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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깨진 스캐너,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냉각수, 조금씩 뜯겨 나간 사지와 장갑.

         최전방에서 물러서지 않고 사냥개들과 싸우고, 추적자 하나를 죽인 대가로 깡통이 얻은 부상이다.

         

         인간으로 치면 안구결손에 과다출혈, 상지 절단까지. 당장 응급실로 직행해야 할 중환자인 주제에, 고집을 부렸다.

         

         – 절대. 안됩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남은 전력으로 엘리베이터를 복구해서…. –

         

         “이게 지금 부탁으로 들려?! 아니면, 남은 전력을 다 써서 퇴로까지 내 손으로 끊어야 이해할 거야?!”

         

         위이잉…!

         드르르르르르륵—!!

         

         “이런 씹…!!”

         

         유폭을 노리려는 듯. 골리앗의 화염방사기 연결부에 집중사격을 퍼붓던, 화상입은 추적자를 포탑을 써서 떼어냈다.

         

         [ 잔여 전력량 15% ]

         

         – 하지만……! –

         

         “하지만이 지금 어딨어!!”

         

         당장 총격이 빗발치고, 로켓이 펑펑 터질 때는 추적자들도 숨기 바빴지만. 이제는 놈들도 빈약한 화망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침착하게 골리앗을 견제하면서 남은 포탑들을 파괴하고 있었다.

         

         콰직!! 콰드득! 콰앙—!

         

         가끔 떠드는 혼잣말을 제외하면, 따로 의사소통도 안 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합이 잘 맞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놈들은 뇌에 박은 임플란트를 이용해, 전용 폐쇄회선으로 대화할 수 있었다.

         

         억울함에 눈물이 북받쳐 올랐다.

         

         추적자들이 너무 강해서? 전혀 아니다.

         이 새끼들은, 오히려 예상보다 약했다. 게임에서도 초반에 나오는 추적자일수록 약했다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이들은 제대로 된 궁극의 개조인간이 아니다. 아직, 아니다.

         

         진짜 완성된 에나마 코퍼레이션의 추적자는, 자신의 감정조차 기업에 팔아 넘긴 미친 놈들이다.

         

         더 빠르고, 더 강한 건 당연. 이들처럼 무식하게 신체능력만 키운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설계된 병기여야 정상인데. 놈들은 외형만 비슷할 뿐, 중요한 기능들이 빠져 있었다. 그 증거로 부하들이 죽자, 앞서 우려했던 시스템 해킹은 시도조차 없었다.

         

         내가… 내가 너무 쓸모없어서 이렇게 전황이 불리한 것이다.

         

         펑!! 펑! 퍼벙!!

         투쾅!!

         

         – 골리앗의 85mm 로켓 탄약 잔여량, 6발. 미스 아나스타샤…! 인간과 기계의 가치는 동등하지 않습니다…! 부디 냉정하게 판단을…!! –

         

         “잘 아네…! 저 새끼들보단 니가 백배는 소중해!!”

         

         감정. 감정이 문제다. 작전이 실패했다면 당연히 도망치는 게 맞는데, 모니터 너머로 망가져가는 바보 같은 고집덩어리 안드로이드를 보고 있으려니, 도저히 자기 보신을 우선시할 수가 없었다.

         

         ………잠깐. 잠깐만, 해킹 시도가 없고 적들은 감정이 있어…?

         

         카메라를 조작해 화상입은 추적자를 확인했다. 외야에서 포탑부터 차근차근 정리중인 다른 놈과는 달리, 온신경이 골리앗과 깡통에게 향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거라면… 혹시…!!

         

         “깡통아! 눈앞의 그 놈. 꽉 붙들어…!! 지금 통제실에서 나갈 테니까!”

         

         – …행운을 빕니다. 미스 아나스타샤. –

         

         내가 탈출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멋대로 작별인사를 날려왔다.

         미안하지만, 나는 엘리베이터로 간다고 한적이 없다.

         

         위이이잉…….

         

         “음…?”

         

         전력을 회수당한 외부 포탑들이 축 늘어지는 걸 확인한 추적자가 당혹스러워 했다. 통제실 밖에서 사이버웨어를 이용해 조종 중이기에 세밀한 컨트롤은 불가능하지만… 지금은 필요 없었다.

         

         철컥…!

         

         바깥 상황을 계속 감시하면서, 지급받은 피스메이커 자동권총을 홀스터로부터 뽑아 들고, 연구소 정문을 향해 죽어라 내달렸다. 한쪽 눈에는 카메라 화면이, 다른 쪽엔 복도가 보이니 존나게 어지럽다.

         

         딱히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대부분의 한국 남자는 군복무경험이 있다. 자세한 권총 파지법은 몰라도, 정조준하고 위협사격 정도는 가뿐하다…!

         

         탕! 타당!! 탕탕!!

         

         “!! 컨택! 연구소 정문! 개조인간이나 침입자로 추정…!”

         

         “흥! 잘난 에나마의 추적자 새끼들도, 생각보다 별거 없으시네!!”

         

         – !! 미스 아나스타샤?! –

         

         발치, 무릎, 어깨, 머리. 이목을 끌기 위함이었으나, 거의 특등사수급으로 탄착군을 형성한 뒤. 나는 곧바로 통로 격벽을 일부러 천천히 내려버리며 연구소 내부로 역돌격했다.

         

         [ 제어용 격벽 하강 개시 ]

         [ 잔여 전력량 14% ]

         

         “!! 이 씨발. 쥐방울 같은 년이…!”

