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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꿀꿀했던 기분이 어느새 사르르 녹아간다.

       간만에 새로운 상대를 맞이한 것도 그렇지만, 마지막에 보인 검명인지 하는 것이 나름 인상 깊었고. 그런 놈을 제대로 깼으니 속이 시원할 수밖에.

       누군가 보았으면 성격이 더럽고 음흉하다 할 수 있을 테지만….

         

       ‘맞지.’

         

       이한은 겸허히 인정한다.

       그는 남들보다 좀 더 성격이 꼬였고. 음흉한 게 맞다.

       그렇다고 타인을 깔아 내려다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성격은 아니었다.

       단지, 자기가 강하다고 온몸으로 주장하는 ‘재수 없는 녀석’들을 깨부술 때면 약간의 쾌감을 얻을 정도의 음흉함이 있는 것이지.

         

       나름 보람찬 순간이다.

         

       ‘내가 원래 이런 녀석은 아니었는데.’

       

       이한은 원래 싸움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중세 판타지 월드에서 환생하여 30년을 살았고, 그냥 산 것만이 아니라 더러운 꼴이란 꼴은 다 보면서 살았으니 아무래도 성향이 바뀔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거기다 지난 3년간 매일 같이 단장 아재에게 깨지면서 살았으니…!

       솔직히 ‘승리’에 대한 [갈망]이 없을 수 없으리라.

         

       “내가 조금 심했나?”

       “아, 아닙니다. 오, 오히려 손속을 둬줘서 감사합니다.”

       “힘 좀 뺐지. 거기서 더 줬으면 송장 치렀을 거니까, 흐흐.”

       “…하하.”

         

       나름 농담하는 어투로 어깨를 툭툭 치는 이한이었지만. 듣는 사람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얘기다.

       요르드. 그는 땅바닥에서 물수제비 하듯 몸이 튕기고, 벽에 처박히기까지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타박상만 조금 입었을 뿐, 큰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이는 요르드가 투기법을 익힌 검사인 덕도 있으나, 이한의 말대로 손속을 뒀으니 무사한 것이 맞았다.

         

       ‘어마어마한 일격이었어.’

         

       요르드는 지금도 몸이 후들거렸다.

       검명을 일깨운 검을 날렸을 때만 해도, 요르드는 이기지 못할지언정 그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으리란 기대감을 가졌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란 걸 증명하는 것처럼, 그는 다시금 막는 자세로 검을 휘둘렀고, 그 휘두름과 칼을 맞댄 순간…!

         

       ‘기억이 안 나.’

         

       그래, 칼날을 맞댄 건 기억이 나는데, 그 이상은 모르겠다.

       그냥 날아갔고, 정신 또한 퓨즈가 깜빡거리듯 날아갔다.

       다만 본능적으로 몸이 기억하는 것은 그의 일격이 무척이나 무거웠다는 것과, 무척이나 강하고도 빨랐다는 점이다.

         

       ‘저 사람은 나를 날리는 게 아니라, 통째로 베는 것도 가능했을 거야.’

         

       리한 선배. 그는 여전히 지친 구석도 보이지 않았고, 여유가 넘쳐 보인다.

       요르드는 제 검이 완전히 깨졌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인정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러 유저 이외엔 다른 이들 모두를 무릎 꿇릴 수 있다 여겼거늘….

         

       ‘세상은 넓군.’

         

       젊은 천재 검사는 인생 첫 패배의 쓴맛을 느끼며 아릿한 표정을 지었다.

         

       * * *

         

       이한과 요르드의 대련 이후, 사람들은 요르드에게 감탄을 보이며 다가가 호의를 보내길 주저하지 않았다.

       검명을 일으킨 모습이 인상적인 것이리라.

       그의 가문이 어딘지, 유파는 어딘지. 스승의 이름은 무엇인지 등등.

       물어보고 싶은 게 한참 많은 게 꼭 군대 선임들 같다.

       …그다지 좋은 의미는 아니지만.

