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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3

   르네는 한 손으로 얼굴을 받힌 채 가만 아서가 대답하는 것을 기다렸다.

   

   이런 그의 행동이나 표정은 평상시와 다를 것이 없었지만 아서는 이를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얼마 전 아서는 자신을 향하던 차디찬 눈을 보았다. 그로부터 채 며칠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마음의 정리를 했다고?

   

   아무리 형님이 뛰어난 인간이라 해도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난 항상 형님을 옆에서 봐왔다.

   

   이 분이 왕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를 안단 말이다!

   

   그런 분께서 자신이 평생토록 추구했던 목표를 잃은 것이다.

   

   좌절이 얼마나 커다랄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헌데 그 좌절을 하루 이틀만에 버릴 수 있다고?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 놈은 여전히 절망을 헤매고 있겠지. 반응하지 말고 들어. 눈치채지 못하게.

   

   눈치채지 못하게 하라고? 어려운 부탁을 하는 군. 나는 단 한 번도 형님께 제대로 된 거짓말을 쳐 본 일이 없는데 말이야.

   

   – 여기서 괜히 위로의 말을 전하면 가면 아래에 감추어진 적의가 드러날 거다. 그러니 여느 때처럼 대해라.

   

   여느 때처럼이라. 이 또한 어렵다. 난 대체 평소에 어떻게 형님을 대했을까.

   

   “아우야?”

   “루시 알른에 대해 알려달라 하셨지만 정확하게 무엇이 궁금하신 겁니까?”

   “남자아이들끼리 모이면 흔히 하는 이야기 같은 거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뭐에 관심이 있고.”

   

   좋아하는 것이라.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다른 이를 놀리는 일이다만 이건 형님께서 바라는 대답이 아니겠지.

   

   다음은 역시 던전에 대한 것이지만 이 또한 여성의 취미치고는 미묘해.

   

   아. 그러고 보면 그 녀석. 은근히 맛있는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지.

   

   “단 걸 좋아합니다. 대체 그 작은 몸 어디에 그만한 음식이 들어갈까 싶을만큼 식사를 즐기죠.”

   

   프레이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루시 알른도 많이 먹는 걸로는 어디 가서 꿇릴 사람이 아니다.

   

   자기 상체만한 파르페를 채 십 분도 걸리지 않고 해치우는 걸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이 나오지.

   

   “싫어하는 거라면 역시 예술 교단 쪽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여신의 환생이라 부르는 걸 들으니 질색을 하더군요.”

   

   사실 그건 루시 알른이 유난히 싫어한다기보다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꺼려 해야 하는 것이긴 하다.

   

   질색을 하며 짓밟고 매도를 하고 무시해도 좋아하기만 하는 이들은 저게 나랑 같은 인간이란 사실에 수치심을 느낄 지경이니까.

   

   “관심있는 것이라면 형님도 잘 아는 분야겠죠.”

   “던전말이냐?”

   “예. 그것보다 루시 알른이 관심 있어 할 분야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던전에 대해서라면 아카데미의 교수조차 한 수 접어주는 게 그녀니까요.”

   

   던전에 대한 루시 알른의 집착은 다소 비정상적인 수준이다.

   

   처음엔 그 집착이 그녀가 지닌 축복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을 했다만 최근엔 인과관계가 반대인 것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루시 알른이 던전을 너무나도 좋아하기에 주신께서 그런 축복을 준 게 분명하다고 말이다.

   

   “보석은?”

   “보석…말입니까? 예전에는 좋아했단 소문을 들었습니다만 최근엔 별 관심이 없는 듯 했습니다.”

   “화장품은?”

   “전혀요. 자신의 시녀가 오기 전까진 단 한 번도 화장을 한 적 없다고 단언할 정도이니 분명하죠.”

   “옷은?”

   “교복 아니면 갑옷의 선택지 밖에 없는 녀석입니다. 관심이 있을 리 없죠.”

