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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0

        

       ‘순수한 공의 주술 의식’의 방법에 따르면, 저 진흙 인형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와 그의 일행들에게 피해가 미치지 않을 곳까지 저 인형을 옮긴 다음에, 액이 잘못 튀지 않도록 액막이나 정화 등의 방법을 사용해 일종의 결계를 만든 뒤 해치워야 할 것이다. 인형이 빨아들인 액의 크기에 따라 불을 사용하는 것도 고려를 해봐야 할 테고 말이다.

         

       정석적인 방법은 그러했다.

         

       하지만.

         

       “보자. 공간에도 손을 쓴 것을 보니 명백히 살의가 느껴지는구나. 거참.”

         

       상대가 정석적인 방법으로 주술 의식을 행한 것도 아닌데, 어찌 당하는 이가 정석적인 방법으로 주술을 끝내려 할 수 있겠는가?

         

       주술사가 사용한 주술의 뒤틀림은 사람 대신에 진흙 인형을 사용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순수한 공의 주술 의식의 범위, 즉 ‘저주와 액을 빨아들이는 범위’에도 손을 댄 것이 분명했다.

         

       그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이 공간 자체가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의 살의를 품고 있는 것이 첫 번째요.

       또 하나는 귀신도 없고 사람이 아닌 것이 오직 진흙 인형 하나뿐임에도 불구하고 음산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를 하고 있음이 두 번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주물 중 하나가 이 공간에 반응을 하는 것이 세 번째였다.

         

       「 …그가 간청하기를 ‘지혜와 지식을 나에게 주어 백성을 인도케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님의 백성을 누가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라 하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소원이 그것이로다. 부와 재물과 영화를 원하는 것도 아니요 너를 미워하는 자들의 목숨을 앗아달라 간청하지도 아니하였다. 영생을 바라는 것도 아니요 오직 내가 너를 왕으로 삼아 맡긴 나의 백성을 다스릴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하였으니, 내 지혜와 지식을 너에게 주고 부와 재물과 영화도 주겠느니라. 너 같은 왕은 내 앞에도 없었고 네 뒤에도 없을 것이로다!’라 하였음이니 하나밖에 없는 그분을 사람들이 부르기를 아도나이 혹은 여호와라 하였음이요, 그분께 지혜와 지식과 부와 재물과 영화를 받아 이름을 남긴 왕의 이름은 솔로몬이라 하였느니라. 」

         

       옷자락 한쪽이 이 장소에 공명하듯 자그맣게 떨린다.

       자그마한 진동 속에서 그가 옷 안쪽에 새겨두었던 문구들이 꿈틀거린다.

       진성이 직접 자기 피를 사용해 썼던 알스 노트리아 사본의 일부 문구가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이윽고 자그마한 피의 향기와 함께 꿈틀대면서 스스로 제 자리를 바꾸기 시작한다.

       문장이었던 것은 곳곳이 부서져 내리며 단어로만 파편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되었고, 단어였던 것은 점과 선으로 해체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체된 것들은 마치 자신이 벌레라도 되는 것처럼 옷 안쪽을 자유자재로 누비기를 반복하다가, 이윽고 어떤 것은 천의 안쪽에 파고들기를 선택하고 어떤 것들은 멀찍이 길을 우회하여 옷의 바깥쪽으로 나오기를 선택하였나니.

         

       그리하여 그것들은 옷 밖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핏물로써 그려지는 또 다른 문장으로, 그 지혜를 주인에게 속삭인다.

         

       「 너 어리석은 자야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지어다.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 간음하는 자, 탐색하는 자, 남색하는 자,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모욕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 하리라. 이 불의한 자들과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성 밖에 있게 될 것이요 너희가 하나님 아도나이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받으리라. 」

         

       「 너 이방인아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는지라. 하여 너는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 나의 딸과 자식들아 너희는 마땅히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해야 할 것이니라. 」

         

       핏물이 지혜를 담아 속삭이기를 이 공간은 죄악에 민감하게 작용하는 곳이라.

       이 죄악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여 저주를 내릴 것이라 하였다.

         

       ‘순수한 공의와 연계되는 것이로고.’

         

       그리고 저 진흙 인형으로 발동한 순수한 공의 주술 의식은 일정 범위 내의 저주와 액을 신성모독자 하나에 집중시키는 주술.

         

       즉, 저주가 없다면 저주를 만들어서라도 진흙 인형을 폭탄으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주물이 알려준 ‘죄악’이라는 것도 참 공교로웠다.

       이방인일 경우 조건이 깐깐하게 변하고, 주술사에게 더더욱 치명적으로 작동하도록 ‘우상을 숭배하는 자’라는 내용이 잔뜩 들어가 있다. 게다가 대놓고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받게 될 것이라고 하기까지 했는데, 여기서 ‘따른다’라는 것은 신실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즉, 진성은 이 장소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주받게 되는 셈이었다.

       물론 그 저주는 신성모독자에게 바로 향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느낄 일은 없겠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가 이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진흙 인형의 폭발력이 점점 올라가게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거기에 ‘음행’이라는 것 역시 문제였다.

