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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4

        

         

       시간이 뒤틀리기 전 미국은 그야말로 마경이라 할만한 동네라 할 수 있었다.

       수많은 미치광이와 수많은 사상이 줄지어 나타나기를 반복하니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그것들이 피어난 토양은 일찍이 역사상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나라.

       재배하는 작물로 전 세계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으며, 자원이 풍부하다 못해 넘친다.

       사람 역시 넘쳐나고, 미국에서 이름을 떨치고 부를 얻고자 몰려드는 수많은 인재까지 있다.

         

       이 질 좋은 토양에서 피어나는 것이 어찌 부실할 수 있겠는가?

         

       자라나는 것이 잡초라고 한들 그것은 사람의 키를 뛰어넘을 길이가 될 것이요, 생태계를 파괴하는 나무가 자라난다고 한다면 그것은 능히 숲을 이룰 정도일 것이 분명하였으니.

         

       회귀 전의 미국 역시 그러하였다.

         

       식량을 불태우고 다니는 미치광이, 기계의 지배 아래 평화를 이룩할 것이라며 소리치고 다니는 마법사, 같은 인종을 모아 독립국을 만들겠다는 무인, 미국 전역의 철도를 점거한 강도 집단, 고속도로에 끔찍한 함정들을 설치해 제대로 이용할 수 없게 만든 연금술사 모임, 위성의 감시를 피해야 한다면서 지하로 숨어든 뒤 끊임없이 설탕 로켓을 쏴서 감시위성을 격추하던 과학자들….

         

       이게 개판이 아니라면 무엇이 개판이겠는가?

         

       하지만 이런 개판 속에서도 이득을 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중 하나가 바로 용병들이었다.

         

       진성 역시 용병의 일원으로 이 개판 속에서 끊임없이 이득을 얻었다.

       대부분은 돈으로, 때로는 탐나는 주술 기록이나 주물로, 혹은 주술에 사용할 재료나 제물을 대가로.

       그렇게 진성은 미국에서 활동했었다.

         

       언제쯤이었던가.

         

       아마 진성이 잠깐 뉴욕이었던 곳에 머무르던 때였을 것이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다.

       그때의 뉴욕은 곳곳이 부서지고 새로 지어지면서 회귀 전의 뉴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판자와 콘크리트로 골목골목이 미로처럼 변하고, 고층 건물들은 무너지거나 형체만 남거나-혹은 개조를 거듭해서 기괴한 형태의 성채를 연상하게 만드는 모습이 되기도 하였다. 물론 제 형체를 남긴 것들도 많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기괴하게 변해버린 시점에서, 그것들만 멀쩡하다 한들 뉴욕이 예전의 모습과 같다고 표현하기는 무리가 있겠지.

         

       거기에 세계 3차대전 이후 가속화된 침수 속도로 인해 뉴욕 곳곳은 물에 잠겨있었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재해로 입은 피해를 복구하지 못해 폐허로 변해버린 곳도 여럿이 있기까지 했다.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이라고 불렸던 지역으로 가보면 물이 찰랑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고, 퀸스(Queens) 지역으로 가보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건지 아니면 재해 때문에 생긴 건지 모를 수많은 싱크홀이 아가리를 쩍 벌린 채 사람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진성은 그렇게 변해버린 곳에서 잠시 머무르고 있었다.

         

       망해버린 뉴욕 곳곳에는 아메리칸 레프트(American Left)라 불리는 미국 특유의 중도좌파 세력들을 고문하고 죽인 뒤 십자가에 매단 것이 보이고 있었는데, 그 시체들은 하나같이 피가 다 빠진 채로 십자가에 매달린 채 바싹 말려져서- 멀리서 보기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조각을 보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그러한 조각들이 수없이 건물의 옥상들에서, 건물의 외벽에 보이고 있었더란다.

         

       진성은 그런 십자가들을 지나치며 뉴욕을 거닐었다.

       중간중간 총을 든 강도들이 진성을 쏴 죽인 뒤 금품을 가져가려 하였지만, 그의 주술에 의해 총이 폭발하며 그들의 손을 날려버리기도 했고, 그렇게 불구가 되어 앞으로의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 강도들을 양분으로 삼아 수많은 벌레를 부화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부화시킨 벌레들은 소중한 무기이자 방패이며, 화폐가 되었다.

       굶주린 이들은 진성이 끌고 다니는 곤충이라도 먹기를 간절히 바랐고, 그들은 싱싱한데다가 오염되지 않은 곤충들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게다가 진성이 바라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닌, 그들이 얼마든지 줄 수 있는 것들이기까지 하였으니-

       진성이 끌고 다니는 벌레의 무리는 그렇게 망해버린 뉴욕에서 훌륭한 화폐이자 식량이 되었다.

         

       나중에 가서는 진성에게 구매한 벌레들을 가루로 만든 뒤 톱밥과 섞어서 빵처럼 만든 뒤 파는 사람도 생길 정도였으며, 더 많은 벌레를 얻기 위해서 범죄자나 갱 같은 이들을 잡아다가 진성에게 바치는 이들까지 생겨나기까지 했다.

