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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6화. 방어는 버린다.
     
     
     
     
     
     
     
     
   검붉은 화염을 쏟아내고 있는 리사를 보며, 모두가 전율을 느꼈다.
     
   쿠콰아아아아!
     
   “우와.”
     
   특히 사토시는 너무 놀란 나머지 연신 감탄을 뱉었고, 그 뒤로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낼 뻔했다.
     
   ‘아니 무슨, 화장터 소각로도 아니고….’
     
   사토시의 생각대로, 그녀가 뿜어낸 불길은 통로에 있던 그 많던 시체와 혈흔을 순식간에 다 태워 재로 만들어버렸다.
     
   “저분, 사람 맞죠?”
     
   어느새 강호 곁으로 다가온 사토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강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신도 몸을 숨길 수 있었잖아.”
   “… 하지만.”
     
   그의 말뜻은 이해했지만, 같은 능력이라고 인정할 순 없었다.
   지금 리사가 보여주고 있는 능력에 비하면 사토시가 펼쳤던 은신은 재롱 수준이었다.
     
   ‘나도 내 능력에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이건 너무 말이 안 되지 않나?’
     
   비현실적인, 하지만 너무나 생생한, 믿기지 않는 장관이었다.
   그녀가 에너지 핵을 설명할 때 했던 말처럼, 정말 판타지 영화나 만화 속 마법사 같았다.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던 사토시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괴리감의 적당한 비유를 찾았다.
     
   ‘대해에서 작은 보트를 타고 가다가 거대한 흰수염고래를 마주치면 이런 느낌일까?’
     
   사토시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강호의 감상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직접 보니 더 대단하군. 확실히 나와는 또 다른 능력이야.’
     
   상태창으로 능력 정보를 본 것과, 그것이 실제 구현됐을 때는 느낌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알고 이능력이 생기자마자 저렇게 바로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는 걸까?
   천재라서 그럴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미친 거인이 그 위력적인 열화를 뚫고 한 걸음씩 다가왔다.
     
   쿠웅. 쿵.
     
   물론 거인도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피부가 고기처럼 벌겋게 익고 손가락 마디는 손모아장갑처럼 뭉개졌다.
   그래서 더 공포스러웠다.
     
   어느새 일정 거리로 좁혀졌다.
   그게 놈의 공격 범위 안인지, 몸에 불길을 두른 채 괴성을 지르며 순식간에 리사를 덮쳤다.
     
   “크아아악!”
     
   사실 강호는 감탄만 하는 사토시와 달리 이미 리사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지쳤다.’
     
   그녀가 이를 악무는 순간부터 유심히 살폈다.
   팔이 조금씩 떨렸고, 그런 변화와 맞물려 불길의 위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처음 갖게 된 이능을 잘 쓴다 했더니, 이해력의 한계겠지.’
     
   아마 그녀는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여러 방식으로 확인해 봤을 것이다.
   그렇게 알게 된 몇 가지 현상과 패턴을 조합하고 응용해 활용 가능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천재니까 그 정도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실전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리사라고 그걸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학도 이론을 세우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실험하고 구현해 내는 노력을 하지 않던가.
   다만, 그녀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을 뿐.
     
   결과적으로 리사는 상대의 방어력을 몰랐고, 자신이 쓸 수 있는 힘의 총량을 몰랐다.
   평생 공부만 했을 그녀에겐 그런 요령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사실 이 정도의 활약도 대단한 편이었다.
     
   “그만! 화염을 멈춰!”
     
   강호는 외침과 동시에 초고밀도 방어막을 반구 형태로 두르고 리사의 앞을 막았다.
   그의 듬직한 뒷모습을 본 리사가 그제야 주저앉듯 비틀거렸다.
     
   휘청.
     
   한강호는 왼손을 들어 만든 방어막에 밀도를 높이는 한편, 오른손을 뻗어 무너지는 리사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털썩.
     
   “하아, 하아.”
     
