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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대장장이 노인은 춘봉과 서준의 당당한 대답에 눈을 끔뻑이더니, 도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의자 하나에 걸터앉았다.

   

    “오….”

   

    솔직히 맞짱 한 번 뜰 줄 알았던 서준은 어벙한 눈으로 춘봉을 바라보았다.

   

    “뭘 봐.”

    “아니, 별거 아니야.”

   

    이게 무림식 평범한 대화구나? 조금 이상한 깨달음을 얻은 서준이 춘봉의 뒤를 따라 걸었다.

   

    달랑 몇 개 진열되어 있는 검 앞에 선 춘봉이 그것들을 눈으로 주욱 훑었다.

   

    “흠…. 그래도 아주 못 쓸 정도는 아니네. 골라봐.”

    “내가?”

   

    내가 검에 대해 뭘 안다고. 골라달라는 눈빛으로 춘봉이를 바라보자 그녀가 혀를 찼다.

   

    “아, 일단 골라보라고! 병신 같은 거 고르면 내가 알아서 말릴 테니까.”

    “애가 입이 이렇게 험해서 어쩌려고.”

   

    춘봉이가 눈을 부릅 떴다.

   

    “느믄 으느읐으드….”

    “너만 아니었어도?”

    “…뒤져 그냥.”

   

    빡친 춘봉이를 뒤로하고 검들을 살폈다.

   

    길이는 대부분 비슷하다. 딱 장검 하면 떠올릴 법한 그런 길이.

   

    날이 양쪽에 서있는 중국식 검이었는데, 하나씩 다 들어보니 무게중심도 나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나쁜데?”

   

    아무튼 내 기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고만고만한 놈들 사이에서 그나마 마음이 가는 친구는….

   

    “얘로 할래.”

   

    검 한 자루를 고르자 그 검을 유심히 살피던 춘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은 괜찮네.”

   

    검을 낚아채 대장장이 노인에게 뚜방뚜방 걸어간 춘봉이 탁상 위에 검을 턱하니 내려놨다.

   

    “계산.”

    “으음….”

   

    노인은 눈을 찌푸리고 고개를 뒤로 쭈욱 빼더니, 그제야 초점이 잡혔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냥.”

    “은자?”

    “그럼 은자 말고 뭐 더 있나?”

    “이 영감이 미쳤구만? 반 냥. 그 이상으로는 못 줘.”

   

    이내 짧은 대화 끝에 춘봉이는 가격을 절반으로 깎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미친 수완에 박수를 쳐주자 춘봉이 혀를 찼다.

   

    “원래 이게 정가야 병신아.”

    “아하.”

   

    대장간을 나와 쥐꼬리만큼 남은 돈으로 음식을 사들고 집에 가는 길. 허리춤에 매달린 검의 무게에 콧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춘봉이가 코웃음을 쳤다.

   

    “좋냐?”

    “아주 좋소.”

    “지랄.”

   

    춘봉이가 손목을 붙잡아 몸을 멈춰세웠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다 진지하게 물었다.

   

    “무림에 발을 들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아?”

    “별거 있나? 칼 들고 설치면 칼 맞아 뒤질 수도 있다는 거 아니야?”

    “그게 다면 말을 안 하지.”

   

    춘봉이 성큼 다가와 서준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툭툭 쳤다.

   

    “무림의 은원은 도저히 다시는 풀어낼 수 없을 만큼 꼬여버린 실타래와 같아. 이미 너도 그곳에 한 발을 들였고.”

   

    범죄자 친구들의 대가리를 깬 걸 말하는 거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던 춘봉이 대뜸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잘 하라고. 기왕 할 거면 멈추지 말고. 멈추는 순간 뒤에 있는 놈한테 칼 맞는 거야.”

    “뭔 말을 그렇게 곧 죽을 놈처럼 하냐.”

    “내가 언제 새끼야.”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춘봉이의 머리에 턱 손을 올렸다.

   

    “이 좆만 한 놈. 오빠가 성공해서 잘 챙겨주마.”

    “이 개새끼가…? 갸악! 머리에서 손 안 떼!?”

   

    자그마한 머리통을 붙잡고 마구 흔들듯 쓰다듬어주자 좋아 죽으려 한다. 

   

    귀여운 새끼. 

   

    잘 키워서 춘봉이를 시집 보내는 날, 어쩌면 조금 서운할 것 같았다.

   

   

    *

   

   

    집에 돌아와 검을 좀 살펴보려는데 대뜸 머리를 들이민 춘봉이가 눈을 부라렸다.

