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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1

        

         

       철-퍼덕.

       철-퍼억.

         

       진흙이 뭉쳐졌다가 쏟아지고, 쏟아지며 부서지고, 부서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소리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하나의 영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쩌면 공상에 불과할, 어쩌면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바로 그 장면을.

         

       찌그러진 진흙은 철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퍼진다. 자그마한 크기서부터 큼지막한 크기까지 셀 수 없는 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공중에 떠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지고, 벽면에 묻었다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어쩌면 처음부터 바닥에 흐르듯이 움직여서 터져버린 무언가가 그리는 그 특유의 형상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퍼져나간 파편들은 꿈틀대며 움직인다.

       마치 민달팽이처럼, 갈색을 띠고 있는, 진흙을 한껏 뒤집어쓴 채 꿈틀꿈틀 움직이는 민달팽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들은 아주 천천히 움직일 것이다. 민달팽이와는 달리 자신이 지나온 자리에 어떠한 점액도 체액도 남기지 않은 채 그렇게 꿈틀꿈틀 징그러운 몸짓으로 한 곳으로 빠르게 모인다.

         

       그렇게 모인 파편들은 물방울이 서로에게 겹치면 커다란 하나의 물방울이 되는 것처럼 큼직하게 변해가고, 그렇게 변해간 것들은 외부의 힘을 받은 것처럼 다시 천천히 자라나겠지. 마치 물을 한껏 받은 식물이 쑥쑥 자라나는 것처럼, 잠깐 눈을 떼었다가 다시 보면 자라나 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아주 기묘하면서도 싱그러운 느낌으로 말이다.

       그렇게 자라난 진흙 인형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리라.

         

       다만 그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은 너무나도 불안정해서.

       감히 신의 위업에 도전할 수 없다는 듯, 사람을 아주 짧게 흉내를 내었다가도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여서 그대로 무너져내리는 것처럼 그렇게 그것은 쏟아져 내릴 것이다.

       어느 부분은 무더운 여름날 초콜릿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무너질 것이고, 어떤 부분은 덩어리를 부유시키기에는 너무 가늘게 변해버린 기둥 탓에 스으윽 기울더니 바닥으로 철퍽하는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내릴지도 모르지. 그렇게 한때 사람을 흉내를 냈던 진흙은 몸을 뉘고, 쏟아지고, 제 파편을 사방으로 흩뿌리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흩뿌린다 한들 그 갈망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서.

       그래서 그 진흙들은 다시 한 몸이 되기 위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을 꿈꾸며, 사람으로 빚어지기 위하여….

         

       그것은 고통이요, 단련이요, 연단이라.

       신이 보았다면 감탄하며 제힘을 사용하여 사람으로 만들어줄 위업과도 같음이라.

       그 정성이 참으로 갸륵하니 어찌 이를 사람으로 칭하지 않을 수 있으랴?

         

       다만 관점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지는 법인지라.

         

       “어찌 진흙이 사람이 될 수가 있는가? 그러한 주장은 문명에서 떨어지는 것이니, 마땅히 문명의 빛을 쬐어 올바른 해답을 말하여야 할 것이다.”

         

       진성은 마침내 도달하였다.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을 지나, 곳곳에서 언제든 너의 목을 찌르거나 베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날카롭고 뾰족한 것들을 지나서, 그는 마침내 도달하였다.

       그곳에는 인형(人形)이 있어 우뚝 섰다가 무너지기를 반복하고 있었으니, 그 형체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 피부는 갈색이요 그 눈은 부서졌다가 조립되기를 반복하나 큼지막하였다. 그 얼굴에 자글자글 새겨진 주름은 심술이 덕지덕지 묻은 듯하였고, 그 몸뚱이는 이웃의 음식마저 남김없이 빼앗아 제 위장에 처넣기라도 한 듯 뚱뚱하기 짝이 없었으니 저것은 미덕과는 거리가 한참이 먼 것이 분명하였다.

       알라께서 말하옵기를 더럽고도 더러운 짐승이 있어 그것은 돼지라 하였음이니, 아! 그 더러운 짐승을 꾸역꾸역 먹고 또 먹으면 저러한 형상이 되지 않겠는가?

