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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1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비행이 끝난 직후, 시루드는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결국, 끝까지 깨지 않았네.”

    처음 비행기에 올라타서 자리를 잡고 바로 눈을 붙이기 시작하더니, 루크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비행기가 착륙하고 나서였다.

    그 중간에 시루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곤히 잠들어있는 루크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뿐이었고.

    “하하하…….”

    루크는 겸연쩍게 웃으며 시루드의 원망스런 시선을 피했다.

    확실히, 비행기에 신세를 진 입장에서 전혀 어울려주지 않은 것은 충분히 미안할만하다.

    그런 루크에게, 시루드는 마치 떠보는 듯이 질문을 툭 던졌다.

    “역시 그 ‘오래된 책’ 복원작업중에 조금 문제가 생긴거지?”

    시루드도 처음엔 그저 대답 없이 잠들어버린 루크가 원망스럽고 얄미웠을 뿐이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추리와 사고를 전개해나가니, 마지막에 떠오른 감정은 불안감과 걱정이었다.

    루크의 몸은 원래 정상이 아니다.

    그 스스로가 밝히길, 루크 본인은 한 미친 마법사의 연구로 탄생한 시한부 마법 실험체.

    자신의 몸에 하는 그 ‘실험’도, 그 죽음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지금의 이 신체변화 또한 그와 관련이 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몸이 되어선, 종일 그렇게 깊이 잠들어 있었으니…….

    그렇게 깊이 자는 루크의 모습이, 평소의 루크와 같은 상태라곤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

    “…….역시, 그게 잘못된거야? 그래서 지금 네가 그렇게 피로한거고?”

    살짝 물기가 섞인 시루드의 질문에, 루크는 곧장 그 추측을 단칼에 잘라내며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야!”

    물론, 어느정도 문제가 발생한 것은 맞다.

    열차 폭발의 순간.

    시에나의 살신성인에 가까운 희생이 있었다지만, 사실 이전의 신체는 칸타시스의 심장을 사용한 코어를 제외하곤 못써먹을 정도로 손상되어버려서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결국 루크는 배양중이던 육체중 하나로 다시 몸을 옮겨야 했는데, 용의 힘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본질인 서클을 꽤나 소모해버렸기에 서클에 맞지 않는 완숙한 몸의 적응이 어려웠다.

    그런 이유로 배양이 아직 덜 되었지만 그래도 조금 더 조작이 간편한 이 육체를 선택한 것인데…….

    시루드에겐 이것이 일종의 ‘실험실패’로 보였던 모양이다.

    불찰이었다.

    설마 영혼에 남겨진 잔상과의 대화가 길어진 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이미 자택에서 루크의 신체에 얽힌 비밀을 어느정도 공유받은 시루드였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런 쪽으로도 걱정을 할 수 있을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내 시한부 문제는 해결되었어. 지금 내가 피로한 건 전혀 다른 이유. 그러니까 걱정 말거라.”

    “다른, 이유…?”

    그에 루크는 곧 변명 아닌 변명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어제 종일 바이크를 수리하고 있었거든.”

    “……바이크? 설마 사람들이 도로에서 타고 다니는 그거 말이야?”

    “그래, 그거.”

    그런 너무나 실없는데다 뜬금없는 루크의 대답에 시루드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네가 갑자기 바이크는 왜?”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생각도 정리할 겸, 손노동으로 잠깐 한다는게 그만…….”

    그렇게 대답하면서 루크는 턱을 쓰다듬으며 멋쩍게 웃었다.

    보통, 이렇게 생각할 것이 많은 날이면 루크는 새 아티팩트나 마법이론을 연구하며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마침 그 때 루크의 눈에 띈 것이 시에나의 고장난 바이크였던 것이고, 그것을 만지다보니 바이크의 마력엔진이라는 것이 보면 볼수록 생각했던것보다 구조가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취향에 맞았다.

    그러다 결국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것을 분석하고 수리하는 데에 몰두하고 말았고, 그 과정에서 케이트에게 그런 몸으로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고 한소리를 듣기까지 했지.

    그래도 결국 한번 시작한 수리는 끝을 보고 싶어서 무리를 좀 했더니, 안심할만한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그간 쌓여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터져나온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설마 영혼의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곤 해도 몇시간이나 되는 비행과정중에 단 일분도 깨지 못한 게 말이 되지 않으니까.

