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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0

       

        

        

        

        

        

        

        

        

        

       “작년 이 즈음엔 시간이 여름날 밖에 내놓은 아이스크림마냥 녹아내렸는데, 경기를 안 하니 할 게 별로 없네요. 구경하면서 분석하는 것도 하루이틀이고….”

        

       “그래서 올해는 여길 오셨구만. 아이고, 우리 막내가 연말이 다 되어가는데 얼굴도 안 비추나 싶더니….”

        

       “아이, 그래서 이렇게 왔잖아요.”

        

        

        

        뉴욕, 센트럴 파크 HQ.

        

        제자들은 경기를 하러 가고, 로렌티나와 로건, 올리비아가 각자 개인플레이를 하고 있었을 때, 할 게 하나도 없어 기어코 옆 세계를 방문해버린 나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하나도 안 서러운 목소리와 표정으로 서러운 연기를 하는 로건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대거 팀의 휴게실 문을 매개체로 이동한 탓에, 간만에 본 몇몇 이들이 반겨줄 줄 알았으나, 의외로 휴게실에는 침대 위에서 담요만을 덮은 채 늘어져라 자고 있던 로건밖에 없었고, 이것이 북극곰을 처음 보게 된 상황의 전말이었다.

        

        어질러졌다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깔끔히 정리가 되었다고 하기에도 약간 애매한 공간. 마지막으로 방문했었을 때에 비해 꽤 이것저것 달라졌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는데, 구체적으로는 2층침대 몇 개가 들어선 탓이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로렌티나가 쓰는 것으로 보이는 침대에 올려진 초콜릿 박스를 가져온 로건이 그것을 열며 덧붙였다.

        

        

        

       “먹고 산책이나 좀 하자고.”

        

       “…대놓고 먹어도 돼요?”

        

       “뒷일은 나중에 생각해. 귀찮으니까.”

        

        

        

        하여간 발현자들이란 이성보단 본능이 앞선다니까….

        

        물론 이렇게 말한 이유는 나 역시도 로건과 함께 초콜릿을 망설임없이 집어먹었기 때문이다 – 참고로 로렌티나의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건 이불이랑 매트리스 커버에 상어 무늬가 새겨져있었기 때문이었다 – .

        

        달달한 맛이 입 안을 가득히 감싸는 가운데,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잠에서 좀 깨어난 듯한 제스쳐를 취한 로건은 주변에 흩어진 내 시선을 감지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다른 애들은 다 어디 갔냐고 물어보려 했지?”

        

       “그렇죠. 왜 로건만 있는지 꽤 궁금했거든요.”

        

       “연말이잖아. 아, 착각하지 마. 놀러다니고 있단 건 아니니까. 오히려 그 반대지. 자잘한 일을 도와주고 있을 뿐. 물자 운반이나 교관 역할에 충실하게 임하고 있는 거야. 나도 새벽 4시까지 적당히 짐 옮기고 들어와서 잤거든.”

        

       “아하…근데 그런 건 휴머노이드나 전담 인원이 있지 않나요?”

        

       “연말이니까.”

        

        

        

        아.

        

        분명 로건의 한 마디에 담긴 내용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겠지. 단순한 연말이 아니라 오퍼레이터들까지 참여하는 일종의…축제 같은 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현재 시각은 오후 12시 즈음. 어느새 박스 안의 초콜릿 잔량은 제로로 수렴했고, 박스를 덮은 로건은 시계를 확인한 뒤 펜을 들어 종이에 무어라 휘갈겨 적었다. 내용은…대충 요약하자면 ‘나랑 막내가 네 초콜릿 먹었다. 맛있었다!’ 정도.

        

        후폭풍이 좀 두렵긴 하지만, 아무튼 로건과 함께 휴게실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즈음, 나는 그녀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 특히 후각으로 말이다.

        

        

        

       “나오자마자 어디서 바베큐 냄새가 이렇게 잔뜩 나나 했더니, 다닐 필요도 없는 푸드트럭이 왜 이렇게 많아요?”