       형상에서부터 보이는 저 더럽고 추악한 몸뚱이는 곧 더러운 짐승이 사람의 형상으로 분한 것만 같으니, 저것이 바로 사악한 존재요 이블리스의 종복임이 분명할 것이다.

       저것은 필시 삿된 것들이 모래알처럼 넘쳐나는 곳에서 올라온 존재임이 분명할 것이니.

         

       저것이야말로 액과 저주를 몸에 품은 사악한 존재요, 감히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신성모독자이니라.

         

       그 모독적인 피를 이곳에 뿌리지 말지어다.

         

       “보아라. 찬란한 지혜가 깃든 곳이 있어 그곳에서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현자가 있었으니 그가 말하기를 세상에는 생명의 씨앗이 있어 주변의 환경에 맞추어 씨앗이 자라날 것이니 그것이 바로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 그렇다면 묻느니 식물과 동물과 인간은 동등한 것인가? 모두가 생명의 씨앗에서 자라나 생육하고 번성한 것인가?”

         

       그 모독적인 피를 이곳에 뿌리지 말지어다.

         

       “아, 생명의 씨앗은 남자의 정에 존재하고 있으매 그것은 농부가 뿌리는 씨앗과 같음이요, 여자의 태내에는 그 씨앗이 사람의 형태가 될 수 있게 하는 곳이 있어 밭과 같으니 너희 진리를 쫓는 자들에게 묻나니 그 씨앗에서 사람의 형상을 끌어내어 자연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과연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일 것이냐?”

         

       그 모독적인 피를 이곳에 뿌리지 말지어다.

         

       “플라스크를 만들어 그 안에 정을 넣고 마땅히 과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씨앗은 자궁과도 같은 환경 속에서 마침내 팔다리가 자라나고 머리가 솟아나 사람의 형상을 만들 것이니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방법이요 신의 진리를 엿보는 방법이니라. 그리하여 우리는 이것을 작은 인간이라 부르나니 이들은 플라스크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으매 그들이 플라스크 밖에서도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하도록 할 것이다.”

         

       감히 인간의 흉내를 내는 인형에게 말하나니 어찌 진흙이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생명의 씨앗은 모든 생명을 탄생케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사람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여자의 몸이나 여자의 몸을 흉내를 낸 곳에서만 가능할 것이니 진흙으로는 사람을 빚어낼 수 없는 것은 진리이며 규명된 사실이니라.

       그리하여 문명인으로서 단언컨대 저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흉내를 내는 것이 분명할 것이라!

         

       “제자가 스승께 물으니 스승님 미물은 어디서 태어나는 것입니까? 그러자 스승 가로되 너는 벼룩이 먼지의 사이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그러자 제자 답하기를 저는 분명히 먼지 사이에서 톡톡 튀어 오르는 벼룩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어린 제자를 가르치기를 벼룩은 그와 같이 먼지에서 태어나는 것이니 생명의 씨앗이 먼지라는 환경에서 벼룩으로 변하여 발생하는 것이라.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로다.”

         

       무엇이 흉내를 내는가?

       저것이 움직이게 한다면, 저것이 생명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무엇일 것인가?

         

       답을 내리나니 너 사람의 형상을 한 것에 먼지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것이 아니요 환경에 불과한 것이니 생명의 씨앗이 거기에 닿아있다면 마땅히 거기에서 태어나야 할 것이 붙어있어야 할 것인즉.

         

       먼지와 생명의 씨앗이 부딪쳤으니 너는 벼룩이로다.

         

       투둑.

       투두두둑.

         

       쏟아진다.

       진흙 인형의 일부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자그마한 먼지와 같지만, 톡 톡 하는 자그마한 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튀어 오르기를 반복하였고, 진흙 인형이 살아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몸에 달라붙었다가 진흙에 파묻혀 피 대신에 흙 속에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버리는 멍청한 벼룩이 되었다.

