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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5

   베네딕의 폭주에 의해 상황이 흐지부지 된 후 나는 내가 거한 착각에 빠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단순한 대련의 도중이었다고!?

   

   나는 1왕자가 질투심에 폭주해서 아서를 조져놓으려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게임 스토리 속에 그런 게 있었단 말야! 대련의 형식 속에서 상대방을 재기불능으로 만드는 시나리오가!

   

   요정들이 유난을 떤 것도 있고 해서 피를 줄줄 흘리는 아서를 보자마자 그게 떠올랐다고!

   

   그래서 뒷일 따윈 생각하지 않고 1왕자 쪽에 가서 되는 대로 말을 내뱉은 거였는데 사실 1왕자는 아무런 잘못도 한 게 없었다니!

   

   “무능왕자님. 개허접이라 처발린 주제에 설명 하나 제대로 못 하시나요?”

   “…너를 말리지 못한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말이다. 너도 너무 성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냐?”

   “그치만 말이죠. 왕자님은 제 장난감이라고요? 다른 멍청이가 갖고 노는 걸 보면 화가 날 수밖에 없잖아요?”

   

   친해지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아서는 내게 있어 다른 친구들만큼이 소중한 사람이다.

   

   그런 인간이 꺼림칙하고 음습한데다 자기가 말 한 번 걸면 여자가 다 넘어오는 줄 아는 자의식 과잉 환자한테 얻어맞고 있는데 어떻게 가만 있어?

   

   당연히 저 새끼만큼은 조지고 말겠단 생각으로 달려들지.

   

   하아아.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지금 내가 병약 루시라서 다행이야. 몸이 멀쩡했으면 바로 메이스 들고 달려들었을 테니까.

   

   느릿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나는 귀를 붉게 물들인 채 창가 쪽으로 고갤 돌린 아서를 발견했다.

   

   “장난감 취급 받은 게 그렇게 기쁘셨나요?”

   “아. 아니 난.”

   “하아아. 이 나라의 미래가 걱정이네요. 여자애의 도구가 되고 싶어하는 마조변태가 왕자라니.”

   “그런 게 아니다! 이 빌어먹을 꼬맹아!”

   

   잔뜩 벌개진 얼굴로 울분을 토하던 아서는 뒤늦게 베네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마 전 내가 했던 말을 ‘난 파파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쯤으로 해석한 게 분명한 베네딕은 승자의 여유를 지닌 채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자기 착각으로 왕족을 시해할 뻔했던 인간이 저런 얼굴을 해도 되는 걸까.

   

   뭐. 착각으로 왕족을 모독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내 말 듣고 있느냐!?”

   “잘 알겠으니까 좀 적당히 짖으시죠? 무능왕자님께서 제 분수를 파악하고 바보검사에게 수작질을 하고 있단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요.”

   “…뭐?”

   

   와. 저번에 혼담 이야기 나왔을 때 아서가 나한테 호감이 있으면 어쩌나 생각했었다니까?

   

   그야 나 정신은 남자인 걸. 같은 남자와 연애라니 생리적으로 무리라고.

   

   근데 찬찬히 고민을 해보니까 이런 걱정 안 해도 되겠더라?

   

   정말 아서가 나한테 관심이 있었으면 혼담을 거절할 리가 없잖아?

   

   이야. 진짜 자의식 과잉이었어.

   

   이런 쪼끄마하고 사람 놀리기 좋아하고 성격도 더러운데다가 여자애다운 구석 하나 없는 꼬맹이한테 호의를 품을 리가 없는데 말야.

   

   “열심히 응원할게요. 바보랑 무능의 조합이라니. 잘 어울리잖아요?”

   

   얼굴이 벌개져선 그런 게 아니라 소리칠 걸 기대했지만 아서는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한테 들킨 게 그렇게 충격이었나? 그치만 말야. 만날 둘이서 투닥거리는 걸 아는데 눈치 못 채기도 어렵잖아.

   

   ‘그쵸?’

   <나에게 동의를 구하지 마라.>

   <음. 이건 나도 대답해주기 그렇네.>

   ‘…왜요? 저 뭐 틀렸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프레이가 아니면 누구지? 소꿉친구인 조이? 여러모로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페이비?

   

   으으. 어느 쪽이건 다른 사람한테 넘기긴 아까운 애들이지만 둘이 좋다 그러면 내가 어쩌겠어. 뒤에서 열심히 축하나 해줘야지.

   

   “제발 좀 닥쳐다오.”

   “이것도 아닌가요? 아. 설마 무능왕자님. 얼빠여우한테 관심이 있으신 건가요? 참 취향이 별나시네요.”

   “그냥 좀 닥쳐달라니까?!”

