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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여, 여기 있습니다!”

       

       주인장이 황급히 건넨 물컵을 받아 든 나는 한손으로 아르의 턱을 붙잡고 바로 물을 흘려 넣어 주었다.

       

       “삐유우우…!!”

       

       애처롭게 포효하던 아르의 벌어진 입으로 차가운 물이 흘러 들어가자, 아르는 바동거리던 팔을 잠깐 멈추고 눈을 꼭 감은 채 물을 꼴딱꼴딱 받아 마셨다.

       

       “그렇지, 그렇지. 물 더 줄까?”

       “삐유우…!”

       

       나는 물 한 컵을 더 받아 들어서 아르에게 먹였다. 

       

       “삐유, 삐유…!”

       “이런, 아직도 맵구나.”

       

       하지만 생각보다 효과가 없자, 나는 주인장에게 비장의 수단을 요구했다. 

       

       “혹시 우유 있으시면 한 병만 주시겠어요?”

       

       달라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건 계산할 거다. 나도 양심이 있지.

       

       “여기 있습니다!”

       “아르야, 이거 마셔 보자!”

       

       물이 일시적인 체감 효과가 있는 것뿐이라면, 우유는 과학적으로 매운맛을 없애 주는 효과가 있다. 

       

       우유에 든 유지방과 단백질이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을 분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나. 

       

       여튼, 나는 우유병의 뚜껑을 따서 아르에게 천천히 먹여 주었고.

       

       “삐유…!”

       

       이번에는 효과가 조금 있었는지 아르의 눈이 커졌다.

       

       “그래, 천천히 쭈욱 마셔 보자.”

       

       나는 한손으로 아르의 엉덩이를 가볍게 토닥이면서 한손으로 우유병을 천천히 기울여 주었다. 

       

       아르는 두 손을 꼬옥 쥔 채 훨씬 차분하게 우유를 받아 마셨고.

       처음 겪는 매운맛에 방향감을 상실하고 마구 움직이던 통통한 꼬리도 이제야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다. 

       

       “삐유우.”

       

       우유 작은 병 하나를 다 비우고 난 후에야 아르는 거의 완전히 가라앉은 듯 작게 삐약댔다. 

       다만 여전히 입이 얼얼한지, 입 주변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한시름 놨네.’

       

       아까는 진짜 이러다 브레스 뿜는 법을 본능적으로 깨우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는데.

       

       ‘이런 가게에서 만에 하나라도 진짜 브레스를 뿜어 버리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대참사임에는 분명하다. 

       

       “쀼우….”

       

       이제 완전히 회복한 아르는 많은 게 담긴 눈으로 남은 꼬부랑매콤국수 그릇을 바라보았다. 

       

       마치 맛은 있어서 한 입 더 먹고 싶긴 한데 먹었을 때 또 입에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먹을 엄두는 안 나고, 그렇다고 또 포기하자니 남은 게 아까워 죽겠다는 듯한 표정.

       

       ‘그 마음 잘 알지.’

       

       지금이야 매운 걸 꽤나 잘 먹고, 일부러 찾아 먹을 정도로 단련이 된 한국인이지만.

       어렸을 때의 나는 김치조차 조금 맵다 싶으면 헥헥거리면서 잘 못 먹었던 맵찔이 중의 맵찔이였다. 

       

       ‘갓라면도 매워서 삼쉽라면이랑 찐순이밖에 못 먹었지.’

       

       라면을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매워서 잘 먹지 못하는 그 마음.

       내가 잘 안단다, 아르야.

       

       그리고, 아쉽지만 맵찔이 경력자로서 지금은 이걸 더 먹는 건 절대 추천하지 않는단다. 

       

       다 먹으려면 진짜 하루 종일 걸릴 테니까. 

       

       “아르야, 일단 이건 실비아 씨 드리자. 응?”

       “쀼우.”

       

       아르는 미련이 뚝뚝 묻어 나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휴, 착하지. 우리 아르.”