   

   예전에 우리들의 옷을 디자인해준 걸 떠올리면 나름의 재능은 있는 게 분명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 그를 사용할 생각이 없으니 의미가 없지.

   

   생각해보면 그 녀석 다른 사람들을 놀릴 땐 자신의 외견을 잘 사용한다만 정작 자신의 외견에는 별 관심이 없지 않나?

   

   보통 그만한 외모를 지녔다면 신이 나서라도 꾸미려고 할 텐데 정작 그 녀석이 평소에 하는 일이라고는 죽어라고 무의 수련을 하는 것 뿐이니 원.

   

   “참 많이 변했군.”

   

   외견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안다면 피를 토할 것이라 생각하던 아서는 르네가 뱉은 말에 저도 모르게 눈을 치켜떴다.

   

   “과거 루시 알른과 대화하신 적이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 나는 1왕비님을 따라 사교계를 많이 돌아다녔거든. 사교계에 항시 참여하던 내가 어찌 안면이 없겠느냐.”

   

   허나 그런 것치고 루시 알른은 형님에 대해 무언가 기억하는 기색이 아니었는데?

   

   과거 문제아였던 루시 알른이라면 형님조차 잡초 취급했을 가능성이 있긴 하다만 그럴 리는 없어. 형님의 어투엔 그리움과 배신감이 묻어나오고 있단 말이다.

   

   “자세한 사정이 궁금하더냐?”

   “…약간은요.”

   “그럼 우리 내기를 하자꾸나. 네가 이기면 궁금해하는 것을 알려줄 것이고, 네가 진다면 내게 협조를 해줘야겠다.”

   

   내기라는 단어에 아서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는 단 한 번도 르네를 이겨 본 적이 없었다.

   

   단순한 경험의 문제가 아니었다. 르네는 아서에게만 익숙한 것에도 순식간에 적응해선 가뿐히 그를 박살내버렸으니까.

   

   “요정들의 여왕께서 내게 충고를 하더군. 주변인들에게 무작정 협조해달라 부탁했다간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실로 불경한 소리였지만 아서는 차마 농담일 것이라 말하지 못했다.

   

   그나마 이성적일 성녀님마저도 교회를 통해 압박을 넣겠다고 말할 지경이니 정신을 놓아버린 다른 이들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지.

   

   “내기의 주제는?”

   “오랜만에 대련이나 한 번 해보자꾸나.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 너와 한 번 맞부딪히고 싶었다.”

   

   *

   

   가라드의 성을 공략한 다음 날. 나는 베네딕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하루하루가 아깝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가라드의 성에서 권능을 펼치다 다시 병약루시가 되어버렸는지라.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베네딕의 마음이라도 풀어주기라도 하는 게 낫지.

   

   “허접 에린. 바보파파같은 거랑 노는데 이렇게 힘을 줘야 해?”

   

   거울 너머에 비친 나는 언젠가 변태 사도에게 받았던 검은 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달에서 내려 온 여신이라 그래도 고갤 끄덕일 것 같네. 에린의 화장실력이 더 늘어난 덕분이려나.

   

   “아가씨께선 최근 대륙 전체에 명성을 떨치고 계시니까요. 왕국의 수도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 갈 땐 항상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굳이?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다른 추녀들보다 훨씬 예쁘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런 모습의 아가씨는 질투마저 허락하지 않을 만큼 압도적이니까요.”

   

   어차피 질투할 사람들은 뭘 보더라도 질투하지 않나?

   

   – 루시 너무 예뻐!

   – 루시 최고!

   – 여왕님보다 멋져!

   – 야. 그건.

   – 맞지 않아?

   – 그럴지도.

   

   뭐. 이미 꾸민 걸 지우는 것도 아까우니 이대로 나가겠지만.