    “그러고보니, 요즘 바이크의 동력구조는 참으로 획기적이더구나. 마력엔진의 기본구조는 어느정도 알았지만, 설마 그런 방식으로 응용설계를 할 수 있을 줄은 전혀 몰랐거든. 이제 여기서 살아간지도 1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나의 사고는 옛 방식에서 변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게되니 통 멈출 수가 있어야지.”

    “…….”

    루크의 대답을 듣게 된 시루드는 결국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루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생각을 정리한답시고 하는 손노동이라면 보통 뜨개질이나 자수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것을 하는 게 보통이다.

    헌데 바이크 수리라니……

    진짜 너무 생각지도 못한 취미라서, 여러모로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확실히 루크답다면 루크답기는 한데…….

    대체 11살짜리 여자애가 고장난 바이크는 어디서 난거야?

    저번에 집에 갔을 땐 바이크 같은 건 어디에도 없던데.

    어떻게 루크하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궁금증만 더 늘어가는 것 같지만, 그 모든 궁금증을 해결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뭐, 됐다……. 그렇게 말하니까 걱정한 내가 바보같잖아. 일단 별 일 없이 무사하면 됐지. 하아…….. 그나저나, 이러면 우린 느긋하게 이야기나 나눌 시간은 없겠어.”

    “아, 아니.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면 여기서 얼마든지 해도 좋아. 길이 좀 막히는지, 예르나가 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은 모양이니까.”

    실망해 발길을 돌리려는 시루드를 루크는 황급히 붙잡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시루드는 고개를 저으며 아쉽다는 듯 말을 이었다.

    “못해, 헬레나하고 약속한 시간에 맞추려면 나도 그 막히는 길을 가봐야 하거든.”

    “헬레나?”

    익숙한 이름에 루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헬레나라면 그 분홍색 머리의 귀여운 엘프 여자아이를 말하는 거겠지.

    그말은 즉, 헬레나가 지금 베리튼에 와 있는 건가?

    “응, 부모님을 따라서 어떤 자리에 참석해야 한다는 모양이야. 뭔가 중요한 일인지 개학해도 아카데미에 당분간 나올 수 없을거라길래, 나는 널 여기 데려다주는 겸 그 전에 잠깐 만나서 얼굴 좀 보고 이야기나 하기로 한 거고.”

    “으음, 그렇구나…….”

    과연, 이미 일정이 있다면 잡을 순 없겠다.

    그나저나, 헬레나인가.

    그 아이가 베리튼에 와 있는 이유라면, 사실 몇가지 짐작이 되는 게 있었다.

    사실 이전에도 헬레나는 전시장에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왔다고 했었고, 루체스트의 명단 내에도 헬레나의 ‘루스핀드’라는 가문명이 적혀있었던 걸 보면, 그의 부모는 루체스트쪽의 인물이거나 적어도 그와 연관된 상황이라는 건 생각해볼 수 있는 경우의 수다.

    그저 단순한 투자자들 중에 한명일 뿐이라면 괜찮겠지만, 만약에 정말로 그 아이의 부모가 정말로 루체스트와 깊은 연관이 있는 거라면…….

    헬레나의 이번 베리튼 방문도 그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루크는 곧 시루드에게 진지하게 당부하듯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러면 나중에, 혹시라도 나에게 묻고 싶은 일이나 무슨 도움이 필요하면 꼭 내게 먼저 연락을 주거라. 기다릴 터이니.”

    시루드는 갑자기 변한 루크의 반응에 조금 당황하며 대답했다.

    “응? 어, 어…… 그럴, 게?”

    ——

    그 무렵, 루크가 베리튼으로 들어오기로 한 시간.

    다이튼은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조수석에서 보고있는 그 모습이 꽤나 웃겼던 예르나는, 그런 다이튼에게 뭐가 그리 신나는지 물어봤다.

    “다이튼, 오늘 왜 그렇게 신나있어? 넌 루크를 지금껏 그렇게 막 그리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야, 오늘은 간만에 바베큐파티잖아. 당연히 신나지.”

