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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5

       

        

        

        

        

        

        

        

        

        

       “아주…난장판이군요.”

        

       “여기가 네 스튜디오인가 하는 거기라고? 세상에서 제일 물가랑 땅값 비싼 동네에 세워진 잡동사니 창고가 아니라?”

        

       “야! 기껏 데려왔더니 뒷말이 왜 이렇게 길어!?”

        

        

        

        12월 24일, 맨해튼 투 브리지스, 스튜디오 닉스.

        

        부모님과 저녁식사를 한 이후로 4일 가량이 지나, 우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한 맨해튼의 투 브리지스 인근에 왔다.

        

        정확하게는 올리비아가 운영하고 있는 바로 그 곳이었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맨해튼에 세워진 고층 건물 중 하나, 그 중에서도 30층부터 36층까지를 점유하고 있는 대형 스튜디오에서는 연신 신명나는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파리에서 열리는 오트쿠튀르의 시작이 고작 몇 주일도 안 남았기 때문이었다.

        

        수석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직하고 있는 올리비아가 이번 년도의 파이널 챔피언십에 우리만큼 열정적이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우리에게 설명해줘도 하나도 못 알아먹을 전문-패션 뭐시기를 마지막까지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몇 주 동안 새벽 내내 부하 직원들이 보내온 시안을 검증하고, 제작된 옷의 마감과 재질, 불필요하게 튀어나오거나 도드라지는 부분을 확인하며, 전속 모델들을 들들 볶으면서 체형에 맞게 일부 수선하거나 하라는 등의 명령을 쉬지 않고 내린 걸 보면….

        

        물론 우리는 올리비아가 바쁘든 말든 상관없었다.

        

        왜냐면 바쁜 와중에도 우리더러 한 번 스튜디오 와보라고 한 게 본인이었거든.

        

        

        

       “후, 이 시기는 원래 이렇게 바빠. 직원들 건들지 말고 되도록이면 놔둬. 그건 그렇고,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애들한테 부탁하면 금방 사올 거야.”

        

       “아이스크림 한 통만.”

        

       “후, 여기는 손님이 왔는데 직접 대접도 안 해주고….”

        

       “…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올리비아.”

        

        

        

        빠직빠직.

        

        올리비아의 이마 옆에 핏줄이 곤두서는 것 같지만, 로건과 로렌티나는 1도 신경쓰지 않고 상습무례범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기서 올리비아에게 질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얼굴을 감쌌다.

        

        그러던 와중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스크린 플레이트를 집어든 로렌티나가 손가락으로 그것을 휙휙 넘기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올리비아가 직접 짜고 배포한 시안들이었다.

        

        피가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깊은 적색의 눈동자가 그것을 슬그머니 바라보더니, 이어 덧붙인다.

        

        

        

       “어디서 모티브를 얻어왔는지 말 안 해도 알겠군요. 이렇게 대놓고 그 당시의 기억을 가져다 쓴다면 뭐라 말할 마음도 안 생긴단 말이죠.”

        

       “어디 한 번 보자…기어코 그 당시에 있었던 일을 패션으로 승화시켰구만, 이 미친 놈아.”

        

       “밀리터리룩도 손댔고…이건 그냥 그때 쓰던 어반 카모 패턴만 좀 변형시킨 거네요. 옷소매는 왜 이렇게 또 시뻘겋게…이거 설마 핏자국 따라한 거예요?”

        

       “정답.”

        

        

        

        아주 레전드가 따로 없구만.

        

        하지만 그런 것만 빼고 보면 참 잘 만들긴 했다. 올리비아가 직접 그린 컨셉아트를 보자마자 과거의 기억이 그대로 새록새록 떠오를 정도였으니까. 그래서인지 패션쇼에서 흔히 보이던 기괴막측한 물건들보다는 훨씬 실용성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고.

        

        아무튼 다시 방금의 안건으로 되돌아가자면…이번 년도의 올리비아가 선택한 키워드는 콘크리트빛 회색, 선명한 적색, 어반 카모(CAMO), 밀리터리룩을 연상하게 만드는 비교적 헐렁한 패션, 금속성 소재 등등이었다.

        

        어떻게 보면 무난하고 눈에 띄지 않는 것들밖에 없었지만, 그 사이에서 보이는 피처럼 선명한…아니, 누가 봐도 혈액을 연상하게 만드는 선명한 적색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에는 실로 충분하고도 남았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있긴 했다.

