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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리람.

     

   “감정은 조절하면 되는 거랬어요. 저주에 꼭 기댈 필요는 없어요.”

   “비앙카, 너 뭔가 오해하고 있지 않아?”

     

   크라슈가 그리 말했지만, 비앙카는 도리질 칠 뿐이었다.

     

   “저라도 자주 올게요. 아버님께 말하면 약혼자니까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을 수 있을게요.”

   “너 내 약혼자 같은 건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잖아.”

   “그렇다 하더라도 내몰린 사람을 그냥 두고 가지는 않아요.”

     

   약혼이 달갑지 않은 건 부정은 안 하는군.

   크라슈는 기가 막혀라 하다가 이내 쓴 한숨을 내쉬었다.

     

   북부의 여신님께서 아무래도 뭔가 단단히 착각하신 모양이었다.

   예전부터 비앙카는 무언가 하나 꽂혀 버리면 그걸 맹신해 버리는 경향이 있었지.

     

   감정이 없기에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순간 거기에 아무런 의심도 못 느끼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나.’

     

   크라슈는 탁자 아래 내린 손에 블랙 후드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비앙카의 가슴팍 위로 금고 자물쇠가 보였다.

     

   저 금고가 바로 블랙 후드로 훔칠 때의 난이도를 뜻했다.

     

   비앙카의 금고는 이중 자물쇠로 이루어져 있었다.

   본래 저주는 대부분 자물쇠는커녕 금고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법이지만.

     

   비앙카는 태어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저주와 함께했다.

   그러니 저주의 가치를 다른 이들처럼 낮게 평가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달린 손발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지 않듯이 비앙카도 저주를 낮게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가치란 언제나 상대적이니까.’

     

   비앙카 저주의 가치는 그녀에게 꽤 높은 위치에 속했다.

   그렇기에 이중 자물쇠라는 형태가 나타난 것이고 말이다.

     

   ‘조건 생성.’

     

   그러니 그 자물쇠를 풀기 위해 크라슈는 조건을 생성했다.

   이중 자물쇠라 하면 조건은 분명 두 가지.

     

   그 첫 번째 조건이 크라슈의 눈앞에 불쑥 튀어나왔다.

     

   [ 비앙카의 ‘친구’가 될 것. ]

     

   크라슈의 마음속에서 혀 차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래서 가진 가치에 따라 훔치는 난이도가 천차만별인 것이다.

     

   상대가 지닌 것을 훔치기 위해서는 상대가 방심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그 방심을 가장 크게 유도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비앙카의 경우 첫 번째 조건이 친구였다.

     

   ‘백귀랑 친구라니.’

     

   약혼자는 쉽지만, 친구는 어렵다.

   그녀는 감정이 없는 만큼 흥미를 느끼는 빈도가 너무 낮으니까.

     

   ‘일단 최소한 옆에 두기라도 하는 게 맞겠다.’

     

   당장 그녀를 하덴하르츠로 돌려보내봤자 백귀가 될 시간이 조금씩 다가올 뿐이니까.

     

   ‘자물쇠는 차차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겠지.’

     

   백귀가 되는 것을 막는 건 물론.

   극혈침독을 사용하려면 그녀의 저주가 꼭 필요하니 말이다.

     

   “그래, 뭐, 고마워. 약혼자가 자주 온다니 든든하긴 하네.”

     

   그러니 크라슈는 허락했다.

   시간을 들여 그녀의 저주를 훔칠 작정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크라슈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어른들은 일을 빨리 진행 시키는 걸 좋아하고, 하덴하르츠 가주는 그중에서도 무엇이든 빨리 진행되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그 결과 하덴하르츠와 발하임 사이에서 이야기가 오고 간 뒤.

   비앙카는 청송관의 방에서 머물기로 되었다.

     

   “안녕하세요.”

     

   시녀들과 함께 짐을 싸 들고 온 비앙카를 보고, 크라슈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소식을 들었지만 정말로 그녀가 청송관에 머물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기 때문이었다.

     

   “비앙카, 넌 집 떠나와도 괜찮아?”

     

   아직 12살밖에 안 된 비앙카다.

   한창 부모의 품이 좋을 나이가 아니던가.

     

   “괜찮은데요.”

     

   그리고 비앙카는 아무 감정 없이 대답했다.

   가족의 정도 감정이 없는 그녀에게는 미약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가문에서 정한 일을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크라슈는 그냥 여동생 한 명 생겼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청송관의 새로운 가족이 생긴 날이었다.

     

     

   * * *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한여름이었던 날씨는 어느덧 가을을 지나 겨울이 다가왔다.

   게다가 새로운 아카데미가 내년부터 개설된다며 소란이 일어났다.

     

   4대 왕국과 제국이 합심하여 세계 침식에 맞설 인재를 기르기 위한 아카데미.

   라헬른 아카데미의 개설 말이다.

     

   ‘곧인가.’

