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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나는 말라 비틀어진 빵이 질렸다.

         

       정원에 앉아 빵을 휙 하고 허공에 던졌다. 음. 솔직히 말이 안 된다.

         

       이런 빵 몇 덩어리로 하루를 연명해야 한다니. 자라나는 내 몸은 물론, 내 정신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야.”

       “어, 어. 대장. 왜?”

         

       담벼락을 느리게 고치고 있던 헥토르가 달려왔다. 나는 고개를 까딱였다.

         

       “재들 뭐하냐?”

       “이, 일하잖아…”

       “네 눈엔 저게 일하는 걸로 보여?”

         

       헥토르 패거리들은 정원 사이사이를 꼼지락 꼼지락 움직였다. 망가진 철창을 만지작거리거나, 빗자루에 기대 하품하거나, 낙엽을 주웠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아이들 손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성의를 보여야 할 거 아닌가.

         

       “내가 너무 풀어줬나…”

       “대, 대장…하지만 우리가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걸.”

         

       하긴. 다하긴 했지.

         

       매일 아침 청소도 녀석들이 대신해주고, 자잘한 심부름도 헥토르가 먼저 나서서 다녀온다.

       식사 배급을 대신해주는 건 물론, 귀찮아서 저녁 기도에 빠졌을 때 화장실 간 거라고 변명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보니 그냥 부하나 다름없잖아? 편리한 녀석이긴 하지.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덩치 큰 녀석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는 걸 보니 살짝 웃겼다.

       뭔가 정이라도 든 건가.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은 내가 교단 본부로 떠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나이가 들어 교회에서 벗어나면 뒷골목 깡패 짓이나 하고 살려나.

         

       “야.”

       “응?”

       “너 미래 계획 있어? 여기서 나가면 뭐 해 먹고 살려고?”

       “어, 그게…”

         

       헥토르가 머리를 긁적였다.

         

       “블랙 스틸이라는 곳으로 들어갈까 생각하는데…”

       “뭐 하는 곳인데?”

       “…의적 집단?”

       “깡패 소굴이군.”

         

       헥토르 패거리들을 쓱 불러 모았다. 왼쪽에서부터 파벨. 린든. 마리, 그리고…

         

       “…로타샤?”

       “나타샤거든요?!”

       “대충 맞췄군.”

       “대충이라뇨?!”

         

       씩씩거리는 녀석을 밀어내고 녀석들을 바라본다. 머릿수로는 다섯. 차기 깡패들. 뭐 여자들은 몸이라도 팔겠지.

         

       이 도시에서 고아가 할 수 있는 별거 없다. 상인들의 수발을 들거나, 노예로 팔려나가거나, 다른 패거리에게 흡수당해 심부름하는 등…뭐.

         

       그냥 인생 밑바닥 노릇을 하다가 파산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야. 헥토르.”

       “응?”

       “내 힘이 탐나지 않아?”

         

       슬쩍 잿불을 일으켰다. 시선이 몰려들었다. 아직 아이들이라 그런지 눈이 초롱초롱하게 반짝였다.

         

       “하, 하지만 그건 신의 힘이잖아? 망할 태양신교…”

       “망하아아알?”

       “…태, 태양신교. 하지만…아무리 대장 말이더라도 그곳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

       “교단에 들어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응?”

         

       사제들이 신도를 입교시킬 수 있는 수단.

       그것은 C랭크의 성흔에는 부가적인 스킬 효과가 있었다. 다른 이에게 성흔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

         

       하지만 한 사제가 거둬들일 수 있는 숫자에 제한도 있고, 부여된 성흔은 F 랭크에서 시작한다. 선천적으로 성흔을 타고난 사제들이 가지고 있는 ‘축복’이나 ‘치유’ 스킬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더불어 원래 가지고 있던 다른 스킬의 삭제까지. 말 그대로 백지가 되어버린다. 신성 F와 성흔 F 말고는 깨끗해진 스킬 창에, 레벨만 그대로인 똥멍청이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패널티가 덕지덕지 붙은 이상한 스킬이라고도 볼 수 있지.

