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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잠은 일시적인 죽음이다.

    따라서,

    루크는 개최자가 잠들어버린 파자마파티로부터 남겨진 유일한 생존자였다.

    고요하지만, 빗줄기가 창문을 건드리면서 나는 타닥, 타닥 하는 소리는 이 방 어딜 가나 들려온다.

    ‘역시 잠은 안오는군.’

    자려고 노력해보려했지만, 역시 낮에 너무 오래 잔 탓에 피로감이라곤 느낄 수 없을 지경이다.

    겨우 잠에 들어봤자 금방 다시 깨는 과정의 반복이었기에, 루크는 침댓가에서 몸을 일으켰다.

    “파이, 잠깐 어디론가 가자꾸나. 이 시간을 이용해 잠깐 뭐라도 하는편이 좋겠으니.”

    -……!

    파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크는 메리의 머릿결을 몇차례 쓰다듬어주고는 나섰다.

    “잘 자거라, 메리.”

    혹여 잠에서 깨어 자신을 찾을까하여, 루크는 편지를 남겨두었다.

    물론, 휴대폰도 잘 챙겼다.

    ———

    잠옷위에 적당히 교복 블레이저를 걸친채로, 대상지정형 버프로 마개조한 파이어를 몸에 두른다.

    그렇게 기숙사의 복도를 걷고 있자니, 조용하고 어두워서 낯선 기분이 든다.

    “밤의 아카데미는 참 신기한 마력을 띠는구나.”

    루크의 혼잣말에 파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낮에는 어딜가나 학생들로 북적여서 활기차고 밝은 마력이 느껴졌다면, 밤은 고요하고 안정적인 형태로, 그야말로 밤과도 같은 분위기의 마력을 자아냈다.

    루크는 낮 만큼이나 밤이 좋았다.

    낮의 떠들썩한 분위기만큼, 아름다운 밤 하늘도 좋아하니까.

    이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규칙, 그것은 하늘에 별이 떠있고, 밤은 고요하며, 마법은 신비롭다는 것이다.

    사뿐, 사뿐. 혹여 자신의 발소리가 아이들의 취침에 방해가 될까, 하여 조용하게 발걸음을 거닌다.

    그러다 문득, 루크는 기숙사안쪽에 음악동아리실이 있다는걸 기억해냈다.

    마침 지금은 비가 내리는 밤.

    혹자는 공포스럽고 을씨년스럽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루크가 보는 밤의 풍경은 루크에겐 전혀 다르게 보인다.

    정적이며 안정적인, 그러나 너무 조용하지만은 않고 청각적으로 충만하다.

    아름다운 마력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마력시를 가진자가 아니라면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할 터.

    그래서 루크는 문득, 방에 놓여진 첼로를 떠올렸다.

    파이도 마침 그 생각을 했는지, 첼로의 현음을 울리며 루크를 바라보았다.

    “알겠다, 내 첼로연주가 듣고싶은게로군?”

    그러자 파이는 크게 기뻐하며, ‘루크, 기대할게!’라고 말한다.

    그래, 상쾌하게 연주를 하고 돌아오면 분명 잠도 잘 올테지.

    파이도 그것을 원하는 듯 보이고 말이다.

    루크는 기숙사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그러자,

    -…….

    빗소리만 가득했던 복도에 섞여있는 미약한 음율.

    그것은 분명, ‘바이올린’의 소리다.

    루크는 파이를 향해 물었다.

    “파이, 들리나?”

    파이는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임으로 답한다.

    잘못들은것은 아닌가보군, 하고 생각한 루크는 곰곰히 생각해본다.

    다가간다와 무시한다중, 선택해야할 선택지는 무엇인가.

    사실, 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답은 이미 알고 있지만.

    “가볼까.”

    이 선율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있을리가.

    ——-

    연주가 들리는 방 앞까지 도착한 루크는 조심스럽게, 연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하게 문을 열었다.

    뚝.

    그럼에도 루크의 인기척을 느낀것인지, 연주가 뚝 하고 끊긴다.

    검은 단발, 검은 눈.

    그인지, 그녀인지 모호한 인상의 인물은, 티그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은채 길게 자란 앞머리의 틈새로 루크를 쳐다본다.

