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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스물일곱 정도였을까.

     

     처형을 당하게 되었던 나이가, 아마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제국은 나에게 독주를 먹여 죽이려 했으나 통하지 않았고, 아버지를 죽이고 그 뒤에 나를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처형장을 습격한 ‘왕국부활군’에 의해 나는 구조되었다.

     구조작전을 이끈 장본인이 바로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낡은 침대.

     무너질 것 같은 천장.

     

     흐려진 시야 너머, 몸을 하얀 붕대로 휘감고 있던 금색 단발의 여인.

     나라를 잃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나리아 공주는 여러모로 망가져 있었다.

     전신에는 찢어지고 베인 상처가 가득했고, 왼팔은 어깨부터 화상의 흔적이 손가락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심지어 복부에는 무언가에 관통된 흔적까지 있었다.

     제국군에게 쫓기며 찰과상을 입고, 화살이 박히고, 마도소총에 배가 뚫리기도 했다고 하더라.

     심지어 처형장을 습격하여 나를 구하는 과정에서도 상처를 입었다.

     -도대체, 왜?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나라를 팔아먹은 가문의 일원이고, 노스트럼의 입장에서는 배신자였으니까.

     -나는 그레이를 구한 게 아니다.

     피폐하고 쉰 목소리로, 나리아 공주는 내 의문에 답했다.

     -제국의 황제를 죽일 자를 구했을 뿐이다.

     그녀에게 있어, 나라는 인간의 이용 가치는 ‘도구’였다.

     -너, 제국도법을 배웠지.

     -예.

     -내게 알려줘라. 아니면 네가 직접, 칼을 들어라.

     황제를 죽이기 위한 암살용 칼.

     황제는 무술로서 대륙에서 가장 강한 강자였다.

     세계 최강의 무인.

     심지어 모든 냉병기를 다루는 데 있어 최소 마스터 급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괴물.

     그중에도 황제는 블레이드, 날이 휘어진 도(刀)를 몹시 선호했다.

     제국 자체가 오래전부터 ‘발도술’을 비롯한 도법을 연마해왔고, 황제는 ‘제국도법’의 정점이었다.

     -나는 그에게 직접 복수할 것이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너를 구해 이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어.

     공주는 진심이었다.

     -너는 제국에 배신당했지. 복수하고 싶지 않나?

     -…….

     -여전하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건.

     공주는 나를 경멸했다.

     -상관없다. 하지만 이건 명심해. 내가 구하지 않았다면 너는 죽은 목숨이었다는 것을.

     공주는 붕대를 휘감은 손으로, 내 멱살을 잡았었다.

     -매국노에게 책임을 묻는 게 아니다. 네 목숨을 살렸으니, 이제 너는 내 것이다.

     그때 바라본 나리아 공주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슬퍼 보였고, 간절해 보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면,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내 칼이 되어라.

     그녀는 그렇게 나를 강제로 자신의 칼로, 기사로 만들었다.

     * *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도련님?”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 내 옆에 말을 몰며 다가온 기사가 물었다.

     “로버트 경.”

     “…오!”

     “왜 놀라지?”

     “음, 그게, 도련님께서 이름으로 불러주시는 경우는 몹시 드무니까요…?”

     20대 중반의 기사, 로버트 세빌리야는 볼을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집사나 메이드,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잖습니까.”

     “모든 이들의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나?”

     “아, 아하하….”

     이건 진심이다.

     나에게 있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들의 이름까지 전부 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설령 가문에서 일하는 이들조차도.

     “그런 부분은 변경백 각하와 정말이지 똑 닮으셨습니다.”

     주변인에 대한 무신경함은 아버지를 닮은 건지, 아니면 지브롤터 가문의 내력인지.

     “대신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름을 외울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확실히 챙기지.”

     “예. 그래서 기쁩니다.”

     “내가 경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게?”

     “예. 영광입니다. 첫째 도련님께서 제 이름을 다 알고 계시고.”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에서도 요인이 하나 있었고, 미래에서도 요인이 있으니.

     “경.”

     “예, 도련님.”

     “애초에 지브롤터 협곡의 ‘게이트’로 가는 데 있어, 호위 기사로 그대를 지정한 건 나야.”

     “…예?”

     로버트가 멍하니 입을 벌리며 놀란다.

     -그레이 변경백 각하! 어째서, 어째서 노스트럼을 배신하신 겁니까!!

     미래에서의 그 처절하고 일그러진 모습이 잠시 오버랩되었다.

     “내가 호위로서 로버트 세빌리야 경을 지목했다는 걸세. 혹시, 싫나?”

     “그, 그럴 리가요!! 영광입니다!!”

     로버트는 재주도 좋게 말 위에서 두 손을 마구 흔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흐흐, 도련님께서 저를….”

     좋아할 일이긴 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차기 변경백이 어린 시절부터 무슨 이유든 자신을 좋게 봐준다는 거니까.

