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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판사는 장미 풍차 카바레의 1번 홀을 임시 법정으로 선포했다.

       방금까지 공연장이었던 무대가 순식간에 재판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곳에 오르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이전에 올랐던 사람들이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자의 배역을 맡은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무대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 배우들도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소인, 피고인, 법원의 서기, 증인들이 제자리에 섰다.

         

       손님들은 재판의 방청객이 되었다.

       그들은 무대를 둥글게 둘러쌌다. 그들은 이번 재판에 대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견에 따라 피고인 측에 서거나, 기소인 측에 서거나, 혹은 그 중간 어딘가에 섰다.

         

       법복을 입은 늙은 판사가 무대 뒤편에서 걸어 나왔다.

       평소처럼 좌중을 둘러본 그는 자신의 자리로 가다가 중간에 움찔 멈춰 섰다.

         

       온갖 보석과 꽃장식이 되어있는 의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이본느가 무대 위의 여왕님 역할을 하며 앉았던 자리다.

       늙은 판사가 앉기에는 거북할 정도로 치장이 화려했다.

         

       그는 떨떠름한 눈길로 극장 측 사람들을 돌아봤다.

       판사 생활만 20년을 넘게 한 그였다.

       그는 그들의 얼굴에서 쉽게 비웃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장미 풍차 사람들이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재판에 대해 반감을 표현한 것이다.

         

       차라리 이 재판이 정말 희생자들을 위한 것이었으면 납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이건 순전히 높으신 분들의 정치적 모략을 위한 쇼였다.

       극장 사람들이 재판에 반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판사는 자신을 노려보는 사람 중 오랜 술친구인 유그 마로이네도 섞여 있다는 사실이 퍽 섭섭했다.

         

       내가 저들과 한패라고 여기는 모양이군.

         

       방청객을 둘러보니 피고인 측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법복과 법봉에 법원의 서기까지 미리 준비했다는 듯 튀어나왔으니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도 이런 협잡질에 자신이 이용당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기소인 측이 재판에 대해 문의를 해왔고, 그는 담당 판사로서 솔직하게 답했을 뿐이다.

         

       재판 일시와 장소를 이때로 지정한 것도 용의자와 증인의 확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재판에 대한 통보도 용의자 측의 도주를 염려해 함구해달라고, 루즈의 경찰서에서 정식으로 부탁했다.

         

       주장도 근거도 모두 설득력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라고 어쩌겠는가.

       알겠다고 할 수밖에.

         

       판사는 주변 사람들의 조롱 섞인 시선을 무시하려 애쓰며 자리에 앉았다.

         

       오늘 무대의 주인공이 피고인석에 올랐다.

       배우를 해도 될 정도로 잘생긴 청년이었다.

       그는 상황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유 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죄가 없는데 뭐가 문제가 될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판사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저렇게 생각이 없을 줄이야.

       정치와 거리를 두는 그도 이번 일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이 중에 기마경찰대의 부사관을 제외하고 정말로 진범을 잡는 게 목적인 사람은 없었다.

       자세한 물밑 사정은 모르지만, 상대 귀족의 명예에 흠집을 내서 이득을 취하는 게 목적인 것 같았다.

         

       청년이 무죄를 받을 때쯤이면, 그를 후원했던 귀족의 명성은 이미 추락한 뒤일 것이다.

       그도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힘들게 손에 넣은 기회를 모두 잃게 될 것이다.

         

       그런데 뭐가 좋다고 저렇게 웃고 있을까.

       모자란 친구 같으니.

         

       판사는 우선 상대의 피고인 적격성을 검토했다.

       즉, <집시와 떠돌이에 관한 법령>의 ‘즉결 재판’을 열 수 있는 조건이 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프랑크 원더스타인입니다.”

       “공식적으로 증명 가능한 신분이 있소?”

       “없습니다.”

       “타국에서 영주권, 임시 주민 지위, 보호 난민 등 신분증을 대체할 자격을 취득한 바 있소?”

       “없습니다.”

