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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제도 카울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비록 용사는 없었지만 나머지 용사 파티원들이 무사 귀환에 성공하였고 토벌의 증거인 마왕의 외뿔이 담긴 신성한 관을 국민들 앞에서 내보이며 승리를 공표했다.

         

         

        “…그렇게 용사 루시에나 에스텔은 숭고한 사명을 위해 마왕과 동귀어진하였습니다. 저희 용사 파티는 그저 마왕의 외뿔과 그녀가 남긴 빛 바랜 성검만을 회수해 오는 것 밖에는 한 일이 없습니다.”

         

         

        황제가 직접 말을 전하는 영광스러운 광장에는 라인폴드가 가운데 서서 마왕과 용사의 죽음을 국민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그의 뒤 높은 단에는 현 황제가 위엄 있게 앉아있었고, 그의 곁에는 황태녀 리나시엔이, 조금 떨어진 양옆으로는 다른 용사 파티원들이 정렬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천 년간 우리 인간을 괴롭혀 오던 마왕이 죽으며 남긴 외뿔입니다!”

         

        광채를 발하는 신성한 관을 높이 들어올리자 우와아아아-!!! 국민들이 환호한다.

         

        사특한 마기를 봉인하고 있기에 저 광채가 난다는 것을 어릴 적 동화와 교국의 설법을 통해 배운 국민들은 평화가 왔음을 확신하며 그들은 기꺼이 기쁨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영웅, 우리들의 용사 루시에나 에스텔의 성검입니다.”

         

         

        아아…. 황태녀가 일부러 침음성을 흘리자 모두가 숙연해졌다.

         

        언제나 붉은 금빛으로 광휘를 내뿜던 성검은 한낱 철검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신의 뜻에 따라 자신이 선택했던 주인을 잃은 성검은 새하얗게 죽어버린 것 같은 자태를 보였다.

         

         

        “그녀를 위해 잠시 묵념하겠습니다.”

         

        “일동 차렷!”

         

         

        라인폴드의 말을 황실근위대장이 받아 근엄하게 외쳤다.

         

        의전용이지만 병장기들이 같은 순간에 착 하는 소리를 내며 자세를 취하자 그 분위기에 압도된 국민들도 숨을 죽였다.

         

         

        “묵념.”

         

         

        광장의 모든 이들이, 심지어 황제마저도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제국을 구한 영웅, 인류를 구한 용사를 위한 묵념이었으나 그 침묵 속에서 저마다 품고 있는 속내는 제각각이었다.

         

         

        “라인폴드! 저는 엘프 원로원의 뜻을 받들고, 우리 엘프를 대표하여 그대의 계획에 동참했어요. 약조한 대가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광장 발표가 있기 전, 나이드리안은 뻔뻔하게 상을 요구했다.

         

        명예롭지도, 그렇다고 성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나이드리안은 어쩔 수 없었다.

         

        멸족의 위협이 시시각각 하루가 다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스스로 보기에도 가당찮은 요청이라고 생각되지 않나?”

         

        “뭐라고요?”

         

        “우리의 계획은 용사를 무력화시키고 제도로 호송해오는 것이었다. 단순히 동참했다는 것만으로 대가를 달라고 하다니 받아들일 수 없군.”

         

         

        정말 눈앞의 그가 여정 내내 친절하고 배려 깊던 방패기사 라인폴드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용사를 놓친 직후부터 행동과 말투에 위엄과 위압감이 서렸다.

         

        사람을 찍어누르는듯한 그 태도에 나이드리안만이 아닌 다른 모두가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한 동참? 아니, 아니지. 우리가 참여함으로써 너랑 황태녀는 엘프 전체와 교국 전체의 지지를 등에 업고 움직인 거다. 충분히 대가를 받을만 해.”

         

        “아르실, 자네 치고는 정치적 감각이 탁월히 돋보이는 말이었네.”

         

        “이 자식이…!”

         

         

        아르실은 초조했다.

         

        루시가 배신당한 건 본인의 인과응보 탓이 크다고 여겨 대수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짐꾼이 희생당했다.

         

        신경도 쓰지 않고 있던 짐꾼이 돌연 예상치도 못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용사를 구출하려 들었다.

         

        그래봤자 절벽이라 갈 곳이 없어 뛰어내리고 끝나버렸지만 그의 행동은 아르실과 나이드리안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본래라면 용사를 도와야하는 건 자신들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배신 따위 없이 그들은 사이좋게 제도로 귀환한 뒤 각자의 길로 흩어져야 했다.

