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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9

       

        

        

        

        

        

        

       -[지금으로부터 6년 전, 2030년 1월 27일의 저는 이 지점으로부터 206마일 떨어진 백악관의 집무실에 앉아 연방재난관리청에서부터 올라온 긴급한 사안을 보고받았고, 아직도 브리핑의 서두에 찍힌 불명의 바이러스가 창궐 중이라는 내용을 잊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습게도, 바이러스는 손쓸 틈조차 없이 그 세력권을 불려나갔으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한 달이 지난 후에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기나긴,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참혹한 판데믹이 시작되었습니다.]

        

        

        

        귓전에서부터 들려오는 선명한 음색.

        

        축제를 넘어 광기에 접어든 바깥. 신년이 고작해야 20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내 근방에 있는 모든 이들을 절로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벽처럼, 헨리의 무미건조한 음성은 그 어떠한 흥조차 몸을 잠식할 수 없도록 막고 있었다.

        

        사람으로 가득한 바깥, 통유리창을 뚫고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음색, 미국의 신년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으며, 미국보다 13시간 가량 앞서 신년을 맞이한 시청자들 역시도 실컷 채팅을 쳐대는 중이었지만, 내 시선은 그 너머를 바라본다.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그 누구도 깰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성벽이 처참하게 무너져내렸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활발하던 SNS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멈추었고,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미국의 시민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났으며, 세상의 소식을 전달할 방송국들이 기나긴 숙면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경제라는 거대한 연결고리가 깨어지고, 서로가 취약한 틈을 타 자멸조차 불사하며 모습을 드러낸 하이에나 떼가 신에게 축복받은 대지를 짓밟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용감한 자들마저 알링턴에 묻히지 못한 채 사그라들었지요.

        

        미국은, 신이 가호하는 국가는 분절되었으며, 구획화되었고, 이윽고 어느 도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안다.

        

        그 모든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으니까.

        

        나는 판데믹이 막 시작되었을 즈음의 미국에 떨어졌으니까.

        

        

       

       

       -[그러나 우리들은 이겨냈습니다. 뉴욕에서부터, 워싱턴 D.C에서부터. 미 북동부와 플로리다에서, 휴스턴에서…수백 년의 선조가 그랬던 것과 같이 서쪽으로 나아갔고, 시애틀을 마지막으로 조국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풍파에서 살아남은 여러분들이 지금 제 앞에 서 있습니다. 6년이라는 지난한 시간을 이겨내고 고통의 시간에 방점을 찍었으며, 직면한 도전을 이겨내고 승리하였습니다. 잿더미를 사르며 솟구치는 불사조와 같이, 모든 아픔을 벗어던지고 이 자리에 선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5분 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제각기 스러져간 수많은 의인들과 군 장병들,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지만 떠오르는 내일의 해를 볼 수 없게 된 안타까운 이들의 핏방울을 잉크 삼아 적혀진 참혹한 6년의 역사를 뒤로 한 채 말입니다.]

        

        

        

        1분, 2분, 3분.

        

        저 아래에서 14시간씩 기다리던 사람들은 진즉 일어서있었고, 어느덧 신년까지는 고작해야 10분 언저리밖에 남지 않은 시점.

        

        건너편 건물 아래층에 있는 발코니에서는 특수한 플래시 페이퍼로 만든 형형색색의 종이들이 분사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저게 그 타임즈 스퀘어의 꽃가루인가 하는 그게 아닐까. 그리 생각하면서 다시 연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까, 하모니가 슬그머니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유진 씨는 내년엔 뭘 하고 싶으세요?”

        

       “…글쎄요. 아직 정해진 건 없네요. 하던 일들을 적당히 마무리하면 이젠 다른 영역에도 조금 손을 대보고 싶긴 한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는 걸로.”

        

       “요즘 테라 해달라는 사람 많은데, 그런 건 어때요?”

        

       “왜 제가 모르는 소식을 민아가 알고 있나요.”

        

       “앗, 그냥 모니터링 차원에서…아야아아앗-!”

        

        

        

        시청자들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킥킥대고, 나는 입가에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 민아의 말을 적당히 흘렸다.