         

       “하여튼 어딜 가나 군대란 곳은.”

       “부정적으로 보지는 마. 가문과 유파, 스승의 유무 등은 귀족들에게 중요한 거니까.”

       “그래요, 아무런 가문도 없고 유파도 없는 평민 놈은 빠져야죠, 예에.”

       “…그런 식으로까지 말 안 했는데.”

       “그냥 내가 꼬인 놈이라 그런 거라고 생각해.”

       “참 나. 일부러 빈정거리는 거면서.”

         

       제이크는 고개를 저었다.

       저런 식으로 자기비하를 하고, 빈정거리는 말투를 모두가 들으라는 식으로 하는 게 남들이 먼저 덤벼오도록 유도하는 미끼와 같음을 알기에.

       물론 모두가 저게 수작임을 알며 건드리려 하지 않고, 도리어 피하는 게 일쑤였으며. 그나마 신입 중에는 걸릴 만한 놈들도 있지만. 요르드와의 대련을 보고 대련을 걸 간 큰 놈들은 여기에 없다.

         

       “몸도 적당히 풀었을 거잖아. 그러니 이제 적당히 해.”

       “오히려 애매하게 풀려서 더 근질거리는 거야, 쩝.”

       “…그렇게 보지 마. 난 너랑 절대 안 할 거야.”

         

       제이크는 슬그머니 물러서며 투견과 같은 놈의 시선을 피했다.

       잘못 걸리면 몸이 남아나지 않을 터이니, 피하는 것이 상책인 수밖에.

       기사로써 걸어온 상대의 대련을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나, 그것도 상대를 봐가며 해야지. ‘미친 맹수’와 싸우는 건 안 될 말이다.

         

       ‘…야만전사가 있다면 저런 놈일까?’

         

       사막과 밀림의 사원 등에서 살아가는 고대의 부족인 야만족.

       그들은 타고난 전사이며, 실전 속에서 기술과 힘을 연마한다고 한다.

       친절히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배우는 게 아닌 미련한 방식.

       허나 그 미련한 방식으로 연마된 야만전사들은 왕국의 그 어떤 기사보다 강하다고 하였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놈이랑 비슷해.’

         

       누구에게 배운 것도 없고, 기본 검술 하나만 들고 다른 놈들이랑 싸워 힘과 기술을 연마하는 특이한 놈.

       무식한 방식임이 분명한데 기사단 중 그 누구도 그를 압도할 수 없다는 점까지.

       딱 야만전사의 그것이 아닐 수 없다.

         

       “야만전사 이한이라.”

       “욕이냐, 칭찬이냐?”

       “둘 다.”

       “…기뻐해야하는지 기분 나빠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본인조차 차마 야만전사 발언을 부정하지 못하는 이한이었다.

       저게 무슨 속뜻이 들어 있는지 모르진 않았으니까.

         

       …떨떠름하게도.

         

       * * *

         

       “역시 대단한 재능이군.”

       “그래, 대체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 거지?”

       “따라할 엄두도 나지 않아.”

       “…그냥 무식하게 힘만 센 것 같기도 하고.”

       “그건 그것대로 대단한 거 아니냐?”

         

       단원들은 이한과 요르드의 대련을 평가하며 이한에게 감탄과 질시 어린 시선을 보냈다.

       같은 단원들이라고 하나, 그들은 동시에 경쟁자이다.

       그런 이들 중 유난히 모나다 못해, 바위처럼 튀어나온 이한은 거대한 벽이었고, 그를 공공의 적으로 삼기엔 적절했음이다.

         

       …이한으로선 경쟁자이건 뭐건 출세 따윈 전혀 관심도 없었지만.

         

       ‘그보다 재능이라…. 이 녀석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이한은 웃기지도 않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재능.

       그런 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보단 편했으려나?’

         

       이한의 재능은 딱 잡아 말해 평균보다 좀 나은 수준이다.

