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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3

       

        

        

        

        

        

        

        

       “작년에 봤던 친구들도 있고, 뉴페이스도 있군. 선두를 달리고 있는 건 작년에도 봤던 친구 같지만. 이제 몇십 분 후 저 아이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면 되겠나?”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군요.”

        

        

        

        머리, 목, 허리와 팔, 다리와 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착용해보지 않은 전자기기들을 옷으로 싸맨 신체 곳곳에 장착하고, 의자에 앉아 캘리브레이션이 끝날 때까지 대기한다. 현재 시각은 오후 6시 37분, 저녁이 빠른 겨울 특성 상 진즉 해가 진 상태였다.

        

        체형 분석이 완료될 때까지는 가만히 앉아서 대기하는 것이 필수였으나, 그로서는 그닥 심심한 상황은 아니었다. 헨리의 눈 앞에 보이는 영상 때문이었다 – 그리고 모두가 짐작했다시피, 화면에서는 파이널 챔피언십의 마지막 경기 영상이 출력되고 있었다.

        

        본래의 헨리였더라면 그렇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지금의 그는 무려 6년간 전쟁을 치르며 온갖 군사적인 지식에 숙달된 옆 세계의 자신과 완전히 동일한 양의 지식을 머릿속에 지닌 상태. 실제로 교전을 치르는 오퍼레이터보다는 못할지언정 상황을 읽을 정도의 능력은 갖췄단 소리였다.

        

        

        보좌관들이 바쁘게 테이블을 세팅하고, 이카루스의 현장통제인력들과 바쁘게 의견과 상황을 조율하는 와중, 끊임없이 변동하던 예상 경기 종료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술의 발전이 편의성을 부른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실제로 체감하니 상당히 좋군…이 부분이 더 발전하게 된다면, 앞으로는 비행기를 타고 직접 날아가 회의를 하거나 하는 번거로운 일은 좀 줄어들지도 모르겠어.”

        

       “그리 된다면 백악관의 토템으로만 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비중을 잘 맞춰야만 하는 게 일일세. 밖에 나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 밖으로 나가는 걸 막는 행위와 동치가 되면 안 되겠지.”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그로서는 간혹 존재하는 가혹할 정도의 해외 순방 일정 등에 시간과 컨디션을 둘 다 쓰는 일이 없다는 점만으로도 감회가 새롭…지는 않았다.

        

        애시당초 다른 세계에서 2선 임기 말에 돌입한 헨리 역시도 대통령에 오른 후 해외에 나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기억나는 거라곤 오로지 센트럴 파크의 그레이 하우스에서 도장을 찍고, 온갖 브리핑을 받으며, 판단을 내리는 기계가 되어 행동하던 것뿐.

        

        실로 극단적이기 짝이 없는 기억이다.

        

        

        그리 생각하며 의자에 몸을 깊게 기대던 와중 캘리브레이션이 완료된다.

        

        미리 그의 옆에서 대기 중이었던 보좌 인원이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이카루스와의 접속 조율 완료, 휴머노이드 준비되었습니다. 전송 시작합니다. 잠시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각하. 긴급 상황이라고 판단될 시 언제든지 접속을 종료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되고 있으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러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그 순간 헨리가 앉아있던 의자가 일종의 침대 비스무리한 것으로 바뀌고, 그와 동시에 그의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흡사 이성을 상실하지 않은 채 잠에 빠져드는 듯한 감각이었으나, 몇 초 가량의 암흑이 흘러가고, 그가 다시 눈을 뜬 순간,

        

        

        

       “─의식 이동에 문제 없음. 휴머노이드 기동 확인, 홀로그램 식별됨. 정신이 드십니까, 대통령 각하?”

        

       “…아까까지 보던 게임하는 친구들은 죄다 아바타가 휘황찬란하던 걸로 기억하네만, 여기는 안 그렇구만. 좀 더 위엄있게 바꿔보게나.”

        

       “그, 그건.”