        

        

        

       “그때 겨울이 참 좆같긴 했는데, 막상 생각해보면 겨울에 아는 지인들이 죽어나갔던 일은 없었단 말이지.”

        

       “그러면 이건…생각해보니 그 당시 날뛰던 폭도나 테러리스트, 탈옥수들이 이딴 모습으로 죽어갔던 것 같기도 한데.”

        

       “뭐, 그렇지. 아군이 모티브였다면 이딴 시안은 제작도 안 했어. 대신 다른 걸 했을 걸.”

        

        

        

        그와 동시에 로렌티나가 들고 있던 스크린 플레이트를 뺏어든 올리비아가 스크롤을 휙휙 넘기고, 이어 오트쿠튀르에 출품할 작품 중 하나를 보여주었다.

        

        당연하겠지만 그런 데에 출품되는 건 실용성이 아닌 독창성과 예술성이 잔뜩 녹아든 일종의 작품처럼 생겨먹은 거였기에, 처음에는 이딴 게 옷이냐-하면서 마구 올리비아를 놀려대긴 했지만, 그 구조와 배색을 자세히 살펴보니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음-

        

        

        

       “…아래쪽은 주황색, 중간은 회색에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옅은 흰색이라.”

        

       “네가 뭐라 말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건….”

        

       “화장(火葬)이로군요.”

        

        

        

        실로 그 말대로였다.

        

        요즘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센트럴 파크 HQ에는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화장터가 있었다. 근처 자연사 박물관 인근의 건물은 거대한 봉안당으로 쓰이고 있었고. 미국 특성 상 화장보다는 매장을 선호했지만, 오메가 바이러스 사태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다.

        

        박물관 인근에 화장된 사람의 수만 해도 셀 수조차 없었다. 한국에서라면 유골함 같은 곳에 고이 담아두었겠지만, 저기서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이 죽어나가다보니 돌아가신 분들이 죄다 일종의…메모리얼 스톤 같은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내 기억 상, 센트럴 파크에 근무하는 인원들 중 메모리얼 스톤으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유일하게 대거 팀 정도만이 거의 모든 참사에서 빗겨나갔고.

        

        모리슨도 하반신이 날아간거지 죽지는 않았으니까.

        

        

        아무튼, 뭐라고 해야 할까.

        

        특정 키워드를 의복에 적용 가능한 디자인으로 승화시키다니, 그 점은 일단 여러모로 대단했다. 까놓고 말해서 머리가 굳은 우리는 할 수 없는 창조적인 작업이었으니까.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있었을까, 그 와중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생각 하나.

        

        그리고 로건이 먼저 그것을 짚었다.

        

        

        

       “그건 그렇고, 너. 그러면 공군은 갈 생각 없는 거냐?”

        

       “아, 생각해보니…그도 그렇네.”

        

       “뭐어, 천 만지고 그림 끼적이는 게 다시 익숙해졌다면 굳이 신경쓰지 말고, 하던 거나 해라.”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

        

        

        

        그리 말하며 올리비아는 말을 얼버무리긴 했다.

        

        까놓고 말해서 다시 현실에서 작전을 뛰려면 좀…애로사항이 많긴 하지. 경력이랑 지식은 머릿속에 몽땅 들어있겠지만, 까놓고 말해서 그 인과 자체가 송두리째 날아갔으니까.

        

        물론 딱히 방법이 없는 건 아니긴 했기에, 우리들은 그 점에 대해서 적당히 대화를 나누었다.

        

        

        

       “생각해보니, 지식이랑 현장 경험이 있다고 검증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아무리 여기서 탱자탱자 놀았다고 하지만 지금 당장 제24특전대 기준으로 이론이랑 실전 테스트 병행해도 합격할 정도는 될 거고.”

        

       “탱자탱자 놀았다고 하지 마! …아무튼 그것까진 맞아.”

        

       “그럼 적당히 가서 경험이랑 지식으로 그 친구들 짓밟고 수료증 타오라고, 이 자식아. 막내한테 부탁하면 그 정도 기회는 만들어줄 텐데. 정식 소속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남 가르치고 훈련에서 뛸 정도는 될 거 아냐. 안 그래도 신참들 가르치기 힘들어 죽겠어.”

