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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이런 곳에서 무슨 용무지 세실리아?”

       

        전 칠현자이자 칼레이도스 학파의 거성, 뇌제(雷帝)라는 이명을 가진 여인이 객실의 문을 발로 열며 안으로 들어왔다.

        클라우디아 이네스코트 데 칼레이도스.

        소금물을 먹은 문 너머에 그녀를 부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신의였다.

        썩어서 반쯤 부서진 협탁에 정갈하게 차려졌던 재단은 지금 막 그 가치를 다한 듯 재로 화하는 중이었다.

       

        “최상층의 공략은 잘 되고 계신가요?”

        “바쁘지. 거긴 공략대에서 한 명만 이탈해도 다른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곳이야. 안부나 물을 거였으면 메시지를 보내지 그랬나?”

        “그럴 순 없었어요. 관리자 님께서 보실 테니까.”

       

        주딱의 이름이 나오자 뇌전을 품은 클라우디아의 마력이 23층 전체를 휩쓸었다.

        백가 1위의 빛 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

        듣는 이가 있는지 확인을 마친 클라우디아가 거뭇한 의자에 몸을 기댔다.

        마탑의 끝을 보는 것 외엔 관심없는 마법사였지만 그에 관해서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주딱의 눈을 피해서 해야만 하는 이야기라. 궁금해지는군.”

        “조금 전, 이곳에 관리자 님이 오셨었어요. 당신이 원소학파의 칠현자에게 명령한 마족 전담기구의 단원을 모집하는 도중 작은 사고가 생겨서였죠.”

       

        갤러리를 어지럽히던 분탕 하나를 쳐내는 과정에서 주고 받았던 대화들.

        그 안에는 세실리아가 듣기에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재앙이 대륙에 떨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저도 짐작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중간에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세상은 그런 식으로 되어있다’고.”

       

        정신을 잃은 클로에를 눕혔던 침대에 걸터앉으며 그 이후의 기억을 떠올렸다.

        주딱이 재앙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세실리아는 그에게 그 말의 진의를 물었었다.

        교국의 부탁을 받고 태양의 적을 쫓아다녔다는 고백을 듣고 ‘그런 컨셉이시군요’라는 안쓰러운 듯한 시선을 받긴 했으나 대답을 들을 수는 있었다.

       

        “이렇게 말했어요. 재앙을 쫓는 건 좋지만 방해가 들어올 거라고. 혹여 성과를 거두더라도 모든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이름은 잊혀지게 될 거라고요.”

        “흠…… 그건 확실히 의미심장하군. 누구로부터?”

        “그것도 물었지만 굳이 입을 열진 않으시더군요. 다만 대륙에서 무의미한 전쟁이 사라짐으로서 가장 손해보는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보라고 하셨어요.”

        “세실리아, 미안하지만 나는 재앙이니 전쟁이니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어.”

       

        비단 클라우디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같은 생각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탑을 오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마력을 갈고닦는 것뿐.

       

        “더 이상 머리가 복잡해지기는 싫으니 이쯤 해두지. 이것 말고도 저 위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니까.”

        “답은 이미 찾았어요, 적어도 저는.”

        “응?”

       

        전쟁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주체.

        그건 바로 제국이다.

       

        영토를 확장하고 주변 나라를 합병하며 세를 불려나가기에는 전쟁의 광기만큼 편한 것이 없다.

        마탑 내에는 제국에 충성하는 관리나 황실과 끈이 닿아있는 이가 여럿 있다.

       

       “제가 당신을 부른 이유는 당신의 공략대에 그들 중 한 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서에요.”

       

       

       

        *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며 난파선은 본래 장박했던 장소로 돌아왔다.

        플루비아의 마법사들이 바닷물에 빠진 지원자들을 건져내 탈락 처리를 마치자 공식적으로 테스트가 종료되었다.

        합격 통보를 받고 대략 일주일이 흐른 뒤.

        나는 프리나의 메시지를 받고 구내식당에 나와 있었다.

       

        점심이나 같이 먹을 겸 극채색의 물품을 전달하고 시설을 안내해주겠다는 명목으로 불려나왔는데, 왼쪽 끝 창가에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길이 엇갈렸나 헤매던 찰나, 누군가 뒤에서 내 소매를 꼭 쥐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검은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내린 프리나였다.

       

        “왜, 왜 이렇게 늦었어. 한참 기다렸잖아.”

        “항상 계신 곳에 없어서 찾으러 돌아다녔죠.”