        

       “예끼, 농담일세. 아무튼 실제로 겪는 건 처음이군. 생각했던 것보다도 감각이 생경해. 좀 움직여봐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맨해튼으로부터 직선 거리로 대략 400km 가량 떨어진 로체스터 인근에 위치한 다크 존 타운, 단 한 번 눈을 감았다 뜬 순간 헨리는 그곳에 있었다.

        

        생각보다도 멋대로 움직이는 팔다리. 이상하리만치 넘치는 힘. 그러한 감각의 차이를 통해 그는 현재 그에게 발생한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헨리의 신체 동작성이 적용되지 않은 휴머노이드 바디가 디폴트 값으로 움직인 탓에 힘이 넘치는 것마냥 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감각의 혼란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제멋대로 삐그덕거리던 몸이 점차 안정을 찾더니 기존의 중후함을 되찾은 것이었다.

        

        

        나지막하게 웃은 그는 이윽고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경기가 끝나기까지 걸릴지도 모르는 예상 시간까지 그리 멀지 않은 시점. 그와 동시에 그의 눈 앞에 펼쳐진 UI가 온갖 정보를 띄워올리기 시작했다. 가령 간단한 연설문, 이동 동선 표시, 그 외에도 여러가지.

        

        1분 가량이 흘러 발성 모듈까지 완벽하게 조정한 그가 의자에 털썩 앉으며 덧붙였다.

        

        

        

       “갑작스럽게 생각났네만, 만약 이 기체가 해킹이라도 당했다간 꽤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지 않겠나. 가령 아까 말했던 것처럼 외형이 바뀌거나, 혹은 기체가 오작동한다거나 말일세.”

        

       “해킹 위협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럴 거라고 믿고 있네.”

        

        

        

        후우 하고 숨을 내뱉은 –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 그가 다시금 의자에서 일어났다.

        

        실제로 휴머노이드에 접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나, 그는 몇 가지 손동작과 시선의 움직임만으로 순식간에 특정 지점까지 향하는 길을 찾아낸다. 이 또한 다른 세계의 헨리와 동기화되며 알게 된 지식이었다. 암살 위협에 대비해 휴머노이드 조종술을 익혀놓은 결과였단 소리였다.

        

        단적인 예로, 주변에 있는 이들은 그가 그리 행동하더라도 일절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 발언에는 놀라고 말았다.

        

        

        

       “경기 종료까지 15분 전이라, 제법 여유롭군. 잠시 산책이라도 좀 다녀올 수 있겠나?”

        

       “…건물 외부로 나가는 것은 조금 우려스렵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이 건물 안에 있을 테니.”

        

        

        

        앞뒤가 거의 잘려나간 말이었지만, 이카루스 직원들은 일절 놀라지 않는다. 그가 무슨 뜻으로 그리 말했는지를 진즉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몸을 다루는 것마냥 익숙하게 방문을 잡고 나갔고,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길을 따라 스타디움 곳곳에 숨겨져있는 비밀 엘리베이터를 순식간에 찾아내 그것을 통해 이동을 시작했다. 이 또한 UI가 루트를 표시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는 대략 6층 가량 위로 상승하였고, 문이 열리며 화사한 복도가 나타난다. 그러나 그에 비례하여 사람은 없었다. 당연했다. 이곳은 관계자가 아니라면 들어올 수 없는 선수 대기실 및 라운지로 이어지는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건물을 마치 제집처럼 활보하던 그의 귓전으로 들려오는 소음-함성의 크기가 점차 커져간다.

        

        그가 향하는 방향의 끝에는 라운지가 있었고, 라운지는 스타디움의 중심인 경기장에 있었다 – 벽면에 붙어있는 한국 국기를 힐끔 둘러본 헨리가 슬그머니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시야 공유를 통해 그것을 보고 있는 인원 전원은 헨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아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철컥!

        

        

        

       “엥, 들어올 사람이 없는-푸우우우웁!”

        

       “…와우, 이런 세상에나.”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셨…아니, 저 분 분명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누군가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시고 있던 음료수를 비말의 형태로 전환하여 전방을 향해 세차게 뿜어내고.

