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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학생들에게 이브로니크 성으로의 전적지 답사 계획이 공지되었다.

       

       단체로 놀러간다는 소식에 학생들은 모두 들뜬 분위기.

       

       특히나 이브로니크 성은 그 경관이 빼어나기로 제국 내에 소문이 자자하다.

       

       “나이틀리. 이브로니크 성에 가본 적이 있니?”

       

       떠들썩한 기숙사 휴게실에서, 추종자 한 명이 나이틀리에게 물었다.

       

       그러나 나이틀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휴게실 게시판의 공지만 보고 있었다.

       

       나이틀리가 대답하지 않자 다소 민망해진 추종자들은 곧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자기네 가문에서 언제 이브로니크에 갔고 또 이동 규모는 얼마였고 근처 고급 호텔에서 몇 박을 묵었고 하는 것들.

       

       다들 나름대로 이름있는 가문 영애들이라 서로 이런 사소하고 속물적인 것들로 경쟁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런 가운데 나이틀리는 혼자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던 전적지 답사.

       

       지난 몇 달간의 일들처럼 이것 역시 디안 교수 부임 후 일어난 변화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저기에도 디안 교수의 입김이 들어갔을까?

       

       원래 전적지 답사는 이론학과의 소관이지만 아주 관여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지금 아카데미에서 디안 교수의 영향력은 엄청나서 일견 교장처럼 보일 지경.

       

       모든 것을 뒤집어 엎어 정상화하고 학생과 교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게다가 저번주에 자신과의 불미스러운 관계라는 헛소문이 돌았을 때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까지.

       

       그 덕에 나이틀리만 완전히 글로나스 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디안과의 스캔들을 긍정도 부정도 안 하며 은근히 즐겼는데 막상 대강당에서 디안 교수가 모두 심리전 실습의 일환이었다고 발표.

       

       이에 추종자들은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나이틀리를 속으로 비웃고 있을 것이다.

       

       뭐라고? 전투수석이랑 무슨 특별한 관계? 웃기지도 않아. 다 허풍이었잖아?

       

       물론 별도의 개인교습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건 의외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다.

       

       ‘수석인데 당연히 심화과정을 들어야지’.

       

       ‘심화과정이면 수석교수가 직접 하는 게 당연하잖아’.

       

       ‘나도 열심히 노력해서 거기 들어가고 싶어’.

       

       ‘나이틀리 부럽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에 그 심화과정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서 나이틀리는 요즘 진심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제국의 유력가문인 톨루즈 공작가의 영애로 평생 결핍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필요한 건 이미 있고 원하는 건 모두 가졌다.

       

       디안 교수 역시 나이틀리가 원했고 결국 개인교습을 받으며 홀로 독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모두가 디안 교수를 좋아하고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온전히 나이틀리의 것이었던 개인교습마저 다수의 학생들에게 노출되었고.

       

       재수없으면 새로운 교습생이 들어올지 누가 안단 말인가.

       

       만약 나보다 더 실력이 뛰어나면? 나보다 더 예쁘면? 나보다 더 성격이 좋으면?

       

       그래서 디안 교수가 그 아이를 더 좋아하게 되면?

       

       디안을 자신을 치장할 비싼 장신구로 여기는 나이틀리에게 그런 일은 장신구를 도난당하는 일이나 마찬가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만약 디안이 새로운 학생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나이틀리가 뭘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건 없다.

       

       디안 교수가 작정하고 나선다면 나이틀리는 절대로 그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고 있다.

       

       겉으로는 늘 웃고 다니는 허당이지만 지금까지 개인교습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디안 교수는 정상인이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온 것이 분명하다.

       

       그런 디안 교수를 온실 속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나이틀리가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다….

       

       고민하는 나이틀리의 머릿속에 누군가 떠올랐다.

       

       최근에 특기생으로 들어온 분홍대가리년.

       

       만약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그년도 분명 디안 교수한테 자기도 받아달라 꼬리를 칠 수도 있겠는데.

       

       문제는 그년이 상당히 실력이 좋아서 말이지…. 미리 작업을 쳐야 하나….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이미 특기생은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던 상위권 학생들을 공평하게 두들겨 패 의무소에 입실시킨 경력이 있어서.

       

       거기다 방금 생각했던 대로 디안 교수가 특기생을 개인교습에 받겠다고 해버리면 나이틀리는 닭 쫓던 개가 되어 버린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 것도 안 돼….

       

       그렇다면 디안 교수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을 게 아니라 디안 교수가 나만 보도록 만드는 게 훨씬 낫겠는데….

       

       흐으으음….

       

       답은 하나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 그래서 디안 교수가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것.

       

       어줍잖은 수작은 디안 교수에게 통하지 않아. 이것 말고는 답이 없어.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열심히 해야 하나?

       

       나이틀리는 그 답을 전적지 답사 공지 하단에서 찾았다.

       

       당일 복장이 나와 있는 부분. 평상시의 교복 대신 전투실습 때의 실습복과 전투화 차림.

       

       절벽에 있는 이브로니크 성과 전투화의 조합이라….