       

       얼른 칭찬과 함께 아르의 엉덩이를 더 토닥여 주자, 다행히 아르는 기분이 풀린 듯 꼬리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그때, 마침 주인장이 새 그릇을 아르의 앞에 가져다 주었다.

       

       “얘야. 대신 여기 시원한 메밀국수 나왔으니 먹어 보렴. 이것도 맛있을 거란다.”

       “쀼우…!”

       

       국물 표면에 살얼음이 떠 있어 아주 시원해 보이는 비주얼의 메밀국수가 나오자, 아르의 눈이 언제 꼬부랑매콤국수를 찾았냐는 듯 반짝였다.

       

       아르는 그릇 앞에 바짝 붙어서 다리를 그릇 양옆으로 쭉 펴고 앉아 포크로 면을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쀼움!”

       

       아르는 내가 했던 것처럼 면의 남은 부분을 호로록 빨아들였고.

       

       “맛있니?”

       

       내 물음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메밀국수를 오물오물 씹어 삼켰다. 

       

       “쀼웃!”

       “다행이다. 많이 먹으렴.”

       “쀼!”

       

       아르는 언제 매콤한 국수를 찾았냐는 듯, 시원하면서도 살짝 달달한 맛이 첨가된 메밀국수를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쀼움.”

       

       옆에 놓인 작은 국물용 숟가락으로 메밀국수의 국물을 살얼음째로 떠서 입 안에 넣은 아르의 표정이 행복으로 물들었다. 

       

       ‘그렇지. 매운 거 먹다가 이렇게 시원한 국물 마셨을 때가 최고지.’

       

       아르가 메밀국수를 잘 먹는 모습을 확인한 나는 그제야 마음 놓고 내 꼬부랑매콤국수를 마저 먹을 수 있었다. 

       

       “아아, 잘 먹었습니다!”

       “쀼우!”

       “맛있게 잘 먹었네요.”

       

       각자 자신이 고른 메뉴를 맛있게 먹은 우리는 만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비아 씨는 이 짧은 시간에 저걸 다 드셨네.’

       

       나와 아르가 한 그릇씩을 먹을 동안 실비아는 본인의 콩국수는 물론 아르가 한 입밖에 못 먹고 남긴 매콤국수와 자기 몫의 매콤국수까지 전부 먹어치웠다. 

       

       ‘하긴, 평소에 저렇게 열심히 단련하는 사람이면 많이 먹을 만하지.’

       

       한국에서 봤으면 이렇게 먹고 저리 날씬한 게 신기했겠지만, 실비아의 평소 운동량을 생각하면 그리 신기한 것도 아니었다. 

       

       “여기 계산이요.”

       

       나는 시식용으로 받은 꼬부랑매콤국수 하나를 제외한 모든 음식 값을 더해 내밀었고.

       

       “우유값이랑 손님이 드신 꼬부랑매콤국수 한 그릇 값도 추가로 빼 드리겠습니다.”

       “아뇨, 이렇게 맛있게 먹었는데 그럴 순 없죠. 시식용으로 받은 국수 값도 내기 전에 얼른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손님. 매운맛에 대한 조언도 그렇고,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인장은 내게 거듭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또 오십쇼!”

       

       가게를 나선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캐머해릴의 거리를 한 바퀴 돌아 보기로 했다.

       

       옆쪽에 주전부리를 파는 거리가 있었지만, 배 부른 지금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아 우리는 무기상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무기를 쭉 진열해 놓고 파는 상점들을 보며 감탄사를 뱉었다.

       

       “오오, 역시 캐머해릴은 이쪽이 볼 게 많네요.”

       

       히파르가 관광 도시라면, 캐머해릴은 공업 도시에 가까웠다. 

       

       특히나 무기나 방어구 같은 걸 잘 만드는 장인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 곳이라, 주변의 지형이 험하고 마물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데도 다른 도시에서 물건을 구하러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이어 씨가 이곳에 납품하러 가져온 물품 중에서도 무기나 방어구의 재료로 쓰이는 물건들이 꽤 있는 것 같았지.’

