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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8

    <598 – 맛있는 연계퀘스트(22)>

     

    검객성녀 셰실리는 다크프린세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적에 우스운 마음이 일었다.

     

    “다크프린세스는 본래 마왕의 딸이나 반려가 될 존재를 일컫는 말이 아니었어? 어떻게 일개 인간이 그것도 신분과 위치가 다 드러난 상태로 그런 불길한 칭호로 불릴 수 있는 거야?”

     

    이에 평화의 신 트란퀼로의 사제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다크프린세스의 사전적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입니다. 당대의 마왕은 자식을 낳아 더 강한 마왕의 탄생을 위해 힘을 유전시키지 않기에, 자신의 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

    “당연히 반려가 될 존재도 용납하지 않기에 자연적으로 탄생하는 강대한 힘을 지닌 여성형 마족들은 고위마족과 이어지거나 나이를 먹어 프린세스의 칭호를 상실합니다.”

    “그럼 오크노디는 자연적으로 태어난 별종이다?”

    “그렇습니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다크프린세스의 칭호를 상실할 존재입니다.”

    “머야. 별것도 아니었네.”

    “하오나 이번 다크프린세스는 위험합니다. 12선신의 일원이었던 번개의 신 마데우스가 그 성광을 어둠에 물들이며 선악지간의 소속이 불명한 존재가 되어 인류진형의 선신연합에서 추방된 것을 떠올리십시오.”

     

    경솔했던 마음가짐에 경각심이 일었다.

    정말 범상치 않은 아이기는 했다.

    신학을 배우다 보면 신의 사도가 혹독한 세상풍파에 절망하며 신앙을 저버리고 변절하는 이야기는 수두룩하게 들을 수 있다.

    그들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지 알려주고 신앙을 저버리지 말라는 교훈을 남겨야 했으니까.

    교단의 검열이 없는 기프트 아카데미에는 그런 배신자들이 오히려 다른 신에게 귀의하여 잘먹고 잘사는 뒷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는 낭설도 돌아다닌다.

    그러나 그런 낭설들 사이에도 신의 신격과 속성을 뒤틀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전대미문.

    금시초문.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유일한 업적, 위업을 달성해 낸 자가 당대의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인 것이다.

     

    “좋은 충고였어. 기억할게.”

     

    사제는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그때의 이야기와 방심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지금도 그녀의 안에 함께 하고 있다.

    그렇다.

    그녀는 한 번도 방심한 적이 없었다.

    기량에서도 월등히 앞선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벌써 두 자루의 검에 내리는 신성주문의 축복을 상실했다.

     

    일검은 축복의 조건을 파훼 당해서.

    이검은 타락한 신에 의해 검 그 자체를 강탈당해서.

     

    ‘대체 사악한 존재가 신성주문의 파훼식을 왜 저리 잘 다루는 거냐고!’

     

    셰실리는 억울했다.

    악한 존재는 신성주문에 접하기만 해도 특대의 가산피해를 입는다.

    교단의 사제들을 마왕군이 두려워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고, 그런 사제들 사이에서도 강력한 고위마족과 사천왕의 침공으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해 탄생한 존재가 교황이며, 교황 대신 적진으로 침투하여 용사파티와 함께 마왕군 토벌이라는 거대한 사명을 지닌 존재가 성녀다.

     

    교단의 비밀병기.

    최강의 공격수단.

     

    성녀가 발휘하는 신성주문은 고위마족조차 벌벌 떨고 마왕이 경악하며 난리가 나야 한다.

    적어도 그녀의 상식에서는 그랬다.

    그런데 다크프린세스는 심상치 않은 양의 암흑마나를 지녔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신성마법의 술식을 비틀고 찢고 심지어는 성스러운 언령으로 신성주문을 자기가 강탈해서 사용하기까지 했다.

    비결은 하나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속성저항력.

    오크노디는 신성저항력을 올렸다.

    그것도 대단히 어린 나이부터.

     

    ‘아마도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라고 가정해야겠지.’

     

    숨을 쉬는 매 순간, 신성력에 노출되어 고통받으면서 내성을 올리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자라야만 했을 거다.

    거대한 고통은 인간의 의지를 꺾는다.

    존재를 공포에 떨며 살아 숨쉬는 매 순간을 비참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그런 건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라 부를 수 없다.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삶.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삶.

    그걸 견디고 이겨내려면 어느 정도의 의지와 행운이 필요할까.

    설령 그 모든 것을 갖추었더라도, 인간을 초월한 비틀린 정신력을 지닌 존재를 과연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주춤.

     

    셰실리는 자신의 발이 뒤로 물러선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지금 공포를 느꼈다.

    성녀의 앞에서 고위마족이 물러나는 것처럼.

    결코 이길 수 없는 자연계의 포식자를 발견한 피식자처럼.

    한낱 먹이에 불과한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다.

