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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엘리세르데.

       

       트렐리니아 왕국의 왕녀이자, 막내딸이기도 한 그녀는 언제나 맑은 웃음을 머금고 다녔다.

       

       지나가다 보이는 꽃이 보기 좋았고, 자신을 바라봐주며 웃어주는 시종들과 시녀들도 좋았다.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는 기사도, 마을을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흥겹게 사람들의 흥을 돋구는 음유시인들도.

       

       그 모든 게 엘리세르데는 좋았다.

       

       왕국의 모든 게 좋았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왕국을 사랑했다.

       

       그런 그녀를 왕국의 모두가 사랑했다.

       그렇기에 엘리세르데는 이런 상황이 언제고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여신님을 향해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그런 희망이 무너지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트렐리니아 왕국 근처의 여러 왕국들이 동맹을 맺었다. 그들의 한 가운데에 있는 가장 번성한 왕국을 가장 먼저 없애기 위한 동맹이었다.

       

       혼란이 왕국을 가득 채웠다.

       

       비록 트렐리니아 왕국은 왕국들 중에서도 특히 강대국이었지만, 그게 연합한 다른 왕국들을 모두 이겨낼 정도로 강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약탈이 시작됐다.

       언제부턴가 다른 왕국에서 내려온 마물들이 마을을 습격하고, 다 같이 막던 마물과 마수들을 그대로 왕국에 흘려보냈다.

       

       그것만으로 트렐리니아 왕국은 엄청난 위기를 맞이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트렐리니아 왕국을 공격하진 않았다.

       

       다만 다같이 유지하던 전선을 하나, 둘 물리기 시작하고 물자의 교류도 점차 끊어지기 시작했다.

       

       마계와 이어진 최전선에 가장 가까운 왕국이었던 탓에, 트렐리니아 왕국은 온전히 홀로 마계를 막아야만 했다.

       

       매순간이 지옥이었다.

       날이 지나면 지날 수록 팽팽하게 유지되던 전선이 무너졌으며, 최전방에 가까운 마을 여럿이 흔적도 없이 화란에 휩쓸렸다.

       

       그 즈음부터, 엘리세르데는 미소를 잃기 시작했다.

       

       항상 그녀를 보며 웃어주던 아버지는 시름을 앓으며 언제나 표정을 찡그리기 마련이었으며, 그녀의 오라버니들은 아직 이른 나이에 갑옷을 입고 전선에 나섰다.

       

       언제나 웃음 꽃이 피던 왕국이 희망을 잃어가긴 순식간이었다.

       

       시종과 시녀들 또한 웃지 않았으며, 언제부턴가 마을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사라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트렐리니아 왕국에서 용사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여신의 축복을 받아 끈질긴 생명력으로 전선에 서 마물과 마수를 잡았다. 그 외에도 실종된 마을의 단서를 찾아 마물의 본거지를 무너뜨리기도 했다.

       

       그 덕에, 트렐리니아 왕국은 최근에서야 숨을 쉬기 시작했다.

       

       용사의 존재를 무시할 순 없었기 때문일까.

       

       서로 협력이라도 한듯 아무런 병력도 보내지 않던 전선에, 다른 왕국들도 병력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덕에 왕국은 일시적인 평화를 맞이했다.

       

       다시금 아이들은 마을에서 뛰놀기 시작했으며, 그녀의 아버지 또한 인자한 웃음으로 그녀를 맞이해주셨다.

       

       그러나.

       

       “드, 드래곤이 발견 됐답니다!!”

       

       평화가 무너지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드래곤이 나타났단다.

       전설 속에서나 나타나던 드래곤이.

       

       믿기 힘든 소식이었지만, 그 소식을 전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용사, 한스였다.

       

       게다가 스스로의 심장을 바쳐 행한 맹세까지.

       

       믿기 힘든 사실이었으나, 믿을 수 밖에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한스의 주장에 따라.

       왕국은 최대한 가축들을 끌어모아 제물로 바쳤다.

       

       그러나 드래곤은 만족하지 못했고.

       

       왕실의 서고에 몰래 들어가 드래곤에 대한 신화를 읽던 엘리세르데는, 드디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였다.

       

       “부디 저를, 왕국을 위한 제물로 바치소서.”

       

       그의 아비이자, 한 나라의 군주인 그의 심장에 비수를 박은 것은.

       

       

       * * *

       

       

       엘리세르데는 숨을 삼켰다.

       

       어느새 수행원들은 모두 떠나가 있었다.

       

       대신 눈 앞에 있는 건 드래곤이라 불리는 존재일 뿐.

       

       ‘와아…….’

       

       순간이지만.

       엘리세르데는 드래곤의 모습에 감탄했다.

       

       삽화 하나 없이 활자로만 적혀있는 드래곤의 모습.

       

       어떠한 검 조차 뚫지 못하는 비늘과, 유려한 몸체, 상대를 압도하는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까지.

       

       단편적인 정보였지만.

       그에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새카만 비늘, 크기가 가늠이 안되는 몸체, 그녀를 시리게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까지.

       

       엘리세르데는 한 순간이지만.

       자신이 마치 신화 속 한 장면에 있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결국 자신은 제물일 뿐인데 말이다.

       

       현실을 자각하자 심장이 떨렸다.

       

       솔직히 말하면, 두려웠다.

       감히 크기 조차 가늠 조차 되지 않는 드래곤이, 새파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마치 존재 자체가 샅샅이 드러나는 기분.

