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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프란체를 따라 걸었다. 시각은 아직 오밤중. 그녀는 아무런 걱정도 없는지 여유로워 보였다.

       

       “내가 너에게 무슨 명령을 내릴 건지 궁금하지 않니?”

       

       문득 프란체가 내게 물었다. 그녀가 내게 바라는 건 원작을 아는 나도 모르겠다.

       

       진과 프란체의 사이는 의문과 모순이 가득하다. 주인과 노예의 사이인데 어째서 진은 프란체가 죽고 나서 분노했던 것인가. 오히려 자유가 되었으니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진은 멸망해버린 바렌베르크의 왕자. 보통 왕자라면 이때를 노려서 왕국의 재건을 노리지 않나…….

       

       “주인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장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로 산더미인데, 이 앞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일단 순응하기로 했다. 지금은 천천히 상황을 읽어야지.

       

       “그래, 그런 태도는 마음에 드는구나.”

       

       프란체는 공작저로 향하면서 계속해서 내게 질문을 던졌다.

       

       “바렌베르크 왕국의 재건을 꿈꾸고 있니?”

       “백성이 없는 왕국을 되찾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말은 잘하는구나.”

       “감사합니다.”

       “딱히 칭찬은 아닌데….”

       

       그녀는 다시 질문하며 말을 이었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니?”

       

       무엇을 할 수 있냐, 라. 진의 장점이 뭐였더라. 특성은 다 확인했는데. 나는 최대한 기억을 되새기며 말했다.

       

       “전투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지 가능합니다. 지키는 것도 능숙하지요. 검을 잘 사용합니다. 다른 무기도 잘 사용하지만요.”

       

       푸훗, 프란체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남자는 자신감이 없으면 시체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 마음에 드는구나.”

       

       시작부터 프란체의 호감을 산 것 같다. 출발은 좋다. 이대로 그녀의 호의를 이용해서 노예 탈출을 노리겠다. 그리고 나는 자유로운 생활을 되찾을 것이다.

       

       돌아가는 방법도 생각해보고.

       

       그때였다.

       

       “프란체 데카르트.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거지?”

       

       움찔. 프란체가 순간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움츠러들었다.

       

       “여길 어떻게…….”

       

       저 얼굴, 익숙하다. 데카르트 공작가의 차기 공작, 에덴 데카르트였다.

       

       그는 원작에서 그다지 비중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프란체 데카르트가 악역이 되었을 때도 등장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가 죽을 때에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잘 모르겠다.

       

       에덴 데카르트가 말했다.

       

       “네가 갑자기 사라져 큰 소란이 일어났다. 대체 어딜 다녀온 거지?”

       “잠시 경매장에 다녀왔습니다…….”

       “경매장…?”

       

       에덴 데카르트가 눈썹을 좁히며 힐끔 나를 바라봤다.

       

       “행색이 이상한데. 설마 노예를 구매한 건가?”

       “…맞습니다.”

       “…남자 노예를 사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분명하군.”

       

       그의 목소리가 낮아지고 눈빛이 싸늘해지자 프란체 데카르트는 서둘러 해명했다.

       

       “자세한 건 제가 아버님께 말씀드릴게요! 그러니─”

       “더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 일단 공작저로 돌아가도록 하지.”

       

       뭐지. 왠지 나 때문에 프란체 데카르트가 곤란해진 것 같은데.

       

       ‘그게 내 탓은 아니긴 해.’

       

       그 뚱땡이 아줌마한테서 구해준 건 고맙다만, 그녀가 곤란해진 이유는 그저 선택에 따른 책임일 뿐.

       

       에덴 데카르트가 저리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공작가의 영애가 남자 노예를 구매하다니. 그녀가 남자 노예를 어떻게 사용하든 간에 데카르트 공작가의 위신을 떨어트리는 행위가 맞긴 하니까.

       

       우리는 에덴 데카르트를 따라 걸었다. 깊은 정적. 무거워진 분위기에 괜스레 나까지 눈치가 보인다.

       

       정면을 바라봤다. 에덴 데카르트의 걸음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아까까지만 해도 도도하고 고귀하게만 보였던 프란체 데카르트는 잔뜩 움츠러들어 있다.