        

       “과거의 향수지. 과거 센트럴 파크 주변에는 푸드트럭이 엄청 많았다는데, 그 분위기를 일부라도 재현하고 싶었다나. 나야 알래스카 깡촌 출신이니 이런 건 잘 모르지만, 저런 거 차리는 걸 도와주는 건 나름대로 재미가 있거든.”

        

       “겸사겸사 뭔가 좀 얻어먹기도 하고요?”

        

       “당연하지.”

        

        

        

        그럴 것 같았어.

        

        12월의 중후반에 접어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센트럴 파크 곳곳에 남아있는 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형태로 치장되었고, 센트럴 파크의 민간인 거주구역에 있던 사람들은 눈사람을 만들며,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저수지-였던 거대한 아이스링크에서 즐겁게 노는 중이었다.

        

        기어가 발산하는 전력을 냉기로 변환하여 저수지를 통째로 얼려버렸기에 혹여나 빠질 걱정은 없다나 뭐라나. 저 안에 있던 수중폭파연습용 구조물이 멀쩡할지나 모르겠네.

        

        그곳을 힐끔 바라보고 있던 내 시선이 들켰는지, 로건이 덧붙였다.

        

        

        

       “네가 저기서 마지막으로 수중잠입훈련을 했던 게 언제였더라….”

        

       “…글쎄요. 한 3년 전?”

        

       “벌써 그렇게 됐나. 지금은 예비 오퍼레이터들이 저기서 연습하고 있지. 적어도 몇 년 동안은 계속 그럴 거고.”

        

       “그렇겠네요.”

        

        

        

        그와 동시에 다시금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

        

        메카 막내들을 연구하는 연구소, 그레이 하우스, 그 외에도 새로이 건축된 온갖 정부 청사들의 외벽은 눈송이 및 지팡이 사탕 모양으로 꼬아진 LED가 번쩍번쩍거리고 있었다.

        

        본래라면 도로가 있어야만 할지도 몰랐던 청사 앞, 혹은 창고 근방은 센트럴 파크 HQ 특유의 깔끔한 벽돌길로 마감되어있었고, 십수 명 가량 되는 아이들과 부모님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혹은 깔깔대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이 슬슬 입가에 미소가 생기고 있구나. 그리 생각하며 덧붙였다.

        

        

        

       “확실히 도로를 HQ 아래에 몽땅 파둔 건 괜찮은 것 같…왜 그러시나요?”

        

       “저기 한 번 봐라.”

        

       “저기요? 아까 봤는…엑.”

        

        

        

        방금도 본 곳. 머리에 빨간 산타 모자를 쓴 아이들이 일괄적으로 돌아다니며 바깥의 공기를 만끽하고 있는 바로 그 장소.

        

        그 사이에서 왠지 모르게 사람이 많이 몰린 곳으로 차츰 시선이 옮겨가고, 그리고 그 끝에는 하얀 털실이 달린 붉은 산타 모자를 쓴 세 기의 메카 몬낸이들이 애들 사이에 섞여 환한 웃음을 지으며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이….

        

        

        

       “아아악-!”

        

       “하하! 내가 여지껏 본 반응들 중 제일 웃겼어, 막내.”

        

       “후, 후우…뭐어, 쟤네는 태어나서 처음 크리스마스를 보는 거니까요. 게다가 주변에 있는 아이들도 좋아하는 모양이고. 역시 어릴 때는 다들 로봇을 좋아하는 건가….”

        

       “나로서는 저 사이에 상어가 끼어있지 않다는 게 다행인데.”

        

       “그건 진짜 동감.”

        

        

        

        나잇값을 1도 못하는 상어가 저 사이에서 신나게 놀고 있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지.

        

        아무튼 그렇게 주변을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로건이 먼저 센트럴 파크 HQ가 본격적인 성탄절 축제 준비를 – 이전에는 결코 이렇게 대대적으로 하지 못했었던 – 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으니, 나도 저쪽에서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파이널 챔피언십 관련 이야기는 북극곰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 가지를 알 정도로 숙련된 오퍼레이터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작년에 비해서 한 경기가 늘었다라. 의도적으로 교전 밀도를 한도끝도 없이 높여놨으면 매 경기마다 녹초가 되서 오겠어. 네가 키우는 애들이 전부 여자라고 했었나?”

