전기’를 다룬다는 건 어마무시한 특혜와 같겠지만, 그 전기를 사용할 제품이 없는 시대였고,  느낌상 피카추처럼 100만 볼트를 사용할 수는 없을 듯 했기에 그저 공격 수단으로써 밖에 사용되지 않을 터였다.

       

       ‘테슬라 형님과 에디슨 형님 어디 안 계시나.’

       

       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야외 훈련장 변두리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음?’

       

       못 보던 귀족 한 명이 본성을 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따르는 집사가 있었고, 차림새 또한 범상치 않은 것이 언뜻 봐도 대귀족의 신분인 듯 했다,

       

       ‘누구지?’

       

       단단히 화가 난 듯한 얼굴로 훈련장을 지나치는 대귀족.

       연배로 보아 아버지뻘인 듯 했는데, 그 얼굴을 차근히 뜯어보던 난,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데론 켈리드?’

       

       놈의 금발과 같은 머리에 이목구비가 비슷하다.

       한데, 놈의 아버지가 혼약대전이 끝나기 이틀 전에 어떠한 이유로 행차한 걸까.

       

       모를 일이다.

       

       어깨를 으쓱인 후, 다시금 훈련에 매진했고 그렇게 오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음?’

       

       나른한 햇살 아래에서 땀을 말리며 쉬고 있던 나의 눈에, 또 다른 귀족 한 명이 보였다.

       차림새로 보아 대귀족 중 한 명으로 보였고,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떠오르는 용모였다.

       

       ‘블런드?’

       

       뭐지?

       오전엔 데론의 아버지가 본성으로 향하더니, 오후엔 블런드의 아버지가 본성으로 향하고 있다.

       혼약대전의 결말을 앞두고 대체 어떠한 연유에서 후보들의 아버지들이 집결하고 있는 걸까.

       

       ‘그럼.’

       

       탈주닌자로 전직한 카일의 아버지는 행차하지 아니하신가, 라는 생각을 하며 저녁을 먹으려 가려던 찰나.

       

       ‘……대체 뭐지.’

       

       푸른빛 머리칼을 한 귀족 한 분이 내 눈에 포착됐다.

       앞서 등장한 두 아버지가 워낙 강렬해서 그런가, 다소 약소(?)해 보이는 귀족이었고, 그렇기에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카일의 아버지라고 말이다.

       

       혼약대전의 결말을 이틀 앞두고서 집결하는 후보들의 아버지.

       게다가 어제는 수도성으로 공무를 보러 간다던 로건 대공이 한참 이른 복귀를 했었다.

       

       며칠간 코빼기도 보이고 있지 않은 르미앙.

       대공성으로 집결하는 후보들의 아버지.

       공무마저 제쳐두고 복귀한 로건 대공.

       

       분명, 이 혼약대전에 숨겨진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기에 집결한 것일 터.

       

       더듬더듬.

       

       상의 주머니를 뒤져 조약서의 안녕을 살폈다.

       조금만 늦었어도 겔우드가 아닌, 로건 대공과 담판을 지어야 했으리라.

       그리고 그 담판은 분명 좋지 않은 흐름을 탔을 것이다.

       제아무리 전권을 위임 받은 겔우드라 할지라도, 제 피를 이어받은 ‘자식’의 고통에 대한 아버지의 분노는 따라할 수 없을 테니까.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제 딸에게 고통을 선사한 이와 담판을 보는 것이 아닌, 심판을 보려 할 테니 말이다.

       

       ‘어휴.’

       

       발빠른 기권이 발빠른 담판을 낳은 것에 감사하며, 사과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아그작!

       

       그리고 생각했다.

       

       ‘다들 아빠가 있었구나.’

       

       라는 실없는 생각을.

       

       

       

       **

       

       

       

       《죄송합니다…. 대공전하.》

       《되었다. 나는 네게 전권을 위임하고 갔고, 너는 최선을 다했으니 사죄할 필요 없느니라.》

       

       수도성에 공무를 보러 떠난지 고작 나흘만에 성으로 복귀한 로건이 겔우드에게서 모든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엘든 라펠리온이란 기권자가 전한 과거의 증언과 더불어 현재의 상황까지.

       침통스러웠지만, 로건에게 있어 중요한 건 지난 날이 아닌 미래였다.

