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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8

   조이는 어느 정도 철이 들었을 무렵부터 사교계에 꾸준히 얼굴을 내밀었다.

   

   사교계의 분위기가 즐거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조이는 사교계 특유의 분위기를 부담스럽게 여겼다.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기싸움. 듣기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싫은 척 할 수도 없는 뒷담화. 집착에 가까울만큼 중요시 되는 귀족들간의 세력.

   

   맛있는 음식이라거나, 좋은 노래라거나, 가끔 볼 수 있는 유명한 사람들과의 대화라던가하는 좋은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득보다 실이 더 크단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교계는 조이가 연애소설에 집착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이가 사교계에 참석했던 건 공작영애가 해야 할 일을 완수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기에 조이는 한 번 한 번의 사교계에서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만큼이나 고생을 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가야한다면 진심으로 억울해 죽을 것 같았으니까.

   

   “당시의 전 공작영애다운 자신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답니다. 영애들사이의 관계를 조율하면서 군림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가문간의 관계를 미리 공부해두고, 과거부터 최근에 있었던 사건을 모두 파악하고, 서로의 기분이 상할 것 같을 땐 미리 개입하고.

   

   대단하단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잔뜩 무용담을 이야기한 조이였지만 돌아온 반응은 그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얼빵이가 그런 걸 할 수 있다고?”

   “조이. 허세도 적당히 부려야 믿어질 수 있는 거다.”

   “진짜라고요! 제가 왜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해요! 제가 괜히 귀족 영애 세력을 양분하는 사람이라 여겨지는 줄 알아요!?”

   “그냥 바지사장인데 얼빵하게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자기 감정도 제대로 못 가누는 녀석이 무슨.”

   “아악! 됐어요!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갈 거에요!”

   

   주변의 모든 걸 파악하려했던 당시의 조이에게 1왕자와 루시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루시의 성격과 평판이 바닥을 치던 때라는 것과는 별개로 그녀는 대륙 최강의 무가인 알른의 하나 뿐인 딸이고 상대는 자신의 재능을 널리 떨치던 1왕자였으니까.

   

   “처음은 순탄치 않았을 거에요. 1왕자님께서 불같이 화를 내던 게 화제가 되었으니까요.”

   

   변방의 별볼일 없는 가문의 자식에게까지도 정중히 대하던 1왕자가 사교회장을 가득 채울 만큼 고성을 내질렀단 소식은 화제가 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소란이 일어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알른 백께서 사색이 되어 달려오던 게 기억나네요. 참 고생 많이 하셨죠. 요즘 보답받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베네딕의 해맑은 웃음을 떠올리며 조이가 말하자 루시가 눈동자를 떨었다.

   

   아. 실수했다! 이 이야기는 장난스럽게 꺼낼 수 있는 게 아닌데! 아서에게 눈총을 받으면서 허둥지둥거리던 조이는 헛기침을 하고서 화제를 바꿨다.

   

   “아무튼 그 때 알른 백께서 두 분을 데리고 간 후 대화가 잘 풀린 듯 1왕자님께선 웃으며 오해가 있었을 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자들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1왕자는 그 모든 질문을 흘려냈다.

   

   그 뿐만 아니라 루시 알른에 대한 험담을 가로막기까지 했지.

   

   당시에는 알른 백의 명예를 생각해 1왕자님이 대응한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때 무언가가 있었던 게 아닐까.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을 무렵에 다시 사교회장에 만난 두 분은 서로에게 별 관심이 없으신 듯 했지만 후일 사교장이 열렸던 가문의 영애에게 듣기로 개인실을 빌려 대화를 나누셨다더군요.”

   “그런 건 왜 물어보고 다닌 거야. 얼빵아? 너 혹시 음침왕자님께 관심이.”

   “없어요.”

   

   자그마한 호의라도 품었다면 부끄러워했을 터이나 조이는 지극히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할 뿐이었다.

   

   1왕자님이 여러모로 대단하신 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호의가 전혀 안 생긴단 말이지. 오라버니께서 친하게 지내되 가까이하지 말란 소리를 들어서 그런 걸까.

   

   “이 이야기도 제가 따로 물어본 게 아니에요. 그 영애가 먼저 이야기를 해 준 거지.”

   

   당신에게만 특별히 이야기하는 것이란 말과 함께 이어지는 말은 사교계에서 꽤 흔한 것이다. 집단을 중요하게 여기는 귀족 영애들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후에도 몇 명의 영애분들에게 전해 듣기로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이 만남은 어느 순간 끊어졌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뿐 아닐까 생각하고 따로 확인도 해봤습니다만 아니더군요.”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 분명하지만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 한 번도 바깥으로 흘러나온 적이 없으니까.

   

   “추측가는 시기 정도는 있겠지?”

   

   아서의 물음에 조이가 선선히 고갤 끄덕인다.

   

   “1왕자님이 A급 던전에 홀로 들어가 성과를 내셨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제 추측에 따르면 두 분이 소월해졌던 시기는 그 즈음입니다.”

   “아. 기억나는 군. 그 때 여러모로 소란이 났었지.”

   “1왕자님께서 천재라는 걸 다시금 공표한 날이니까요.”

   “바깥에서 보기엔 그랬나?”

   “왕궁 내부는 달랐나요?”

   “싸늘했지. 그 던전 공략은 형님이 1왕비님의 명령을 어기고 제멋대로 한 것이었거든.”

   

   1왕비님께서 그만큼 정색하긴 건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아닐까 중얼거리던 아서는 퍼뜩 자리에서 일어난 조이를 보고 어깨를 움찔했다.

   

   “그거에요! 1왕비님께서 제지한 게 분명해요! 그 시절의 루시는 망나니였으니까!”

