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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0

   내가 가라드의 성을 찾은 이유는 베네딕에게 지금의 내가 지닌 실력을 알려주기 위함도 있었지만 객관적으로 지금의 내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어쨌거나 내가 여태까지 택한 전투의 방식은 스펙이건 정보건 뭐건 간에 우위를 점하고서 상대를 찍어누르는 방식이었다.

   

   이 모든 것이 안 된다면 도발을 이용해 상대를 흔들어서 정상적인 싸움을 못 하게 만들었지.

   

   그러니 지금의 나는 내가 도달한 무의 경지가 어떤 수준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무예의 신이 하나의 스킬로 인정해 줄 정도이니 꽤 괜찮은 수준이라고 생각하긴 한다만 그래봐야 내가 체감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잖아.

   

   그런 의미에서 가라드의 성을 지키는 기사들은 훌륭한 실험체들이었다.

   

   영웅 가라드가 직접 무술을 전수한 이들을 상대로 약화된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시험해본다면 내가 도달한 곳이 어떤 수준인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도발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도, 가라드의 성을 공략하기 위한 최단 루트도 택하지 않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이러했다.

   

   “감사합니다. 후대의 영웅이시여.”

   

   나의 가벼운 생각이 바뀐 것은 가루가 되어가면서 기사가 남긴 유언을 들었을 때였다.

   

   영웅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가 내린 명령을 따라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기사가 남긴 감사는 내 마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요동을 만들어냈다.

   

   언젠가 가라드의 기억을 이어 받은 인형이 떠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처럼.

   

   마음이 복잡해진 나는 몇 명의 기사를 더 상대하고서 저들의 미련을 내가 끌어안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품었다.

   

   결론은 머지 않아 나왔다. 주신의 사도이며 포용의 권능을 부여 받은 나다.

   

   악신의 권능마저도 끌어안을 수 있는 내가 저들의 미련을 못 품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리 결정을 내린 나는 성의 정문으로 쳐들어가 그 곳에 자리한 모든 기사들에게 결투를 청했다.

   

   서로의 무를 겨루는 것으로 상대가 날 인정할 수 있도록, 자신이 인정한 영웅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도록.

   

   “정말 강하군! 과연 그 방패를 지닌 자 다워!”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만전의 상태와는 거리가 먼 나다.

   

   이런 상황에서 도발이나 신성처럼 내가 쓸 수 있는 힘을 제한한 채 오롯이 자신의 육신과 무예만으로 실력 있는 기사들을 상대하는 일은 끔찍하게 힘들었다.

   

   “귀여운 외모에 속아버렸어! 당했군!”

   “헛소리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가 패해놓고.”

   “어차피 사라지는 길이다. 추한 변명을 해도 무어라 할 사람은 없잖아?”

   “내가 무어라고 한다. 쓰레기 같은 동료여.”

   “캬하! 동료는 개뿔! 우리는 형제다! 잊어버렸나?!”

   “아아. 그랬지. 그랬었어.”

   

   가쁜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생각을 할 여유조차 잊어버린 뇌는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길 권했다.

   

   미친 듯이 내달리는 심장은 통증으로 주인에게 항의를 전했다.

   

   부들거리는 손은 언제라도 무구를 놓칠 것처럼 불안정했고, 경쾌했던 발걸음은 어느새 대지에 묶이게 됐다.

   

   “좀 쉬는 편이 어떻습니까. 후대의 영웅이시여. 이대로는. 음. 죄송합니다. 당신의 각오를 얕보았군요.”

   

   머리는 내게 쉬어야만 한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마음은 멈춰서기를 거부했다.

   

   이제와서 걸음을 늦추기에는 내가 끌어안은 것들이 너무 많다면서.

   

   나라는 인간은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움직이는 종자인지라 난 기꺼이 마음의 말을 따라 무구를 치켜들었다.