         

       하지만 지금의 녀석들은 어차피 백지와 같지 않은가?

         

       “교단을 믿지 말고.”

         

       내가 살 길을 만들어주마.

       겸사겸사 이 말라비틀어진 빵도 졸업하고 말이지.

         

       “날 믿어.”

         

         

         

       . . .

         

         

         

       반신반의한 아이들이 공물을 모았다. 하루에 몇 끼를 거르고, 어른들의 잡심부름을 하며 모은 돈으로 전부 빵을 샀다.

         

       “대장. 소매치기라도 하면…”

       “그러다 잡히면 죽으려고? 아서라. 너희가 갇히면 꺼내줄 사람도 없다.”

       “대, 대장이…”

       “내가? 뭐하러?”

         

       이 주일이 지나자 제법 빵이 쌓였다. 한 포대하고도 하나가 더 될 정도였다.

         

       그래도 이것의 배는 될 줄 알았는데.

         

       쯧 하고 혀를 찼다. 정좌한 녀석들이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녀석들을 내려다보았다.

         

       “한 번 하면 돌이킬 수 없어.”

       “그, 그럼 안할…”

       “뭐?! 나에게 그렇게까지 충성을 맹세하고 싶다고?! 어쩔 수 없군. 기특한 녀석들 같으니.”

       “뭐, 뭔가 이상…”

       “너희들의 마음은 잘 알겠다.”

         

       나는 헥토르의 어깨를 잡았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꾹 집어삼켰다.

         

       “한 번 대장은 영원한 대장이라니…감격스럽군.”

       “그런 말 한 적 없는…”

       “자. 시작하자.”

         

       [재의 왕관이 발동합니다.]

       [강화할 스킬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성흔으로.

         

       [라가 한숨을 내쉽니다.]

       [라가 도저히 못하겠다며 공물을 치우라 명령합니다.]

       [말라빠진 빵을 들며 이걸 어디에다 써먹냐고 묻습니다.]

         

       아.

       힘들게 구한 거라고요. 라님. 그냥 좀 드세요.

         

       슬쩍 녀석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조금만 올려주세요. 고작 한 랭크잖아요!”

       -이 미친 것아!

         

       대뜸 목소리가 날아왔다.

         

       -적당히 해라! 신의 위광이 장난인 줄 아느냐! 내 이름을 파는 것도 모자라 뭐?! 이런 빵 쪼가리들을 공물이라고 말해?! 어리광도 받아주는 게 한계가 있다!

       “멸망할 세계선 어쩌고라면서요?! 날 끌고 온 건 당신이잖아요! 까놓고 보니까, 나한테 뭔가 시키려고 하는 거 같은데…부려 먹을 거면 이 정도는 좀 해줘!”

       -그래서 책임지라는 게냐?! 오냐오냐해줬더니 이 건방진 것이! 이건 인과율의 문제다! 나에게도 한계가 있단 말이다! 형평성이 어느 정도 맞아야 요구를 들어주는데…이건 그냥 쓰레기나 다름없지 않으냐!

       “아, 책임져! 책임지라고! 몰라 배째! 신도 수 늘려준다니까 그걸 거부하는 신이 있네! 나 원 참!”

       -이…망할…것이…!

         

       라의 목소리가 한숨을 토해냈다. 말라비틀어진 빵이 모두 사라지고, ‘쩍’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뿐이다. 진짜 이번뿐이다. 더는 없다. 더는 떼를 써도 받아주지 않을 거고, 한 번만 더 이런 개짓거리를 벌이면 네 입에 이것들을 모조리 쑤셔 넣어주마.

       “떙큐. 갓!”

       -신실함을 보여라! 망할 것아!

         

       [성흔이 대폭 강화됩니다.]

       [‘성흔’ 스킬 등급 (D) -> (C)]

       [성흔과 관련된 성법들이 강해집니다.]

