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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그, 그만 쫓아와!”

       

       “죽어라아아아아!”

       

       “···흐으음.”

       

       

       어쩌지. 도와줘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하율 수사관은 토끼로 보이는 사람을 압도하고 있고, 스피라는 닭으로 추정되는 사람이랑 비등비등하게 싸우고 있다.

       

       문제는 라이라다.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데.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니 술래잡기처럼 쫓아다니기만 하고 있었다.

       

       

       “열등생 설정, 괜히 집어넣었나···.”

       

       

       그냥 죽은 설정이 될 바에야 빌런으로 써먹어 보겠다고 넣었던 열등생 설정이 발목을 부여잡았다.

       

       저기 수사관님은 잊힐 뻔한 설정 잘 써먹었는데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을 치울까, 생각할 무렵에 문득 생각난 설정 하나.

       

       이하율 수사관과 클레어 선생님은 예전에 친한 친구였다는 설정.

       

       그 설정 덕분에 손쉽게 아군으로 섭외할 수 있었다.

       

       클레어 선생님은 모종의 사건으로 PTSD를 겪으며 일선에서 은퇴했다는 설정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거든.

       

       ···클레어 선생님과 친한 친구인 수사관이라면 분명히 모종의 사건도 같이 겪었겠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작가님께 물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가능하다는 대답이 들려와서 작가님을 설득해 설정을 조금만 손대주었다.

       

       클레어 선생님도 겪는 PTSD를 수사관이라고 피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수사관도 사람이야, 사람.

       

       학창 시절 친하게 지내던 세 친구.

       

       그들이 같이 최전방에서 승승장구하다가 클레어 선생님을 제외한 두 명이 수사관으로 취직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순간의 방심으로 빌런에게 공격당해 목숨을 잃었다면?

       

       클레어 선생님이 충격을 받아 PTSD를 겪으며 현장에서 은퇴하고, 수사관이 마음에 상처를 받을 정도로 친한 친구가 있었더라면?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만들어주었다.

       

       누구보다 친했던, 더는 볼 수 없는 친구의 존재를.

       

       그리고 친구를 사라지게 만든 원흉을.

       

       

       “방금 전까지 설정 참 잘 짰다고 좋아했는데···.”

       

       

       한숨이 새어 나왔다.

       

       클레어 선생님의 설정 하나에서 불어난 눈덩이처럼, 이번에도 설정 하나가 눈덩이처럼 굴러가고 있었다.

       

       라이라는 열등생이다.

       

       이것은 설정으로 못 박혔다. 작가님이 설정을 억지로 비틀 수 있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긴 하지만, 과연 라이라를 위해서 위험을 감수할까?

       

       그렇지는 않겠지. 작가님은 라이라를 살릴 때도 탐탁지 않아 했으니까.

       

       히전죽을 원하던 걸 순간의 감정으로 살려둔, 작가님의 입장에서는 죽어도 살아도 별 상관없는 존재일 뿐이다.

       

       기분이 나빠졌다.

       

       

       “···작가님. 설정을 억지로 비틀 수 있다고 하셨던가요.”

       

       [으음···. 가능하긴 한데, 너무 많이 비틀어버리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려서 남발할 수가 없어서 조금 무리를 해야 해요.]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니요?”

       

       [그게, 수사관처럼 개연성에 맞는 설정이라면 부담이 되지 않지만···.]

       

       

       작가님의 설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간단한 이야기다. 설정 오류.

       

       ···만약, 아멜리아가 밥을 먹었다는 묘사를 하고 바로 다음 장면에 유시우와 점심밥을 먹으며 데이트를 하고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위화감이 들겠지. 나도, 작가님도, 그리고 소설을 지켜보고 있는 독자들도.

       

       

       [개연성이 심하게 부서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저도 잘 몰라요. 위험해서 시도해 본 적은 거의 없으니까요.]

       

       “그러시구나···.”

       

       

       확신했다.

       

       작가님은 위험을 감수해가면서 굳이 라이라를 도와줄 생각이 없겠지.

       

       그런 당연한 사실에 기분이 가라앉은 게 이상했다.

       

       

       “어쩔 수 없네요. 직원의 위험은···어라?”

       

       [어, 저거. 아직 안 먹었구나.]

       

       

       계속해서 도망치던 라이라가, 잠깐의 여유시간이 생기자 급하게 품속의 무언가를 삼켰다.

       

       저거 저번에 줬던 것 같은데.

       

       포상이랍시고 줬던, 먹으면 강해질 거라고 줬던 환약.

       

       아직도 안 먹었던 거야?

       

       

       “먹은 줄 알고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라이라를 도와주기 위해 움직이려고 했지만, 조금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래, 그랬지. 열등생이라고 해도 조금씩 강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배움이 느려도 꾸준히 무언가를 연습한다면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법.

       

       전투 스타일이 바뀌고, 처음 봤을 때보다 움직임이 좋아져서 무심코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재밌네요. 그렇지 않나요, 원숭이 씨?”

       

       “읍, 으읍···!”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 죽기에는 이르니까.”

       

       

       모두 죽여버리면 편하겠지만, 혹시 모르잖아?

       

       조금의 인질 정도는 있어도 괜찮겠지.

       

       자세를 고쳐잡고 라이라가 무엇을 하려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과연 어떻게 될런지.