   

   <허어. 정말 아름답긴 하구나. 조금만 더 성숙했더라면 최선을 다해 말을 걸어봤을 것이야.>

   <제발 체면 좀 챙겨라. 수백살 넘게 처먹은 할배 놈아.>

   <챙기고 있지 않으냐! 손녀 보는 것처럼 칭찬을 해줬거늘!>

   

   할아버지와 가라드가 투닥거리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방 바깥으로 나왔더니 어제보다도 더 신경을 쓴 베네딕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오우거가 억지로 정장을 입혀진 듯한 모습에 웃음을 흘리던 난 문득 베네딕이 날 제대로 못 보는 걸 확인하고는 입술을 끌어올렸다.

   

   “바아보 파파.”

   “왜. 왜 그러니. 루시?”

   “목 근육이 석화되기라도 한 거야? 왜 나 안 봐?”

   “자. 잠을 잘못 자서 담이 온 것 같구나.”

   “그으래?”

   

   그런 변명을 할 거면 눈동자만 흘깃거리는 걸 멈춰야 하지 않을까.

   

   흐응. 가라드한테 배움을 얻어서 그런 걸까. 진짜 약점이 잘 보이네. 이걸 어떻게 가지고 놀아야 할지에 대한 것도 짐작이 가.

   

   “히약!?”

   “무슨 일이냐. 루시! 리나님이 또 무언가를!”

   

   일부러 비명을 질렀더니 베네딕이 순식간에 고갤 돌렸다. 내가 장난을 쳤다는 걸 뒤늦게 눈치챈 그가 다시 고갤 돌렸지만 그런다고 방금 전 일이 없던 게 되는 건 아니었다.

   

   “담 걸린 거 아니었어?”

   “그. 그게 말이다.”

   “흐으응. 바보파파가 어떤 못된 상상을 했길래 거짓말까지 한 걸까? 나 너무 궁금해!”

   

   알려달라는 말과 함께 계속 달라 붙었더니 베네딕이 식은 땀을 줄줄 흘리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천사 같은 우리 딸이 하늘로 올라가버리지 않을까 걱정했단다!”

   

   자기가 징그러운 말을 하고서 부끄러워진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베네딕의 모습에 헛웃음이 샜다.

   

   놀리려면 얼마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쯤하자. 자꾸 장난을 쳤다간 수도에 가는 것보다 먼저 베네딕이 부서질 것 같으니까.

   

   <부럽구나. 나도 이런 딸을 가지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동의한다.>

   

   할배들의 주책을 무시한 나는 폴짝 뛰어서 베네딕의 손가락을 붙잡은 후 그를 끌고서 저택 바깥으로 나왔다.

   

   기왕 놀기로 했으니 제대로 즐겨야지! 우선은 수도의 맛집부터 가는 거야!

   

   아카데미에 있는 레스토랑보다 격이 높다는 그 곳에선 어떤 음식이 나올까! 완전 기대 돼!

   

   순간이동의 마법을 타고서 왕국에 도착한 나는 멀미에 휘청거리다 베네딕의 어깨에 걸터앉았다.

   

   위에서 보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게 훤히 보이네.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난 이렇게 관심을 받는 상황이 싫었다.

   

   사람들의 시선에는 대부분 혐오나 증오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묻어나왔으니까.

   

   지금도 그런 감정들이 아예 사라졌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 비율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 들어있었다.

   

   본래 혐오가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감탄이나 놀람이나 신기함이나 얼빠여우와 닮은 징그러움이나 경건함 같은 것이었다.

   

   이 또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예전의 부정적인 감정에 비해선 훨씬 더 나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라리 욕을 해달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이것도 포용의 권능을 얻은 영향이려나.

   

   그리 생각을 하며 느긋이 나아가던 중 내 머리카락 안쪽에 숨어있던 요정들이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뭔데. 주접이라면 이미 잔뜩 떨었잖아.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어?

   

   – 루시! 안 쪽!

   – 위험해!

   – 난리야!

   

   안 쪽? 위험하다고? 뭐를 자세히 말해줘야 할 것 아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요정들이 괜히 이런 말을 꺼내지 않을 거란 생각에 그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 마주하게 된 건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아서의 모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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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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