    엘프 위주의 사회인 베리튼의 육류는 다른 나라보다 비싸다.

    자국민의 수요가 적어 고기가 생산되는 양이 적을 뿐더러, 들어오는 물량도 늘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콩과 버섯, 기타 식물섬유를 이용한 대체육이나 식물성 단백질은 어디서든 쉽고 싸게 구매할 수 있지만, 오늘 구매한 것과 같은 진짜 고기들은 정말 구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늦은 루크의 환영파티를 겸해서, 오늘은 육류 위주로 장을 다 봐뒀다.

    루크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그렇다보니 당연히 다이튼은 오랜만에 먹게될 진짜 고기가 기대되어 신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기대된다.”

    간만에 동물성 단백질 좀 보충하겠구만.

    그동안 예르나의 부모님이 해주시는 식물성 음식들만 먹다보니, 며칠만에 근손실이 꽤 났다.

    이번 기회에 다 채워넣어야지.

    그렇게 싱글벙글 하고 있는 다이튼에게, 예르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풉, 하하하!”

    “왜 웃어, 나같은 사람한테 근손실은 중대사라고.”

    갑자기 웃어버리는 예르나의 반응에 다이튼은 볼멘소리를 내었다.

    그런 다이튼에게 예르나는 웃음소리를 줄이며 물었다.

    “아니, 그, 근육에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 해서.”

    그러자 다이튼은 너무나 당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야, 이게 사랑하는 여자를 사로잡은 무기니까.”

    그리고 그 대답에 예르나는 그만, 이전보다 더 큰 소리로 웃어버리고 말았다.

    “풉, 하하하하! 진심이야? 그 근육때문에 내가 너한테 반한 거라고?”

    “어, 아냐…? 분명 예전에 공연을 보러 갔을 땐……”

    “그야 배역 보고 한 소리인게 당연하잖아. 난 그냥 숲을 주름잡는 사냥꾼이 멋지다고 했지, 그 배우의 근육이 좋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했는걸? 오히려, 엘프들은 다 너같은 체형은 부담스러워한다구.”

    “……진짜야?”

    다이튼은 드디어 밝혀지는 예르나의 취향에대해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어쩐지, 엘프들은 다들 늘씬하고 날렵한 모습을 선호하는데 예르나는 취향이 꽤 독특하구나 싶었다.

    그런데 설마, 처음부터 전부 다 내 오해였다고…?

    그 말은 즉, 그동안 자신이 근육을 늘리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들이 사실은,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는 건가……?

    다이튼은 눈에띄게 당황한 모습으로 예르나에게 물었다.

    “…대체 그러면 뭘 보고 날 받아줬어?”

    그에 예르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루크한테 하는 거 보고. ‘보기랑은 다르네, 이정도로 가정적인 남자라면 괜찮겠다.’ 뭐,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하나?”

    “…….”

    예르나의 간단명료한 대답을 들은 다이튼은 입을 다물었다.

    그럼, 운동할 시간에 그냥 가정적인 면모만 보여줬으면 더 괜찮았을 수도 있다는…건가…?

    그렇게 허탈해하는 다이튼에게, 예르나는 위로하듯 그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뭐, 그런 노력하는 모습도 나한텐 다 가산점이었으니까 너무 낙담하진 마. ”

    “그래…….”

    뭐, 아무튼 잘 됐으니까 됐나…

    “그나저나, 드디어 루크가 베리튼에 오는구나. 고작 며칠밖에 안됐는데도 벌써 몇달은 안본 것 같아.”

    “그러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예르나의 전화가 울렸다.

    -……!

    “응? 갑자기 전화가…….”

    “전화? 누군데?”

    다이튼의 질문에 예르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이건 모르는 연락처인데……”

    대체 누구길래 발신자제한으로 해외전화를 걸어온 걸까?

    궁금했던 예르나는 일단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릴 듣게 되었다.

    -예르나, 나야. 시에나.

    “어머, 시에나?”

    몇시간 전에 공항에 잘 내려줬다고 루크의 전화로 같이 안부인사 하지 않았던가?

    왜 또 연락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글을 쓸수록 마무리를 위한 고민거리가 참 많아지네요.

    근데 이렇게보니 진짜 오랜만에 나오는 예르나 다이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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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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