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9

       푸욱!

       

       이안의 심장에 갈무리용 단검을 박아 넣었다.

       

       심장 리셋.

       

       기본적인 원리는 제세동기와 비슷하다. 오작동하는 심장을 한번 멈췄다가, 다시 뛰게 만들어 정상으로 되돌리는 거니까.

       

       컴퓨터 껐다 켜기, 가챠로 녹아내린 뇌가 텅장보고 제정신 차리기, 클라우드백업까지했는데날아간원고를확인하고각성해서간신히마감하기 등등.

       

       비슷한 건 많지 않은가.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혈류에 문제가 생긴 거라면, 그 흐름을 일으키는 심장을 한번 멈췄다가 다시 가동시키면 그만.

       

       일그러진 축복은 심장이 고장 나며 약화될 것이고, 상처는 죽기 전에 치료하면 된다. 여기가 신전인데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이 간단한 결론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들었나 보다.

       

       “여, 여신이시여! 다친 자에게 당신의 자애를 내려주소서!”

       

       “요나 미쳤어?!”

       

       기겁하며 회복 신성술을 자아내는 카렌과 비명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포션을 이안의 입에 물리는 리디아.

       

       둘의 완벽한 대처 덕에 이안은 빠르게 회복했지만….

       

       “아니, 축복이 풀리기도 전에 회복시키면 어떻게 하시나요? 다시 해야 하니까 다시 준비해 주세요.”

       

       “뭘 다시 하겠다는 겁니까!?”

       

       “…설명! 자세한 설명을 좀 하고 해!”

       

       미친놈이라도 보는 듯한 시선. 너무하네. 이게 최선이었는데.

       

       한차례 어깨를 으쓱이고는 입을 열었다.

       

       “문제의 원인을 제거한 거죠. 이안 심문관님은 죽기 전에 회복시키기만 하면 괜찮을 거예요.”

       

       “그게 무슨 헛소…으음? 잠시만요. 아니, 이게 왜…설마?”

       

       눈에 쌍심지를 켜고 따지려던 카렌이었으나, 그래도 여기에서는 가장 신성력이나 축복에 해박한 사람이니 금방 내 말뜻을 눈치챘나 보다.

       

       잠시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축복은 죽음과 함께 흩어지니, 심장이 멈추면 그 안에 깃들었을 터인 뒤틀린 축복도 사라지는 거군요.”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요. 그건 완전한 죽음일 때를 의미하는 거예요. 심장이 멈추고 뇌가 정지하는 때가 아니라,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간 순간이요.”

       

       “…심장이 멈추고 뇌가 정지하면 사람은 죽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반박하는 카렌. 이 부분에서 상식의 차이가 조금 있는 거구만.

       

       “아뇨. 바로 죽는 건 아니에요. 약간의 유예는 주어지거든요. 그사이에 바로 회복하면 괜찮아요.”

       

       “정말입니까?”

       

       “정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안 심문관님은 한번 죽었다 살아나는 게 아니라, 잠깐 심장이 멈출 뿐이죠. 이 변형된 축복은 심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 그릇이 부서지면 당연히 사방으로 흩어질 거예요. …약간은 남겠지만요.”

       

       “남는다고 하셨습니까? 그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는 겁니까.”

       

       “이안 심문관님이 정말 죽었다가 부활이라도 하는 게 아니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도 다 방법이 있으니까요.”

       

       “여신이시여…당신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여신님이 아니라 제 계획인데요…아무튼 이제부터 다시 심장을 찢어놓을 건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초만 세고 바로 치유 기도 시작하셔야 합니다? 리디아 님도 다음 포션 준비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응.”

       

       내가 미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준 둘이 다시 한번 신성력과 포션을 준비했다. 이를 확인한 뒤에야 아직 뽑지 않고 있던 검을 반 바퀴 비틀었다.

       

       으직!

       

       검 끝에서 느껴지는 살이 짓뭉개지는 감각.

       

       심장이 재차 으스러진 이안이 정신을 잃은 상태임에도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 격정적인 반응에 카렌이 몸을 들썩였지만.

       

       “아직!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큿!”

       

       속으로 5초 카운트 다운을 마친 뒤에야 이안의 심장에 꽂혀있던 단검을 뽑았다.

       

       푸슈우웃!!

       

       분수처럼 기세 좋게 솟구치는 핏물. 그 일부를 미처 피하지 못한 얼굴로 받아내며 외쳤다.

       

       “지금이에요!”

       

       “여신이시여! 상처 입은 어린 양이 여기에 있나이다! 부디 당신의 자애를!”

        

       “…요나는 나중에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해.”

       

       양손을 움켜쥐며 기도문을 읊는 카렌과, 이쪽을 찌릿 노려보며 새 포션을 물리는 리디아.

       

       리디아의 반응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안이다.

       

       화아악!

       

       옅은 분홍색 빛에 휩싸인 이안. 순식간에 아문 가슴께의 상처 위로 거뭇한 자색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카렌의 집중이 흐트러지길래 단호한 어조로 외쳤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세요!”

       

       “……!”

       

       이를 악문 카렌이 재차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탁해졌을 뿐 근본이 같은 신성력인 자색 기운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그저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내게 흡수될…….

       

       “엥?”

       

       아니 흩어졌으면 곱게 사라질 것이지 왜 나한테 몰려드는 건데??

       

       슬쩍 몸을 빼보았지만, 그럼에도 끈덕지게 쫓아오는 기운. 일단 몸에 해가 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영 꺼림칙하단 말이지.

       

       일단 카렌에게 잘 보이지 않는 위치로 몸을 피하려 했으나….

       

       “아.”