     

   라헬른 아카데미의 최소 입학은 15살부터고 최대 입학은 20살까지다.

   그렇다 보니 내년에 14살이 될 크라슈는 아직 여유 시간이 남은 상태였다.

     

   ‘그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 한다.’

     

   라헬른 아카데미에는 수많은 창공의 세대들이 있다.

   그리고 크라슈가 노리는 것은 다름 아닌 그 창공의 세대들의 스킬이었다.

     

   창공의 세대는 하나 같이 사기적인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크라슈는 그들과 지냈기에 그들의 약점을 제일 잘 안다.

   그러니 스킬을 빼앗기 더더욱 쉬우리라.

     

   죄책감은 없다.

   창공의 세대야말로 크라슈에게 가장 증오스러운 놈들이었으니까.

     

   “씁.”

     

   몸속에 오러를 굴리다 딴생각으로 빠져 오러가 경직된 크라슈가 눈을 떴다.

   크라슈의 입에서 푸르른 기운이 한차례 흘러나왔다.

     

   단 시간 내에 엑스퍼트 입문을 거쳐 초급까지 올린 크라슈였다.

   그러나 비술서가 있다고 해도 슬슬 재능 면에서 부족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서 빨리 극혈침독을 익혀야 할듯싶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크라슈가 훈련장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훈련장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독서를 하는 소녀가 보였다.

     

   그녀는 시선을 느낀 듯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곧 크라슈를 발견하여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를 따라 순백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그런 그녀의 머리색은 볼 때마다 그녀가 미래에 불리게 될 백귀를 떠올리게 하였다.

     

   백귀의 상징이야말로 저 순백의 머리색이었으니까.

     

   “훈련은 끝나셨나요.”

   “기다리고 있었냐.”

   “네.”

     

   아무렇지 않게 기다렸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고, 크라슈는 뒷머리를 매만졌다.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비앙카가 청송관에서 지내게 된 이후 그녀는 크라슈를 병아리 마냥 졸졸 따라다녔다.

   그 이유는 혹시나 크라슈가 우울증으로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인 된 것이었으나.

   그녀는 삼촌과 달리 우울증과 같은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녀는 삼촌에게 들었던 단편적인 정보만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혼자 둬서는 안 된다는 것.

     

   그녀가 아는 것은 이것 딱 하나.

   한 가지에 꽂히면 맹신하는 경향이 있는 그녀는 크라슈를 멍하니 보았다.

   그리고 크라슈도 별생각 없이 그녀를 멍하니 보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비앙카랑만 있으면 멍한 기분이 돼버린다.

   그녀의 맹한 구석이 옮는 걸까.

     

   “씻고 올게.”

   “네.”

     

   비앙카는 책을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동을 보아하니 또 욕실 앞에서 기다릴 생각인 것 같았다.

     

   이래서 언제쯤 비앙카의 기준 친구가 될 수 있는 걸까.

   조만간 놀러라도 가야 하나라고 크라슈가 생각하던 참이었다.

     

   “크라슈 도련님.”

     

   크라슈의 앞에 알리오드가 나타났다.

   알리오드는 볼 일이 있어 보였다.

     

   크라슈가 의문을 보인 순간 알리오드가 그의 앞에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별의 성지에서 초대장이 왔습니다.”

   “별의 성지?”

     

   뭔가 거창한 이름을 들은 크라슈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왜냐하면 그게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 탓이었다.

     

   “스타론 왕국의 십 대 분들의 모임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1년마다 파티가 있는 모양입니다.”

     

   크라슈는 뒤늦게 이해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긴 했지.

     

   한 번도 참여 안 했었지만 말이다.

     

   ‘이 시점의 기억은 너무 애매하단 말이지.’

     

   하루하루 청송관에서 한 걸음도 안 나가며 인생 한탄만 하던 시절이다 보니.

   크라슈는 이 당시에 일어났던 일이나 사건이 기억에서 희미했다.

     

   애초에 바깥일을 보기 싫어 아예 귀를 막아버렸던 때이니 말이다.

     

   ‘오히려 아카데미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면 죄다 꿰고 있는데.’

     

   여러모로 과거가 아쉬울 따름이었다.

     

   “거절해. 그런 거에 시간 쓸 시간 없…….”

     

   그러다 문뜩 크라슈의 머릿속에 스치는 게 있었다.

     

   “알리오드, 별의 성지에 보통 스타론의 십 대 귀족이 얼마나 참가하냐.”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면 대부분 참가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파티가 미래의 길을 만드는 법이니까요.”

     

   솔직한 말을 듣고, 크라슈는 팔짱을 끼고 잠시동안 검지를 두드렸다.

   그 녀석도 오려나.

     

   알리오드를 힐끗 본 크라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꼴에 주인인데 그 정도 역할은 해야겠지.

   그래야 알리오드가 딴 마음도 안 품을 테고 말이다.