       성적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300명의 학생들이 수학시험을 치르고 난 후 평균을 보니 딱 60점이었는데, 이한은 그 평균 60점에서 10점을 더한 70점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평균보다 좀 낫고, 수업시간 때 필기만 잘해도 성적이 그럭저럭 괜찮게 나오는 재능.

       이렇게 듣다 보면 제법 괜찮아 보이지만, 실상 이 정도 수준으론 기사가 될 수 없는 게 정상이다.

         

       기사의 재능은 평균보다 좀 더 나아선 안 되며, 못해도 수업만 대충 들어도 전교 10등을 무난히 들어갈 법한 재능이다.

       놀고 자기만 하는 것 같고, 노력도 대충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성적이 잘 나오는 놈들.

         

       영재 아니면 수재란 거다.

         

       그렇기에 기사단에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영재 소리 안 들었던 놈이 없다.

       저기 귀족이라 뻗대는 놈들도, 빽은 있을지언정 영재 교육만큼은 제대로 받은 놈들이며 기사의 걸맞은 재능도 있다.

       허나 이한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평균보다 좀 나은 재능에 불과하다.

       다만 그는 남들만큼 재능이 없는 대신 특이한 체질, 이른바 ‘특질’이 있다.

         

       이른바 남들만큼 재능은 없지만, ‘기능(機能)’은 있다.

       투기법도 모르고, 한 번 보고 기술을 배우며 단번에 고수가 될 재능은 없으나, 몸이 부착된 기능이 그들을 이기게 해준다.

         

       ‘아재가 그랬지.’

         

       [네 몸은 신기하구나. 미련한 재능을 메꾸는 신묘함이 있어. 다만, 한계는 있을 것이다. 그 정도 신묘함을 압도하는 놈들은 기사단에도 얼마든지 있으니.]

         

       두들겨 맞은 날 들었던 조언이자 악담.

       그래서 빈정거리듯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데?’

       -냐고.

         

       그러자 아재는 조소를 머금고.

         

       [간단하지. 네 몸이 가진 ‘기능’을 좀 더 강화시키면 그만이다. 강화시키는 방법은 스스로 생각해 보거라, 네 몸이니 스스로가 가장 잘 알 터이니.]

         

       맞는 말이다.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암살 조직에서 제 기능을 키우는 방법을 배웠으니까.

       육신이 가진 리미터를 깨부수는 것.

       이른바 근육을 찢고 뼈를 부러트려 더 질기고 단단히 만드는 원리.

         

       [좋구나, 예상가는 건 있어 보이니. 흐음, 하나만 더 조언해주마. 많은 놈들과 싸워서 경험을, 아니 너 같은 경우는 정보를 축적하는 셈이겠구나.]

         

       사람을 진짜 기계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허나 그 조언이 도움이 되는 것은 맞았으며, 지난 3년 동안 이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들에게 시비를 건 이유기도 했다.

       그 양반 조언대로 다양한 인간군상과 싸우다 보니, 어찌 상대해야할지를 본능적으로 가늠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비록 여전히 어떤 식으로 검술을 펼치는지는 몰라도, 몸을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본능적 판단이 가능해진 것이다.

         

       머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몸이 기억하게 한다.

         

       ‘웃긴 일이야.’

         

       나 진짜 사람이 아니라, 기계 비슷한 건가?

         

       물론 그가 진짜 기계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게 그가 흘린 땀방울과 노력은 거짓이 아니었으니까.

       다만,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땀을 흘리는 건 분명할 터.

         

       ‘강해지면 그만이지, 뭐.’

         

       그는 딱히 무도(武道)를 갈망하는 구도자가 아니었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제이크의 말대로.

         

       ‘야만전사 마인드가 맞겠지.’

         

       이기기만 하면 그만.

       성장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은 그가 모르고, 또한 닿을 수 없는 무언가와 같으니까.

       그리고 그는 이러한 자신이.

         

       ‘나쁘지 않지.’

         

       썩 괜찮다 싶었다.

         

       적어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일은 없을 터이니.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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