        

       “네. 로건도 알고 있을 텐데.”

        

       “그래, 걔네들. 머리색 특이한 애들 말하는 거잖아. 아무튼 그 정도라면 네가 가르쳤다고 해도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좀 딸리겠어.”

        

       “정확해요. 그래도 10등 밖으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없으니, 이대로만 가면 무난하게 최상위권에 안착할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슬슬 로건 역시도 기억이 나기 시작하는지, 내가 설명해주는 동안 핵심을 정확하게 꿰뚫는 키워드나 말을 툭툭 던져온다.

        

        

        

       “그 녹색 고양이처럼 생긴 애가 폭탄 잘 다루는 친구였나? 그런 애가 한 명쯤 분대에 있으면 일이 편한 경우가 많지. 내가 하긴 싫지만…뭐어,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지형지물의 유무에 따라 승률이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경우가 많겠구만.”

        

       “그래서 열심히 총 쏘는 연습을 시켜놨지요.”

        

       “그 편이 제일 낫지. 오퍼레이터란 원래 그런 게 필요하니…좀 돌아다니니 출출하네. 뭔가 좀 먹고 가자고.”

        

        

        

        물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 시점부터 센트럴 파크 HQ에 존재하는 모든 푸드트럭 순회가 시작되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좁아터진 동네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얼굴은 알고 있었다. 물론 나는 상대를 몰라도 상대가 나를 아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지만.

        

        그리하여 대략 두 시간 가량 센트럴 파크 HQ에서의 식사를 즐기고, 더 나아가 31일 마지막 날에 이 세계의 타임스퀘어에서도 실제로 볼드랍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마 그땐 경기가 전부 다 끝난 후 신년맞이를 준비하고 있을 테니, 양쪽에 전부 참여하려면 모종의 조치가 있어야만 할 테지만.

        

        

        그렇게 빵빵해진 배를 부여잡고, 시상식에 참여할 예정이라는 헨리의 기행에 대해 신나게 논하며 대거 팀의 휴게실로 되돌아왔을까.

        

        

        

       “후후후후…돌아와보니 초콜릿 상자가 텅 비어있다 싶었더니, 귀여운 쥐새끼들 두 명이 들어와있었군요, 후후후후후후….”

        

       “…앗.”

        

       “자, 막내. 뭔지는 몰라도 슬슬 벌 받을 준비를 하자고.”

        

        

        

        로렌티나를 비롯한 대거 팀 전원이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꾸로 들어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초콜릿 대신 부스러기와 포장지만 적당히 떨어지는 초콜릿 박스였던 무언가. 그것을 엄지와 검지손가락만으로 적당히 잡고 있던 로렌티나가 만면에 지옥에서 직접 공수해온 것만 같은 미소를 띠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늘 이 세계의 방문을 선택한 건 확실히 실수가 틀림없었다.

        

        

        

        

        

        

        

        

        

        

       “유진 씨이, 저희 다녀왔…우왁, 머리가 왜 이래요!? 누구랑 머리끄댕이 잡고 싸웠어요!?”

        

       “민아. 유진 씨가 그런 허접한 방법으로 싸울 리가 없잖아요. 주먹 한 방에 안면함몰이 가능한 사람한테.”

        

       “…그 안면함몰 한 번 당해보고 싶다구요?”

        

       “헉, 아뇨.”

        

        

        

       -안면함몰 당해보고싶냐고 협박하는건또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비얌씨 왤케 떡이 되서 오셨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6시간 논스톱 유격훈련이라도 하고옴?????

       -얼굴만보면 한 4박5일 무수면 훈련뛰고온거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렌티나나 로건한테 개겼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속보)비얌알고보니 잠버릇 고약해….

        

        

        

        대략 6시간 정도 상어에게 붙잡혀있다 도망을 나왔을 때, 내 모습은 실로 난장판 그 자체였다.

        

        상어의 뒤끝은 가혹했다.

        

        

        

        

        

        

        

        

        

        

        

        

        

        

        

        

        

        

        

        

        

        

        

        

       “파이널 챔피언십이 얼마 안 남은 김에 좀 갑작스럽게 말할 게 있어요.”