   거친 호흡을 흘리며 강호의 품에 안긴 리사의 얼굴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
     
   위급한 순간임에도 강호는 잠깐 곤란함을 느꼈다.
   리사의 젖은 얼굴과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그리고 곁에서 들려오는 가쁜 숨소리.
     
   그뿐만이 아니었다.
   팔뚝에 얹힌 묵직하고 물컹한 무게감에 목 뒷덜미가 시큰할 지경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훅 밀려든 강력한 충격이 잡념을 날려버렸다.
     
   쿠웅!
     
   “윽.”
     
   급한 대로 쇄도는 막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힘에 강호의 몸이 뒤로 밀렸다.
     
   그는 절로 인상을 썼다.
   힘도 힘이지만, 투명한 자기력 방어막 너머로 보이는 거인의 몰골이 아주 가관이었다.
   리사의 화염 공격에 얼굴이 다 문드러져서 눈, 코, 입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저런 상태로 어떻게 이런 힘이… 정말 괴물이군.’
     
   강호는 잠깐 고민했다.
   공격을 위해 적당한 틈에 방어막을 거둬야 하는데, 그랬다간 상대의 쇠몽둥이가 먼저 강호의 머리를 깨버릴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마냥 버티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그으으억.
     
   놈은 힘만 센 게 아니었다.
   어떤 속성 때문인지, 강호의 방어막이 얇아지기 시작했다.
     
   강호는 리사에게 말했다.
     
   “이제 움직일 수 있나?”
     
   그의 팔에 의지하고 있던 리사가 힘겹게 몸을 가누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뒤로 물러나 있어.”
     
   리사가 강호의 품에서 벗어나 뒤로 자리를 옮기자, 그녀를 안고 있던 오른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젠 익숙한 작은 번개가 곧 요란하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파직.
   파츠츠츠.
     
   방어막이 사라질 때를 맞춰 플라즈마를 폭발시키면 된다.
   다만, 이쪽도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그게 꽤 위험할 것 같았다.
     
   ‘그래도 방어는 버린다.’
     
   말 그대로 건곤일척의 승부였다.
   그런데 그때,
     
   “쿠하아아악!”
     
   거인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더니 몸의 균형이 살짝 무너졌다.
   강호는 금방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스으으윽.
     
   거인의 뒤에서 그림자의 움직임이 이질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사토시!’
     
   그러고 보니, 거인의 발목에서 피가 번지고 있었다.
   강호와 거인이 힘 대 힘의 대치 상태로 있는 동안, 사토시는 완벽한 은신 상태로 적의 뒤를 점한 모양이었다.
     
   거인도 뒤늦게 등 뒤의 적을 인지하고 쇠몽둥이를 휘둘러 바닥을 쓸었다.
     
   카카카캉!
     
   바닥에 불꽃이 튀겼고, 그 순간 사토시의 은신이 풀리며 바닥을 굴렀다.
     
   “으헙.”
     
   다행히 그는 무사했다.
   그의 손에 암적색 연기가 뭉글거리는 단검이 들려있었다.
   못 보던 것이지만, 범상치 않아 보였다.
   그 단검으로 거인의 발목을 그은 모양이었다.
     
   강호는 순간적으로 들어찬 여러 의문을 털고 곧장 방어막을 거두었다.
   그토록 바라던 잠깐의 틈을 사토시가 만들어줬다.
   그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고, 이미 강호의 팔뚝에는 번개가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콰아아아아.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슈욱!
   파츠츠츠츠!
     
   강호의 주먹은 거인에게 닿지 않았다.
   놈의 몸에서 어떤 반발력이 발생한다는 걸 알게 됐다.
   방어막의 밀도가 빠르게 흩어진 것도 같은 이유인 것 같았다.
     
   하지만 강호의 플라즈마는 물리력이 아니다.
   그의 팔을 두르고 있던 고농축 이온 분자가 주변의 공기층에 마찰 에너지를 빠르게 확산시켰다.
     
   ‘벼락.’
     
   작은 정전기가 순식간에 접점으로 모여 응축되더니, 한정된 공간, 즉 거인의 명치와 강호의 주먹 사이에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꽈과광!
     