        “흐, 흥. 거긴 친구 없는 애들이나 앉는 데잖아. 그런 음침한 곳에서 밥이 목구멍으로 제대로 넘어가겠어?”

        “…….”

       

        최근 그녀는 같이 합격한 세라와 아르투르, 그리고 셀루시아의 정령사들과도 안면을 텄다.

        새 친구를 사귄 지 고작 며칠 됐다고 혼밥 동지들을 매정하게 버린 걸 보니 성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코다리 조림 냄새가 진동하는 식당 안에서 그녀의 달콤한 체향이 콧가에 감돌았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포크를 들었다.

       

        “전 따로 연락받은 게 없는데 어떻게 선배가 먼저 아셨어요?”

        “네가 뒤풀이 겸 세미나에 참석 안했잖아. 너, 너 중간에 합격시킨 사람이 누구라 했지?”

        “클로에 교수님이요.”

        “그 인간 휴직계냈어. 보아하니 인수인계도 안 하고 갔나보네.”

       

        나의 제안으로 일주일 간 진행했던 ‘파딱 체험 주간’이 꽤나 큰 트라우마로 남은 듯했다.

        갤러리에 대해 소중한 마음을 가지게 만들고 싶었던 마음에 권했던 것이었는데.

        중간에 마리엘이 실수로 열어버린 ‘S랭크 접근제한 폴더’에 잠들어있던 방사성 폐기물이 너무 충격적이었나?

        현재 클로에는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해 스테판 가문의 별장에서 요양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도 그녀가 나를 합격시킨 사실이 사라진 건 아니었기에 식사를 마치고 프리나에게 시설을 안내받았다.

        마탑 곳곳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비밀통로와 수련의 층에 숨겨진 극채색 전용 라운지, 23층에 세워진 마족 감시용 등대까지.

        제법 많은 곳들을 돌아다닌 뒤 해주학파의 라운지로 돌아왔다.

       

        “여, 여기 뱃지랑 인식 저해마법 걸린 가면. 분기별 1회 정기 회의가 있으니 꼭 참여해야 하고 ‘극행’의 티켓은 공식적인 허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쓰면 안 돼. 그리고 이건 외부일정에서만 착용할 수 있는 극채색 전용 로브니까 여기나 기숙사 옷장에 잘 보관해놔.”

        “마탑 밖으로 나갈 일이 있나요?”

        “실전 경험 쌓으려면 그래야겠지. 듣기로는 교국과 협력을 추진 중이라는데 난 아직 모르겠어.”

        “그렇군요.”

       

        그럼 이걸로 용건은 끝난 건가?

        양손에 가득 담긴 물건들을 챙겨 일어서려는데 프리나가 굳게 닫힌 창고의 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 숨겨뒀던 애는 아직 있어?”

        “지금은 잠깐 나갔어요.”

       

        이자젤은 지금 어둠에 숲에 마실 나가 있는 상태였다.

        거기라면 억눌러왔던 자신의 방화욕구를 마음껏 표출해낼수 있다나.

        마탑 내의 환경인 만큼 비정상적인 자생력을 갖추고 있고 본인도 치안대에 잡히지 않는 선에서 즐길 테니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래도 혹시 도망갈 지 모르기에 보험으로 살살이를 붙여놨다.

       

        “흐, 흐응~ 그렇구나.”

        “걔가 뭐 잘못했나요?”

        “아니, 아무것도. 너 그보다 이리 가까이 와 봐.”

       

        내가 한동안 안 돌아올 거라고 하자 프리나가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왔다.

        본래 계단이 있던 장소를 개조해 만든 해주학파의 라운지는 층고가 낮아 좌식으로 되어 있었다.

        테이블 모서리를 빙 돌아 내가 있던 쪽으로 온 그녀는 로브 자락을 손에 쥐고 다리 사이에 철푸덕 앉았다.

        그러더니 뒤통수를 기대며 나의 팔을 자신의 허리에 올려 놓으며 말했다.

       

        “나, 나 지금부터 갤질할 거니까 뒤에서 붙잡고 있어.”

        “왜요……?”

        “하, 학파 규칙이야 학파 규칙! 선배랑 밥 먹고 난 오후에는 꼭 이렇게 단둘이서 시간을 보내야 돼.”

       

        또 이해 못할 규칙을 들먹이더니 정말로 위치노트만 보고 있는 프리나.

        헐렁한 로브 위로 드러난 목덜미와 귀가 유독 붉었다.