   “말이 되는군. 그 시절이었다면 가까이하지 말라며 다그칠 법도. 아니. 아니지. 이러면 형님께서 배신감을 느낄 이유가 없잖은가.”

   “스스로가 폐가 된다 생각한 루시가 일부러 1왕자님을 밀쳐냈다거나?”

   “하긴 망나니여도 루시 알른은 루시 알른이니까. 마음에 든 상대를 배려했을 수도 있겠어.”

   

   망나니 당사자를 앞에 두고서 나누기엔 부적절한 대화였지만 생각에 빠진 두 사람이 이를 눈치 챌 일은 없었다.

   

   보통 때라면 분명 한 마디를 더했을 루시가 오늘만큼은 침묵하고 있었으니까.

   

   *

   

   두 사람과 헤어지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베네딕의 호들갑을 가뿐히 무시한 나는 침대 위로 풀쩍 몸을 던졌다.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내 옆에 다가와서는 그 변태 녀석의 냄새를 지워야한다며 부벼대던 얼빠여우를 붙잡아서 꾹 안은 난 녀석의 머리에 턱을 가져다대고는 머릿 속을 스쳐지나간 풍경을 되새겼다.

   

   “루. 루시야. 날 좋아해주는 건 좋다만 이건 너무 가깝지 않으냐?”

   

   자신이 이루어 낸 일에 대해 신이 나서 떠들어대던 르네와 여느 때처럼 표독한 얼굴을 하고 있던 루시.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높아져가던 목소리.

   

   헤어지고서 품었던 자책.

   

   조이가 추측한 대로 어느 시점까지 르네와 루시는 꽤 친했을 거다.

   

   대체 어떻게 친해진 건지는 몰라도 친구라 불러 마땅한 관계였겠지.

   

   그리고 이 관계는 하루의 싸움으로 파탄이 나버렸다.

   

   “저어. 차라리 방석마냥 깔고 앉아주면 안 되겠느냐. 흐. 흐헿.”

   

   어딘가에 간 것도 아닌데 이렇게 생생히 감정이 느껴지는 건 루시의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떠올릴 때 이후로 처음 아닌가?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닌 감정에 마음이 복잡해지는 걸 느끼던 나는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아. 젠장. 기억이 날 거면 처음부터 끝까지 나던가. 왜 한 장면만 떠올라서 머리를 아프게 만드냐고. 이래서야 내가 나쁜 년이 되어버리잖아.

   

   <루시야. 생각하느라 바쁜 건 알겠다만 일단 리나님을 놓아주는 게 어떠냐.>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서 얼빠여우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흰자를 띄운 채 녹아내리고 있는 녀석이 보였다.

   

   ‘이 분 왜 이래요?’

   <네가 그렇게 만들었잖으냐.>

   ‘…제가요?’

   <그렇잖으냐. 가라드.>

   <좋아하다 못해 황송해하는 상대에게 오래 닿아 있으면 저 꼴이 되지. 단순한 변태인 줄 알았는데 순정넘치는 변태셨나.>

   

   어. 내가 그렇게 오래 끌어안고 있었나? 잘은 모르겠지만 이대로 있다간 얼빠여우가 복상사하는 걸 보게 될 것 같아서 놓아줬다.

   

   <뭔가 생각이 난 게지?>

   ‘아주 조금이지만요. 예전에 친했던 건 사실 같아요.’

   <그런가.>

   <친했다에서 끝이야? 다른 사람들한테 말도 안 하고 둘이서 계속 만날 정도라면 좀 더 깊은 관계였을 것 같은데?!>

   <이 놈 말은 그냥 무시해라. 루시. 마음에 드는 여자마다 작업을 걸고 다니던 놈이라 그런 쪽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할 뿐이다.>

   <아니! 야! 루엘! 너도 느껴지잖아! 이거 완전 두근두근한 이야기라고!>

   

   내 입장에서는 그저 역겨운 이야기일 뿐이지만.

   

   으음. 예전의 루시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걸 알아내야만 뭔가가 해결 될 것 같아.

   

   근데 몸이 회복되는 걸 기다리고 있으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괜히 시간을 끌면 뭔가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릴 것 같단 말야.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리던 나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고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할아버지. 예전에 에르기누스님한테 신성을 잔뜩 담은 성물 주셨었죠?’

   <그 때 그 놈이 필요하다고 해서 주긴 했지.>

   ‘할아버지쯤 되는 영웅의 신성을 포용한다면 제 몸도 상당히 회복되겠죠?’

   <봐야 알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을 거다. 나의 메이스를 들고 수련을 해온 넌 어느 정도 내 신성과 동화될 수밖에 없으니까.>

   

   역시 그런가. 좋아. 원래 이번 퀘스트는 나 혼자 즐길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적당히 타협하자.

   

   <…잠깐. 루시. 네가 그걸 묻는 이유는.>

   ‘네. 할아버지의 인형을 만나러 갈 거에요.’

   

   함께 갈 사람들은 내 친구들이면 돼. 따로 사정을 설명할 필요 없어서 편하기도 하고, 뭣보다 친구들보다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없는 걸.

   

   <인형?>

   <입 닥치고 있어라. 가라드! 루시. 좀 기다리거라. 네 친구들과 함께 그 인형을 상대하러 가는 건 좀 그렇지 않으냐?>

   ‘어쩔 수 없잖아요. 이게 최선인 걸요.’

   <네가 정면에서 직접 부수는 게 더 즐겁지 않겠느냐? 성취감도 더 클 것이야!>

   ‘괜찮아요.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것도 즐거운 걸요.’

   <내가 즐겁지 않단 말이다! 내가아아아!>

   

   무슨 이야기인지 눈치 챈 가라드의 웃음소리 속에서 할아버지가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며 날 말리려 들었지만 그런다고 내 결정이 바뀌진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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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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