        

        누군가는 얼이 나간 것마냥 입을 벌리고.

        

        누군가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를 구경한다.

        

        그와 동시에 유진의 등 뒤를 힘겹게 부유하던 드론캠 한 대가 마치 고장난 것처럼 지상으로 뚝 떨어지고, 유진은 꼬리로 그것을 간신히 받아낸다. 헨리는 그것이 어째서 그런 건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기체에 자체적으로 내장된 재머 기능이 동작하여 방송 송출을 막아버린 것이었다.

        

        흔하게 있는 일이었다. 당장 의전 차량에도 ECM 및 재밍 기능이 필수적으로 달리는 판에 휴머노이드라고 그런 게 없을까.

        

        

        하지만 그런 건 그닥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얼탱이가 반쯤 나간 표정을 짓는 이들을 보며 헨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 반응들이 보고 싶었네! 몰래 온 보람이 있군!”

        

       “…각하, 제발 좀….”

        

       “너무 걱정하지들 말게. 시상식 전에 잠깐 들렸을 뿐이니.”

        

        

        

        ‘그게 문제가 아니잖은가’라는 강렬한 눈빛이 레이저가 되어 헨리를 지졌지만, 그는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유명한 직업인 정치인들 중에서도 가장 윗단계의 위치를 밟은 사람이었다.

        

        그닥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가 입을 열어 유진에게 덧붙였다.

        

        대답은 상어가 했지만.

        

        

        

       “훌륭한 친구들을 키워냈더군. 저런 친구들이 군에 많으면 마음이 든든하겠어.”

        

       “어머, 저희로는 부족하다는 뜻인가요?”

        

       “그럴 리가 있겠나. 아무튼 놀라게 해서 미안하네. 시상식 준비를 해야 하니 이쯤 돌아가지. 귀국하기 전까지 즐겁게 놀다 가게.”

        

        

        

        그와 동시에 헨리는 방에서 빠져나갔다.

        

        고작해야 1분 가량도 안 될 정도의 짧지만 강렬하기 짝이 없는 폭풍. 평소 그나마 시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상대가 누군지를 그제서야 파악하고는 ‘내가 뭘 본 거지?’라는 표정으로 눈을 비비적거렸고,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몇 명은 필사적으로 딴청을 부렸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뒤에서 은근슬쩍 들려오는 한 마디.

        

        

        

       “…유진 씨. 설마 사적으로 저 분을 아는 건 아니시죠…?”

        

       “여러 사정이 있었지요. 군에 있었을 땐 상원의원으로서 알게 되긴 했는데…갑자기 방송이 먹통이 된 이유가 있었군요.”

        

        

        

        완전히 꺼져버린 드론캠을 다시 재부팅시키며 유진은 중얼거렸다.

        

        실로 골치아픈 양반이다-그리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파이널 챔피언십의 마지막 경기 1등은 미카엘이었다.

        

        

        

        

        

        

        

        

        

        

        

        

        

        

        

        

        

        

        

        

        

        

       “우와아아아아, 드디어, 드디어 끝났다아아-!”

        

       “고생했어요, 다들. 미카엘은 처음으로 5위에 올랐고, 하모니는 4등. 다이스는 1등…정말이지 빛나는 성과로군요. 작년 이상의 최상위권 독식이라, 타국 시청자 분들이 아주 분개하겠어요.”

        

        

        

       -드디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이스우승!다이스우승!다이스우승!다이스우승!다이스우승!다이스우승!다이스우승!다이스우승!다이스우승!다이스우승!

       -코이츠 드디어 영고라인에서 벗어난wwww

       -와 무슨 1위 4위 5위 9위 14위를 먹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나라선수들 피 거꾸로 솟는 소리 여기까지들린다 ㅋㅋ

        

        

        

        다이스, 드디어 파이널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두다.