   “크아아아아아!”
     
   드디어 누더기 골렘 같은 거인이 길게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쿵.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고, 다른 한쪽도 뒤이어 꿇렸다.
   연속해서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두 손은 바닥을 짚었다.
     
   터덕. 턱.
     
   끄르르르르.
     
   강호는 마치 피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어깨를 들썩이는 거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의 손날에 푸른 전류 막이 둘리며 마치 광선검처럼 길게 뻗어 올랐다.
     
   우우웅.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누더기 골렘의 목을 내리쳤다.
     
   서걱.
     
   철퍽.
     
   거인의 목이 떨어지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이전의 다른 좀비들처럼 육신이 먼지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진녹빛의 에너지 핵이 놓여있었다.
     
   ‘크기는 같은데, 색이 짙다.’
     
   느낌상 얻게 되는 수치가 다를 것 같았다.
   마침 저만치 피해 있던 사토시가 가까이 다가왔다.
     
   “아까 보니까, 리사 박사님이 비타민 주사라도 맞은 것 같다고 하시던데….”
     
   강호는 별말 없이 사토시와 리사를 순서대로 바라봤다.
     
   ‘내가 갖는 것보다 이들에게 주는 게 좋을까?’
     
   잠깐 고민 아닌 고민을 하다 보니, 리사는 여전히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이능 사용에 소비되는 기력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에너지 핵을 리사에게 주는 게 옳은 선택 같았다.
     
   ‘먼저 말을 꺼낸 걸 보면 사토시도 욕심이 있는 거겠지.’
     
   사토시에게 동의를 구하는 게 맞기에 그를 돌아봤다.
   그런데, 사토시는 에너지 핵을 보고 있던 게 아니었다.
     
   ‘… 리사의 셔츠를 갈아입혀야겠군.’
     
   조금 전엔 미처 보지 못했는데, 사토시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녀의 셔츠 단추가 다 뜯어져 있었다.
   그리고, 속옷을 꽉 채운 풍만함이 거기 있었다.
     
   뒤늦게 강호의 시선을 느낀 사토시가 화들짝 놀라더니 뭐라 한 것도 아닌데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하므니다!”
     
   강호는 그가 왜 자신에게 사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의 사과를 기회로 삼기로 했다.
     
   “미안하면 저 에너지 핵, 리사에게 양보하는 건 어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휴. 오늘은 여기까지!

Ilham Senjaya님, 여기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다음화 보기

6화. 방어는 버린다.

검붉은 화염을 쏟아내고 있는 리사를 보며, 모두가 전율을 느꼈다.

쿠콰아아아아!

“우와.”

특히 사토시는 너무 놀란 나머지 연신 감탄을 뱉었고, 그 뒤로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낼 뻔했다.

‘아니 무슨, 화장터 소각로도 아니고….’

사토시의 생각대로, 그녀가 뿜어낸 불길은 통로에 있던 그 많던 시체와 혈흔을 순식간에 다 태워 재로 만들어버렸다.

“저분, 사람 맞죠?”

어느새 강호 곁으로 다가온 사토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강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신도 몸을 숨길 수 있었잖아.”

“… 하지만.”

그의 말뜻은 이해했지만, 같은 능력이라고 인정할 순 없었다.

지금 리사가 보여주고 있는 능력에 비하면 사토시가 펼쳤던 은신은 재롱 수준이었다.

‘나도 내 능력에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이건 너무 말이 안 되지 않나?’

비현실적인, 하지만 너무나 생생한, 믿기지 않는 장관이었다.

그녀가 에너지 핵을 설명할 때 했던 말처럼, 정말 판타지 영화나 만화 속 마법사 같았다.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던 사토시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괴리감의 적당한 비유를 찾았다.

‘대해에서 작은 보트를 타고 가다가 거대한 흰수염고래를 마주치면 이런 느낌일까?’

사토시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강호의 감상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직접 보니 더 대단하군. 확실히 나와는 또 다른 능력이야.’