        그러고 보니 결국 마녀의 낙인은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었지.

       

        마녀 개개인의 사고와 지식은 구성원 전체에게 공유된다.

        그 사념의 편린은 아직 개화하기 전인 프리나의 머릿속에도 잠자고 있을 게 분명했다.

        위대한 세 모험가, 특히 ‘총성’의 동료이자 자신들과도 몇 차례 드잡이질 했던 나의 기감을 그녀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위치만 알 수 있다면 내가 억눌러줄 수 있을 텐데…….’

       

        허나 공공연하게 저주술사라 떠들고 다니는 프리나라도 자신이 마족이란 사실을 남에게 알리는 건 목숨이 위험한 행위이기에 먼저 물어볼 수는 노릇.

        하는 수 없이 나는 그녀를 끌어안은 채로 갤러리를 살폈다.

        오늘도 변함없이 새로운 주인을 찾는 ‘꿀벌단’과 초전도체은발미소녀의 복귀를 바라는 ‘초전도치단’, 그리고 최근 등장한 ‘킹룡단’이 서로를 물어뜯으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중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나의 시야에 우연히 그녀가 쓴 게시글이 들어왔다.

       

        ====

        프리나나

        [소신발언 : 주딱 요즘 내조 잘 못하는 거 같음]

       

        얼마 전에 파딱들 단체로 휴가 준 것도 그렇고 이상한 킹룡단 같은 애들 탄압 안 하는 것도 그렇고 요즘 감 다 죽었음

        절대 내가 저번에 만든 버튼 누르기 직전에 뺏겨서 짜증난 거 아님

        지금 분위기 딱 좋은데 그거 눌렀으면 지금쯤…….

       

        — 고닉의 소신발언이라…… 이건 귀하네요

        — 멀리 안 나간다 ㅋㅋ

        — 킹룡단이 뭐 어때서? 꿀벌단보단 온건함

        — 그 3백만짜리 야스 버튼? 그거 결국 못 눌렀나보네 ㅋㅋㅋ

         ㄴ 그거 누른 사람 있음 후기 좀 알려줘라

         ㄴ 대상 지정 구체적으로 했던 거라 눌렀으면 진짜 야스 했을수도 있음

         ㄴ 포인트 모아놨다 다음에 대신 눌러야겠다 ㅋㅋㅋㅋ

        ====

       

        아직 친구 테라피의 효과가 완벽하지 못한지 내면의 고닉은 아직도 독기를 뿜어내는군.

        그녀 성격에 정지를 당하면 절대 잘못을 인정할 위인은 아니니 옆에 있는 동안이라도 직접 주의를 줘야겠다.

       

        “선배, 그러다 정지당해요?”

        “너, 너! 남이 쓴 글 몰래 훔쳐보지 마!”

        “애초에 아이디도 다 까놓고선…… 그보다 갤러리에 나쁜 글 쓰면 안 되는 건 상식 아닌가요.”

        “자, 잠깐! 가, 간지러우니까 이거 햐읏……!?”

       

        쿵!

       

        품에서 프리나가 발버둥치자 테이블이 흔들렸다.

        혹여 탁자 모서리에 찧지 않도록 하복부에 닿은 손에 힘을 줬더니 갑자기 고개가 푹 떨어졌다.

        새하얀 허벅지와 굴곡진 다리, 조그만 발가락이 테이블 아래로 쭉 뻗더니 이내 파르르 경련하며 천천히 내려갔다.

        다쳤나 싶어 어깨를 붙잡자 그녀는 급히 로브를 뒤집어썼다.

       

        “너, 너 이거 또오…….”

        “혹시 다치셨어요? 그러게 둘이 앉기엔 좁아서 멋대로 날뛰면 위험하다니까. 자, 비켜드릴 테니 옆으로 나오세요.”

        “돼, 됐어! 이건 학파 규칙이니까!”

        “네?”

        “갤질할 거니까 방해하지 마.”

       

        물기에 젖은 떨리는 목소리로 나의 권유를 거절한 프리나는 다시 엉덩이를 움직여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 그리고 다음부턴 안 다치게 여, 여기 배 부분을 더 쌔게 잡아.”

        “그래도 돼요?”

        “시, 실수로라도 위나 아래에 손 닿으면 알지? 그, 그땐 너랑 나 둘 중 하나는 죽는 거야.”

        “…….”

       

        그녀의 이상한 준법정신과 갤질을 향한 열망에는 나조차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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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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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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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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