   

   그렇게 기사를 쓰러트리고, 또 쓰러트리고, 또 다시 쓰러트려가며 한 발 한 발을 내딛은 끝에 도달한 성의 최상층에는 내가 지닌 것과 비슷한 순백의 방패와 장검을 지닌 기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는 내가 지닌 방패를 보고서 움찔했지만 이윽고 웃음을 흘리더니 자세를 잡았다.

   

   그건 분명 몇 달 전 내가 상대했던 가라드의 자세였다.

   

   그 때의 나는 가라드를 상대로 경외를 바치지 못했다. 그런 여유를 부릴 여유가 내겐 없었다.

   

   솔직히 말해 지금도 여유롭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최소한 그 때처럼 처참하게 박살날 것 같진 않았다.

   

   방패를 치켜들고서 먼저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여러 기사들을 상대하며 느낀 것이다만 난 판타지 속에 흔히 등장하는 묵직한 방패가 될 순 없다.

   

   그 어떤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철벽을 동경하긴 한다만 그러기엔 내 체구가 너무도 작은 게 문제다.

   

   내가 지닌 힘이 외견과 달리 뛰어나다한들, 내가 지닌 방패술이 경이롭다한들, 작은 체구가 품은 무게를 극복하는 건 불가능하다.

   

   거센 바람을 막아낸다 한들 허공으로 떠오르는 걸 어찌 견뎌내겠는가.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그제서야 새로운 활로가 보였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하는 거지.

   

   전사가 아니라,

   

   메스가키스럽게.

   

   내 돌진을 본 가라드는 한 쪽 발을 뒤로 빼고 검을 직선으로 만들었다.

   

   찌르기. 일점에 모인 충격으로 내 돌진에 담긴 힘을 밀어낼 생각이겠지.

   

   보통의 인간이 저런 짓을 한다면 미쳤냐고 물을 테지만 가라드는 다르다.

   

   정석의 흙으로 산을 만들어낸 기사는 돌격에 담긴 힘의 일점을 꿰뚫고 바라는 바를 이룰 테지.

   

   난 그걸 의심하지 않는다.

   

   그를 상대해 보았기에 확신한다.

   

   그렇기에 물러서지 않는다.

   

   그의 검이 날아드는 것을 본다.

   

   걸음의 속도를 살짝 늦추고, 방패를 슬쩍 옆으로 치우는 것으로 시선을 빼앗고, 그 와중에도 당연하다는 듯 내질러지는 검 끝을 확인한 후 타이밍을 잰다.

   

   모니터 너머에서 연구 끝에 얻어낸 결과는 아니고, 철벽같은 다른 스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얻은 결과도 아닌, 내가 생각하고 내가 판단내린 끝에 얻어낸 결과.

   

   패링의 타이밍.

   

   경쾌하고 청아한 울림.

   

   자그마한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 팔. 그에 반해 저 멀리로 튕겨난 검 끝.

   

   이것이 내가 도달한 결론이다.

   

   무얼 하러 상대가 내지른 전력을 받아주겠어.

   

   그건 고결한 기사나 머리가 근육으로 된 전사나 택할 방식이야.

   

   얄미운 꼬맹이가 선택할 방식은 아니잖아?

   

   상대를 비꼬고 놀리고 짓밟아서 훌쩍대는 꼴을 보고 싶어 하는 꼬맹이는 영악하거든.

   

   상대의 당혹에 고양된 마음 때문일까. 절로 열리려는 입을 억지로 누른 채 메이스를 휘두른다.

   

   당연하게도 가라드는 방패로 내 공격을 받아내려 한다.

   

   방패란 상대의 공격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무구니까.

   

   투웅!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살짝 찌그러진 방패를 보며 히죽 웃는다.

   

   아무래도 가짜 방패는 진짜에 비할 수는 없는 모양이네.

   

   천천히.

   

   한 수. 한 수.

   

   가라드를, 그를 흉내낸 기사를 부수어 간다.

   

   방패를 찢고, 어깨의 갑옷을 부수고, 무기를 든 손목을 날리고, 레슬링을 시도하려는 다리를 쪼개고, 바닥에 널부러진 기사의 머리 위에 메이스를 들이민다.