       인간의 적응력이라는 것은 이토록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진성은 특이한 이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자신들을 도살 탑(Butchery Tower)에서 왔다고 소개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고층 건물이 모여있는 거리 하나를 점거하고는 그곳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도축 기술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만든 이 집단은 단체의 이름처럼 도축하며 먹고 살고 있었는데- ‘도축’이라는 이름이 들어있는 것에서 미루어 보듯, 이들은 도축 의뢰받거나 도축한 고기를 거래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얼핏 들으면 참으로 건전하게 살아가는 이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살인강도를 비롯한 수많은 범죄자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자기 기술을 사용해서 지역 사람들과 더불어서 사는 이들이라니.

       얼핏 들으면 선량한 시민이요, 이 지역에 꼭 필요한 이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었다.

         

       도축.

       고기.

         

       그래, 좋다.

       다 좋은데….

         

       고기는커녕 식물 단백질조차 섭취하기 힘들어 벌레를 주워 먹는 판국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체 도축할 동물은 어디서 나는 것이며, 도축한 고기는 도대체 어떤 동물에게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대체 도축업자들이 고층 건물 여러 개를 점거하고, 건물 꼭대기에서부터 지하까지 일직선으로 뚫어놓은 통로로 뼈 같은 쓸모없는 부산물을 쉴 새 없이 떨구며- 그들이 점거한 거리에서 끔찍한 피비린내와 고기 썩는 냄새가 가시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동물’들이 대체 어디서 날 수 있었겠는가?

         

       뻔한 이야기였다.

         

       ‘사람.’

         

       망해가는 도시에서 넘쳐나는 고기.

       넘쳐나다 못해 풍족한- 약탈하면 한둘은 반드시 잡을 수 있는 매우 흔한 동물.

         

       그 동물은 인간밖에 없었다.

         

       그래.

       도살 탑의 미치광이들은 사람을 잡아다가 짐승처럼 도축하고, 그 고기를 먹고, 남는 고기를 굶주린 사람들에게 팔아넘기면서 이득을 보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진성에게 찾아온 이유는 바로 진성이 그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진성에게 당장 벌레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식량으로 주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면 우리를 적으로 돌리게 될 것이라고 협박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협박을 남기고 간 뒤에는 벌레를 먹는 이들을 강제로 끌고 가거나 죽이는 행위를 반복하며 진성과 얽히지 못하도록 하기까지 했다.

         

       진성은 그러한 모습을 보고는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 대응이란 용병을 하던 시기에 배웠던 것.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제 목숨 하나만 믿고 돈을 벌고 다니는 용병이 시비에 대응하는 방법이라는 것은 온건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세계 3차 대전이 발발해 전 세계가 개판이 되어버린 그때는 더더욱 그러하였다.

         

       그렇게 진성은 도살 탑을 모조리 전멸시켰다.

       그 과정에서 진성은 이 도살 탑의 미치광이들이 왜 이런 미친 짓을 하였는지 궁금하여 그들을 조사해보기도 하였는데, 이들 대부분이 쿠루(Kuru)병에 걸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성은 처음에는 이 쿠루병이 식인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전염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 도살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기록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들이 식인하면서 쿠루병에 걸린 것은 맞았는데….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서 사람을 먹은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식인했다는 기록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목적이란 힘을 얻고, 집단의 결속력을 높이기 위함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방법이, 주술과 관련이 있었다.

         

       아니.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술인 척하는 무언가와 관련이 있었다.

       주술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효능도 가지지 않는 잡스러운 미신에 불과한 것.

       하지만 망해버린 곳에서 윤리와 도덕을 땅에 버린 이가 한 번쯤은 현혹될만한 바로 그러한 혹세무민의 방법.

         

       『 포레의 영혼 결속 주술 』

         

       그러한 이름으로 쓰인 기록은 아무런 효과도 없으면서도 주술의 탈을 쓰고, 그렇게 도축업자들을 미쳐버리게 만든 것이었다.

         

       진성은 감히 어떤 작자가 주술로 사기를 치면서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나도록 하였는가 싶어 분노하였었고, 이 기록을 쓴 이를 찾아서 죽이기 위해 위치를 추적하는 주술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기록을 쓴 작자는 이미 죽은 뒤였다.

       정보를 모아본 결과, 실제 주술을 사용하던 이는 맞기는 했는데- 말년에 미쳐서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니다가 화산에 몸을 던져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듣기로는 폴리아후(Pol’iahu) 여신의 힘을 빌려 화산을 진정시키는 주술 의식을 행한 뒤 자신을 제물로 바쳤다고 하는데…. 그 주술 의식의 사진 자료를 확인한 결과, 실제 주술 의식이 아니라 엉터리 그 자체였다.

         

       그래.

       그렇게 미쳐버린 주술사 하나가 허무하게 세상에서 사라졌었다.

         

       뭐….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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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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