        

       “일단 적당히 자리만 얻게 되면 위탁교육 식으로 얼추 부를 수도 있으니, 시간 좀 남으면 1년 정도 휴업하고 그쪽으로 손이나 좀 대보시죠.”

        

       “어, 으음. 이거 지금 대답 안 하면 안 되는 거야?”

        

       “몇 개월 전에 네가 막내한테 직접 땡깡부려놓고 이제 와서 뺀다고? 나랑 안전장비 없이 스파링 뜨고 싶단 소리냐?”

        

        

        

        북극곰의 협박!

        

        효과는 굉장했다!

        

        주먹을 치켜든 로건과 흠칫 놀라 가드 자세를 취한 올리비아의 콜라보레이션은 보기에 실로 즐거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올리비아의 앞에 쌓여있는 일거리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정신적인 고충까지 사라졌으니 슬슬 살 만한가보지.

        

        뭐어, 사람 마음이 한결같지 않은 건 언제나 그랬으니까 우리 역시도 그닥 신경쓸 필요는 없었다.

        

        그리하여 대충 상황이 정리되자, 올리비아는 내 뒤로 호다닥 달려가 숨더니 그 거대한 미드를 내 머리 위에 쿠션처럼 올려놓으며 덧붙였다.

        

        

        

       “아, 맞아. 그리고 내년부터 이카루스 이름으로 내가 디자인한 각종 옷들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판매될 거니까, 다들 돈 있으면 많이 사줘. 알겠지?”

        

       “너 이러려고 막내 뒤에 숨었지, 이 개자식아.”

        

       “후후, 어쩜 이렇게 고마울까. 내가 막내 덕분에 산다.”

        

       “우와아,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질량이….”

        

        

        

        푹신말랑….

        

        아무튼 그동안 뭔가 일이 꽤 있었는지, 이 양반은 그 사이 은근슬쩍 이카루스 인터내셔널이랑 콜라보 비스무리한 걸 한 모양이었다.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판매를 시작하는 것이 내년부터라면 나나 로건, 로렌티나가 모를 만도 했겠네.

        

        애초에 그닥 게임을 할 시간이 없는 북극곰과 상어와는 별개로, 나 역시도 딱히 아바타 외형에 신경을 쓸 일이 없으니, 뭔가 콜라보레이션을 하든 그닥 신경은 안 썼단 말이지. 그리고 그 결과는…뭐, 올리비아가 뭐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단 사실이 도출된다.

        

        

        아무튼 적당히 웃고 떠들고 있었을까, 로렌티나가 뭔가 생각났단 듯 덧붙였다.

        

        슬프게도, 그것이 폭탄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사람은 당사자를 제외하면 없었다.

        

        

        

       “아, 맞다.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이따 호텔 복귀하면 다들 선물 하나씩 받아가시길.”

        

       “네가 선물을 준비했다고? 벌써부터 불안한데 정상이냐?”

        

       “뭐, 별 건 아니에요. 그냥 옷 몇 개 정도 사가지고 왔거든요. 한 번 볼래요?”

        

       “어디 한 번 보기나 하-이 미친 새끼야, 이게 뭔데!?”

        

        

        

        두둥.

        

        그 이름도 찬란한 ‘산타걸 복장’. 가슴은 있는대로 드러내고, 허리는 있는대로 졸라매며, 그 와중 아래로 치렁치렁 내려오는 백색 치마 프릴까지. 그런 것이 무려 네 벌이나 있었다.

        

        주먹을 참을 수가 없었지만, 로렌티나는 그런 우리 주먹을 싸그리 회피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피하지 못한 것은 로건의 욕이었다.

        

        

        

       “이 개새끼야! 너 설마 나한테 이런 거 입힐 생각하고 있었냐!?”

        

       “후후, 걱정하지 말아요! 물론 저도 입을 겁니다!”

        

       “하하. 그럼 그렇지. 저 한결같이 돌아버린 상어가 옷을 샀다고 해서 혹한 내가 바보였네.”

        

       “옛날에 사귀었던 년들한테는 이런 날에 한 번씩 꼭 입혀봤는데, 직접 입어보는 건 또 처음-꾸엑!”

        

       “잘 잡았다, 막내. 조져버려.”