    “누구지?”

    마치 혼잣말같은 중얼거림에, 루크는 멋쩍게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이런, 방해했다면 미안하네. 나도 연주를 하러 온 참인데, 먼저온 사람이 있을줄은 몰라서.”

    “아, 너는…….”

    “소개하지. 나는 루크 이루시라네. 그대는?”

    그는 몇번눈을 깜빡거리더니, 조금 당황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일시아, 일시아 미티어.”

    “일시아 미티어라고 하는구나. 만나서 반갑다.”

    루크가 생긋 웃으며 소개를 받자, 일시아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안도인지 기쁨일지 모를, 긍정적인 감정이 담긴 한숨이었다.

    “깜짝 놀랐어, 이 날, 이 시간에 사람이 오는일은 거의 없는데.”

    “놀라게 했다면 사과하지, 미안할 따름일세.”

    “아냐, 뭘…….”

    일시아는 바이올린을 어깨에서 내리고 활대와 함께 움켜쥔다. 그렇게 그는 남은 손으로는 뒤통수를 긁으며 곤란한듯이 웃었다.

    “루크, 이루시라고 했나? 그 말투는 뭐야? 지금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툰가?”

    “그건 아니네만……. 하하. 말투를 너무 신경쓰진 말거라.”

    “그래……?”

    일시아는 피식 웃고는 바이올린을 근처 의자에 조심스럽게 내려두며 루크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연주를 하러 왔단 말이야? 이 시간에?”

    “뭐, 너도 하고 있지않았느냐.”

    “그렇긴 하지만…….”

    하하, 곤란하다는 듯이 그는 뒷머리를 긁었다.

    “그나저나, 일시아. 바이올린을 꽤 잘 켜는구나. 그정도면 길거리공연을 해도 손색이 없겠어.”

    “칭찬 고맙네, 하지만 거리공연은 안해. 내 목표은 이번 콩쿠르에서 수상하는거니까.”

    “호오, 뭔가 대회같은게 열리는 모양이군?”

    “그렇지 뭐, 근데 너도 그것때문에 연습하러온게 아니었어?”

    “나? 글쎄, 나는 그저 재미로 연주를 하러 왔을 뿐이라네.”

    루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콩쿠르라는것은 탐이 좀 나는구나. 내게는 수상경력이 필요하거든.”

    “수상경력? 왜?”

    “조기졸업을 하기 위해서지. 상이 많을수록 인정받기 쉽다던가.”

    “아, 그렇구나.”

    일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너도 바이올린을 켤 줄 아는거야?”

    “아, 그것은 아닐세.”

    루크는 곤란하다는 듯 턱을 쓸었다.

    “바이올린은 뿔때문에 연주할수가 없어서.”

    “그게 무슨 소리야, 뿔이라니? 문제될 건 없어보이는데? 한번 들어봐.”

    루크는 일시아의 제안대로 바이올린을 들어 어깨위에 댔다.

    그리고 일전의 거리공연자가 했던 것처럼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렇게 올리면 뿔때문에…….”

    일시아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자세를 지적한다.

    “그 자세가 틀렸는걸. 그거, 누가 알려준거야?”

    “……거리에서 슬쩍 봤다네.”

    “그게 뭐야!”

    ————

    일시아의 가르침덕에, 루크는 금방 올바른 자세로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었다.

    어쩐지, 첼로보다는 간단한 느낌이었고.

    몇번 현을 만져보니 감이 왔다.

    이것은 정령의 언어를 알아듣고 구분할 수 있는 재능, 정령친화력의 덕분이리라.

    애초에, 일반인은 구분할 수 없다고 전해지는 정령의 미세한 말을 구분할 수 있다는것이 그 증거.

    -…….

    루크는 활대를 움직였다.

    기교는 아직 없지만, 정직하게 내는 음율이었다.

    빠르지도 않고, 너무 쨍하지도 않은, 밤의 분위기에 알맞은 느리고 차분한 음율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상대로 손이 움직이면, 파이는 기분좋다는 듯이 공명한다.

    이것이 정령의 인도인가.

    루크는 무아지경으로 연주했다.

    마치, 자신의 감정을 직접 쏟아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차분하고 고요한, 밤과도 같은 감정을.