상태창으로 능력 정보를 본 것과, 그것이 실제 구현됐을 때는 느낌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알고 이능력이 생기자마자 저렇게 바로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는 걸까?

천재라서 그럴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미친 거인이 그 위력적인 열화를 뚫고 한 걸음씩 다가왔다.

쿠웅. 쿵.

물론 거인도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피부가 고기처럼 벌겋게 익고 손가락 마디는 손모아장갑처럼 뭉개졌다.

그래서 더 공포스러웠다.

어느새 일정 거리로 좁혀졌다.

그게 놈의 공격 범위 안인지, 몸에 불길을 두른 채 괴성을 지르며 순식간에 리사를 덮쳤다.

“크아아악!”

사실 강호는 감탄만 하는 사토시와 달리 이미 리사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지쳤다.’

그녀가 이를 악무는 순간부터 유심히 살폈다.

팔이 조금씩 떨렸고, 그런 변화와 맞물려 불길의 위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처음 갖게 된 이능을 잘 쓴다 했더니, 이해력의 한계겠지.’

아마 그녀는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여러 방식으로 확인해 봤을 것이다.

그렇게 알게 된 몇 가지 현상과 패턴을 조합하고 응용해 활용 가능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천재니까 그 정도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실전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리사라고 그걸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학도 이론을 세우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실험하고 구현해 내는 노력을 하지 않던가.

다만, 그녀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을 뿐.

결과적으로 리사는 상대의 방어력을 몰랐고, 자신이 쓸 수 있는 힘의 총량을 몰랐다.

평생 공부만 했을 그녀에겐 그런 요령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사실 이 정도의 활약도 대단한 편이었다.

“그만! 화염을 멈춰!”

강호는 외침과 동시에 초고밀도 방어막을 반구 형태로 두르고 리사의 앞을 막았다.

그의 듬직한 뒷모습을 본 리사가 그제야 주저앉듯 비틀거렸다.

휘청.

한강호는 왼손을 들어 만든 방어막에 밀도를 높이는 한편, 오른손을 뻗어 무너지는 리사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털썩.

“하아, 하아.”

거친 호흡을 흘리며 강호의 품에 안긴 리사의 얼굴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

위급한 순간임에도 강호는 잠깐 곤란함을 느꼈다.

리사의 젖은 얼굴과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그리고 곁에서 들려오는 가쁜 숨소리.

그뿐만이 아니었다.

팔뚝에 얹힌 묵직하고 물컹한 무게감에 목 뒷덜미가 시큰할 지경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훅 밀려든 강력한 충격이 잡념을 날려버렸다.

쿠웅!

“윽.”

급한 대로 쇄도는 막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힘에 강호의 몸이 뒤로 밀렸다.

그는 절로 인상을 썼다.

힘도 힘이지만, 투명한 자기력 방어막 너머로 보이는 거인의 몰골이 아주 가관이었다.

리사의 화염 공격에 얼굴이 다 문드러져서 눈, 코, 입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저런 상태로 어떻게 이런 힘이… 정말 괴물이군.’

강호는 잠깐 고민했다.

공격을 위해 적당한 틈에 방어막을 거둬야 하는데, 그랬다간 상대의 쇠몽둥이가 먼저 강호의 머리를 깨버릴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마냥 버티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그으으억.

놈은 힘만 센 게 아니었다.

어떤 속성 때문인지, 강호의 방어막이 얇아지기 시작했다.

강호는 리사에게 말했다.

“이제 움직일 수 있나?”

그의 팔에 의지하고 있던 리사가 힘겹게 몸을 가누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뒤로 물러나 있어.”

리사가 강호의 품에서 벗어나 뒤로 자리를 옮기자, 그녀를 안고 있던 오른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젠 익숙한 작은 번개가 곧 요란하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파직.

파츠츠츠.

방어막이 사라질 때를 맞춰 플라즈마를 폭발시키면 된다.

다만, 이쪽도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그게 꽤 위험할 것 같았다.

‘그래도 방어는 버린다.’

말 그대로 건곤일척의 승부였다.

그런데 그때,

“쿠하아아악!”