        

        테라라. 어쩌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아직 파이널 챔피언십에 참여한 국가대표 인원들에겐 말하지 않았으나, 이번 년도가 끝나면 돌아가서는 쉴 예정이었다. 내년부터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미국은 가더라도 파이널 챔피언십에 동행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고.

        

        그리 생각하며 다시금 연설에 집중한다.

        

        

        

       -[…그러나 내년은 결코 후세의 역사서에 ‘오메가 바이러스 발발 이후 7년’이라는 이름으로 적히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후손들은 이 날을 영광스러운 재건의 시작이라고 기억하게 될 겁니다. 상흔은 남아있을지언정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갱신과 결의의 날이자, 역사와 희망의 날이며, 미국의 날입니다. 그리고 이는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의 담대함으로 인해, 신념으로 인해,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희망으로 인해 결성되었습니다.

        

        수리해야만 할 것도, 복구해야만 할 것도, 치유해야만 할 것도, 그리고 다시 세워야만 할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러지고 산산조각난 미국이 이전보다도 더욱 견고하게 서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수많은 국민이 희생하며 흘린 피가 자유의 반석으로 응고되어,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여러분들을 굳건하게 받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시, 이 사람. 연설은 참 잘한다.

        

        눈동자를 힐끔 굴려 주변을 바라보고,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는 수십만 명 가량이 운집하며 생긴 환호성이 들릴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의 인컴을 타고 전해지는 주변의 훌쩍대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마저도 코가 찡하고 눈시울이 조금 붉어진다. 한쪽 눈을 타고 눈물이 슬그머니 흘러내린다.

        

        그것을 어느샌가 민아가 봤는지 그에 대해 물었지만, 나는 그저 습도가 낮은 탓이라고 얼버무리며 계속해서 청각에 주의를 기울였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하여 이 자리에 선 모두는 같은 사선을 넘어왔고, 직면한 공동의 적을 위해 단합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모든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선 이러한 단합이 필요할 것입니다.

        

        에 플루리부스 우눔, 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 비록 모두가 다르지만, 이 자리에 선 우리는 같은 결의로 뭉친 연합입니다. 모두가 힘겨운 시간을 버텨내고 교훈을 얻었습니다. 미국은 쓰러질지언정 부서지고 산산조각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제가, 보스턴에서,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 D.C에서, 플로리다에서, 미 중부에서, 미 서부에서 살아남은 모든 분들이 곧 이 사실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보다도 더 나아질 수 있고, 끝내, 이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과거보다도 더욱 진보할 것입니다.]

        

        

        

        이 녹음본을 이 세계에 있는 헨리가 듣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문득 그런 쓸데없는 생각과 함께, 어느덧 오후 11시 55분이 도래하기 직전이 되었다.

        

        정확히 맞춰진 시간. 어느덧 무미건조하다고 느껴졌던 헨리의 목소리에는 힘이 깃들었고, 얼굴에는 생기가 넘친다.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위해 타임즈 스퀘어에 모인 저쪽 세계의 십수만 명이 일제히 손을 잡고, 결의에 찬 얼굴로 단상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 옆 사람과 손을 잡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 모인, 그리고 연설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은 역사에 남을 것이고, 훗날, 미국이 다시금 세계를 선도하는 번영의 첨단에 섰을 때, 저는 이 날의 기억이 여러분의 후손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가장 영광된 기억 중 하나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12월 31일을, 오늘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30년 후, 혹은 50년 후, 손자들의 곁에서 오늘 있었던 기억을 그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의무를 다했고, 부서진 땅을 고쳤으며, 재건될 미국의 역사를 스스로 써내려갔노라고.

        

        바로 그 때문에, 오늘은 희망이자 재건의 날이며, 신성하고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이 자리에서 제 연설을 보는 모든 분들께, 혹은 라디오로 제 연설을 청취하는 모든 분들께 감히 말하건대, 여러분들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리란 봉화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5분, 4분, 3분, 2분, 그리고 1분.

        

        저 멀리에서부터 하늘을 가르고 어렴풋이 날아드는 듯한 둔중한 비행음과 함께, 헨리가 덧붙였다.