         

        서로의 앞날에 축복을 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그리러 가야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평소 도가 지나쳤던 용사를 배신하는 건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아니, 않았었다.

         

        그러나 짐꾼이 보여준 행동은 그들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비로소 죄를 지었다는 자각이 생겼다.

         

        자신들이 이루어야만 하는 일에 더 큰 대의가 있다고 합리화를 하며 벌인 행동은 실패와 누구도 알아서 안되는 불명예만 남기고 말았다.

         

        부끄럽다.

         

        부끄러움 뒤에는 두려움이 다가왔다.

         

        이 사건이, 이 진상이 외부로 새어나간다면 나이드리안도 아르실도 입지가 흔들린다.

         

        지금의 지위를 잃어버리게 된다면 두 사람 모두 구해야 하는 것을 구해낼 수 없었다.

         

        그런 그녀들이 선택한 것은 또 한 번의 비겁한 타협이었다.

         

        그건 앞으로도 용사를 배신한 사실을 함구하고 라인폴드에게 협력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 남자,

         

         

        “엘프와 교국의 지지는 감사히 받지. 하지만 용사에 대한 건으로는 당장 원하는 걸 들어줄 순 없어. 이 지지를 기반으로 황태녀님의 무사 즉위까지는 기다려야할 걸세.”

         

         

        도저히 신뢰가 가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태도가 바뀐 라인폴드에게 낯섦보다 경계심이 더 들었다.

         

         

        “라인폴드, 억지가 심함.”

         

        “그게 무슨 뜻이지?”

         

        “용사의 호송은 보여주고 싶던 연출이었을 뿐, 궁극적으로는 제거를 원했음. 용사는 짐꾼과 함께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음. 최종 목적은 달성했으므로 대가를 요구함.”

         

        ‘이 녀석 말 잘하는데?’

         

         

        말수가 적어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에게 유리한 발언을 하는 티그리아에게 아르실은 감탄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설프게 거드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멍청해 보이는지, 그리고 실제로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잘 알고 있었다.

         

         

        “용사가 죽었다고 어떻게 확신하지?”

         

        “용사는 사지가 잘렸음. 거기에 같이 떨어진 건 무능한 짐꾼. 1차적으로 그 높이에서 물로 추락하여 살 가능성이 적고, 2차적으로 물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이 낮으며, 마지막으로 빠져나왔다고 해도 짐꾼이 용사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음. 그 숲은 마왕성 인근이기 때문에 강력한 마수들이 서식하는 곳, 게다가 짐꾼은 마왕과의 결전을 위해 모든 식량을 다 털었음. 여러모로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임.”

         

        “흐음.”

         

         

        라인폴드도 그 의견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도 타당한 말이었고 그건 라인폴드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가정이었다.

         

        아쉽게도 티그리아의 예측은 지극히 상식적이었지만, 그 지역은 하필 DLC 1장 시작 지점이었다.

         

        그래서 마왕의 죽음 여파로 주위의 마수들은 죄다 소멸했다는 속편한 설정을 갖고 있다는 걸 한낱 피조물인 티그리아는 알 수 없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여기 마왕은 권능의 개념이기도 해서 죽으면 마수는 몰라도 마족은 완벽하게 사라진다는 설명이 있다.

         

         

        “마왕도 없고, 용사도 없어. 황태녀의 무사 즉위는 불 보듯 뻔해. 그러니 어서 약속한 걸 이행하시지.”

         

        “글쎄, 그때까지 가봐야 아는 일 아닌가?”

         

        “이 자식…! 혓바닥이 점점 길어지네? 우리 방패기사님은 얼마나 맷집이 좋은지 시험 좀 해볼까?”

         

        “뒷감당이 자신 있다면 얼마든지.”

         

         

        이글거리는 눈으로 서로를 쏘아보는 둘 사이를 나이드리안이 막아섰다.

         

         

        “그만하세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인 건 맞지만 분열만큼은 피해야 합니다.”

         

        “칫! 분열은 저놈이 일으키고 있잖아!”

         

         

        마지막 선을 넘지는 않는다.

         

        원하는 것에 서로의 영향력이 단단히 얽혀 있었기 때문에 그러고 싶어도 못한다.

         

         

        “라인폴드, 너무 고압적임. 당근도 필요함.”

         

        “하, 이쪽은 건진 게 없는데 계속 내놓으라고 하니….”