       

       

       “···그런데 작가님, 저거 뭘 강화하는 거에요?”

       

       [으음, 글쎄요!]

       

       “···하아. 또 말해줄 생각이 없으시네요.”

       

       [그야 이제 곧 보게 될 거니까요! 스포일러는 금지에요!]

       

       

       

       ***

       

       

       

       “너···!”

       

       “후윽, 커윽···.”

       

       

       심장 소리가 시끄러웠다.

       

       환약을 먹은 부작용일까? ···젠장. 줬을 때 먹었어야 했는데.

       

       처음 환약을 먹었을 무렵을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멍청이지.

       

       

       그때도 아파 죽는 줄 알았는데, 두 번째라고 다를 게 있겠냐고.

       

       불타오르는 것 같은 몸을 느끼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공격은커녕, 내 숨소리만이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뭐지?

       

       억지로 고개를 들어 나를 쫓던 녀석을 바라보았다가 살짝 후회했다.

       

       저 반쯤 돌아버린 눈동자는 대체 뭐야? 소름 끼치게.

       

       

       “그 환약은 뭐냐! 어디서 구한 거지?!”

       

       “무슨···말을, 하는 거야?”

       

       “너의 그 육체···! 조금 전까지는 분명 귀와 꼬리뿐이었을 텐데!”

       

       “···뭐?”

       

       “그 송곳니는 뭐냐. 도대체 어디서 구한 약이냐!”

       

       

       ···송곳니?

       

       무심코 그의 말에 이빨을 만져보았다. 그러자 길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손에 잡혔다.

       

       이게 뭐지.

       

       

       “위버멘쉬의 환약은 여러 번 먹는다고 적합률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그 약은, 어디서 구한 거냐!”

       

       “하, 하하. ···글쎄. 미안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는데.”

       

       “말하지 않겠다면 억지로 말하게 하면 되겠지. 그 환약만 있다면 계획은 필요 없다!”

       

       

       도망치기는 글렀고, 내가 먹은 환약이 중요한 물건이었던 건지 나를 놔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젠장,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진짜 이건 쓰기 싫었는데.”

       

       “걱정하지 마라.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절대 쓰지 않을 거라고 여겼던 능력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몰린 이상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주변에 아군도 없고, 부수면 안 되는 물건도 없고.

       

       존재하는 건 오직 나를 위협하는 적.

       

       그렇다면 내 능력이 빛을 발할 시간이었다. ···컨트롤할 수 없는 능력이라 사용해본 적은 거의 없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능력을 쓰면 언제나 모든 것이 끝나있었으니까.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환약이라고 했지?”

       

       “우오오오오오오오!”

       

       “눈 뜨면 제발 저 괴물 같은 놈이 없었으면 좋겠네.”

       

       

       뿌득, 뿌드드득.

       

       무언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암전했다.

       

       

       

       ***

       

       

       

       -콰앙!

       

       살과 살이 맞부딪혀서 나는 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소리.

       

       그런 소리가 들리며 느껴지는 충격에, 미노스는 의아함을 느꼈다.

       

       

       “···뭐지?”

       

       

       둔탁한 충격이었다.

       

       무언가 단단한 것이 부딪힌 것 같은 감각.

       

       이런 감촉은 튼튼한 방어 능력을 가진 초인들에게서나 느껴보던 감각인데.

       

       나를 보고 도망가던 여자가 그 정도의 방어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게 무슨···.”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곧장 후회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으니까.

       

       

       “마수인가? 아니, 그럴 리가. 사람이었을 텐데.”

       

       “크르르르르···.”

       

       “아무래도 제정신은 아닌 모양이군.”

       

       “크아아아아악!”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이 아니다.

       

       분명히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두 손이 달려있었다.

       

       하지만 저 광기 어린 눈동자가.

       

       온몸을 뒤덮은 보라색 털이, 그녀를 사람으로 보기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미쳐버린 모양이군. 도대체 뭐지?”

       

       “아우우우우우우!”

       

       

       어렸을 적 교과서에서 나오던 모습과 똑 닮았다.

       

       사람이되 늑대인 존재.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피에 미쳐 날뛴다는 소문이 돌던 두려운 존재.

       

       그들과 융화되어 살아보려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름달만 뜨면 폭주하는 그 흉폭함에 모두가 두려워했다던 그 마물.

       

       

       “웨어울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밝게 빛나는 둥근 모양의 달이, 섬뜩함을 불러일으켰다.

       

       옛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도망쳐야만 했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미노스는 도망가지 않았다.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으니까.

       

       

       “네가 무엇 때문에 갑자기 그렇게 변하고, 그렇게 미쳐버린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알아야만 한다! 네가 먹은 그 환약의 정체를!”

       

       “크아아아아악!”

       

       “위버멘쉬가 더 이상 위험한 고비를 넘겨서는 안 돼···!”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

       

       광기에 휩싸인 눈동자.

       

       맨몸으로, 아무런 지원도 없이 마수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음에도 그는 도망가지 않았다.

       

       알아내야 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저런 상태의 마수는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노스는 맞서 싸우기로 했다.

       

       

       “덤벼라!”

       

       

       사냥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공지에 이모티콘 러프 하나 올렸으니 한번 보고가시구요!

    늦어도 다음주에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빠꾸먹으면? 더 늦어지겠죠 뭐···.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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