     

    “…웃기지 마. 위대함의 신 그랜디오스는 자기 성녀도 버린 몹쓸 신일지 몰라도 평화의 신 트란퀼로께서는 나를 저버리지 않으셨어. 내게는 아직 바칠 수 있는 제 삼검이 있어!!”

     

    마음의 평화를 바쳐서 축복을 얻은 이검.

    내면의 평화에는 부동심, 불변,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 묵묵히 수행을 이어나갈 수 있는 의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스스로 심마에 빠지지 않는 이상, 셰실리 정도의 경지에 올라선 성녀가 이검의 축복을 무효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하다.

    그렇기에 그녀는 결정했다.

    심마를 촉발하여 이검을 무효로 돌리면서 더는 검을 빼앗기지 않을 수단을.

     

    “나의 신실함을 공물로 바쳐 수행과 믿음이 그분을 만족시켜 성광을 이 몸에서 자아내는 그날까지 결전에 임하리니, 결연한 의지가 최후의 검에 깃들라!”

     

    이지를 상실하며 오직 신의 의지대로 휘둘리는 꼭두각시로 전락하나, 언젠가 신을 만족시키거든 공물로 바친 전부를 되찾고 보다 높은 경지에 올라설 수 있는 건곤일척의 도박.

    자아와 자각을 상실한 신성의 짐승이 된 셰실리의 몸에 성스러운 광휘가 내려왔다.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의 몸을 감싼 위대함의 신 그랜디오스의 성휘에 못지않은 평화의 신 트란퀼로의 광휘 아래, 셰실리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전체공격>

    <연속공격>

    <영역부여>

    <기능부여>

    <심계확장>

    <영역확장>

    <본신강림>

     

    신이 직접 강림하여 삼검에 부여하는 버프는 앞서 이검에 붙은 버프가 초라해질 정도로 강력했다.

     

    “그대, 신의 그릇에게 평화의 신 트란퀼로가 명한다.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굴복하라. 여기에 평화의 족쇄를 내리니, 살아남을 길은 족쇄를 차는 것뿐이다.”

     

    평화의 신에게는 당연한 태도였다.

    신은 본디 중간계와 인계의 존재를 초월한 강함을 지닌 존재.

    자신만의 영역을 관장하고 하나의 계를 장악하여, 그 계의 힘을 중간계에도 투사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런 이가 스스로의 의지로 몸을 바친 성녀 덕분에 그 몸을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어설픈 신성력을 담은 이들이라면 의지가 투영된 것만으로도 신열을 앓고 심하면 목숨을 잃기까지 하겠으나, 성녀의 몸과 정신에는 그런 제약조차 없다.

    경지를 올리며 단련된 신체와 정신이 거뜬히 의지의 투영을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손상을 각오하면 본신의 강림마저도 제한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중간계에 강림한 신의 강함은 너를 눈여겨본 그랜디오스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위대한 자의 이름이 너를 지켜주리라 믿지 말라.”

     

    하늘로 날아오른 셰실리라는 이름을 지닌 신의 그릇이 말했다.

    다크프린세스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정해졌다.

     

    위대함의 신 그랜디오스의 이름에 기대어 무의미한 저항을 하거나.

    현실을 깨닫고 족쇄를 차며 불공정계약을 체결하고 신의 수족이 되기를 자처하거나.

     

    이 순간, 한 인간의 말로는 정해졌다.

    신에게 맞선 죄로 죽거나, 평생토록 신의 또 다른 장난감이 되어 평생을 착취당한 끝에 의지만이 소멸하고 그릇을 강탈당하거나.

     

    “제 생각은 다른데요?”

     

    다크프린세스는 제 삼의 길을 선택했다.

    아니, 개척했다.

     

    “칭호교체!”

     

    자신의 가장 거룩한 업적을 세상에 드러내는 행위.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이룰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한 헛된 희망의 상징.

    칭호.

    오직 신에게만 허락된 신격의 싸움에서 동원되는 신의 무기.

    그 무기가 어느 때보다도 찬란하게 번쩍였다.

     

     

    * * *

     

     

    [위대함의 신 그랜디오스가 다급히 외칩니다.]

    [“신의 힘을 버텨낼 방법은 신의 힘밖에 없으니, 그대는 내게 몸을 맡겨 이 위기를 벗어나라!”]

    [그랜디오스가 당신에게 사도계약을 제안합니다.]

    [이번 계약에 응할 시, 그랜디오스가 특별히 당신에게 상당한 수준의 자유와 혜택을 보장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특수하며 자비로운 계약입니다.]

     

    같은 선신들도 결국 더욱 뛰어난 존재가 될 수단을 찾거나 자신의 욕망을 채울 방법을 발견하면 본색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나를 협박하는 트란퀼로도, 나를 타이르는 그랜디오스도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이래서 신앙루트가 곤란하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기까지 몸에 쌓은 신성력의 크기만큼 신의 부름에 거역하기가 어려우니까.

     

    교단의 부름을 받고.

    가르침을 따르고.