     “경.”

     “예! 도련님!”

     “경은 노스트럼 왕국이 만족스럽나?”

     “……예?”

     

     그런 이가 갑자기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 시작하면, 또 당황할 수밖에 없다.

     “왕국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

     “…아, 아하하! 그럴 리가요. 제가 얼마나 노스트럼을 사랑하는데요. 저는 노스트럼에서 태어나, 노스트럼에서 죽을 사나이입니다!”

     미안하지만 죽을 때는 노스트럼이 아니라, 노스트럼’이었던 땅’에서 죽는다.

     “그런데 그런 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헉, 혹시 충성 시험을…?”

     “비슷하네. 경이 왕국에 진심이라는 건 알았으니.”

     “후. 간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실력은 있지만, 사람 자체가 온순하고 순박하다.

     저기 왕도에 올라가면 사람들에게 밀려서 한직으로 밀려날 인간이다.

     충성스러운 바보 기사.

     그렇기에, 내가 이름을 기억하고 다시 외운 사람이기도 하다.

     “경. 다음 질문이야. 경은 저기, ‘지브롤터 게이트’가 언제까지 노스트럼을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나?”

     “…….”

     “답해보게. 아니면, 처음 보는 건 아니겠지?”

     마차가 멈춘다.

     나는 마차에서 내려 호위 기사까지 대동하고 온 우리 변경의 최전선, ‘지브롤터 게이트’를 쭉 훑었다.

     좌우로 깎아지른 절벽.

     그 높이는 무려 300m에 이른다.

     심지어 좌우로 쭉 뻗은 길이도 수 km에 이르며, 그 사이 협곡의 폭은 고작 1.4km.

     이 1.4km에 이르는 곳의 가운데에 설치된 성벽이 바로 지브롤터 게이트다.

     약 3km에 이르는 협곡 내부의 길에 세워진 게이트는 총 3개.

     서쪽의 제국과 동쪽의 왕국을 쭉 가로로 잇는 유일한 육로.

     지난 수백 년의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마지막 관문까지 제국이 넘지 못한 통곡의 벽이며, 지브롤터 가문은 초대부터 이 협곡을 지켜왔다.

     우회?

     

     북쪽에는 엘프들이 자리 잡은 숲이 있어 불가.

     엘프들과 전면전을 치르고 넘어온다고 해도, 그 뒤에는 또 폭이 엄청나게 긴 강이 있어 도하가 불가능.

     남쪽에는 마물들이 들끓는 지역이라 불가.

     하루 만에 주파할 수 없는 거리인데, 정작 땅에 사람이 누울 수 없는 마기에 저주받은 지역이라 숙영이 불가능.

     협곡이 아닌 곳으로 넘어갔을 때, 3만이 넘어가면 3천이 살아남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즉, 협곡 이외의 육로로는 동쪽으로의 진격이 어렵다.

     결국 제국은 자신들의 핵심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마도공학’을 바탕으로 침략 방법을 연구했으나-

     -지브롤터 변경백! 우리 제국은 노스트럼 왕국의 백성들을 무능왕으로부터 해방할 것이오! 문을 열어주시오!

     변경백은 관문을 열었다.

     -지브롤터의 피를 바쳐, 문을 열겠다.

     관문은 물리적인 방법으로 열 수 없다.

     오직 지브롤터의 핏줄만이 관문을 열 수 있는 마법이 설치되어 있으니까.

     -진격!! 왕도를 향해!!

     300명만 있어도 3만은 거뜬히 막아낼 수 있다는 관문 셋이 일제히 열리자, 제국군은 즉시 협곡을 지나 지브롤터 백작가에 진지를 구축했다.

     왕국, 초 비상.

     

     당시 내 기억으로는 약 ’10만’에 이르는 병사가 협곡을 지났던 걸로 기억한다.

     지브롤터 변경백이 목숨을 걸고 병사들과 싸웠다면, 10만이 아니라 1만 정도만이 살아서 협곡을 넘어오지 않았을까.

     혹은 아예 넘어오지 못한 채 막혔을지도 모른다.

     “도련님. 변경백께서 두 눈 부릅뜨고 계시는데, 어떻게 제국이 협곡을 넘을 수 있겠습니까?”

     지브롤터 변경백이 제국을 상대로 검을 뽑기만 했다면.

     “왕국 최강의 소드마스터. 저는

     각하야말로 진정한 왕국 최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역시!”

     그 최강자가 반역을 마음먹고 ‘어서 오십시오’를 하려고 해서 그렇지.

     “아버지 한 분만 여기에서 떡하니 계셔도, 적은 함부로 관문을 넘어오지 못 해. 소드마스터가 50m 성벽 위에서 검기 날리면서 버티면, 무슨 수로 그걸 뚫을 수 있겠어.”

     “성벽 자체도 마나실드가 설치되어 있으니, 마법사들이나 마석의 마나가 고갈되지 않는 한 적의 포격도 버텨낼 수 있죠. 흐흐.”

