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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휘이이잉.

       

       시원한 바람이 힘차게 불어와 내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맡았던 공기와는 사뭇 다른, 신선하고 맑은 공기.

       

       그건 근처에 있던 마을 하나가 불타 잿더미로 변하고, 거기서 나온 뿌연 연기가 나무 사이 사이로 스며들었을 산속에서 들이마실 수 있는 종류의 공기가 아니었다. 

       

       ‘그야 그렇겠지. 왜냐하면 지금 여기는….’

       

       멜른 산이 아니니까.

       

       ‘…멜른 산은 이렇게 높지 않거든.’

       

       나와 이 작은 해츨링이 출구를 통해 나온 곳은, 꽤나 높은 산의 꼭대기 부근이었다. 

       

       아래로는 울창한 숲이 끝을 모르고 펼쳐져 있었고, 저 멀리에는 커다란 호수가 보였다. 

       

       ‘이것만 가지고는 어딘지 짐작하기가 어려운데.’

       

       아무리 내가 레키온 사가를 오래 했다고 하지만, 이렇게 특징이랄 것도 별로 없는 숲과 호수만 보고 어느 지역인지 바로 알아맞히는 건 힘든 일이었다. 

       

       게임에서 보던 퀄리티 낮은 그래픽과 지금 보이는 진풍경 사이에 꽤나 큰 차이가 있기도 하고 말이다.

       

       여튼, 확실한 거라곤 여기가 멜른 산도, 혹은 멜른 산 근처조차도 아니라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다행인 점은, 적어도 여기에선 하무트교 놈들에게 쫓길 일이 없을 거라는 것 정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그래, 일단 다행이라고 치자.”

       “쀼우?”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품에 안긴 해츨링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 너는 모르겠구나. 나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는 해츨링의 등을 토닥여 주며 오늘 나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내가 살던 바냐스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쀼우.”

       

       해츨링은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마치 할아버지에게 옛날 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하기 시작했다.

       

       ‘…이걸 이렇게 열심히 듣는다고?’

       

       대충 요약해서 설명하고 끝내려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다.

       

       “그래서 바로 뿌연 연기 안으로 뛰어들어 가지고….”

       

       물론 아무래도 청취자의 연령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나는 내가 눈앞에서 목격했던 잔인한 장면은 최대한 순화해 뭉뚱그리고, 사람들을 피해 숨어서 이야기를 엿듣고 무사히 살아남은 부분만 박진감 넘치게 묘사했다.

       

       “…그렇게 우리 마을을 습격한 나쁜 사람들한테서 도망치다가 동굴을 발견했고, 우연히 너를 만난 거란다.”

       “쀼우우!”

       

       동굴에서 우스꽝스럽게 굴러 떨어져 정신을 잃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원래 이야기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구전되면서 멋있는 부분만 과장되고 그런 거지.

       

       여튼, 해츨링은 내 무용담이 재미있었는지 눈망울이 총총한 채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지금 여기는 그 나쁜 사람들이 없을 테니 다행이라고 한 거야. 문제는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건데…. 혹시 넌 아니? 여기가 어딘지.”

       “뀨우.”

       

       해츨링은 내 물음에 조금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역시 얘도 모르나.’

       

       그럴 거라곤 생각했다. 

       

       ‘아무래도 드래곤 레어에 쳐진 결계에는 공간 이동 마법까지 걸려 있던 모양이야.’

       

       나는 잠깐 고개를 돌려 우리가 방금 나온 동굴 출구를 바라보았다. 

       

       ‘아마 저기로 다시 들어간다고 해도 드래곤 레어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내 짐작이 맞는다면 드래곤 레어는 멜른 산에 있는 것도, 이 이름 모를 산꼭대기에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실제 좌표는 따로 있고, 멜른 산이나 여기는 그 드래곤 레어랑 임시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거 되게 꼼꼼하구만.’

       

       잘은 모르겠지만, 드래곤의 결계 마법이 대단하다는 것쯤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발광석을 충분히 챙겨 오길 잘했군.’

       

       이제 이걸 팔기만 하면 완벽한데 말이지.