       

       ‘내가 모르는 공작저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군.’

       

       뭐, 어찌 되었든 곧 알게 되겠지.

       

       나는 프란체 데카르트의 호위기사가 될 예정이니까.

       

       

       * * *

       

       

       공작저에 도착하고, 철컹! 커다란 아치형 대문이 열렸다. 좌우에는 긴 물결처럼 이어진 기사들이 행렬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말을 꺼낸 사람은 백발의 중년이었다. 세련된 양복. 집사장인 듯했다. 근데 좀 멋있다. 저런 게 중년 간지인가?

       

       “곧바로 공작님을 뵈어야겠다.”

       “공작님께서는 아직 업무를 보고 계십니다.”

       “먼저 가서 미리 말씀을 드려라.”

       “명, 받들겠습니다.”

       

       집사장이 다소곳이 허리를 숙인 뒤 빠른 걸음으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너희들도 물러나 보도록. 늦은 시간까지 고생했다.”

       ―충!

       

       에덴 데카르트의 말에 기사들이 칼처럼 날카롭게 움직였다.

       

       ‘오, 좀 멋있는데.’

       

       나도 저들 중 하나가 될까? 음, 그렇게 되진 않을 거 같다. 프란체가 허락도 없이 사 온 노예이니 그녀의 직속으로 붙겠지.

       

       “따라와라.”

       “네…….”

       

       프란체의 힘없는 목소리. 그러게 허락받고 노예를 샀어야지.

       

       ‘알아서 잘 해결해라.’

       

       나는 프란체에게 물었다.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

       “잠시 밖에서 기다려. 용건은 금방 끝날 테니까.”

       “아니.”

       

       에덴 데카르트가 대화를 끊었다.

       

       “네놈도 따라와라. 이건 네놈 때문에 생긴 문제이니.”

       

       예?

       

       “프란체 데카르트. 공작님 앞에 서서 제대로 해명해야 할 거다.”

       “네…….”

       

       뭐지. 왜 이렇게 된 거지…….

       

       그렇게 우리는 공작저의 안으로 들어갔고, 공작의 집무실 앞에 섰다.

       

       똑똑. 에덴 데카르트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공작님. 에덴 데카르트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급한 용건입니다.”

       ―들어와라.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섰다. 집무실의 안은 한없이 조용했다. 사각사각. 만년필이 움직이며 백색소음을 일으켰다.

       

       “무슨 용건이냐.”

       

       만년필이 멈췄다. 공작은 고개를 올려다보며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내 얼굴을 보고선 미간을 찌푸렸다.

       

       “그 남자는 누구지?”

       “프란체 데카르트가 경매장에서 구매한 노예입니다.”

       “노예라고…?”

       

       안 그래도 찌푸려진 공작의 미간이 더욱 구겨졌다.

       

       “공작가의 여식이 노예를 사와? 그것도 남자 노예를?”

       

       찌릿. 데카르트 공작이 눈썹을 좁히며 프란체를 노려보았다.

       

       “무슨 일인지 제대로 해명해야 할 거다. 내가 납득할 만한 대답이 아니라면 처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프란체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긴장을 많이 한 듯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려왔다.

       

       “그것이…….”

       “말해보아라.”

       

       프란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정적이 이어지고. 공작의 눈썹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못 들은 것이냐? 말해보라 하였다!”

       

       프란체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데카르트 공작가의 사용인들이나 기사들은 저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저만을 위한, 제 명령만을 따르는 자가 필요했습니다.”

       

       공작가의 사람들이 프란체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그녀의 과거에는 무슨 일이 있던 것인가.

       

       “그들이 너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지? 그저 너의 심증에 불과한 것이 아니더냐?”

       

       공작의 말에 프란체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공작님께선 저에게 전혀 관심이 없으셨군요. 조금은 아실 줄 알았는데.”

       

       이어서 프란체는 바닥에 엎어져 이마를 박았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죄송합니다, 공작님. 제가 노예를 구매한 것은 앞서 말했던 이유가 전부입니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의 공작이 고개를 뻣뻣이 들었다. 검지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 노예를 구매하는 데 들어간 금액은 얼마나 되지?”