     

   “그러면 나도 참가한다고 말해 놔.”

   “알겠습니다.”

     

   크라슈의 의견에 토 달지 않고 답한 알리오드는 비앙카 쪽을 보았다.

     

   “나도 가요.”

     

   그리고 당연하게 비앙카도 따라온다고 선언했다.

   비앙카는 언제 어디서 자살할지 모르는 크라슈를 혼자 보낼 생각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두 분 다 참가하는 것으로 연락을 넣어 놓겠습니다.”

   “그래, 일정은 나중에 귀띔해 줘.”

     

   떠나가는 알리오드를 보며 크라슈는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 보니 회귀를 한 후 밖으로 처음 밖으로 나가는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회귀 전 시점을 유지하고 있는 셈인가.’

     

   그때와 지금은 천차만별이지만 말이다.

   물론 금술까지 손을 대어야만 강해질 수 있는 반푼이라는 것은 변함없었다.

     

   ‘그래도 최근에 비술을 하나 더 익혔으니.’

     

   크라슈는 초조해지지 않기로 하였다.

     

   “크라슈 님.”

     

   비앙카의 부름의 크라슈가 고개를 돌렸다.

   오늘도 멍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비앙카를 의아하게 보자 그녀가 말했다.

     

   “별의 성지에 가시면 다들 크라슈 님을 뒤에서 비난하려 할 거예요.”

     

   감정이 없기에 자기 생각을 바로 내뱉는 비앙카다.

   그녀의 말은 분명 사실이리라.

     

   “그렇겠지.”

     

   그리고 이 부분은 크라슈도 예상하는 부분이었다.

     

   ‘라헬른 아카데미 정도는 아니어도 엇비슷한 일이 발생하겠지.’

     

   그때는 제국의 황녀인 시그린이 적이었다면 이번에는 스타론 왕국의 귀족 가문 자제들이 적이 되리라.

   크라슈가 발하임에서 버려졌다는 소문은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크라슈에게 알랑방귀를 뀌는 녀석도 없을뿐더러 좋은 소리 하는 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비앙카, 넌 안 따라가는 게 좋지 않겠냐.”

     

   크라슈의 약혼자인 그녀이니 파티에 간다고 한들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거다.

     

   “아니요. 따라갈게요.”

     

   하지만 비앙카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약혼자는 약혼자를 지켜주는 법이에요.”

     

   비앙카는 자신이 지금까지 받은 교육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다.

   감정이 없는 만큼 오직 이성적 판단과 교육만이 그녀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인형, 참 그 말이 잘 어울리는 저주였다.

     

   ‘12살 어린애라고 생각할 수 없는 어휘와 행동도 전부 감정의 결여 때문이겠지.’

     

   회귀 전 비앙카에게 모질게 굴었던 자신이 한심해 그녀를 보면 불쑥불쑥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일까.

     

   유달리 비앙카에게는 약해지는 크라슈였다.

   크라슈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약혼자로서가 아니라 비앙카, 네 생각을 물은 거야.”

     

   비앙카는 머리를 쓰다듬는 크라슈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크라슈는 종종 이렇게 애석한 눈빛을 보내며 머리를 쓰다듬곤 했다.

     

   지난 몇 달.

   집사와 하녀들에게 하는 행동과 달리 유달리 자신에게 약한 면모를 보이는 그다.

   그 덕분인지 그의 인상은 예전 최악의 첫 만남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비앙카, 밥은.」

   「그 책 이제 슬슬 다 읽었지. 서재로 가자.」

   「좀 더 자도 돼. 어디 안 갈 거니까. 앞에서 수련할 테니 더 자.」

     

   몇 달간 크라슈와의 일상을 곱씹은 그녀는 이제 그가 싫지 않았다.

     

   하덴하르츠에서조차 이런 친절은 받지 못했던 비앙카는 크라슈의 행동을 한편으로 신기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게 크라슈가 내놓은 자식이듯 그녀 또한 정략결혼으로 보내지는 자식이었으니까.

     

   “따라갈래요.”

     

   그러니 비앙카는 말했다.

   약혼자가 아니어도 크라슈를 돕고 싶은 생각은 같았으니까.

     

   “약혼자가 아닌 비앙카도 크라슈 님을 따라갈게요.”

     

   그 말을 듣고 멀뚱히 눈을 깜빡이던 크라슈는 그녀의 머리에 손을 떼었다.

   혹시 기분이 나빴던 걸까.

     

   약혼자로서의 선을 넘었나 싶어 비앙카가 주의하자 크라슈는 몸을 돌렸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그러곤 허락이 떨어졌다.

   그런 크라슈를 바라보고, 비앙카는 또다시 병아리처럼 그의 뒤를 졸졸 따랐다.

     

   그의 뒤를 따라가는 것은 어쩐지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그 뒤에 무심코 욕실도 따라 들어가려 해서 혼나긴 했지만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츤데레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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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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