        

        

        

       -[하느님과 여러분 모두에게 말을 전합니다. 항상 당신과 수평을 이루겠습니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며 미국을 지키겠습니다. 힘이 아닌 가능성을 생각하며 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바치겠습니다. 두려움이 아닌 희망에 대한 미국의 이야기를 적겠습니다.

        

        그리고 이 중 최소한 절반은 이미 이룰 수 있었고, 저는 그 점에 여러분들께, 그리고 하느님께 무한한 영광을 돌립니다. 분열이 아닌 단결의 의지가 가득하며, 위대함과 선량함이 충만한 세상이 올 것임을 기원합니다.

        

        우리는 힘을 모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고, 이제 그 첫 번째 발자국을 내딛습니다. 신의 은총이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그리고 신의 은총이 미국과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더하여 마지막으로 부탁하건대, 하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짤깍.

        

        짤깍.

        

        짤깍.

        

        원 타임즈 스퀘어 빌딩의 한가운데에 떠오른 볼이 푸르게 빛나고, 불꽃이 건물 옆에서 조금씩 터져나오며, 허공에서부터 수백만 개의 플래시 페이퍼가 흩뿌려지는 사이, 나는 저쪽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왼쪽 눈으로 저쪽 세상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원격조종기의 목이 위로 기울어지는 순간, 나는 하늘에서부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았다.

        

        

        

       ───드드드드득!

        

        

        

       “…와.”

        

       “2037년 축하해요!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유진 씨도 새해 복 많이 받아요! 꼬리의 가호가 모두한테 있기를!”

        

       “…시작부터 참 기괴한 덕담이네요. 아무튼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시간초가 제로로 수렴함과 동시에, 불꽃놀이와는 완전히 다른 웅장한 불꽃이 하늘에서부터 터져나온다.

        

        다섯 대의 C-130 수송기가 축차로 비행하며 천사의 날개라고 불리는 플레어를 사방으로 뿜어내고, 그 뒤를 여러 대의 전투기가 비행하며 따라오더니, 특수하게 혼합된 연료를 허공에 가로로 방사, 뒤따라오던 한 대가 애프터버너를 점화시킨 채 연료 구름을 통과한다.

        

        형형색색의 화염 구름이 허공에서부터 타올랐고, 곧바로 드론 수천 대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일제히 기폭, 그 자리에서 미국의 국기를 형성한다.

        

        스코틀랜드의 민요인 <Auld Lang Syne>, 프랭크 시나트라의 <New York, New York> 등이 순서대로 타임즈 스퀘어를 가로질렀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새끼 비얌 두 명이 다가와 덧붙였다.

        

        

        

       “…항상 고마워요, 유진 씨. 언제나 수고 많아요.”

        

       “여러분들 덕분에 가능한 일도 많았지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히히. 내년도 잘 부탁해요.”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두 명과 팔짱을 끼었고, 두 명은 그것이 곧 대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입을 닫았다.

        

        이래서 저쪽 세계의 볼드랍 이벤트도 보라고 했던 거구나. 오직 저쪽만 가능한 폭죽, 그리고 폭죽 이상의 화려한 무언가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당히 궁금했지만, 그 기대는 최상의 결과가 되어 나를 맞이했다.

        

        

        

       ‘…이번 년도에는 직접 참여하진 못했지만, 내년에는….’

        

        

        

        바로 이런 것들 때문에라도 사람들은 한 해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 생각하며 나는 바깥을 바라보았다. 한 해가 완전히 저물고, 새로운 1년이 시작된다. 그동안 실로 많은 일이 있었고, 정말 줄기차게 달려왔다.

        

        인디언포인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미 서부를 수복했고, 메카 몬낸이들을 네 기나 얻었다. 어디 그 뿐만이랴. 하와이도 다녀왔고, 글로리 앤 아너도 해보았으며, 느닷없이 스나이퍼 컴페티션에 나갔기도 했지.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과연 내년…아니, 이번 년도에는 무슨 일이 있을까 하는 기대를 품으며 앞날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 생각하니 한 치 앞도 모르는 앞날도 그리 무섭지 않았다.

        

        

        

       “예쁜 밤이네요.”

        

       “그러게요.”