         

        “그런 태도를 견지할 거라면 나는 나대로 다른 방법을 찾겠음.”

         

        “네 소원… 나없이 이룰 수 있다고 보는가?”

         

        “어렵겠지만 불가능한 영역은 아님.”

         

         

        라인폴드와의 연결고리가 가장 약한 것이 티그리아의 소원이었다.

         

        제대로 신경 쓴다면 못해줄 것도 없었지만 라인폴드 자신부터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 마법사의 절대적인 힘은 필요했다.

         

        마법사는 단순히 화력만 좋은 전쟁무기가 아니다.

         

        마법을 잘만 이용하면 생활 전반에 스며들어 온갖 편의와 각종 불미스럽고 어쩔 수 없는 사고(?)를 불러올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였다.

         

         

        “…좋아. 이행이 완료되었을 때 바로 지불할 수 있도록 준비 정도는 해놓지.”

         

        “엘프는 지금 당장 필요합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납득함, 가보겠음.”

         

        “어? 야! 야!”

         

         

        아르실이 다급하게 불렀지만 티그리아는 그대로 사라졌다.

         

        강력한 우방을 잃은 아르실은 입술을 짓씹었다.

         

         

        “둘이 원하는 것 모두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절하고 적합한 절차에 따라 알맞은 계획 또한 필요하지. 그리고 그대들의 소원이 날림으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도 아니겠지?”

         

        “…당연하죠. 하아, 오늘은 이만 물러나죠. 광장 선포식이 거행될 때 불러주세요.”

         

         

        나이드리안도 물러났다.

         

        아르실 역시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흥.”

         

         

        하지만 왠지 더 삐대고 싶었다.

         

         

        “그 짐꾼 녀석, 신경 쓰이는 놈이었다고.”

         

        “의외군, 호감이 있었나.”

         

        “호감 그딴 거 아니야. 어떤 놈인지 알아보고 싶었는데 네가 망쳤지.”

         

         

        그러면서 사족을 덧붙였다.

         

         

        “이것도 빚으로 달아놓겠다 방패기사.”

         

         

        놈의 방에서 나오자 그제서야 얼마나 저 안이 더웠는지 실감했다.

         

        한숨을 쉬며 서늘한 바람을 맞고 있자니 살짝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황태녀가 있었다.

         

        아르실은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수행원도 없고, 주변에 잠복한 호위도 없고 황태녀께서 이렇게 다녀도 되나?”

         

        “네가 지켜줄 걸 아니까.”

         

        “내가 아니라 라인폴드겠지.”

         

         

        의외로 오가는 대화는 격의가 없었다.

         

        하지만 말에 가시는 있었다.

         

         

        “루시를 제거하라고 한 거 너지?”

         

        “제거하라고까지는 안했어.”

         

        “그게 그거지.”

         

        “어머, 말하는 거에 따라서 의미가 얼마나 많이 달라지는데.”

         

        “하….”

         

         

        아르실의 눈가에 힘이 들어갔다.

         

        방금 황태녀가 한 말은 그녀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자주하던 입버릇이었다.

         

        참을성이 없는 아르실은 곧장 이죽거렸다.

         

         

        “많이 변했네. 올곧던 네가 이렇게 숨기고 굽히고 결국에는 통수를 치는 사람이 되다니.”

         

        “많이 달라졌네? 우직하고 헌신적이던 네가 이렇게 거래도 하고 편법도 써보는 사람이 되다니?”

         

         

        웃으며 노려보는 두 사람.

         

        서로를 향한 원망이 가득했다.

         

         

        “이씨가 이런 너를 보면 뭐라할지 궁금하네.”

         

         

        결국 먼저 시선을 거둔 건 아르실이었다.

         

        정말로 주위에 아무 호위가 없다는 걸 재차 확인한 그녀는 혀를 차며 멀어져 갔다.

         

         

        “이씨라….”

         

         

        성녀의 등을 응시하던 리나시엔은 씁쓸하게 읖조렸다.

         

         

        “린이라는 이름도 있다고.”

         

         

        그리고는 다시 앞을 바라보고 라인폴드의 집무실로 걸어갔다.

         

         

        “이제는 기억하기도 힘든 옛 인연이지만 말야.”

         

         

        인형과도 같은 미소를 지은 뒤, 그녀는 자신의 약혼자가 될 이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갔다.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Abandoned Hero's Only Ally, 버림받은 용사의 유일한 아군이 되었다.
Score 6.8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saved the Warrior who used to ignore and bully me and now she is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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