       

       그게 오히려 신경 쓰였는지, 땀방울 송골송골 맺힌 카렌과 시선이 마주쳤다. 덤으로 리디아도 알아챘고.

       

       음.

       

       조졌나?

       

       사실 내가 이런 치료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만 해도 큰 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저 카렌이 나를 여신의 사도 비스무리한 것으로 여기고, 리디아는 평소에 내가 보여준 게 있어 어지간한 일에는 덤덤히 반응하니 그냥 질러본 거지.

       

       무엇보다 어찌됐건 사람 살리는 일을 했을 뿐 아닌가. 의심을 사더라도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황혼을 삼키는 자 특유의 일그러진 신성력을 흡수하기 전까지는.

       

       돌겠네. 어쩌지 이거.

       

       이안의 안색이 밝아지면 밝아질수록 내 안색은 어두워져갔다. 

       

       일단 품에 손을 집어넣어 여신상을 움켜쥐었다. 여차하면 이거라도 들어 올린 채, 사랑의 여신을 찬미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잠깐. 황혼을 삼키는 자도 일단 여신을 믿는 자들이잖아? 이단이라서 문제인 거지.

       

       차라리 여기서는 황혼을 삼키는 자 개씹호로새끼 시즌2를 꺼내는 게….

       

       아잇! 이래서 내가 신전에 오기 싫었는데! 어쩐지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았단 말이야!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지만!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민하는 속으로 투덜대는 사이. 마침내 치료가 끝난 건지 카렌의 전신에서 뿜어지던 신성력이 사그라들었다.

       

       이안은 완전히 회복된 듯,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일단 별문제 없이 잘 끝나긴 했네.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잽싸게 여신상부터 꺼내 들었다.

       

       양손으로 잡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마치 새끼를 자랑하는 수달 같은 모습으로.

       

       “사랑의 여신 만세! 황혼을 삼키는 자는 개씹호로새끼다!”

       

       “…….”

       

       내 기습 숭배에도 반응하지 않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카렌.

       

       분명 같이 봤을 텐데, 의심하기는커녕 오히려 다급한 표정으로 나를 지키듯 앞에 버티고 선 리디아.

       

       그 미묘한 대치 속에서 카렌이 또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기 시작했다.

       

       “역시. 저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넹?”

       

       “그 혼탁한 신성력을 받아들여 이렇게나 순수하게 정화하시다니. 요나 형제님은 분명 여신께 총애를 받고 계십니다.”

       

       “…….”

       

       그 말에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바라보는 리디아. 하지만 오러를 사용자가 쳐다본다고 신성력의 질이 느껴지겠는가. 밖으로 꺼낸 상태라면 모를까.

       

       나 또한 내면에 정신을 집중해 보자 전신 이곳저곳에 퍼진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심장 부근에 자리 잡은 쥐꼬리만 한 마나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운. 하지만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힘이다.

       

       찌꺼기만 흡수한 터라 그 양이 많지 않고,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신성력이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는 것.

       

       일단 내게 좋은 일은 맞다. 맞는데….

       

       “말이라도 좀 해주지.”

       

       뭐가 어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분명 사랑의 여신이 뭔가 도와준 거겠지.

       

       하늘을. 정확히는 높게 들어 올린 여신상을 원망스레 바라보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저 내 시선을 따라 여신상을 바라본 카렌과 리디아가 3성급 조각상의 미모에 감탄했을 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말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맞다! 아직 하나 더 해야 할 게 남았어요! 카렌 심문관님! 이안 심문관님의 입을 벌려주시겠나요?”

       

       “예. 이렇게 말입니까?”

       

       군말 없이 일어나 이안의 입을 잡아 벌리는 카렌. 그 앞에 서서 재차 단검을 뽑아 들었다. 이번에는 갈무리용이 아닌 유니콘 단검을.

       

       리디아가 설마 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반면, 카렌은 한 점 의심조차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뭘 하시려는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조금 남아있는 저주의 잔재를 완전히 몰아내는 일이요.”

       

       “저는 뭘 하면 됩니까?”

       

       “그냥 입이나 잘 벌려주고 계세요.”

       

       “예.”

       

       고개를 끄덕이는 카렌. 나 또한 각오를 다지고는 유니콘 단검을 반대쪽 손으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읏!”

       

       손바닥을 파고드는 차가운 검신. 한 박자 늦게 올라오는 고통을 느끼며 그대로 단검을 그었다.

       

       스윽.

       

       깊게 베인 손바닥에서 핏물이 울컥이며 올라오는 동시에, 유니콘 단검이 희미한 빛을 내뿜으며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아물기 전에 주먹을 이안의 입가에 대고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후두둑.

       

       압력에 눌려 쏟아지는 피 몇 방울이 이안의 입을 지나쳐 목구멍을 통과한다. 그리고.

       

       파아앗!

       

       이안의 몸이 다시금 빛나며 약간의 자색 기운을 토해냈다. …이것도 전부 나한테 흡수되었지만.

       

       그리고 카렌이 이젠 아예 내 앞에서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아, 아아…! 눈물 흘리는 아이들을 위해 여신께서 피를 흘리나니!”

       

       “뭔지 모르겠지만 그거 아니에요.”

       

       “자애라 함은 마땅히 자신의 피로 타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음이라!”

       

       “아니라고요….”

       

       나도 조금 울고 싶어졌다.

       

       이거 그냥 피로 시작한 문제를 피 먹여서 안정시키는 거 뭔가 멋있지 않아?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넣은 설정이라고!

       

       관심 멈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블아 운루나 천장, 니케 에밀리아 120뽑(200뽑이 천장)

    세상이 미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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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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