       만백성을 이끄는 이는 과거에 사로잡혀서는 안되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엘든이란 쥐새끼의 사면도 그에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조약서 상 혼약대전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절대 함구하겠다는 것만 명시되어있으면 충분한 일이었다.

       지금은 가문의 유구한 전통이자 만백성들의 축제를 탈없이 마무리 짓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다.

       북부인들을 위해야 하는 통치자에겐 만백성들의 실망보다 더 께름칙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혼약대전을 망쳤다간 조상들을 뵐 면목이 없을 터다.

       윈터펠의 장엄한 역사에, 오점을 남길 수 없었다.

       북부령의 백성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없었다.

       그릇된 판단으로써 신성한 전통을 욕보인 막내딸에 대한 처분은 차후에 치루리라.

       

       그리 생각한 로건이 제 앞에 무릎 꿇은 채 떨고 있는 데론을 내려다보았다.

       르미앙이 각 가문에 서신을 보낸 덕에 가주들과 빠르게 담판을 지을 수 있었다.

       

       혼약대전의 무사한 결실을 바라는 자신의 뜻과 속죄를 택한 가주들과의 담판은 켈리드 공작가의 승리로 끝났었다.

       아니, 사실상 켈리드 공작가는 결정권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로스펠 후작은 제 아들을 파면시키겠다 선언했고, 벨라온 백작은 텅빈 마상 감옥을 끌고 왔었으니까.

       남은 후보는 데론 켈리드 뿐이었고, 그렇게 최종 우승자가 된 데론 켈리드였다.

       물론 아직까지는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허울 뿐인 최종 우승이었지만 말이다.

       

       “내 네놈이 달가워 우승시키는 것이 아니다.”

       “죄, 죄송합니다…! 죽음도 기꺼이 받겠습니다…!”

       “딱 100일의 시간을 주겠다.”

       “예, 예?”

       “그 안에 르미앙에게 부군으로써 인정 받지 못 한다면, 혼약은 없었던 일이 되는 게다. 알겠느냐.”

       

       이 또한 켈리드 공작가와 협의된 사안이었다.

       학대의 주동자인 데론의 처분은 결국 르미앙의 결정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북부령의 통치자에겐 같잖은 하룻강아지의 처분보다 만백성이 밤잠 설쳐가며 기다리고 있을 성대한 퍼레이드를 무사히 진행시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으니까.

       

       “그러니 르미앙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개처럼 구르고 짖거라. 알겠느냐.”

       

       100일의 시간.

       그것을 하사 받은 데론이 바닥에 이마를 찧어야 했다.

       

       쿵!

       

       그것이 기회일지, 위기일지, 형벌일지 모를 죄인이 그렇게 이마를 찧으며 외쳐야 했다.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것이 불행일지 다행일지 모르면서, 그리 아둔한 다짐을 하는 데론 켈리드였다.

       

       

       **

       

       

       새까만 어둠이 자리잡은 밤.

       블런드가 제 오른손을 감고 있는 붕대를 만지작거렸다.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그리고 얼마나 치욕스러웠는지 모른다.

       아버지에게도 맞아본 적이 없는데, 한낱 계집에게 손을 밟히는 고통은 너무도 쓰라렸었다.

       

       “…씹년 같으니, 그때 그냥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그리 이를 가는 블런드.

       다행인 건, 며칠간 르미앙이 코빼기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거였다.

       아니었다면 지금쯤 왼손마저 아작이 났을지 모를 일.

       어차피 이제 와 우승하고픈 욕심은 없었다.

       아버지를 뵐 낯은 없겠지만, 잡년의 옆에서 알랑방귀를 뀌는 것보다 가문에 도움이 되어라는 아버지의 명을 어기는 것이 백번이고 나았다.

       

       “버러지 같은 년, 지가 정체를 숨겨놓고 이제 와 지랄이야?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 하여튼 하등 쓸모 없는 쓰레기 같은 년이라니까.”

       

       짓밟던 년에게 짓밟히는 치욕은 그야말로 절망에 가까웠고,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순순히 당해줄 것 같아? 병신 같은 년, 네년이 왜 당하고 살았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줄 테니 기다리라고.”

       

       히죽.

       

       비릿하게 웃은 블런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예상치 못 한 재회를 가져야 했다.

       

       “아… 아버지?”

       

       퍼억!

       콰직!

       

       재회와 함께 날아든 억센 주먹이 안면에 정통으로 꽂혔고, 이빨이 날아가고 콧등이 박살나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시작된, 감당하지 못 할 절망에 바닥에 주저앉아야 했다.