       

       ‘일단 어떻게든 사람 사는 곳을 찾긴 찾아야 해.’

       

       하무트교의 위협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은 생각보다 그다지 나아진 게 없었다. 

       

       왜냐?

       

       빙의하기 전에 하루에 한 끼만 굶어도 출출해서 빵이나 과자라도 입에 넣어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었던 현대인이 한 명.

       

       그리고 알에서 깨어난 지 하루도 되지 않은, 한창 많이 먹고 많이 자야 할 신생아 드래곤이 하나.

       

       즉 연비 똥망인 둘이 한 파티인 상황에서 지금 먹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아, 잠깐. 하나 있긴 한데.’

       

       나는 문득 아까 발광석을 캐서 넣어 둘 때, 그 많은 바지 주머니 중 하나에서 작은 감자떡 하나를 발견했던 걸 떠올렸다. 

       

       얇은 종이에 싼 감자떡이었는데, 아마 빙의하기 전의 레온이 일 하다가 출출할 때 먹으려고 쟁여 둔 것으로 추정되는 간식이었다.

       

       당시에는 감자떡만 한 발광석 하나를 캐면 똑같은 감자떡을 백 개는 넘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 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발광석 캐는 데에만 집중했었는데….

       

       ‘사실상 지금 여기서만 따지면 발광석보다 이 감자떡이 가치 있을지도….’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발광석을 씹어 먹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마침 좀 출출한데, 더 배고파지기 전에 기운 좀 내고 본격적으로 다음 행선지를 찾아 볼까.’

       

       나는 자세를 낮추어, 안고 있던 해츨링을 바닥에 잠깐 내려 주었다.

       

       “쀼?”

       

       해츨링은 잠자코 바닥에 내려, 두 발로 일어선 채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저 짧은 다리로 용케도 잘 서네.’

       

       비록 아직은 조금 자세가 불안해 보이고, 꼬리의 도움을 좀 받아 서 있긴 하지만….

       

       “쀼웃.”

       

       균형을 잡으려다 잠깐 휘청이는 귀여운 모습에 잠깐 정신을 빼앗겼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그리고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감자떡을 꺼냈다.

       

       종이를 반쯤 벗기고, 말랑쫀득해 보이는 감자떡이 모습을 드러내자 해츨링의 눈이 동그래졌다.

       

       킁킁.

       

       옅게 나는 구수한 감자 냄새를 맡았는지 해츨링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나는 해츨링에게 차분하게 설명했다.

       

       “얘야. 잘 들으렴. 안타까운 얘기지만, 사람 사는 곳을 찾기 전까지 우리한텐 먹을 게 이것밖에 없단다.”

       “쀼우.”

       

       고개를 끄덕이는 해츨링의 표정에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났지만, 여전히 감자떡을 향한 열정적인 눈빛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언제 찾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일단 아무것도 안 먹고 움직이긴 좀 힘들 테니 이것부터 먹고 출발할 거야. 떡이라 너한테는 조금 질길 수도 있는데, 꼭꼭 씹어 먹어야 해. 알겠지?”

       “쀼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끄덕이는 해츨링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해츨링 앞에 쪼그려 앉은 채로 감자떡을 손으로 조금 떼어 녀석의 입 앞에 가져다 내밀었다.

       

       “쀼웃.”

       

       해츨링은 다시 한번 냄새를 킁킁 맡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벌려 감자떡을 물었다.

       

       챱.

       

       “쀼…!”

       

       희끄무레한 떡 조각을 입에 넣은 녀석의 눈이 커졌다.

       

       “입에 맞니?”

       

       아무래도 인간이 먹으려고 만든 음식이다 보니 드래곤의 입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는….

       

       “쀼우우우!!”

       

       그래, 입에 잘 맞는가 보구나.

       다행이다.

       

       녀석은 감자떡의 맛을 보자마자 입을 열심히 오물거리더니, 곧 떡을 꿀꺽 삼켰다.

       

       “쀼우우!!”

       “그래, 그래. 천천히 먹으렴.”

       

       나는 더 달라는 듯 간절하게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감자떡을 조금 더 떼어 녀석의 입에 넣어 주었다.