       

       그 동안 몇 번이나 디안에게 호되게 당했던 나이틀리는 전적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충 추론할 수 있었다.

       

       “어디가, 나이틀리!”

       

       “침투 실습장.”

       

       나이틀리가 뚜벅뚜벅 기숙사를 걸어 나가자 추종자들이 황급히 뒤를 쫓았다.

       

       그러나 다들 제 속도를 내지 못했는데 저번에 특기생 소피에에게 얻어맞은 후유증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깥은 이미 해가 저물고 어둠이 드리운 밤.

       

       침투 실습장에 도착한 나이틀리는 곧바로 극한지형 극복 코스로 향했다.

       

       어디 산에서 통째로 뜯어온 듯한 바위절벽과 위태롭게 이어진 협소한 소로가 바로 극한지형 극복 코스.

       

       나이틀리는 오늘부터 전적지 답사 전까지 혼자 여기서 연습을 할 생각이다.

       

       “뭐하는 거야, 나이틀리? 이 밤중에 여길 오르려고?”

       

       “꺼져. 같이 하자고 한 적 없으니까.”

       

       추종자들이 걱정스럽게 묻자 나이틀리는 싸늘하게 대꾸하며 들고온 전투화를 갈아 신었다.

       

       굳이 편하게 승강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이브로니크 성에 실습복과 전투화 차림이라는 것에서 나이틀리는 결론을 내렸다.

       

       분명 디안 교수는 학생들에게 승강기 대신 과거에 이용했던 구도로를 오르라고 할 것이다.

       

       어지간한 담력과 체력이 아니고서야 절대 오르지 못하는 급경사의 좁은 돌길로 지금까지 개인교습을 받아본 경험으로 나이틀리는 알 수 있었다.

       

       디안 교수는 그렇게 할 것이다.

       

       이미 거기까지 내다봤으니 대비를 해야겠지.

       

       여기서 열심히 연습해서 그때 다른 애들, 특히 특기생 소피에를 재치고 압도적 1등을 할 거다.

       

       그러면 디안 교수도 다른 생각하지 않고 나만을 바라봐 주겠지.

       

       좋아, 나이틀리. 가는 거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오직 실력으로 증명하는 거야.

       

       실습장에 비치된 송진가루를 손에 잔뜩 묻힌 나이틀리는 차근차근 절벽을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 # # # #

       

       

       그렇게 며칠 후, 전적지 답사하는 날.

       

       실습복과 전투화 차림의 졸업반 학생들이 웃고 떠들며 기숙사 앞 광장에 모여 들었다.

       

       “너 괜찮아…?”

       

       “신경 꺼.”

       

       흰색 붕대를 둘둘 감은 손을 본 추종자들의 걱정에 나이틀리가 차갑게 대꾸했다.

       

       나이틀리가 매일밤 연습할 때 뒤에서 쑥덕대면서 욕했던 것을 나이틀리는 알고 있다.

       

       저딴 것들한테는 감정을 소모하는 것조차 아까워.

       

       지금 나이틀리의 시선은 저 앞에 서서 하품을 하고 있는 디안에게 쏠려 있었다.

       

       두고봐요, 교수님. 내가 오늘 제대로 보여줄 테니까.

       

       나이틀리는 주먹을 불끈 쥐며 계속 디안을 노려봤지만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래서 대신 나이틀리는 특기생 소피에를 찾았다.

       

       소피에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분홍색 머리칼은 그리 흔한 게 아니라.

       

       소피에는 저쪽 반대편에서 하위권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한 표정.

       

       소피에가 상위권 학생, 그러니까 자신의 추종자들을 두들겨 패며 얼떨결에 괴롭힘 당하던 하위권들의 구원자가 되어버린 탓.

       

       아마 저 애도 당황하겠지. 난데없이 절벽을 기어오르라고 하면.

       

       하지만 나는 이미 디안 교수가 그렇게 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거든.

       

       여기 아카데미에서 나보다 더 디안 교수를 잘 아는 학생은 없어….

       

       그것에서 나이틀리는 우월감과 짜릿한 쾌감을 동시에 느꼈다.

       

       

       # # # # #

       

       

       “자자, 다들 차례로 열 명씩 승강기에 타라!”

       

       차원문을 통해 넘어간 이브로니크 성 아래 평지.

       

       교수들이 학생들을 통제하며 차례로 승강기에 태웠다.

       

       ?!?!

       

       분명 과거 설치된 좁은 소로를 올라가거나 라이너스 경의 등반경로를 따라 절벽을 기어 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예상을 완벽히 빗나가는 상황에 당황한 나이틀리가 디안에게로 뛰어갔다.

       

       “교수님?! 왜 승강기를 타나요?!”

       

       나이틀리의 항의에 디안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럼 기어서 올라가냐?”

       

       “전적지 답사잖아요!”

       

       “뭔 소리야? 편하게 갈 방법이 있는데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해?”

       

       “이, 이게 아니었는데…!”

       

       절망하는 나이틀리를 보며 디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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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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