        

        다른 날은 경기가 종료됨과 동시에 마치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이 종료된 것마냥 불이 일제히 켜졌다면, 오늘은 완전히 달랐다. 천장이 열림과 동시에 무지막지한 폭죽 세례가 시작되고, 스타디움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거대한 홀로그램 패널이 순위를 대문짝만하게 보여준다.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천장의 거대한 유리 차단막 덕분에 추위가 유입되지는 않는단 것일까.

        

        아무튼 작년에는 4위, 실질적 2위를 거머쥐었던 다이스는 이번 년도에는 보란듯이 1등을 거머쥐었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미리 예상이라도 했던 것마냥 우리가 있던 라운지로 뛰어들었다.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까지는 운동으로 무슨 발레인지 뭔지를 했다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쓸데없이 큰 도약력으로 내 품에 쏙 안겼다.

        

        

        

       “보통 1등을 하면 울든데, 다이스는 딱히 그런 건 없네요.”

        

       “제가 울 정도로 약해보인다고 말하려는 건…아닌 것 같고. 뭐어, 작년에 비하면 훨씬 상황이 나았으니까요. 그땐 진짜…그래도 이번 년도는 느닷없이 발현자 만나는 일은 없었단 말이죠. 그래서 긴장 좀 덜 하고 무난하게 덤볐달까.”

        

       “훌륭해요.”

        

        

        

        아이고 잘했다.

        

        반쯤 기절한 채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운 하모니와 각자 의자, 소파 등등에 드러누운 미카엘, 갬빗, 서밋 등등. 당연하겠지만 소개한 순서대로 표정이 서서히 안 좋아졌다. 열심히 했는데 조금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었던 거겠지.

        

        다시 말해 미카엘은 아주 함박웃음이었다는 소리였다.

        

        다들 한 마디씩 격려를 해주고 싶었지만, 이 이상의 디브리핑은 그닥 의미가 없겠지. 나는 환히 웃으며 박수를 쳤고, 그에 맞춰 로렌티나와 올리비아, 카토와 하모니의 지인들 역시도 열광적으로 박수 세례를 퍼부었다.

        

        특히 현아는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아이구, 아이구우우-! 동네 사람들! 이리 와서 이것 좀 봐드라요! 우리 민아가 파이널 챔피언십에 나가서 무려 4등을 따왔스요! 트리키의 자랑! 증말 가슴이 웅장해진다아-!”

        

       “아이, 시끄러워! 내 얼굴에 대고 소리치면 어떡해!”

        

       “꾸엑…!”

        

        

        

       -다른의미로 미친년이 여깄었네 ㅋㅋㅋ

       -얘는 그냥 광년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우 얘는 그냥 나올때마다 시끄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현아 the 수치심을 모르는 자…진짜 정신나갈거같애

       -어릴때 웅변학원다녔다더니 그실력을 여따써먹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히 하모니 선에서 컷당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아무튼, 우리가 있는 곳은 라운지였고, 하늘에서는 여전히 폭죽이 터지며, 플래시 페이퍼로 만든 종이로 만든 꽃가루 역시 사방으로 잔뜩 흩뿌려져, 마치 2주일 가량 일찍 당겨진 볼드랍 이벤트를 보는 것만 같았다.

        

        바닥에 떨어지기 전 미리 설치되어있던 레이저 차폐막에 의해 플래시 페이퍼가 신나게 불타오르고, 그 사이를 청각 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건드리는 웅장하면서도 노스탤지어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선율이 휘돌아 나간다.

        

        휘몰아치는 기쁨을 실컷 만끽하던 선수들의 입에서 점차 말이 사라진다.

        

        12월 20일. 파이널 챔피언십의 종료일이자, 2036년의 마지막 날까지 고작해야 11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으니까.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선수들에게 일괄적으로 지급된 단말기가 일제히 울림과 동시에, 중앙에서부터 5명이 설 수 있는 낮은 단상이 올라왔다.

        

        올라설 수 있는 인원은 총 다섯. 그 중에 세 명이 한국 출신이라, 이걸 감개무량하다고 해야 하나. 아마 그렇겠지. 내가 손수 가르치고, 이제는 내 도움을 그리 필요로 하지 않는…반쯤 졸업한 애들이 전세계적 대회에 나가 상을 타왔으니까.