         

         개지랄 끝에, 드디어 로봇이 아닌 적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건방지게 고작 권총 몇 방 쏴 놓고 도주하기 시작하는 걸 본 추적자는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까…? 심지어 유일한 길까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면…?

         

         들어와라. 발사되는 고폭탄도 보고 피하는 고급 개조인간님이. 이런 계집애한테 쩔쩔매면서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아?

         

         

         그렇게. 침착한 척하던 놈도. 내 유혹에는 결국 버티지 못했다.

         

         

         쾅—!!

         

         정문 앞 바닥이 터져 나가며, 추적자가 거의 날듯이 거리를 좁혔다. 제 딴에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맞춰서 연구소 내부 진입에 성공했다고 믿을지도 모르겠는데… 넌 이제 씨발 안에서 나랑 노는거야 등신아…!

         

         촤라라락……!

         

         컴뱃 아머와 바닥 사이에서 마찰 불꽃이 튀며, 반응한 추적자 한 놈만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카메라엔… 그사이에 탄약을 모두 소진했는지, 골리앗 위에 올라타서 본격적으로 남은 추적자와 육탄전을 벌이는 깡통의 모습이 잡혔다.

         

         조금만 버텨…!

         

         [ 제어용 격벽 하강 개시 ]

         [ 잔여 전력량 13%… 12%… 11%…. ]

         

         “하! 그렇게 계속 도망만치면, 내가 답답해서 혼자 뒤지기라도 할 것 같으냐!!”

         

         “하아… 하아…!”

         

         좆이나 까라고 대꾸해주고 싶었는데, 신체능력이 밑바닥인 몸 답게 벌써 호흡이 가빠와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놈이 아슬아슬하게 나마 통과할 수 있게 벽을 내린다. 덕분에 추적자는 계속 복도를 구르고, 슬라이딩 하느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으니, 일단 여기까지는 성공이다.

         

         정문에서부터 여기까지. 설치된 벽만 해도 벌써 4개. 이제 놈은 돌아가서 동료를 돕긴 한참 늦었다.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이긴 했지만…!

         

         “! 이런 썅…!”

         

         투쾅!!

         

         [ 잔여 전력량 8% ]

         

         통제실 앞 복도의 마지막 벽이 고속으로 떨어져 놈과 나를 갈라놓았다.

         만약 게임처럼 추적자의 데미지와 벽의 체력이 보였다면, 남은 시간을 계산하기 훨씬 쉬웠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걸 기대하긴 어려웠다.

         

         “하아… 하아…! 흐읍…!!”

         

         털썩….

         

         녀석이 벽을 부수고 나온다면, 아주 잘 보이도록. 지친 몸을 통제실 패널에 기대고 주저앉았다.

         

         턱까지 차오른 호흡이 자꾸만 정신집중을 방해했다.

         깡통도 그렇고, 내 몸도 그렇고. 내 말을 한번에 재깍재깍 들어주는 건 역시 임플란트와 사이버웨어 밖에 없다.

         

         “이 &*^*)^&년이!! %@^##…!!”

         

         와…. 대체 얼마나 화가 났길래, 격벽을 뚫고 욕하는 게 들리는 걸까.

         

         타당!! 타다다다다당—!!

         쿵쿵!! 쿵!!

         

         “후아아…….”

         

         신나게 찌그러지는 격벽을 마지막으로 시야에 담은 나는. 숨을 고르고, 비장하게 두 눈을 감았다.

         

         

         정신은. 육체를 따라간다. 시험관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몸에 계속 휘둘려온 내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단지, 여태까지 그게 무력하게 몸을 돌돌 말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눈물이 차오르거나, 바보처럼 얼어붙는 거였다면. 지금은 이 몸의 강점을 이끌어낼 절호의 기회.

         

         

         어비스 다이브(Abyss Dive, 심연 잠수). 라는 스킬이 네오 헤이븐에 있다.

         플레이어만 쓸 수 있는 전용 스킬 같은 건 딱히 아니고, 메인 스토리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미래형 초고급 해킹 기술 중 하나이다. 아나스타샤의 프로필에 가장 어울리기도 해서, 여러모로 애용했었고.

         

         일반적인 넷 해커의 해킹이 모니터를 보고 자판을 두드리거나, 임플란트를 통해 망막에 출력되는 코드와의 무수한 수싸움이라면. 최고의 두뇌와, 최고의 적합도가 필요한 어비스 다이브는 해커의 의식 자체를 전기 신호로 바꿔서 침투시키는 맞대결.

         

         ……물론 게임에서야, 그 해킹 과정은 조금 복잡하고 거슬리는 미니게임으로 대체되었지만….

         

         스토리 도중 에메랄드 시티의 정상급 해커가 말하길, 육체에서 의식이 빠져나가는 것인 만큼, 어비스 다이브 중에 몸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 심지어 의식이 돌아오기 전에 연결이 끊기면, 해커는 그대로 식물 인간이 되어버린다나?

         

         솔직히 말하면…… 개같이 무섭다. 아무리 특성 덕택에 연결이 끊어져서 식물 인간이 될 걱정은 없다지만, 이 앞은 내가 전혀 모르는 미지의 세계.

         

         세상에 죽기 싫다고, 자살을 택하는 미친 인간은 없다. 그러나… 신은 무슨 변덕인지, 걸린 게 다른 사람의 목숨이라면, 공포를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간에게 용기라는 걸 줘버렸다.

         

         “…의식 전송 개시. 어비스 다이브 프로토콜 실행…!!”

         

         [ 신호 수신 중…. ]

         [ 잔여 전력량 7% ]

         

         

         결국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깊고 어두운 전자의 바닷속으로 나는 나를 내던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서포터는 궁만 잘 써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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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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