         

       “너는 새우를 본 적이 있느냐? 꿈틀대는 장어를 본 적이 있느냐? 그것은 맑은 물에서도 종종 보이나 그 속을 알기 힘든 흙탕물 속에서 자주 등장하지 않느냐? 너는 그것을 유심히 관찰해보도록 하여라. 흙탕물 구덩이 속을 삽으로 퍼서 통에 옮겨 담고 그것을 유심히 관찰해보도록 하여라. 그리한다면 언젠가 가라앉았던 흙이 다시금 부유하기 시작하며 흙탕물을 만들게 될 것이니, 그때 확인해보면 틀림없이 새우와 장어가 있으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라.”

         

       투두둑.

         

       물기를 머금은 흙은 흙탕물 구덩이에서 퍼온 것과 같은 것이라.

       그리하여 진흙 인형의 몸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팔딱팔딱 뛰기 시작하였으며, 몸 곳곳에 큼지막한 구멍을 만들며 기어 나온 것들은 뱀처럼 꿈틀대었다. 그리고는 괴로움을 표현하기라도 하는 듯 하얀 점액을 내뿜으며 바닥을 칠하기 시작하였으니, 그 비린 냄새와 미끈거리는 느낌에 진흙 인형은 오염되기 시작하였다.

         

       “너는 썩은 고기를 본 적이 있느냐? 흙을 본 적이 있느냐? 하얀 구더기가 꿈틀거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시체의 진액과 시체의 조각을 먹어 통통해진 노란 구더기를 본 적이 있느냐? 그것은 살을 파먹으며 청소를 하는 것이지만, 그것들은 거기에서 태어나는 것이니. 구더기는 썩은 고기와 흙에 생명의 씨앗이 내려앉아서 생기는 것이로다.”

         

       그렇게 오염된 진흙 인형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산채로 썩어가는 것처럼 부서진 몸 곳곳에서 구더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 구더기는 진흙 인형이 마치 맛 좋은 식사라도 되는 것처럼 파먹기 시작하였다. 그것들은 자신이 먹는 것이 그저 흙임을 알지 못한 채 배가 터져버릴 때까지 먹어 치우겠다는 듯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는데, 그 새하얀 몸과 노란 몸이 꿈틀대는 모습이 마치 진흙 인형이 분칠이라도 한 듯 보였다.

         

       멀리서 볼 때는 분명히 그렇게 보일 것이다.

         

       다만 그것은 분칠을 한다 한들 사람이 될 수가 없어서.

         

       문명인으로서의 상식으로는 참으로 그러한 것이라서.

         

       투두두두둑.

         

       마침내 흉내를 그만두고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진흙 인형은 구더기와 벼룩, 새우와 장어들의 무리가 되어 그 자리에 흔적만을 남기게 되었으니.

       일찍이 이 자리에 있었던 그 신성모독자의 성질은 온데간데없어진 채, 미물로 분해가 되어버린 것이다….

         

       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완전히 사라질 수가 있겠는가?

       그 살을 파먹은 구더기가 있으니 그 고기와 피는 그들의 배 속에 있지 아니하던가?

       그것이 독을 품었다면 구더기 역시 독을 품고 있을 것이요, 그것이 약이 된다면 마찬가지로 구더기 또한 약을 품고 있는 것과 같음이니.

         

       아!

       구더기가 저주와 액을 품었다.

         

       “미물이 재액을 품었으니 이 어찌 사악한 일이 아니랴? 무릇 영혼이란 사람만 가지고 있는 것이니 벌레는 곧 물건이라. 그렇다면 이것들은 주물이나 다름이 없음이라.”

         

       그리고 그 구더기는 진성의 손짓을 따라 움직이니.

         

       저 파리의 새끼들을 부리는 이는 누구인가?

       저 불결하고 불길한 미물을 부리는 이는 과연 누구인가?

         

         

         

        * * *

         

         

       펑-!

       펑-!

       펑-!

         

       위에서 아래로.

       전등이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터진다.

         

       그것은 호텔의 최상층에서 점점 아래로, 아래로 빠르게 이어진다.

         

       “…무언가가.”

         

       무언가가.

         

       온다.

         

       “내려오고 있군.”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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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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