        

       “뭔가요?”

        

       “맨해튼에 계신 부모님이 말씀하시길, 제4회 파이널 챔피언십 종료 축하를 위해, 여러분들에 31일 밤에 있을 볼드랍 이벤트 전까지 무제한으로 이카루스 레지던스 호텔 타임스퀘어 지점의 스위트 룸을 빌려주겠다고 하셨어요. 덤으로 저녁식사도 초대하셨고.”

        

        

        

        뚝.

        

        그런 소리가 날 정도로 급격히, 그리고 뻣뻣한 형태로 방 안에 있는 수많은 인원들의 고개가 돌아간다. 지난 번 나와 같이 하와이에 다녀왔던 인원들은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들은 것마냥 입을 떡 벌렸고, 아예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물음표를 머리 위에 띄울 뿐이었다.

        

        일순간 꿈틀하는 로렌티나의 눈썹. 로건과 올리비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상어야 이미 식사도 같이 했으니 엄마랑 아빠가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잘 알고 있었고, 로건은 보아하니 로렌티나가 알려준 것 같았으며, 올리비아는 지난 번 출국 때 내가 반쯤 알려줬었지.

        

        그리하여 이 자리 – 디브리핑 룸, 짧게 줄이면 AAR 룸이라고 불리는 방 안에 있는 이들 중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을 꼽으라면 카토와 서밋, 미카엘, 갬빗 정도려나.

        

        다른 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그쪽으로 끼기긱 고개가 돌아간다.

        

        

        

       “에, 뭐야. 왜 다들 날 보고 있어?”

        

       “왜, 왜 그래. 이거 설마 숙박비용 몰빵 복불복이야?”

        

       “후, 카토가 하와이에 왔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텐데….”

        

       “…이것도 내가 잘못한 거야?”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긴 한데…생각해보니 카토도 하와이에 올 뻔했었나. 정확히는 본인이 쫄아서 안 왔다고 들은 것 같긴 한데, 아무튼 버스가 이미 가버렸단 건 확실했으니.

        

        사실 이런 부분에서는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간단했기에, 나는 별 생각 없이 덧붙였다.

        

        

        

       “뭐, 그닥 놀랄 만한 이야기는 아니긴 한데, 간단해요. 부모님이 이카루스 인터내셔널의 고위 임원이시거든요. 사실 임원이라기보단 거의 실질적인 CEO 같은 건데, 이사회를 완전히 틀어잡고 있으니 그것보단 조금 다른 뜻이려나….”

        

       “…예?”

        

       “굳이 그렇게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얘네들 다 눈에서 빛이 사라졌거든요.”

        

       “야, 야. 정신 차려. 그러다 턱 빠지겠다.”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나?

        

        이럴 때일수록 역지사지의 정신을 발휘해 생각해보면…그럴 확률이 높긴 하네. 여태까지 자기가 하던 게임을 만든 회사의 톱이 아는 사람의 부모님이었다-라거나 하면 좀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서야 진실을 깨달은 이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대략 십수 초 정도 기다렸을까, 힘겹게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핀 네 명 가량의 이들이 입을 열었다.

        

        

        

       “…왜 다들 아무도 안 놀라요!?”

        

       “그야 너희 네 명 빼고는 이미 전부 다 알고 있었으니까.”

        

       “무, 무, 무무무무….”

        

       “어떡해, 카토가 언어 능력을 상실했어.”

        

        

        

        허나 충분한 물리력은 사람의 정신을 강제로 기상시킬 수 있었고, 카토는 내 꼬리-어택에 의해 바로 이성을 되찾았다. 물론 때린 건 아니었고, 꼬리로 칭칭 감아 흔든 것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도 모르는 사이 은근슬쩍 연단으로 올라간 로건이 화면을 이리저리 조작하기 시작했고, 빔 프로젝터는 곧바로 나의 부모님의 얼굴을 스크린 위로 띄워올렸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다들 내 뒤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기 때문이었다 – 이리 말하긴 뭐했지만, 몸이 이렇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가진 특유의 날카로운 인상은 내 얼굴에도 그대로 남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쐐기를 박은 모양이었다.