   

   이 지독한 세상을 살아오면서도 어떤 인간의 목숨도 빼앗지 않은 나다.

   

   이런 행위에 절로 거부감이 차올랐지만 왠지 모르게 상대가 이 끝을 원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기에 전력을 다해 메이스를 내리 찍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기사가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하! 가라드놈! 같은 상대에게 두 번이나 패한 셈이 됐구나!>

   ‘가라드님을 상대로 이긴 건 아니죠. 그 분.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더 강하잖아요?’

   <그럼 무얼 하느냐. 그건 그 놈의 강함이다. 그 놈이 지닌 무의 강함이 아니라. 네가 이 곳에 무인으로써 도전한 순간부터 이건 그 놈의 무와 너의 무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네가 이겼지! 내가 가르친 네가 이긴 거다!>

   ‘아. 결국 할아버지가 이겼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거에요?’

   <그래!>

   

   아이처럼 신나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놀릴 마음도 들지 않았다. 어차피 조금 지나면 적당히 좀 해달라고 빌게 되실테니 지금은 즐기게 내버려둘까.

   

   “흑.”

   

   기지개를 키며 지친 몸을 달래고 있으려니 뒤 편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베네딕이 울고 있었다. 거인족이라는 말이 어울릴 거한이 얼굴을 눈물로 물들이고 있었다.

   

   “훌륭. 흐으윽. 했다. 루시이이이!”

   

   나를 끌어안으려는 두 손을 피하고자 했지만 그러기엔 베네딕이 너무도 빨랐다.

   

   아 진짜! 덩치가 크면 속도가 느린 게 판타지 세상 아냐? 왜 이 인간은 힘도 강하고 속도도 빠른 건데!

   

   베네딕의 더러운 얼굴에 부벼질 위기에 처한 나였지만 그를 가로막듯 얼빠여우가 사이에 끼어들었다.

   

   “네 놈! 어디서 감히 루시의 아름다움을 그 추한 액체로 더럽히려드느냐!”

   “말리지 마십시오! 저는 이 마음을 루시에게 전해야 합니다!”

   “시끄럽다! 이 트롤아! 네 딸이 그걸 좋아할 성 싶으냐!?”

   “…어?”

   

   그제서야 이성을 되찾고 날 바라보는 베네딕에게 토하는 시늉을 해주었더니 그의 거구가 간단하게 무너져내렸다.

   

   엉엉 울면서 사과의 말을 전하는 베네딕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아간 나는 가라드가 남기고 간 유산에 손을 내밀었다.

   

   자신에게 도움을 준 친우에게 선물한 방패와는 다른 그의 검.

   

   가라드라는 기사와 함께 신화의 시대를 상대로 휘둘러진 칼날.

   

   그 어떤 티끌조차 닿지 못하는 순백의 방패와는 전혀 다른 피처럼 붉은 검.

   

   그가 넘어온 혈육이 그대로 깃든 것처럼 불길한 그 검을 본 나는 그대로 멈춰섰다.

   

   이 검은 이대로 써도 상관 없다. 그 자체로 소울 아카데미에 존재하는 무수한 검 중에서 준종결급이라 여겨지는 무구니까.

   

   따지고 보면 종결보다 이 쪽이 낫다. 종결이란 단어의 안에는 비효율적이라는 어휘가 숨겨져 있거든.

   

   그렇지만 어째선지 나는 이 검을 이대로 써선 안 될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기사의 유언을 들었을 때 느꼈고, 이 성의 기사들을 상대할 때 느꼈으며, 마지막 기사의 마무리를 지어줄 때 느꼈던 것처럼 왠지 모를 예감.

   

   난 이 예감의 정체를 어렵잖게 깨달았다.

   

   아마도 이게 권능이란 거겠지.

   

   자. 신화의 시대를 살아갔던 기사님.

   

   당신의 미련을 내게 넘기고 이젠 편히 쉴 시간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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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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