       

       엘리세르데는 애써 떨리는 숨을 삼키며,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드래곤님. 당신을 위한 제물, 엘리세르데입니다.”

       

       자신은 어떻게 될까?

       드래곤이 요구한 건 산제물이었다.

       

       가장 고귀하고 순결한 처녀.

       

       신화 속 이야기에선 그 제물이 어떻게 되었는 지 알려지진 않았다.

       

       그저 일용할 양식이 되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얼굴이 달아올랐다.

       

       홧홧한 열감에 얼굴이 뜨겁다.

       

       그녀도 엄연한 성년이었다.

       굳이 제물에 가장 고귀하고 순결한 처녀, 라는 게 있다는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모를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그런 건 아닐 거란 기분이 들었다.

       

       드래곤이 너무나 거대하기도 했고.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모습에서, 감히 그런 걸 연상하기란 어려웠으니까.

       

       그렇다면….

       

       ‘역시 한끼 식사인 걸까…?’

       

       두려운 마음이 울컥 치솟았다.

       

       하지만 애써 참아냈다.

       자신 하나로 왕국을 살릴 수 있다면, 그녀는 그걸로 만족할 수 있었다.

       

       얼마나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는 지, 시간 개념이 제대로 인지가 되지 않을 때였다.

       

       [돌아가거라.]

       

       낮고, 진중한 목소리.

       

       한없이 거대한 위업이 담긴 목소리에 그녀는 순간 고개를 들어올렸다.

       

       드래곤은 그저 돌멩이를 바라보는 듯한 무감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왕에게 전해라, 제물 따윈 필요 없다고.]

       

       그리 말하며 드래곤이 무심하게 고개를 돌린 순간.

       

       “…….”

       

       빠직——.

       

       엘리세르데는 울컥 치솟아오르는 울분을 느꼈다.

       

       뭐야.

       나는 제물로 쓸 가치 조차 없다는 거야?

       

       그래서였다.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버린 것은.

       

       “…어째서죠?”

       

       푸른 눈동자가 그녀를 향한다.

       그 무관심한 시선이 예전이라면 두려웠을 테지만, 엘리세르데는 당당한 눈길로 드래곤을 쳐다보았다.

       

       홧김에 저지른 일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제물이 되어 왕국을 대신에 희생할 각오로 이곳에 온 거니까. 이제와서 드래곤이 자신을 죽이려 든다 한들, 전혀 두렵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녀를 ‘따위’ 취급하는 소리에 화가 치솟았다.

       

       이래뵈도 왕녀다.

       왕국에서 자신을 내려다 보는 사람이 존재했을 리가 만무했으며, 모두가 그녀를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저토록 무심한 눈길은 난생 처음이었다.

       

       [나는 인간을 잡아먹는 취미 따윈 없다.]

       

       그가 입을 열었다.

       동굴을 울리는 낮은 목소리.

       

       하나, 예전 같은 두려움은 없었다.

       

       “그렇다면 가축을 원하시나요? 원하시다면 얼마든지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되었다. 고작해야 인간에게 연연할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 더군다나 빚을 달아두는 일은 사양이다. 만약 저번 가축을 제물 삼아 내게 준 거라면, 너희를 한 번 도와주도록 하마.]

       

       “…….”

       

       제물을 원하는 게 아니었나?

       

       엘리세르데는 머리가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영락없이 그가 제물을 원하고 있노라 생각했다. 더욱 탐욕적이기에 기존에 준 제물을 받고서도 화를 내어 천재지변을 일으킨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저 드래곤은 제물을 원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인간과 깊게 얽매이는 걸 꺼려하는 것 같았다.

       

       정확하게는 빚을 지는 것을.

       

       묻고 싶은 게 산더미였다.

       그러나 더 이상의 질문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돌려 더욱 깊은 동굴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엘리세르데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바닥에 주저앉았다.

       

       차가운 동굴 바닥이 무척이나 시렸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부족했다.

       

       “뭐야, 도대체….”

       

       제물이 되어 죽을 각오까지 하고 왔더니.

       

       자신은 필요 없단다.

       인간을 잡아먹는 취미 따위는 없다나?

       

       그러면 가축을 가져다 드리겠다 했더니 그것도 싫단다. 빚을 지는 게 싫다고.

       

       그러면 저번엔 왜 그런 건데?

       

       엘리세르데는 아직도 정확히 기억한다.

       

       천지가 분노에 휩싸인 듯 태풍이 불고, 대지가 흔들리며, 거대한 번개가 수도 없이 치던 것을.

       

       분명 제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화가 난 거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참 변덕적인 드래곤이시네.”

       

       그럼 저번의 천재지변은 그저 다른 이유로 화가 났을 뿐이라는 걸까?

       

       “아, 몰라몰라!”

       

       어찌됐든 살아있으면 됐지.

       

       오히려 잘 됐다.

       믿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저 드래곤이 한 번 도움을 준다 하니 왕국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사실을 말하고자 먼지가 묻은 드레스를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왕국에 이 소식을 전해야…….”

       

       거기까지 생각하던 엘리세르데는.

       

       이내 완전히 어두컴컴해진 바깥을 보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 산은 마물이 무척이나 많다.

       그렇기에 이 산은 왕국에서도 일반인 출입이 불가했으며, 왕국에서 허락된 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위험한 산이었다.

       

       심지어 밤이면 더 말할 것도 없었고.

       

       “…….”

       

       엘리세르데는 새카만 밤과, 그것보다 더욱 어두컴컴한 동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울상을 지으며 동굴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민수_240님 후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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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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