   

    “그래서. 집에 오면 알려준다며.”

    “뭐를?”

    “탄지공 씹새야!”

    “아.”

   

    일단 대충 달래려고 한 말이었는데.

   

    고민하던 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될 것 같아서 하니까 된 건데?”

    “뒤져 그냥. 알려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든가.”

    “아니! 진짜라니까?”

   

    고심하다 한 번 더 손끝에 기를 끌어모아본 서준이 그 어렴풋한 느낌을 설명했다.

   

    “손끝에 딱 모아서, 그…, 확! 하고 팍! 하면 된다니까?”

    “그게 그렇게 간단히 되는 기술이 아니라고!”

    “아니, 되는데 뭐 어쩌라는 거지?”

   

    목소리를 낼 때 의식적으로 성대를 진동시키는 게 아닌 것처럼, 그냥 될 것 같아서 하니까 된 거다.

   

    또 한 번의 기나긴 설명 끝에 간신히 납득한 춘봉이 손에 턱을 괴었다.

   

    “좆같은 세상. 이 씨발, 재능 좀 있으니까 세상이 만만해 보이냐?”

    “아니, 왜 나한테 또 지랄인데.”

    “그냥! 새끼야!”

   

    냥냥펀치에 몸을 내어준 서준이 자세를 고쳤다.

   

    투다다닥-! 등을 두드리는 손길이 썩 시원하다. 효녀 같으니라고. 등 안마를 받으며 검이나 좀 살펴보기로 했다.

   

    스릉-

   

    검집에서 살짝 빠져나온 검날이 번들거린다. 기름인가? 손으로 살짝 만져보자 맞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까 숫돌이랑 기름도 받아왔었지?’

   

    아마 사용법은 춘봉이가 알 거다. 그건 나중에 하고.

   

    “인마, 위험하니까 그만 해봐 새끼야.”

   

    춘봉 안마를 멈추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검집에서 아예 검을 뽑아들었다.

   

    “오….”

   

    좆된다. 확실히 진검은 그 자체로 뭔가 위압감이 있었다.

   

    범죄자 친구들이 쓰던 박도? 그런 못생긴 건 검으로 취급 안 한다. 검이든 도든 투박한 건 게임에서도 안 썼다.

   

    쉬익-!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살벌하다. 한손검에 가까워 크게 무겁지도 않고, 아이의 신체라 조금 긴 듯한 감은 있었지만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야! 밖에서 휘둘러! 세간살이 다 부수려고 작정을 했나!”

    “여기 세간살이가 어딨음? 말 나온 김에 우리 이사나 가자.”

    “…이사? 어디로?”

   

    잠시 생각하던 서준이 말했다.

   

    “그 친구들 집?”

    “친구? 너 친구도 있냐?”

    “아니, 걔네 있잖아. 대가리 부순 애들.”

   

    오…. 춘봉이 감탄했다.

   

    “진짜 머저리 새끼냐? 칼빵이 맞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그랬냐. 내가 찔러주게. 이리 와봐 새끼야.”

    “아이 참, 왜 또 이러실까.”

   

    서준이 오른손을 쫙 펼쳐들었다. 내가 생각이 없는 게 아니다 이거야.

   

    “걔네 친구들이 덤벼도 손가락 하나 당 한 놈. 멀찍이서 푝푝 쏴대면 내가 이기지 않을까?”

   

    원래 초반에 근딜은 원딜을 못 이긴다. 거리 조절만 잘 하면.

   

    “병신.”

   

    간단하게 일축한 춘봉이가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따라와봐. 말 나온 김에 그게 뭔지나 좀 보자.”

   

   

    *

   

   

    춘봉이를 따라 걷다보니 영 처음 보는 장소가 나왔다.

   

    이 근방에 아는 데가 얼마나 되겠냐마는, 분위기가 영 음산한 것이 별로 오고 싶은 장소는 아니었다.

   

    “저기다 쏴봐. 내가 봤을 때 그거 제대로 된 기공은 아니거든? 애초에 탄지공을 기공이라 보기에는 조금 애매하기도 하고.”

    “그러냐?”

    “권법이나 지법에서 파생된 거에 가깝지.”

   

    흠. 고개를 갸웃거리던 서준이 멀찍이 놓여있는 장작 쪼가리를 조준했다.

   

    퓩-

   

    손가락 끝에서 쏘아낸 기가 장작을 때렸다.

   

    달칵-

   

    그리고 장작이 조금 흔들렸다.

   

    “어라?”

   

    위력이 이거밖에 안 나온다고? 아무래도 날아가는 도중에 조금 흩어져서 그런 것 같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집중해서 손가락 끝의 기를 구슬처럼 뭉쳤다.