    그 영향이 작게는 한 지역에서 크게는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세월이 흐르면서 <교장>이 수도 없이 보아왔을 흐름으로 인해 교장의 지루함 게이지가 쑥쑥 오른다.

    그것이 회차진행에서 오른 지루함 게이지와 합쳐져서 임계점을 넘기는가 유무에 따라 엔딩이 갈린다.

     

    임계점을 넘기면 교장토벌루트 진입.

    임계점을 넘기지 않으면 신앙엔딩.

     

    교장 토벌에 성공하면 최종히든루트 분기점.

    교장 토벌에 실패하면 세계멸망엔딩.

     

    최종히든루트 분기점에서 아카데미를 이어나간다를 고르면 새로운 교장 엔딩.

    최종히든루트 분기점에서 아카데미를 이어나가지 않는다를 고르면 대침공루트.

     

    교장에게 착취당한 백 개의 차원계의 침공을 모두 물리치면 진정한 평화 엔딩.

    교장에게 착취당한 백 개의 차원계의 침공을 모두 물리치지 못하면 세계멸망 엔딩.

     

    여기서, 백 개의 차원계라는 대목이 중요하다.

    신들은 하나의 계를 정복한 존재.

    그 계가 백 개에 속해있을까, 안 속해있을까?

    답은 속해있다, 이다.

    트루엔딩을 향해 달리면 신은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신앙을 하나라도 지닌다면?

    그 계의 주인인 신이 침공하는 페이즈에서 사실상 게임오버를 맞이한다.

     

    “필요 없어요!”

     

    [사도계약을 거절합니다.]

    [“스스로 화를 자처하는구나. 너의 오만이 스스로 최후를 결정지었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그랜디오스가 신에게 의지하지 않는 위대한 용기에 감탄과 동시에 안타까워하며 발을 동동 구릅니다.]

     

    여기서 필요 없다는 말은 사도계약만 필요없다는 말이다.

    고인물들은 신성루트를 타면 멸망하지만 신성코인의 단맛은 잊지 못했다.

    그래서 개발하고야 말았다.

    신앙 없이도 신성력을 쓰는 방법을.

    신성력의 인도에 따르는 대신, 술식을 직접 해석해서 이해하고 독자적으로 사용한다.

     

    <마나제어술 경험치 1000점 극의>

    <마나제어술 : 완전재현>

     

    술식을 전부 외우고 수동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술식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무모하다! 현인신의 자격도 갖추지 못한 그릇으로 인간의 몸과 정신으로 신의 힘을 고스란히 재현하려 들다간 그대의 영혼이 파괴될 것임을 어찌 짐작하지 못하는가!”]

    [그랜디오스가 지금이라도 신벌을 내려서라도 당신을 막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다른 신의 기척을 감지하고 경악합니다.]

    [그랜디오스가 몸을 부풀리며 크르릉 저항해 보나, 신격의 힘에 눌려 끼잉끼잉 울며 달아납니다.]

     

    “?”

     

    그랜디오스의 의견도 틀리지는 않았다.

    맨정신으로는 못 할 짓이지.

    세계영역 단위의 힘을 인간의 두뇌로 재현하려 들다간 구성술식의 재현에 모든 두뇌를 다 끌어모아 사용하고는 백치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의 모든 마나가 자연스럽게 내 의지를 받들며 도와준다면 어떨까.

    시전 범위를 축소하되 위력감소는 줄이고, 술식의 큰 그림만 떠올려도 세부 구조를 알아서 형성한다면.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칭호가 있다면.

     

    “칭호교체!”

     

    [칭호 <타락의 인도자>가 해제됩니다.]

    [*타락의 인도자* : 모든 신성계열 마나를 지닌 존재는 당신에 의해 본질이 왜곡될 가능성에 노출되었습니다.]

    [보유효과 – <신성>에의 간섭성공확률 10% 증가]

    [장착효과 – <신성>에의 간섭성공확률 30% 증가]

     

    [칭호 <구원의 인도자>가 발동했습니다.]

    *구원의 인도자* : 멸망으로 치닫는 세계를 수차례 구해낸 결과, 당신은 세계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칭호장착효과 : 가호 <무한한 존경심> 활성화

    -칭호보유효과 : 세상만물의 기본호감도 10 증가

     

    [가호 <무한한 존경심>이 활성화됩니다.]

    *무한의 존경심(가호)* : 가호를 활성화하면 세상만물이 당신에게 존경심을 표현한다.

     

    <몰루노디>의 자동기능보조에서 <타락의 인도자>의 신성간섭보조로, 나아가 <구원의 인도자>의 세계영역보조로 발을 넓힌다.

    그 결과, 신이 아니라면 다룰 수 없는 신의 강림마법 수준의 진정한 위력이 이 자리에서 발현됐다.

     

    <위대한 영광의 한걸음>

     

    셰실리의 육신이 거대한 신성의 발걸음에 짓밟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애껴둔 칭호의 힘과 오늘도 늦어서 딱히 하는 일 없는 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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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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