       [신성이 강화되어, 기적을 노래할 수 있게 됩니다.]

         

       상태창!

         

         

       [자하드 발튼] [레벨 : 7]

       [종족 : 인간] [직업 : 태양신의 사도]

         

       [직업 고유 스킬]

       -태양신의 사랑 : 보유한 태양신 관련 스킬이 빠르게 성장한다.

       -태양신의 은혜 : 보유한 성력이 빠르게 회복된다.

       -태양신의 축복 : 태양신의 성물을 리스크 없이 다룰 수 있다.

       -태양신의 기도 : 정신오염이 통하지 않는다.

         

       [보유 스킬]

       -성흔 (C) : 모든 마에 저항력을 가진다. 타인에게 성흔을 부여할 수 있다. (5/5)

       -신성 (D) : 태양신의 신성을 어느 정도 끌어올 수 있다.

       -치료 (F) : 생채기를 느린 속도로 없앨 수 있다.

       -축복 (F) : 기분이 살짝 좋아진다.

       -잿불 (E) : 닿으면 따끔한 불꽃을 만들어낸다.

       -불의 기도 (D) : 기도를 하면 몸이 어느 정도 따뜻해진다. 신체 능력이 소폭 상승한다.

       -성수 제조 (F) : 물을 깨끗하게 만든다.

       -신성한 결계 (F) : 손톱 하나만큼의 작은 벽을 만든다.

       -무기 축복 (F) : 검이 아주 살짝 날카로워진다.

       -정화 (F) : 몸에 박힌 저주를 기분 나쁘게 만든다.

       -불의 노래 (F) : 태양신교의 기초적인 검술. 몸을 살짝이나마 제어한다.

       -재의 왕관 (EX) : 공물을 바쳐 태양신과 관련된 스킬의 등급을 올린다.

       

         

       “다 손 내밀어!”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낙인을 찍듯 아이들을 내민 손을 후려쳤다.

         

       “악!”

       “아, 아프잖아!”

       “이게 뭐야?!”

         

       아이들의 손에 반쯤 낙인이 찍혔다. 숫자도 딱 다섯이고, 완전히 들어맞는군.

       이제 남은 절차는 하나다. 녀석들의 동의를 받는 것.

         

       “너희들.”

         

       나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래도 최후의 최후에는 원하는 대로 선택하게는 해주마.

         

       “평생 남의 부하 노릇이나 하다가 도박이나 영역 싸움에 휘말려서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뒤질래, 아니면 조오오오금 힘들겠지만 제대로 살아볼래?”

       “제, 제대로라면…”

       “인간답게. 응? 사람답게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하고 싶은 것에도 좀 손대보고.”

         

       헥토르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씨익 웃었다.

         

       “평생 말라비틀어진 빵만 먹고 살려고 태어난 건 아니잖아. 선택은 너희 몫이야.”

         

       헥토르가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태양신교가 싫어. 하지만…”

         

       또륵.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고아가 된 슬픔과 여태껏 남의 똥구멍만 핥고 살던 서러움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인간답게 살고 싶어.”

       “그럼 한 번 살아보자.”

         

       나는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인간답게 말이지.”

       “…응. 대장.”

       “그래.”

         

       나는 사악하게 웃었다.

         

       “내가 너희들의 평생 대장이다.”

         

       뭔가 아차 하는 듯한 헥토르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으나, 아뿔싸.

       어쩌랴. 이미 늦었다.

         

       나는 녀석의 손에 선명하게 찍힌 성흔을 보았다.

         

       “가자. 노예들아.”

       “노, 노예?”

       “흠흠. 친애하는 부하들아.”

         

       일꾼이 생겼으니, 이제는 일하면 되는 법.

         

       “한 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

       “마, 맞아.”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뭘 하면 되는 거야. 대장?”

       “일단…”

         

       나는 우두둑 손을 풀었다.

         

       “구른다.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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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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