    곧 연주가 끝나자, 일시아가 박수를 쳤다.

    “대단한데, 그건 무슨 곡이야?”

    “즉흥일세.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루크는 찰나지만 깊게 고민했다.

    방금의 연주에 이름을 붙인다면 무엇이 좋을까.

    지금껏 손이 가는대로 연주한 음악에 이름을 붙여본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조금은 낯설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했다.

    “……마력의 밤.”

    그저 밤의 분위기에 휩쓸려 감정을 담아내었으니, 그보다 좋은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마력의 밤. 괜찮은 이름이네. 뭔가 밤의 마력이 느껴지는 곡이었어. 그런데, 찰현악기가 처음이 아닌것 같은데, 맞아?”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첼로를 다뤄본적이 있어서 그런 것 같구나.”

    아직 3일밖에 되지 않기는 했지만, 루크의 재능은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었으니 보통의 사람이 갖는 3일과는 무게가 다르긴 하다.

    “첼로라……. 그렇다면 그럴만도 해.”

    일시아는 그럭저럭 납득한 모습으로 보였다.

    일반적으로 바이올린보다 다루기 어려운것이 첼로니까.

    “그런데, 되게 신기하다. 네가 연주한 곡들. 다 처음들어보는데 어려운 기교도 필요없고, 듣는게 거북하지도 않네.”

    “과찬일세. 분위기를 탄게지.”

    “어이. 그걸 과찬이라고 해버리면, 나는 질투하게 된다고.”

    “하하. 너무 그러지 말게나, 지금 그대는 내 스승이니.”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연주를 하다보니 시간은 금방 가버렸다.

    빗소리는 어느새 사라졌고, 또옥. 똑 하며 처마에 매달린 빗방울이 떨어지는 음에 아침의 새소리가 섞여들어온다.

    창문을 내다보면 싱그러운 햇살이 비춘다.

    아침.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 일시아. 나는 이만 가보겠네, 그대도 식사를 거르진 말게.”

    “그래, 루크. 잘 가.”

    일시아는 은은히 미소지으며 방 밖으로 나가는 루크를 배웅했다.

    품 안의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자, 아침식사시간까지 30분가량만이 남은 상태였다.

    ———

    루크는 빠른 걸음으로 메리의 방에 돌아왔다.

    그리고 교복으로 갈아입기전에, 그녀를 깨웠다.

    툭툭.

    “메리, 아침이란다.”

    “으음……. 아니, 오늘은 그냥 잘래…….”

    “아이가 식사를 거르면 안되지. 얼른 일어나거라.”

    루크는 메리에게서 이불을 빼앗고는 흔들어 깨운다.

    그녀는 아침에 상당히 약한 듯 보였다.

    어떻게 일으켜서 억지로 세수를 시켰다.

    루크는 생각보다 나가는 메리의 무게에 인핸스 바디까지 써야했다.

    어떻게든 씻기고 옷을 건네주면, 루크가 주는대로 옷을 받아입는다.

    자의로 옷을 갈아입을정도는 되는것인가. 그건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어떻게든 옷을 갈아입히고 자신까지 교복을 차려입고 방을 나서자, 메리는 흐아암……. 하고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아침에 그리 약해서야……. 대체 그대는 평일에는 어찌 학교에 가는겐가.”

    “그으……. 이건 밤에 영화보느라……. 그리구, 평소엔 가사도우미분들이 깨워서 도와주신다구…….”

    “가사도우미라, 시종말하는겐가. 헌데 오늘은 왜 없는게지?”

    “으음……. 오늘은 친구랑 밤새 놀고 아침에 잘거니까 깨우지 말아달라고 했단 말야……. 하암…….”

    “그런게였군.”

    메리도 없는 집 자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 왜 교복이야? 주말엔 사복으로 다녀도 괜찮은데.”

    “그런가? 차마 몰랐다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메리는 대수롭지 않게 헤헤 웃어버리고 말았지만, 루크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살짝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일시아는 어째서 교복차림이었을까?

    ‘혹시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연습하고 있던겐가?’

    그도 꽤나 노력파로군.

    루크는 어깨를 으쓱하며 식당에 들어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의 음악적 재능은 가히 정령적….!
    압도적인 재능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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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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