        

        

        

        누군지 모를 사람의 긍정을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새해의 밤이 시작되었다.

        

        미국을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작년에도 느낀 거지만,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미국에서 평생 살 것 같았는데, 어느샌가 집에 갈 때가 되었네요. 지난 번이랑 똑같이 JFK 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것도 그렇고.”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올리비아 씨 따라서 파리나 가볼까요?”

        

       “거기 가면 한식은 더 먹기 힘들 거고, 말은 더 안 통할 거예요. 그래도 가고 싶어요?”

        

       “앗, 그러면 그건 좀 그렇겠네요.”

        

        

        

        2037년 1월 1일, 오전 10시 40분, 케네디 국제 공항.

        

        어제 12시에 느꼈던 신년의 열기까지는 없었지만, 공항 안에 사람은 많았다. 원체 바쁜 공항이니 어쩔 수 없긴 했다. 지난 번에는 바로 버스를 타고 나갔기에 – 검사는 하긴 했다 – 터미널에는 들린 적이 없었기에 실질적으로는 이번 년도의 첫 방문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하모니와 다이스를 비롯한 이들은 꼴랑 한 달 정도 지냈다고 뉴요커마냥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고 고오급 선글라스를 낀 채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물론 뉴욕은 그냥 커피, 혹은 레귤러 커피라고 하지, 아이스 아메리카노 달라고 하면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겠지만.

        

        아무튼, 그것과는 별개로….

        

        

        

       “이런 날까지 배웅해줄 필요는 없는데.”

        

       “또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 그냥 고맙다고 한 마디나 남기시길.”

        

       “고마워요.”

        

       “그럼 고마워해야지. 그 닭대가리는 바빠서 못 왔지만, 너한테 재밌었다고 인사 전해달라더라. 그래서 온 거야.”

        

        

        

        하긴.

        

        어쩐지 올리비아가 없더라. 물론 까놓고 말해서 이 자리에 로건만 있든, 로렌티나만 있든, 혹은 둘 다 없든 간에 그닥 문제는 없었다. 내 지인들이야 본업이 있고, 기본적으로 더럽게 바쁜 사람들이었으니까.

        

        둘다 고개를 휙휙 둘러보더니 말이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메카 막내들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대략 7주 정도 남았나?”

        

       “그렇죠. 그 즈음에는 아마 저만 오게 될 것 같아요. 이번에 같이 온 친구들은 한국에 남아있을 거고…휴머노이드 원격 접속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 즈음에 한국 공휴일이 있으니까요. 막내는 가족이 투 브리지스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와야겠지만…그땐 진정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겠군요. 그동안 꽤 귀찮게 했으니 그때라도 편히 쉬길.”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이야. 놀랍네.”

        

        

        

        당연하겠지만 그 두 명은 언제나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 꼴을 보면서 다들 큭큭 웃었다. 말로는 항상 이 이후에는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하고 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모이는 걸 보면 이번 연말에도 또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악수를 건네고, 전용 게이트로 들어간다. 얼추 예상했겠지만 우리가 한국으로 타고 돌아갈 비행기는 이카루스에서 보내준 것이었고, 딱히 출발 시간이라는 개념에 구애받지 않는 물건이었다. 그리하여 대략적으로 11시 20분 정도에 출발할 예정이었고.

        

        

        간단한 짐 검사 및 보안검색 게이트를 통과한 후 보이는 면세점.

        

        다들 벌 만큼 버는 사람들이었기에 손에 걸리는 어지간한 물건들은 전부 구매하는 중이었고, 나는 그것을 힐끔 바라보며 덧붙였다.

        

        

        

       “민아나 예린이는 뭘 사줘야만 할지를 잘 모르겠네요. 각각 1등이랑 4등 했으니…그러고 보니 불가리에 뱀을 모티브로 하는 액세서리가 몇 개 있는 걸로 아는데, 하나씩 선물 받아가시길.”

        

       “엣, 그거 하나당 5만 달러씩 하는데.”

        

       “가격은 신경쓰지 말아요. 그 정도도 못 해줄 정도로 지갑이 얇진 않으니.”

        

       “엣, 에에….”