       “혹시 출신지를 아시오?”

       “모릅니다.”

       “부모에 대해 아는 건?”

       “없습니다.”

         

       신원불명의 고아 출신 떠돌이.

         

       기소인으로 나온 도스빌 남작이 껄껄 웃으며 손뼉을 짝 쳤다.

         

       “세상에나! 설마 했는데 진짜배기 떠돌이였군그래! 이거 재판을 할 필요도 없는 거 아닌가?”

         

       그는 방청객 쪽으로 돌아서서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의 앞쪽에서는 왁자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그의 뒤쪽에서는 불편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집시와 떠돌이에 관한 법령>에서 말하는 ‘떠돌이’는 문자 그대로 일반 여행자나 유랑 곡예사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다.

       해당 법령 1조는 떠돌이에 대해 명확히 정의하고 있었다.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고 신분이 증명되지 않은 무적자(無籍者)라고.

         

       이 시대에 집시를 비롯한 무적자는 천역(賤役)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더한 멸시를 받았다.

       특히 농업이 주력인 샤를로티아에서는 신분제가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었고, 주민들의 향토 의식 역시 짙었다. 다른 나라보다 외지인에 대한 배척이 유독 심했다.

         

       근본 없는 쓰레기.

       그것이 이곳 사람들이 무적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이었다.

       아예 무적자는 체포해서 낙인을 찍고 노예로 만드는 영지도 있을 정도였다.

         

       기소인 측의 방청객들로부터 온갖 조롱이 쏟아졌다.

         

       “캬, 괴물서커스단의 단장답군. 본인도 비슷한 처지잖아.”

       “외모는 곱상한데. 어디 잘 나가던 창녀의 자식 아냐?”

       “어릴 때는 제 어미랑 비슷한 생활을 했을지도, 킥킥.”

         

       선을 넘는 조롱에도 피고인 쪽의 방청객들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들도 원더스타인의 신분에 대해 불편함을 숨기지 못했다.

         

       “자작님은 어쩌다 저런 놈이랑 엮였대?”

       “옷 입은 거랑 태도 좀 봐. 자연스럽잖아? 어디 귀족의 서자라고 거짓말한 거 아닐까?”

       “이래서 남자는 겉모습만 믿고 만났다간 큰코다친다니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도 여기저기서 나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수치심에 얼굴도 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는 원더스타인은 의연했다.

       그는 사람들의 욕설을 묵묵히 감내하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마치 이런 소리를 듣는 것에 익숙한 사람처럼.

       모욕을 당하는 게 일상이었던 사람처럼.

         

       아나이스는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았다.

       절대 들추어서는 안 될 개인사를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그녀도 예전부터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그는 유독 고향이나 출신에 대한 말이 나오면 슬쩍 화제를 돌렸다.

         

       무슨 사정이 있는 거겠지.

         

       상대가 말하지 않으면 절대 먼저 묻지 않으려 했다.

       그럴 때마다 나쁜 생각이 들려는 것을 자제했다.

         

       아닐 거야.

       아니겠지.

       단장님의 모습이나 행동거지를 봐.

       분명 몰락한 명문가나 귀족의 시종 출신 같은 걸 거야.

         

       도스빌 남작이 떠돌이 운운하며 법을 들고 왔을 때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도 법을 배웠다지만 주로 경제나 상업에 관련된 것이었다.

       집시의 처우 같은 법령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판사와의 질답을 통해, 도스빌 남작의 선언을 통해 마침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원더스타인은 천민보다 신분이 낮은 무적자였다.

         

       창녀가, 광대가, 거지가, 유랑민이, 도적이 떠돌이 생활 중에 휙 낳고, 그 상태로 떠돌이로 자란 고향도 나라도 없는 자들.

       집시는 인종을 지칭하는 말이라 집시로 불리지는 않지만, 사실상 집시나 다름없는 자들.

       무적자.

         

       정말 한때 잠시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던 불길한 의혹.

       그것이 사실임이 드러난 것이다.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공언되는 최악의 방식으로.