        

        

        

        물론 로렌티나는 내 꼬리를 간과했고, 바닥에 철푸덕 넘어졌다.

        

        그로부터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새우꺾기가 작렬했고, 스튜디오 전체를 상어의 초고음-비명소리가 메우게 되었다.

        

        역시 상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새로 영입했던…영입이라고 해야 하나, 이걸. 아무튼, 미니 비얌 소체에 가둬진 관리 AI의 이름이 정해졌어요. 사실 이름이 정해진 건 좀 되긴 했는데….”

        

       “흐음. 뭔가요?”

        

       “나스티라고 하네요. 뭐라더라, 무슨 러시아어에서 따왔다나요. 그런 단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비슷한 발음이…아마 특정 단어 뒤에 붙어서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였나. 대충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요.”

        

       “생각보다 앙증맞은 이름이구만. 걔는 요즘 뭐하고 지낸다냐?”

       

       “잡일이요.”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

        

        수천 년 전의 지금이었더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 임하기까지 3~4시간 전-같은 감상을 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그저 크리스마스 산타복이 가장 잘 팔리며, 호텔의 방들이 싸그리 예약 완료되는 생명 탄생의 한복판일 뿐이었다.

        

        사시사철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별명을 지닌 맨해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소수의 직업 혹은 인원을 제외한다면, 이곳에서 근무하는 대부분의 인원들 역시도 다들 주일 단위로 휴가를 내고는 신나게 놀아제끼고 있을 터였으니.

        

        뭐어, 우리랑은 그닥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성별이 강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버린 우리 네 명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아까 말했던 ‘일부 소수의 직업 혹은 인원’들이 퇴근과 통장 속에 꽂히는 재화를 등가교환하여 인생을 패션에 갈아넣고 있을 무렵, 우리 네 명은 36층에 있는 올리비아의 개인실 – 이라고 쓰고 스튜디오 속 스튜디오라고 할 수 있는 – 에서 간단히 파티 아닌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아마 다이스랑 하모니를 비롯한 여러 명들은 우리가 어디를 갔나-하고 궁금증을 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저들에게는 아쉽게도, 이미 호텔에 요청해 온갖 즐길거리를 제공해놓으라고 말해놨다. 아마 지금쯤 다들 위스키 봉봉을 까먹고는 휘청거리고 있을 테지.

        

        가끔은 이전부터 알던 사람만 데리고 와 함께 시간을 즐기는 것도 필요했다.

        

        

        

       “…뭐, 무능하단 딱지가 박혔으니까. 잡일은 잘 한대?”

        

       “뭐어, 그래도 할 건 다 하고 있다네요. 소체가 소체니만큼 동력 문제도 없고, 잠도 안 자고, 무거운 물건도 들 수 있고. 마지막으로 본 이후로 대략 열흘 언저리가 지났으니…그 사이 꽤 이리저리 안면을 튼 것 같더라구요.”

        

       “거기서 꽤 교육을 잘 시켰나본데.”

        

       “뭐어, 교화가 안 될 리가 없지요. 막내를 제외한 전원이 거기 있을 텐데.”

        

        

        

        그러더니 로렌티나가 은근슬쩍 나를 바라본다.

        

        

        

       “예로부터 이런 축제는 사람이 많아야 즐거웠지요. 메카 뉴 막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구경이라도 한 번 가보지 않겠어요?”

        

       “메카 뉴 막내라고 하지 마요. 민아가 메카비얌이 된 것 같잖아요.”

        

       “뭐어, 저로서는 뉴 막내가 메카-막내로 변하는 것보단 메카-상어 쪽이 좀 더 탐나지만, 아무튼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죠. 북극곰이랑 부엉이도 꽤 끌리는 얘기 아닌가요?”

        

        

        

        그리하여 그 자리에 있는 두 명이 고개를 그쪽으로 돌린다.

        

        물론 나는 바로 거절의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 남은 두 명 역시도 완전히 관심이 없지는 않다는 것을 즉각 깨달아버렸고, 옅은 웃음을 흘리며 항복을 선언했다.

        

        오늘의 문짝은 올리비아의 개인 피팅룸으로 이어지는 문. 간단하게 레이저로 푱 찍은 다음 활성화 버튼을 누르고, 대략 10초 정도 지나면 자동으로 게이트가 연결된다.