       

       “쀼, 쀼우.”

       

       조그만 입으로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입에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잘도 먹네.’

       

       생각해 보면 알에서 깨어나고 처음으로 먹는 음식이다.

       

       원래대로라면 알에서 깨고 부모의 케어를 받으며 배부르게 먹고, 푹 자는 걸 반복할 때인데, 어쩌다 보니 깨자마자 울음부터 터뜨리고 마나까지 사용하느라 제 풀에 지쳐 잠들기까지 했으니….

       

       그래서 그런가 열심히 먹는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쀼웃.”

       “자, 여기 더 먹으렴.”

       “쀼!”

       

       나는 해츨링이 떡을 다 먹을 때마다 조금씩 더 떼어서 주고, 혹시 몰라 중간 중간 소화가 잘 되도록 등을 톡톡 두드려 주었다.

       

       “쀼우…!”

       “응? 왜? 더 안 먹어?”

       

       그러던 어느 순간, 잘 먹던 해츨링이 별안간 입을 다물자 나는 녀석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싶어 물었다. 

       

       “쀼우.”

       

       해츨링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조막만 한 손으로 감자떡을 가리키고, 곧 내 얼굴을 가리켰다.

       

       “아.”

       

       그제야 나는 손에 든 감자떡이 어느새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뀨우우….”

       

       해츨링은 조금 풀 죽은 얼굴로 뀨 소리를 내더니, 눈을 꼭 감은 채 내가 입 앞에 내민 감자떡 조각을 앞발로 쭉 밀어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픽 웃으며 말했다. 

       

       “어이구, 나 먹으라고 그러는 거야? 고맙지만 난 괜찮아. 배고팠던 모양인데 너 다 먹어도 돼.”

       

       솔직히 말하면 나도 꽤나 출출하고, 눈앞에서 감자떡의 은은한 냄새를 맡고 있으니 점점 배고파지긴 했지만….

       그래도 녀석이 너무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계속 먹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겨우 손가락 두 마디밖에 안 남은 감자떡을 누구 코에 붙이겠는가. 

       

       요 쪼그만 해츨링 코에 붙일 거면 몰라도, 건장한 청년에게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양인 게 사실이다. 

       

       “쀼우우…!”

       

       하지만, 녀석은 생각을 바꿀 마음이 없는지 연신 고개를 저으며 감자떡을 밀어냈다. 

       

       “쀼!”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의 눈에서는 일종의 결의마저 느껴졌다.

       

       “허어, 녀석. 은근 고집이 있네.”

       

       장난 삼아 감자떡을 녀석의 입 쪽으로 몇 번 밀던 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알았어. 먹을게.”

       “쀼우!”

       

       그제야 녀석의 표정이 풀렸다. 

       

       나는 남은 감자떡을 입에 넣었다.

       역시 배고플 때 먹어서 그런지 맛은 최고였지만, 밥 한 숟갈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양인지라 금세 마지막 조각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쀼우?”

       

       하지만, 나는 나를 올려다 보는 녀석에게 미소를 지으며 보란 듯이 내 배를 툭툭 치며 쓰다듬어 보였다. 

       

       “아, 맛있게 잘 먹었다. 덕분에 기운이 좀 나는 거 같은데?”

       “쀼우우!”

       

       내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자 해츨링의 얼굴도 금세 밝아졌다. 

       

       나는 씩 웃으며 해츨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덕분에 잘 먹었으니, 출발할까?”

       “쀼웃!”

       

       아무래도 해츨링이 벌써 걸어 다니기는 힘들 테니 안아 들려다가,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 녀석을 내 상의 뒤에 달린 후드 모자 안에 넣어 보았다.

       

       “쀼?”

       “어때, 부드럽고 괜찮지?”

       “쀼우!”

       

       해츨링은 모자 속에서 누워 보기도 하고, 일어서 보기도 하더니 이내 자기가 편한 자세를 잡았다. 

       

       “그게 편해?”

       “쀼!”

       

       녀석은 몸을 반은 모자 안에, 반은 내 어깨쯤에 걸친 채 호기심 많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며 걸음을 옮겼다.

       

       “좋아. 그럼 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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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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