   

   왜 이렇게 화를 내? 하여간 사춘기 꼬맹이는 까다롭다니까.

   

   툴툴거리면서 다시금 앞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어딘가 짠한 표정으로 아서를 바라보는 르네가 있었다.

   

   “동생아.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 진 모르겠다만. 그. 힘내라.”

   “형님에게만큼은 동정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걸 알고서 하는 말이니 좀 더 짜증을 내다오. 그래야 기분이 풀릴 성 싶거든.”

   

   앞서 가볍게 넘어간 체를 했지만 사실 나와 베네딕이 벌인 일은 웃어 넘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병사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대련장에 침입했고, 왕자들간의 대련에 끼어들어 1왕자를 향해 인격모독성 발언을 한데다, 아서를 다치게 만들뻔 했으니.

   

   왕궁 칩입. 왕족 모독. 왕족 시해. 이외에도 죄목을 들이밀라면 얼마든 걸 수 있는 것이 현황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식으로 나오면 왕국측도 어찌할 수단이 마땅찮기는 하다만, 그래도 르네의 말을 따르는 편이 낫다고 할아버지와 가라드가 입을 모아 말했기에 난 얌전히 르네의 뒤를 따라왔다.

   

   뭐랬더라? 이래야 르네가 추잡한 인간이라는 식으로 평판을 떨어트릴 수 있댔나?

   

   “알른 영애.”

   

   르네의 근질거리는 목소리에 기겁하면서 몸을 뒤로 물렸더니 그가 푹 한숨을 내뱉었다.

   

   “알겠다. 루시 알른. 이러면 되나?”

   

   드디어 원래 목소리로 돌아왔다. 이것도 좀 기분 나쁘긴 하지만 그래도 들어줄 만은 하네.

   

   “대놓고 말하마. 나도 너 같은 꼬맹이와의 혼담은 사양이다. 1왕비님께서 명령하신 바를 어길 수 없기에…”

   “우리 루시가 뭐 어때서 그러십니까! 저희 루시만큼 예쁘고 귀엽고 착한데다가 강하고…!”

   “바보 파파.”

   “물론 저희 루시를 넘겨드릴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만 당신께서 그런 식으로…!”

   “바보 아버님. 평생 이렇게 불리고 싶으신가요?”

   “미안하다!”

   

   베네딕을 가뿐히 제압했더니 르네가 미묘한 눈으로 날 봤다. 뭔데. 딸바보 조련하는 거 처음 봐?

   

   “아무튼 명 받은 게 있어 일단 노력하는 체하긴 한다만 나도 이 이야기가 파기되는 걸 바란다.”

   “이번엔 수작질이 좀 더 나아지셨네요. 그래봐야 동정내 풀풀 나는 건 똑같지만.”

   “진담으로 하는 말이다. 생각을 해봐라. 너 같으면 이미 손에 들어온 왕위를 이런 식으로 내치고 싶겠나?”

   

   내가 아는 르네는 능히 그럴 수 있는 인간이다. 평생을 실에 엮어 살아온 그는 사람보다는 인형극의 꼭두각시에 가까우니까.

   

   허나 이 곳은 현실이고 무언가 변수에 의해 르네가 달라졌다해도 크게 이상하진 않다. 나는 내가 알던 것과 달라진 이들을 몇이나 보아왔다.

   

   “이미 궁중 내 파벌은 내가 왕위에 오를 것을 가정하고서 여러 일을 벌이고 있다. 적당히 시간을 끌며 소문을 퍼트리면 여기저기서 간언을 올릴 테지.”

   

   그가 변화한 것이라 단정짓기엔 걸리는 부분이 있다. 1왕비에게서 혼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 날. 르네가 보여준 얼굴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왕위를 포기할 생각을 했고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아서를 향해 질투를 보였다.

   

   “그러니 그 때까지 협력해라.”

   

   무엇보다 지금 내 눈엔 르네의 위화감이 보였다.

   

   들키기 싫어하는 약점들이 보이는 공통점은 분명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현상.

   

   르네는 자신의 연기로 그를 최대한 가리고 있지만 인지를 벗어난 축복 앞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카리아쯤 되면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도 완벽하게 지울 수 있으려나.

   

   “어차피 너도 내가 싫은 건 매한가지일 것 아니냐.”

   

   정확히 어디가 진실이고 어디가 거짓말인지까진 구분 못 하겠지만 꿍꿍이가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그런데 굳이 어울려 줄 필요는.

   

   “루시 알른?”

   

   기시감이 들었다. 나의 기억은 아니다. 아마 루시가 본래 지니고 있었던 기억의 파편이겠지.