        

        들어가기 전 센트럴 파크 HQ의 상황실에 먼저 간단한 메시지를 보내놓고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문을 열자마자 다른 광경이 보이는 것은 언제 봐도 기묘했다.

        

        

        그렇게 네 명이 문 너머로 발을 옮겼고, 그 후 얼마나 지났을까.

        

        곳곳-을 넘어, 공원 주변에 보이는 건물들마저 몽땅 크리스마스 장식물로 뒤덮인 센트럴 파크 HQ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뭔?”

        

       “주변의 고층 건물들이…세상에, 아주 별세계가 따로 없구만.”

        

       “무지막지하네, 무지막지해.”

        

        

        

        곳곳을 돌아다니는 푸드트럭.

        

        캠프파이어.

        

        놀이기구 등등.

        

        내 지인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지만, 이미 나는 어느 정도 전말에 대해 전해들은 상태였다. 오메가 바이러스 사태가 거의 마무리된 이후로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였기에 더욱 각별하게 신경을 썼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것과는 별개로, 이 자리에 우리마냥 얼굴이 쓸데없이 많이 알려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순간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에, 슬슬 이동을 해야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바깥 말고 휴게실이랑 연결을 해놓을 걸 그랬어.

        

        

        

       “그 친구들이 갑자기 우리가 방문했다고 해서 뭐라고 하진 않겠지?”

        

       “바베큐라도 하고 있지 않겠어요? 몇 점 얻어먹고 가자고요. 아니면 좀 받아오든가. 저희는 그 대가로 막 시킨 따끈따끈한 피자나 초밥 몇 박스랑 교환하고.”

        

       “…그걸 그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하기야, 상어만큼 인생 편하게 사는 사람이 또 있겠나.

        

        동일인물에 대한 거부감이 이렇게까지 없을 수가 있을까 싶긴 한데, 사실 까놓고 말하자면 지금 와서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게 되면…조금 신기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긴 할 것 같다. 애초에 이 몸 자체가 내가 원한 결과가 아니니까.

        

        뭐어, 이 부분에 대해 말한다면 끝도 없을 것 같았기에, 적당히 줄임과 동시에 우리는 비교적 인적이 드문 대거 팀 숙소로 재빠르게 향했다.

        

        이미 안쪽에서는 시끄러운 목소리가 열심히 들려오고 있었기에, 이 분위기를 틈타면 의외로 수월하게 파티에 낄 수도 있지 않을까.

        

        

        

       ‘피자나 치킨은 몰라도 초밥 같은 거라면 여기 기준으로는 상당히 귀할 거고….’

        

        

        

        환율을 감안하여 계산하자면, 한 박스당 20만원이나 하는 미슐랭 음식점 초밥을 30개 정도 배달시켜 수령했으니 그 정도는 문제없겠지.

        

        그건 그렇고, 팁이 쓸데없이 비싼데, 이 부분도 나중에 헨리한테 말해놓으면 어떻게든 해결해주지 않을까 – 그리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노크, 몇 초 후 열린 문으로 들어갔을까-

        

        

        

       “으, 고기를 굽는다는 건 너무 어렵습니다.”

        

       “가서 레어, 미디엄 레어, 미디엄부터 다시 공부하고 와야겠는데. 소체의 기능을 반도 못 쓰고 있는 거 아냐?”

        

       “우수한 첫째 언니인 본 개체가 불조절과 고기 표면 온도 분석부터 차분하게 가르치…엣.”

        

       “뭐야. 누구 왔-우와, 이게 뭔 일이야!?”

        

        

        

        머리에 딸랑이가 달린 산타-모자를 쓴 관리 AI, 나스티가 쩔쩔매며 고기를 굽고 있고.

        

        그 꼴을 바라보던 세 기의 메카 비얌들이 훈수를 두고 있고.

        

        그 꼬라지를 실컷 즐기고 있는 이들이 모여있는 혼돈 사이 어딘가의 공간을 열어젖힌 우리까지.

        

        

        

       “…와우.”

        

       “메카 막내들은 산타모자 쓴 것도 꽤 귀엽군요.”

        

        

        

        유일하게 마이페이스 그 자체인 로렌티나만이 이 시점에서 유일하게 믿을 구석이라, 세상 참 요지경이었다.

        

        무어라 말을 꺼내야만 할지 모르겠던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산타걸-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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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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