        

        아마 진동이 울린 건…슬슬 파이널 챔피언십의 막바지 이벤트인 시상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수상 소감 때 ‘유진 씨 사랑해요!’ 하고 말해도 괜찮죠?”

        

       “그거 말하는 순간 먼저 귀국해버릴 거예요.”

        

       “우왁, 여태까지 들어본 협박 중에서 제일 이상한데 또 제일 무서워…!”

        

        

        

        뭐어, 맞춤형 협박이니까.

        

        아무튼 그 말을 남긴 채 다섯 명의 인원들은 왔던 길로 스르륵 사라졌다. 1등부터 5등까지만 가는 거라면 이 자리에 있는 5명 중 2명은 남아있어도 됐지만, 이번 년도부터는 마지막으로 선수-단체사진 촬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폭탄은 과연 언제쯤 터질까. 그리 생각하며 대략 몇 분 정도 기다리자, 슬슬 분위기가 정리되며 사회자가 등장한다. 열광적으로 터져나왔던 박수와 환호성이 잠시나마 멈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단순한 도움닫기에 불과했다.

        

        다섯 명의 수상자들이 중앙으로 걸어나온 순간,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굉음이 터져나왔다.

        

        

        

       ───!

        

        

        

       “어우.”

        

       “라운지가 흔들릴 정도라니, 무셔라….”

        

       “뭐어, 그럴 수밖에요.”

        

        

        

        그러나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이 자리에 있는 5만 명의 사람들 중 오직 우리만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알고 있었고, 모두가 각자 묘한 표정을 지으며 언제쯤 ‘그 일’이 터질지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럼 지금부터 메달 수여식이 있겠습니다만…사전에 안내드렸던 것과는 다르게 변경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 미리 말씀드리겠지만, 최대한 평소와 같이 자연스러운 반응을 부탁드립니다.]

        

        

        

       -오 뭐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마 비얌이 직접 목에 메달걸어주냐? ㅋㅋ

       -그렇다기엔 얘 라운지에서 나가지를 않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임?대체뭐임?뭐임?대체뭐임?뭐임?대체뭐임?뭐임?대체뭐임?뭐임?대체뭐임?뭐임?대체뭐임?뭐임?대체뭐임?뭐임?대체뭐임?

       -큰 거 온 다 ! ! ! ! ! ! !

        

        

        

        그리고 그 순간, 저 뒷면의 문이 열리더니 – 깔끔한 흑청색 정장을 갖춰입은 날카로운 인상의 백발 미중년-미노년 사이의 누군가가 걸어온다.

        

        확신에 찬 발걸음, 정장 라펠에 달린 미국 국기 모양의 뱃지. 그 자리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한 노년을 바라보고, 이내 깨달으며, 경악이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입에 손을 갖다댄다.

        

        합중국의 선장.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의 정부수반.

        

        2037년을 기해 미국의 새 국가원수가 될 남자.

        

        헨리 미카엘 브레이튼이 중앙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내년 1월 20일을 기해 새로이 제50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할 예정이신 당선인, 헨리 미카엘 브레이튼 씨가 직접 수상자들에게 메달을 수여할 예정입니다.]

        

        

        

       -????????????????????????????????????

       -아니뭐라구요???????????????????????????

       -너 무 큰 거 왔 다 ! ! ! ! !

       -시발 너무크잖아이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연하겠지만, 그 순간 연단에 서 있던 다섯 명 전원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꼴을 보면서, 나는 키득댈 뿐이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요.”

        

       “…그 말, 쟤네들 앞에서 할 수 있어요?”

        

        

        

        그건…몰?루?

        

        목각인형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으로 메달을 수여받는 다섯 명을 뒤로 한 채, 얼마 남지 않은 2036년의 12월이 또 하루 저물고 있었다.

        

        이번 년도도 실로 즐거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큰거온다(너무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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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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