   

   과거 1왕자와 루시 사이에 있었던 일이 위화감이 되어 나를 붙잡은 것이다.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기 위해선 결국 그 섬에 방문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단순하게 이 인간에게서 직접 알아내도 괜찮지 않나?

   

   “협력이란 건 뭘 위한 핑계인가요? 솔직하게 말씀하신다면 못 들어드릴 것도 없는데요?”

   “하. 그래. 너와 어울리기 위한 핑계다. 이거면 만족하나?”

   “우와. 말하란다고 진짜 말할 줄은. 음침왕자님도 사랑 앞에는 솔직한 허접동정이군요. 꼬맹이 같아서 귀엽네요.”

   “…그 딴 소리 지껄이지 말고 대답이나 해라.”

   “좋아요! 라고 말할 줄 아셨나요? 싫은데요? 당신이랑 같이 있으면 곰팡이가 번질 것 같거든요.”

   

   아무 말 없이 날 째려보는 르네를 향해 잔뜩 비웃음을 흘린다.

   

   “설마 기대하셨나요? 푸하핳. 이렇게 순진해서야. 역시 엄마 품 안에 얌전히 계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협력하지 않겠다면 됐다. 사라져라.”

   “목소리에 날이 잔뜩 서계시네요. 상처받으셨나요? 제가 가고 나면 질질 짜실 예정이군요? 그냥 제 앞에서 울어주시면 안 될까요? 재밌을 것 같은데.”

   “장난감 노릇은 사양이다. 꼬맹아.”

   “그러는 음침 왕자님도 여러모로 꼬맹이시잖아요? 어른이 되려면 좀 더 매달리려는 노력을 해야할 것 같은데요.”

   

   히죽 웃으며 턱을 괴었더니 르네가 이마를 주물렀다.

   

   “하. 그래. 이야기를 바꾸지. 오늘 왕궁에서 있었던 일을 수습해주는 대가로 네 하루를 받겠다.”

   “너무 욕심이 지나치시네요. 당신 따위와 함께해야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말이 하루지 두어시간이면 족하다. 됐나?”

   “그리 간절히 매달리시니 어쩔 수 없네요.”

   

   어차피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강제로 쉬는 동안 르네의 지갑이나 털어먹으면서 놀아야지.

   

   후흐흐. 1왕자의 재력은 어디까지 허용이 되려나. 너~무 궁금한 걸?

   

   *

   

   “데이트!?”

   

   책상을 내리치며 일어났던 조이는 아서의 한심함 담긴 시선을 마주하고 우물쭈물거리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루시와 1왕자님이 데이트를 한다고요?”

   “여러모로 남는 장사였다. 알른 가문의 이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1왕자님과 루시가 함께 있으면 재앙이 일어날 거에요!”

   “…그 부분이라면 괜찮을 거다. 형님은 루시 알른의 어투에 익숙해 보였으니.”

   “네? 그게 무슨.”

   “정확한 건 나도 모른다. 그리 보였을 뿐이다.”

   

   으음. 그러고 보면 예전에 사교계에서 루시랑 1왕자님이 만났던 적이 몇 번 있었지? 그 때의 영향인…

   

   “막아야 해요! 이건 너무 연애소설의 클리셰라고요!”

   “에르기누스님께 마법을 배우다 머리가 이상해지기라도 한 거냐?”

   “루시는 제 소중한 친구에요! 그 누구에게도 못 넘겨요! 제 옆에 있어야 한다고요!”

   

   그건 소중한 친구를 대할 때 하는 대사가 아니라 무슨 도구를 빼앗길 것 같을 때 하는 말 아니냐?

   

   아서는 점차 영애스러움을 집어던지는 조이를 향해 보란 듯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제발 진정 좀 해라. 또 흥에 따라 움직이다 얼빵한 짓 하지 말고.”

   “그런 말 할 때가 아니에요! 아서! 제가 연애소설을 몇 권이나 읽었다고 생각하세요!?”

   “그게 자랑스레 할 말이냐?”

   “협조하실 생각이 없으시다면 됐어요! 저 혼자라도 움직이겠습니다! 아니죠. 페이비나 리나님이라면 분명 흔쾌히 협력을.”

   “자. 잠깐!”

   

   조이가 말하는 인선에 위기감을 느낀 아서가 다급히 목소리를 냈다.

   

   저 인선은 안 된다. 무조건 사고가 일어날 거다. 폭탄을 내던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알겠다! 협력하면 되잖으냐! 협력할 테니까 제발 진정 좀 해라!”

   

   아서가 빌 듯이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조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젠장. 어쩔 수 없다. 대낮에 유력 왕위계승자가 죽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 녀석의 바보짓에 어울려야 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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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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