거인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더니 몸의 균형이 살짝 무너졌다.

강호는 금방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스으으윽.

거인의 뒤에서 그림자의 움직임이 이질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사토시!’

그러고 보니, 거인의 발목에서 피가 번지고 있었다.

강호와 거인이 힘 대 힘의 대치 상태로 있는 동안, 사토시는 완벽한 은신 상태로 적의 뒤를 점한 모양이었다.

거인도 뒤늦게 등 뒤의 적을 인지하고 쇠몽둥이를 휘둘러 바닥을 쓸었다.

카카카캉!

바닥에 불꽃이 튀겼고, 그 순간 사토시의 은신이 풀리며 바닥을 굴렀다.

“으헙.”

다행히 그는 무사했다.

그의 손에 암적색 연기가 뭉글거리는 단검이 들려있었다.

못 보던 것이지만, 범상치 않아 보였다.

그 단검으로 거인의 발목을 그은 모양이었다.

강호는 순간적으로 들어찬 여러 의문을 털고 곧장 방어막을 거두었다.

그토록 바라던 잠깐의 틈을 사토시가 만들어줬다.

그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고, 이미 강호의 팔뚝에는 번개가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콰아아아아.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슈욱!

파츠츠츠츠!

강호의 주먹은 거인에게 닿지 않았다.

놈의 몸에서 어떤 반발력이 발생한다는 걸 알게 됐다.

방어막의 밀도가 빠르게 흩어진 것도 같은 이유인 것 같았다.

하지만 강호의 플라즈마는 물리력이 아니다.

그의 팔을 두르고 있던 고농축 이온 분자가 주변의 공기층에 마찰 에너지를 빠르게 확산시켰다.

‘벼락.’

작은 정전기가 순식간에 접점으로 모여 응축되더니, 한정된 공간, 즉 거인의 명치와 강호의 주먹 사이에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꽈과광!

“크아아아아아!”

드디어 누더기 골렘 같은 거인이 길게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쿵.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고, 다른 한쪽도 뒤이어 꿇렸다.

연속해서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두 손은 바닥을 짚었다.

터덕. 턱.

끄르르르르.

강호는 마치 피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어깨를 들썩이는 거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의 손날에 푸른 전류 막이 둘리며 마치 광선검처럼 길게 뻗어 올랐다.

우우웅.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누더기 골렘의 목을 내리쳤다.

서걱.

철퍽.

거인의 목이 떨어지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이전의 다른 좀비들처럼 육신이 먼지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진녹빛의 에너지 핵이 놓여있었다.

‘크기는 같은데, 색이 짙다.’

느낌상 얻게 되는 수치가 다를 것 같았다.

마침 저만치 피해 있던 사토시가 가까이 다가왔다.

“아까 보니까, 리사 박사님이 비타민 주사라도 맞은 것 같다고 하시던데….”

강호는 별말 없이 사토시와 리사를 순서대로 바라봤다.

‘내가 갖는 것보다 이들에게 주는 게 좋을까?’

잠깐 고민 아닌 고민을 하다 보니, 리사는 여전히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이능 사용에 소비되는 기력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에너지 핵을 리사에게 주는 게 옳은 선택 같았다.

‘먼저 말을 꺼낸 걸 보면 사토시도 욕심이 있는 거겠지.’

사토시에게 동의를 구하는 게 맞기에 그를 돌아봤다.

그런데, 사토시는 에너지 핵을 보고 있던 게 아니었다.

‘… 리사의 셔츠를 갈아입혀야겠군.’

조금 전엔 미처 보지 못했는데, 사토시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녀의 셔츠 단추가 다 뜯어져 있었다.

그리고, 속옷을 꽉 채운 풍만함이 거기 있었다.

뒤늦게 강호의 시선을 느낀 사토시가 화들짝 놀라더니 뭐라 한 것도 아닌데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하므니다!”

강호는 그가 왜 자신에게 사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의 사과를 기회로 삼기로 했다.

“미안하면 저 에너지 핵, 리사에게 양보하는 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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