         

       ‘분명히 한 공간에 있는 것, 가까이 붙어있는 것, 정숙하지 못한 복장을 하는 것 등…. 둘이 숨만 쉬고 있어도 저주와 액이 쌓일 수 있도록 하였겠지.’

         

       실제 음탕한 짓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리세와 오딜리아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저주가 내릴 수 있도록 비틀었을 것이 분명했으니, 이 역시 문제였다.

       만약 그렇다면 저 둘이 숨만 쉬고 있어도 저주가 쌓이는 것은 분명할 테니까.

         

       게다가 경고에서 보듯, 아주 교묘하기 짝이 없다.

       ‘오롯이 유일하게 존재하시는 분’이나 ‘신성한 네 글자의 신’, ‘테트라그람마톤’, ‘야훼’ ,’여호와’ 등의 명칭이 아니라 ‘아도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주로 사용할만한 표현으로 좁혀서, 진성이 신도나 사제로 포지션을 잡고 주술을 무력화하거나 개입하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다. 진성은 딱 봐도 동양인으로 보였으니, 유대교의 것으로 하면 쉬이 대처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아주 교묘하기 짝이 없었다.

         

       ‘흐음. 사람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맞춰서 비튼 주술이라. 주술로 사람을 상대해 본 경험이 분명 있는 이가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을 상대해본 경험으로 따지자면 그 어떤 주술사가 진성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용병으로 활동할 때도, 그 이후에도.

       진성은 수없이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수없이 많은 사람을 상대해왔다.

       주술로, 때로는 화기로, 때로는 냉병기로.

       그렇게 쉼 없이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주술을 모으고 다닌 것이 진성인데.

         

       어찌 저 주술사의 경험이 그의 경험에 비할 수 있으랴?

       단정을 짓는 것은 참으로 오만에 가까운 감정임이 분명하나, 세상이 망해버리고 망해가던 미래의 그 시기를 생각해본다면 감히 진성은 세상에서 주술로 가장 사람을 많이 상대해본 이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

         

       그 시절 진성은 어떤 시선을 받았던가.

       어떤 주술을 사용하며, 어찌 사람을 부리고 어찌 사람을 상대하였던가?

         

       “순수의 불꽃이 타오르매 그 재에 피가 섞여 순결함을 상징케 하나니 그 피로 선을 그려 시작도 끝도 없는 도형이 그려지나니 위대한 존재 이르기를 그 안에 존재하는 이들은 짐승의 먹이가 되지 않을 것이며 독을 품은 것들이 그곳으로 감히 들어오려 하지 않을 것이니 너희는 마침내 안주의 땅을 얻은 것이라. 너희는 불꽃의 순수함만큼이나 순수를 유지하며 이곳에 머무르게 될 것이로다.”

         

       콰득.

         

       진성은 주언을 외우고는 손가락을 깨물었다.

       그러자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손가락에서 피가 줄줄 나기 시작하였는데, 진성은 그 떨어지려는 핏물을 이불에 떨구고는, 손에 불꽃을 피워서 그것을 단숨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곤 그 잿더미에 피를 몇 방울 떨어뜨린 뒤 상처가 나지 않은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반죽처럼 만든 뒤에 그것을 찍어 땅에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원은 사람 셋 정도가 넉넉하게 설 수 있을 크기였는데, 안과에서 사용하는 구멍이 뚫린 원처럼 어느 한 부분만 뻥 뚫린 형태였다.

         

       “이리로 들어오도록 하거라. 단, 선을 넘어오지 말고 선이 그려지지 않은 곳을 통해서 들어오도록 하여라.”

         

       진성은 오딜리아와 리세를 불렀다.

       그리곤 선이 그려지지 않은 부분을 통해 원 안에 들어가게 했고, 둘이 들어가자 선을 그어 완전한 원이 되도록 만들었다.

         

       “이건…?”

         

       “순수한 것에 어찌 죄악이 있으랴? 이 원이 멀쩡한 한 이 안에 들어가 있는 너희는 원의 보호를 받아 적대적인 이곳에서도 그 어떠한 피해도 보지 아니할 것이니, 너희 둘은 이 원 안에서 가만히 자리를 잡고 있거라.”

         

       진성이 그린 원은 일종의 결계였다.

         

       물론 결계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리세가 신력으로 만드는 결계처럼 공간을 구분한다거나 물리적인 것들을 막는 그런 거창한 일은 할 수 없었으니까.

       이 주술은 한정적이나마 안에 있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려진 것이었다.

         

       원 안에 있는 이들에게 ‘순결함’의 상징을 부여하여, 숨만 쉬고 있어도 죄악이 쌓이고 저주를 받게 되는 이 공간에서 괴리되도록 한 것이었다.

       물론 제대로 각을 잡고 의식을 행한 것도 아니고, 딱히 힘을 줘서 만든 것도 아니니 금방 깨지기는 하겠지만….

         

       아마도 진성이 이 주술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나는 이 주술을 해결하고 오겠느니라.”

         

       주술을 부수고 뒤트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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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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