       

       아마 마이어 씨도 캐머해릴에서 납품 일정을 모두 마무리한 다음에는 여기에서 떼어다 팔 만한 무기나 방어구를 골라서 매입할 것이다.

       

       ‘여튼.’

       

       「레키온 사가」의 조잡한 그래픽으로만 보던 무기들을 직접 두 눈으로 보니 신기했던 나는, 속으로 무기 이름을 맞혀 보는 미니 게임을 하며 구경을 했다. 

       

       ‘오, 뭐야. 저거 혹시 작스 대거인가?’

       

       바깥쪽에 진열해 놓은, 적당한 품질의 무기 중에서 나는 눈에 띄는 단검 하나를 발견하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작스 대거는 칼끝이 비스듬하게 잘려 끝이 뾰족하게 되어 있는 단도로, 무게 중심이 잘 잡혀 있어 투척용으로도 적합한 무기다.

       

       공격력 자체도 의외로 높은 데다가 단검답게 공격 속도도 꽤 잘 붙어 있어 암살자 클래스를 가진 캐릭터로 플레이할 때 초반 구간을 수월하게 넘기게 해 주는 극강의 가성비 템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 단검이 맘에 드세요?”

       

       내가 단검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실비아 씨가 말을 걸었다. 

       

       “아, 맘에 든다고 할까…. 그냥 저게 다른 무기에 비해 좀 좋아 보여서요.”

       

       일순 당황해서 얼버무리자, 실비아가 오호, 하는 표정을 짓더니 곧 빙긋 웃으며 단검을 집어 들었다. 

       

       “레온 씨는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여기 진열돼 있는 같은 가격대 물건 중에선 이게 가장 좋거든요.”

       “보는 눈이라기보단 운이 좋았죠, 하하.”

       “그래서 말인데, 혹시 레온 씨 단검술 배워 보실 생각 없으세요?”

       “네?”

       

       적당히 웃으며 넘어가려던 나는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 사람 진짜 훅 들어오는 데에 재주 있네.’

       

       내 반응에 실비아는 쿡쿡 웃더니 단검을 공중에 던져 세 바퀴째 돌았을 때 자연스럽게 탁, 잡았다.

       

       “마법사라는 직업은 분명 화력 면에서 매력적이지만, 상대에게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 꽤나 무력해지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요즘은 마법사 분들도 단검술을 익혀 두시는 경우가 많답니다.”

       “그, 그런가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레키온 사가에서 마법사가 단검술을 익히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육체 능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마법을 더 갈고닦는 편이었으니까.

       

       “으음. 적어도 제 고향 쪽에서는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아무튼, 제가 마침 단검술도 좀 할 줄 알거든요. 레온 씨도 배우시면 잘 하실 것 같은데, 어때요?”

       “저는….”

       

       나는 망설였다. 

       

       ‘암살자 클래스가 아닌 사람이 이렇게 단검술을 공짜로 익힐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 건 맞는데….’

       

       문제는 내가 저 칼을 잡고 정말 마물이나 사람 앞에서 자신 있게 휘두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빙의 초반부터 근접전엔 자신이 없어서 마법서부터 구하려고 했었는데.’

       

       그나마 마법으로 싸우면서 마물과의 실전에 조금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단검으로 하게 될 초근접전은 또 이야기가 달랐다. 

       

       ‘…그리고 실비아 씨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검사랑 암살자는 꽤 큰 차이가 있는데, 배운다고 해도 의미 있는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게다가 배우는 과정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마법 수련에도 영향이 있을 텐데….

       

       나는 머릿속에서 단검술을 배우지 말아야 할 핑계들을 하나둘씩 떠올렸다. 

       

       ‘그래. 내가 무슨 단검술이야. 역시 거절하는 게 좋겠어.’

       

       그리고 그 변명들 중 그럴듯한 걸 대며 거절하려는 순간. 

       

       “그리고, 레온 씨의 경우 만약 상대에게 접근을 허용하면 아르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으니 배워 두시면 도움이 될 거예요.”

       

       실비아의 마지막 말에 나는 곧바로 그녀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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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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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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