         

       아나이스는 떨리는 손을 꽉 쥐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단장님을 구한다 해도 앞으로 어떻게?

       이사회에서 순순히 변호인단을 섭외하게 해줄까?

         

       아니, 즉결 처형이라고 했잖아.

       당장 이 자리에서 단장님을 구할 수는 있을까?

         

       생각이 뒤엉켰다.

       숨이 가빠졌다.

       그녀의 눈에서 막 눈물이 솟으려는 그때, 무스탕 후작이 그녀의 뒤에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동요를 감추시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당신이 그런 반응을 보이면 저 남자와 무슨 사이가 있다고 인정하는 꼴밖에 안 되오. 즉결 재판에서 즉결 처형은 정말 확실한 물증과 증언이 없으면 절대 나올 수 없소. 도스빌 남작의 말은 허세요. 전부 당신을 흔들려는 수작이란 말이오. 정식 재판으로 끌고 가면 확실히 무죄를 받을 수 있소. 저들의 목적은 재판 그 자체가 아니오. 우리 명예에 손상을 입히려는 거지.”

         

       아나이스는 간신히 떨리는 몸을 가라앉혔다.

         

       즉결 처형.

       무적자.

         

       그 2연타에 그녀가 그만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무스탕 후작의 말이 맞았다.

       재판은 빌미일 뿐.

       저들의 목적은 그녀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상회에서 그녀의 입지를 위태롭게 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그녀가 올바른 판단력을 잃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녀의 힘과 발언권은 약해지고 원더스타인을 구하기는 더욱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녀는 침착하게 숨을 골랐다.

         

       “고맙습니다, 무스탕 후작님.”

       “별말씀을.”

         

       무스탕 후작의 깔끔한 태도에 아나이스는 작은 의문이 들었다.

         

       “후작님은 괜찮으신가요?”

       “뭐가 말이오?”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일에 엮였는데…….”

       “신분?”

         

       무스탕 후작이 코웃음을 쳤다.

       그는 뒤에 있는 장미 풍차의 무용수들을 턱으로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창녀들을 데리고 사는 포주라는 뒷말을 수도 없이 들은 사람이오.”

       “아.”

         

       그는 카바레의 주인이었다.

       적어도 원더스타인의 신분 때문에 그가 돌아서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아나이스는 안심하고는 다시 재판장으로 눈을 돌렸다.

         

       도스빌 남작은 자신이 금방 침착함을 유지하자 상당히 아쉬워하는 듯했다.

         

       비루한 인간.

         

       그때, 원더스타인이 그녀를 바라봤다.

       아나이스는 그의 미소에서 난처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도 부끄러울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자신 앞에서 비밀이 드러나고 말았으니까.

         

       그녀는 그를 향해 마주 보고 웃어주고 싶었다.

       그에게 다가가 위로해주고 싶었다.

         

       자신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그래도 당신 편이라고.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그녀는 지금 연기를 해야 했다.

         

       아나이스는 냉정한 표정으로 그의 미소를 무시하며 시선을 돌렸다.

         

       나는 당신에게 돈을 댔을 뿐, 감정적으로는 아무 사이라도 아니다.

       이런 상황 자체가 짜증 나고 넌덜머리 난다는 듯.

         

       “자작님도 화가 많이 나셨나 보군.”

       “누군들 좋겠어. 저 겉모습만 보면 나도 속았겠다.”

       “이게 무슨 고생이셔.”

         

       피고인 측 방청객들 사이에서 그녀에 대한 동정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이걸로 그와 연인 사이라는 오해는 더는 없을 것 같았다.

         

       도스빌 남작이 실망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흥.

       누굴 흔들려 들어.

         

       저도 모르게 비웃음이 나오려는 아나이스.

       그러다 원더스타인을 바라보게 되었다.

         

       아.

       그녀는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자신을 바라보는 원더스타인의 눈빛.

       그것은 더없는 슬픔을 담은 것처럼 씁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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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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