        

        

        

       “…아니, 잘 보니까 유진 씨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치? 우린 이미 알고 있었다니까.”

        

       “유진 쌤네는 무슨 부모님까지 잘생기셨대.”

        

       “…억지로 제 가족사에 금칠하지 마세요!”

        

        

        

        이러다가 얼굴이 금에 덮여 질식하겠다, 아주.

        

        아무튼 다들 슬슬 입을 닫기 시작한 것도 그렇고, 첫 번째 목표였던 정보 전달이 달성됐으니 더 이상 이 안건으로 질질 끌 필요는 없겠지.

        

        로건은 얄미울 정도로 잽싸게 의자로 되돌아간 상태였고, 나는 다시 연단으로 복귀하여 이카루스 레지던스 타임스퀘어 지점의 위치를 표기했다 – 그렇다. 실로 공교롭게도, 해당 지점은 작년에 우리가 볼드랍 이벤트를 구경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당시 방문했던 철판구이-레스토랑이 개업까지 얼마 안 남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것 자체가 복선이었다. 말 그대로 호텔 레스토랑이었던 것이었다.

        

        아마 이게 세상에 까발려지는 순간 ‘세상은 비얌의 손에 의해 컨트롤되고 있다!’는 괴상한 음모론이 돌지 않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뒤로 하고, 화면을 종료한 내가 덧붙였다.

        

        

        

       “작년에는 조금 인원이 적고, 불청객 아닌 불청객이 끼어있었긴 한데…이번 년도에는 조금 더 즐겁게 지낼 수 있겠네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줄 수 있는 이번 년도의 마지막 선물입니다. 부디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

        

       “유진! 유진! 유진! 유진! 그녀는 신이야!”

        

       “아, 대신 프로게이머 분들은 내일 있을 마지막 경기 세 번과 시상식까지 잘 치르길 바랍니다. 이제 와서 여러분들이 흔들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기도 하고, 무엇이 모자란지는 본인들이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일종의 아이컨택.

        

        물론 발현자들끼리 한 것이었기에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무엇을 언급하고 있었는지를 감안하면 선임들이 뭘 말하고 싶은지를 눈치채는 건 간단했다.

        

        

        

       -설마 대통령이 시상한다는 건 따로 안 알려줬나요?

        

       -…굳이?

        

        

        

        그리하여 오간 대화를 대충 요약하자면-이 정도일까.

        

        수상자들이 놀라는 걸 보고 싶었다 같은 건 아니었지만, 반대로 생각해서 구태여 목에 메달을 걸어줄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줄 필요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미리 말하면 이 다섯 명에게 부담이 갈 수도 있으니까.

        

        여태까지의 점수 집계를 확인하며 덧붙였다.

        

        

        

       “다이스는 아마…내일 이대로만 하면 1등을 할 가능성이 높고, 민아는 5등 안에 들려면 꽤 분발해야겠네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서밋과 갬빗, 미카엘은…이미 플레이스타일이 확립된만큼 관여할 부분은 딱히 없지만, 다시 말하면 이는 여러분들 스스로 악조건을 헤쳐나가야만 한다는 소리지요. 마찬가지로, 유종의 미를 거둬 10등 안에 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 그러면 오늘도 해산. 이젠 정말로 안 남았으니 컨디션 관리 잘 하시고.”

        

        

        

        짝짝!

        

        박수를 두 번 침과 동시에 빔 프로젝터가 꺼지고, 모두가 해산하-려는 그때.

        

        다이스가 손을 들었다.

        

        

        

       “그건 그렇고, 유진 씨.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뭔가요?”

        

       “이번 선물에 메카 막내들도 포함인가요?”

        

        

        

        그 순간 이어지는 눈치싸움…이 아니라, 서로 아무 말 없이 시선만을 교환할 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그건 나중에 말해드릴테니, 막내들 좀 그만 찾아요. 접근금지령을 내리는 수가 있어요.”

        

       “으아앙-!”

        

       “헉, 저는 아무런 말도 안 했어요.”

        

        

        

        꿀밤을 먹이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한 채 한숨을 내쉬었다.

        

        왜 내 주변은 다 이럴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유유상종…이라고 할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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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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