     “그래. 그야말로, 무적의 방패로군.”

     과거로 돌아와서 이쪽에서 보니, 정말이지 다시 한번 어처구니가 없다.

     “로버트 경. 알고 있나? 이 협곡은 말이지, 우리 지브롤터 가문의 인간들만 열 수 있다는 것을.”

     “아,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여기 처음 배속되었을 때, 저기 공중가교로 걸어 다니고는 했거든요.”

     로버트가 협곡에 설치된 목제 계단과 사다리를 가리켰다.

     문은 굳게 닫혀있지만 보수는 계속 이어져야 하니, 관리 인부들을 위해 마련된 설비다.

     “50m 성벽을 오르내리는 구름다리와 사다리가 없었으면, 매번 지브롤터 변경백께서 오셔서 문을 열어주고 그랬어야 할 겁니다. 하하!”

     전시에는 이쪽에서만 이용할 수 있게 왕국 쪽은 불에 타지 않는 마법적 조치가 되어 있는 특수목재고, 반대쪽은 그냥 일반 목재다.

     그러고 보니, 저 관리를….

     “흠.”

     한 가지, 생각이 났다.

     “돌아가지.”

     “예?”

     “구경은 끝났어. 바람을 좀 쐬어보고 싶기도 했고, 경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했고.”

     “아, 예!”

     로버트는 그다지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움찔거리며 백작성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가시죠, 도련님!”

     정말이지.

     이런 충신이, 나리아 공주의 곁에 있었어야 했는데.

     * * *

     아버지와의 독대는 언제나 살짝,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들아.”

     소드마스터의 기감을 가진 것도 있지만.

     “나라를 팔아먹으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 기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하니, 그 방법이 마땅찮다.

     “이제 10살인 네게 묻는 것도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너라면 분명 내가 10일은 고민해서 도출해낼 답을 이미 가지고 있겠지.”

     하지만 아버지는 사람 다루는 방법을 잘 안다.

     “무엇이든 말해봐다오. 제국이 왕국을 점령할 수 있게 판을 깔려면,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만일 내가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가문 내에 있는 사람 중 왕국에 불만이 있는 이를 은밀히 불렀겠지.

     하지만 내가 있고, 아버지는 나를 불렀다.

     반역을 위한 상담가이자 조언가, 동지이자 후계자로서.

     “왕국을 아래에서부터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에서부터?”

     “예. 아버지가 나중에 책을 잡히지 않게 하려면 ‘제국 스스로 전쟁을 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판단하게 해야겠죠.”

     “그렇지.”

     아버지는 허리에 찬 검을 들었다.

     “검과 검의 대결에서도 상대가 덤비게 하려면, 이쪽에서 빈틈을 보이게 하는 것이 기본.”

     정치는 칼싸움과도 같다.

     아버지는 정치를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빈틈을 보이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빈틈을 만들 수 있을까.”

     “우선, 길게 보셔야 합니다.”

     미래에서는 10년이 걸렸다.

     “가장 먼저, 제국이 지브롤터 성벽을 넘볼 수 있게 할 필요가 있겠죠.”

     “구체적으로, 어떤? 대략적인 생각만 말해도 된다.”

     10살.

     아버지는 아이의 두뇌로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아이디어를 바라겠지.

     “그야 당연히 제국과의 접촉점을 만드는 게 중요하겠죠.”

     흘러가는 대로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다면, 나는 여기에서 ‘어, 그, 그게’라면서 10살의 연기를 했겠지.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머릿속에 나리아 공주가 내게 했던 말이 비수처럼 다시 꽂힌다.

     -네가 만일….

     뒷말은 삼켰지만, 아마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했으면’이라는 말이 생략된 거겠지.

     그러니.

     “제국의 첩자를 끌어들이죠. 명분은 만들면 그만이니.”

     “명분?”

     나는, 기꺼이 ‘천재’가 되어주기로 했다.

     “예. 오늘 마침, 지브롤터 게이트를 보고 왔습니다. 음, 사다리 설비가…낡았더군요.”

     “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사다리 설비는-”

     “아버지. 나무 인형 장난감과 봉제 인형을 낡아서 새로 사는 건 아니잖습니까?”

     “……호.”

     아버지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다 뜯어내고 새로 만들죠. 영지민을 동원하는 게 아니라, 공사 인부를 직접 고용하는 방식으로.”

     “과연, 과연…. 인부를 끌어들여, 그 인부 사이에 자연스레 제국의 첩자가 스며들게 한다…?”

     “예. 국방을 위한 공사를 한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자산은 지켜야 한다.

     “아무튼 낡은 거니까, 새로 짓는 겁니다.”

     이후의 더 큰 매국 행위를 위하여.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매국 행위, 그 첫 번째.

     “예산은, 국왕에게 청구하시죠?”

     혈세 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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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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