       

       음. 이건 진짜 큰일 난 거 같은데.

       

       “…5억입니다.”

       “뭣…!?”

       

       공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내 저럴 줄 알았다.

       

       “공작님께서 제게 유일하게 허용하신 활동비입니다. 저는 그걸 사용한 것뿐입니다.”

       

       공작은 미간을 주무르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긴, 노예한테 5억을 태우기엔 너무 큰 돈이긴 했어. 그 돼지 귀족 아줌마도 통 크게 1억을 불렀던 건데.

       

       “…이건 죄를 묻지 않을 수가 없겠구나. 일주일 동안 근신형에 처하겠다.”

       “관대한 처사에 감사드립니다.”

       

       프란체가 허리를 숙이자 그녀와 나를 번갈아 쏘아보는 에덴 데카르트. 뭘 봐?

       

       “이만 돌아가거라.”

       “예.”

       

       공작이 그녀의 행동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에덴 데카르트는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였지만, 구태여 자신이 가진 불만을 이야기하진 않았다.

       

       “…돌아가자.”

       

       그렇게 우리는 공작의 집무실에서 나왔고, 나는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노예가 여길 이렇게 막 들어와도 되는 건가?

       

       “진 바렌베르크.”

       “예.”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한 가지야.”

       “무엇입니까?”

       

       프란체와 눈이 마주쳤다.

       

       “어려운 건 아니란다. 오로지 나만의 편에 있을 것. 그 어떤 상황이 와도 나의 아군으로 있을 것. 이게 내가 너에게 내리는 유일한 명령이란다.”

       

       정말로 간단한 명령이다. 고작 그런 거 시키려고 5억을 태워? 어지간히 미친 여자군. 뭐, 그렇기에 원작에서 악역으로 등장했겠지.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고작 그런 거로 되는 겁니까?”

       “뭐?”

       

       프란체가 눈을 얕게 떴다.

       

       “지금은 없어졌다곤 하지만, 저는 일국의 왕자였습니다. 무력이 강해서 제국의 골칫덩이였고, 왕국에서 제일가는 검사였죠. 그런 저에게 내릴 특수 임무라도 있을 줄 알았습니다. 자그마치 5억이라는 거액을 사용하셨으니까요.”

       

       안에 있는 사람은 다르지만, 진짜 진 바렌베르크는 할 수 없는, 모든 걸 알고 있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간단한 명령만을 내리기 위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답변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나를 응시했을 뿐. 눈빛이 묘하게 날카로웠다.

       

       “주제를 넘는 말이었다면 죄송합니다.”

       

       뒤늦게 나온 내 사죄에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래. 너의 말이 틀린 건 아니야. 그저 내 편이 되어달라는 조건으로 5억을 태우는 건 미친 짓이지.”

       

       프란체는 하지만, 이라고 말하며 말을 이었다.

       

       “그게 나에게 있어 5억보다 더 큰 가치를 가졌다고 생각해. 지금 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필요한 게 내 편이니까.”

       

       어째서일까. 그녀의 눈이 조금 서글퍼 보였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

       

       사실 프란체는 가문의 눈 밖에 난 것이 아닐까. 그 이유는 이 게임의 모든 이스터 에그마저 알고 있던 나마저도 알 수 없었다. 프란체의 이야기는 주된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어, 근데 혹시…….

       

       ‘이거 숨겨진 루트에 들어온 거 아니야?’

       

       컴퓨터를 어떻게든 강제로 종료했어야 했나? 나는 숨겨진 루트로 들어가겠다고 동의한 적이 없다.

       

       그런데 내가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실행되다니…….

       

       ‘혹시 누군가 나를 강제로 이 세계에 불러온 건가?’

       

       잘은 모르겠다만, 여기도 무언가 비밀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이유가 뭐지?’

       

       내가 이 세계로 온 이유에 관해서 여러 추측이 난무하던 그때, 벌컥! 갑자기 방문이 세차게 열렸다.

       

       “너, 기어코 일을 터트렸구나!”

       

       데카르트 가문 특유의 붉은 머리와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남성이 들어왔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인물. 누군가 싶어, 프란체를 바라보니 그녀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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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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