   

    퓩- 콰직-!

   

    이번에야말로 반으로 토막난 장작의 모습에 서준이 가슴을 쭉 펼쳤다.

   

    “어떤데.”

    “…놀랍네.”

   

    문제점을 깨닫고 곧바로 고친다? 말이 쉽지 무공이라는 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이런 걸 두고 대종사의 자질이라 하는 거다. 믿기 어렵게도 이 모자란 놈에게는 그 자질이 있었다.

   

    “한 번 더 해봐.”

   

    서준은 춘봉이의 말대로 다시 한 번 장작 쪼가리를 조준했다.

   

    딱밤을 때리듯이 잘 하면…,

   

    “어라…?”

   

    휘청이던 서준이 제자리에 무너졌다. 시야가 핑핑 돈다. 어지러운 시야로 춘봉을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돈가.”

    “왜 이러지…?”

    “당연한 일이야. 단전을 만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공이 많겠냐?”

    “아, 마나 오링 난 거구나.”

   

    이게 기분이 상당히 별로다. 멀미라도 난 것마냥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속에서 뭐가 올라올 것 같은데 막상 올라오는 건 없어서 역하다.

   

    한편 춘봉은 또 서준 혼자 해대는 이상한 말을 익숙하게 무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겠네.”

    “뭐를요.”

    “네가 좆밥이라는 거? 당분간 나대지 말고 수련이나 열심히 해라. 괜히 깝죽대다 흑도 놈들이랑 부딪히지 말고.”

    “넹.”

   

    그러기로 했다.

   

   

    *

   

   

    아무리 생각보다 검이 무겁지 않다 해도 검은 검이다. 전에 휘두르던 나뭇가지보다야 쇳덩어리가 훨씬 무겁다.

   

    무림에 핸드폰이니 컴퓨터니 하는 것들이 있을 리도 없는 바, 심심함을 참지 못해 무공에 몰두하기 시작한 서준의 몸은 날이 갈수록 탄탄해지기 시작했다.

   

    “흠, 좀 쩌는 듯.”

   

    상의를 벗은 채 포즈를 잡자 춘봉이의 벌레 보는 듯한 시선이 날아들었다.

   

    “가죽밖에 없는 놈이 뭐라는 거야.”

    “어허, 원래 딱 마른 근육이 멋있는 거야.”

   

    검을 내려놓은 서준은 바닥에 주저앉아 손 위에서 기를 굴리며 놀았다. 

   

    처음 다뤄보는 기가 신기한 것도 하루 이틀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 기라는 놈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끝이 없어 도무지 그 재미가 다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게 재밌냐? 안 힘들어?”

   

    춘봉이는 그게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 

   

    “이게 왜 힘들어? 재밌기만 한데.”

    “기를 그렇게 다루려면 당연히 정신력이…, 아니다, 됐다. 내가 뭔 말을 하겠냐.”

   

    쯧, 혀를 찬 춘봉이가 냅다 드러누웠다.

   

    “아이고-! 재능도 없는 머저리는 나가 뒤져야지!”

    “어허, 괜찮대도. 이 오라비가 먹여 살려주마.”

    “니가 뭘 알아, 개새끼야!”

    “…뭔데? 사춘기냐?”

   

    서준을 한껏 째려보던 춘봉은 쪼그려앉아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이야, 응? 옛날에는 천재니 신동이니 떠받들어지고 그랬다고. 너도 언제 훅 갈지 몰라. 처신 잘 해.”

    “지금 저주하는 거니?”

   

   

    콰아앙─────────!!

   

   

    벽이 부서져 날아갔다. 눈을 끔뻑이며 춘봉이를 쳐다보자 그녀가 마구 손을 저었다.

   

    “내가 안 했어!”

   

    콜록-! 흙먼지 속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이내 슬쩍 가라앉은 먼지 사이로 인영 몇 개가 보이는가 싶더니, 딱 봐도 프로 범죄꾼처럼 생긴 사내 몇 명이 방바닥에 신발 자국을 적나라하게 새겼다.

   

    “야, 이 새끼들이라고? 꼬맹이들인데? 너 씨발 제대로 알아본 거 맞아?”

    “화, 확실합니다 형님! 아! 저기 보십쇼!”

   

    따까리가 가리킨 방향에는 박도 두 자루가 놓여있었다.

   

    “얼씨구?”

   

    사내의 매서운 시선을 받은 서준이 생각했다.

   

    “신발 벗고 들어와 개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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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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