        

        

        

        이번 년도에 처음으로 5등을 먹은 미카엘과 잉크를 밀어내고 어떻게든 올라온 서밋, 항상 꾸준히 잘 하는 갬빗과 카토 일행도 데려갈려고 했지만, 다들 극구 사양하길래 아쉽게도 하모니랑 다이스밖에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앉은 자리에서 레인지로버 한 대가 날아갔다. 민아랑 예린이의 손목과 목에는 느닷없이 뱀 한 마리가 걸려버렸고. 물론 나도 하나 걸려있었다. 과거 로렌티나가 길거리 리프팅에서 500kg를 든 후 날로 500만원을 얻고, 그 돈으로 내게 준 팔찌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회사에서 제작한 액세서리로구만.

        

        

        아직도 펀치에 맞은 것마냥 헤롱대는 두 명의 뒷목을 손가락으로 살살 긁으며 덧붙였다.

        

        

        

       “내년…아니, 제5회 파이널 챔피언십부터는 제가 더 이상 봐줄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어떻게 보면 일종의 고별 선물이지요. 그렇다고 아예 여러분들과 함께 게임을 하지 않는다는 건 절대 아니고.”

        

       “…무, 뭣.”

        

       “켁.”

        

       “때로는 홀로 서는 것도 필요한 법이니까요. 여러분들이라면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더 나아가서, 두 분이 제 그늘 아래에서만 머물지를 않길 바라거든요.”

        

        

        

        그 순간 두 명의 얼굴이…음, 설명하기에는 그닥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어쩐지 이 두 명이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제가 뭐 여러분들 옆을 영영 떠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안 그래도 다이스는 제 옆집으로 이사왔고, 보아하니 민아도 몇 년 안에 제 집 근처로 이사 올려고 나름 집 구경 하고 있는 거 다 알고 있거든요.”

        

       “그, 긋, 그런 게 아니라아.”

        

       “할 거 없으면 간단한 간식 들고 제 집 문 두드리세요. 항상 열려있으니까.”

        

       “히히, 저는 유진 씨만 믿고 있었다구요.”

        

       “으휴, 말은….”

        

        

        

        전혀 안 믿긴다.

        

        아무튼 이 둘의 입에도 맛있는 떡을 하나 물려주었기에, 남은 것은 지인들에게 돌릴 자잘한 선물들 정도. 물론 내 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번 년도에 죄다 우르르 몰려왔으니, 까놓고 말해서 나는 여기서 선물을 사서 바로바로 돌릴 수가 있었다.

        

        다들 얼떨떨한 표정이었지만, 나중에는 다들 함박웃음을 지으며 저마다 고급 위스키, 시계, 향수, 화장품, 핸드백 등등을 들고 갔다. 이래서 선물 주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구매한 면세품들은 죄다 봉인봉투로 단단히 밀봉되어 수하물 칸에 실렸고, 이제는 정말로 정들었던 미국을 떠날 시기였다.

        

        

        게이트를 성큼성큼 가로질러, 거대한 기내 내부에 정확히 사람 수만큼 존재하는 좌석에 힘을 풀고 누웠을까.

        

        다들 뜬금없이 내 좌석의 도어 슬라이드를 얼굴만 빼꼼 나올 정도로 아주 조금 열어젖히더니, 이어 한 마디씩 덧붙였다.

        

        

        

       “이번 년도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마워요, 유진 씨!”

        

       “비얌만세!”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번 년도도 잊을 수 없는 추억 만들고 갑니다.”

        

       “비얌은 신이고 나는 무적이다!”

        

       “…알았으니 다들 앉아요. 출발해야 하니까.”

        

        

        

        물론 나는 창피한 나머지 멋쩍게 웃으며 그리 말할 뿐이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기분은 참 좋았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모두가 제자리에 앉고,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제와는 다르게 구름 한 점도 없는 맑은 날씨가 인상적이었다.

        

        여행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기에는 참 좋은 날씨였다.

        

        

        

       “자, 그럼….”

        

        

        

        비록 얼마 후에 혼자서 다시 와야만 하겠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이 여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실로 아름다운 뉴욕의 날씨를 마지막으로, 길었던 제4회 파이널 챔피언십이 끝을 맞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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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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