       

       “크헉! 아, 아버지…!?”

       

       피가 철철 흐르는 코를 부여잡으며 아버지를 올려다보는 블런드.

       단 한번도 손찌검조차 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 절망보다 더 지독한 두려움을 느끼는 블런드였고.

       

       “여봐라. 이 머저리 같은 놈은 이제 로스펠 후작가의 사람이 아니니 가진 것 모두 빼앗아 내쫓아라.”

       

       제 아들에 대한 파면을 선고하는 아버지에, 블런드는 심연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듯한 공포를 느껴야 했다.

       다시는 올라올 수 없는, 깊고 깊은 나락이었다.

       코피를 틀어막던 손으로 제 아버지의 바지를 부여잡는 블런드.

       

       “아, 아버지! 그게 무슨 소리이십니까?! 아들을 버리시겠다니요!”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반복된 폭력뿐이었다.

       날아든 구두가 무너진 제 안면을 재차 강타한 것이다.

       멀리 나가떨어진 블런드가 바닥에 엎어졌다.

       

       퍼억!

       

       “크헉!”

       

       실핏줄이 터져 새빨갛게 변한 두 눈동자.

       내려앉은 코는 새빨간 피를 뿜어대고.

       이빨이 뽑힌 잇몸은 새빨간 피를 토해낸다.

       

       “네놈처럼 쓸모 없는 인간은 로스펠 후작가에 필요 없다. 네놈의 파면이 대공전하와 협의한 처분이니, 앞으로 너의 이름에 로스펠이 거론될 일은 없을 거다.”

       

       그것이 끝이었다.

       무자비한 폭행으로써 로스펠 후작가와의 혈연이 끝이 난 것이다.

       누리던 모든 것을 빼앗긴 채로 말이다.

       절망을 느낄 새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선 블런드가 다급한 걸음으로 대공성을 빠져나왔다.

       

       “안 돼…. 안 돼…!”

       

       그리고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어제 오후, 시선을 피해 몰래 향했던 곳과 같은 곳으로 말이다.

       익명성을 보장하려면 선금을 내야 한다는 요구에, 흔쾌히 전재산을 털어 의뢰비를 냈던 암행단이 있는 곳이었다.

       죽이지 못 했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르미앙 윈터펠의 이름에 영원한 어둠을 선사하리란 다짐으로써 가진 모든 것을 털어 의뢰비를 냈었다.

       돈이야 가문으로 돌아가면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으니까.

       복수만 할 수 있다면 돈 같은 건 얼마든 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돌아갈 가문이 없어졌고, 복수심보다 투척했던 의뢰비가 더 중요해진 블런드가 그리 암행단으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아……, 아아…….”

       

       그는 추락한 심연의 나락에서 탈출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했다.

       암행단이 있던 그곳이, 거짓말처럼 텅비어버린 것이다.

       의뢰를 완수하겠다던 암행단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블런드가 새빨개진 시선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허망한 웃음을 터뜨려야 했다.

       단 한순간에 사라진 모든 것에, 단 한순간에 벌어진 것들이 믿기지 않아 그리 웃어대는 블런드였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

       

       마상 감옥의 빈틈으로 기어나와 절벽 아래로 투신 자살한 카일 벨라온.

       

       하루아침에 가문에 버림 받고,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긴 채 길바닥에 나앉은 블런드 로스펠.

       

       그리고.

       

       불행일지 다행일지 모를 100일의 불안 속에 갇혀버린 데론 켈리드.

       

       악인들에게 내려진 형벌은 그렇게 끝, 그리고 시작되고 있었다.

       

       *

       

       아그작!

       

       “흠, 단백질 파우더 같은 거 만들면 대박날 거 같은데 말이야.”

       

       남겨진 한 명은 사과를 베어먹으며, 실없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많은 분들이 걱정하시는 듯해 말씀드립니다.

    유기, 분양, NTR?

    저는 그런 단어를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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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후피집물의 후회캐가 되었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curious about what a female-oriented tragic romantic fantasy was like, so I skimmed through only the free chapters. And then… “…Ha.” I found myself transmigrated into one of the main male characters, destined for tears of regret, exhaustion, and obsession. So, the first thing that had to be done was… “I, Elden Raphelion, hereby declare my withdrawal from the competition for the betrothal of the Third Northern Duchess.” To escape this trag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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