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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6 – 스킵 없는 마차여행>

     

    [수련기간이 끝났습니다.]

    [상승했던 모든 수련효율이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한 달간의 수련이 끝났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적은 노력으로 큰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기회라 열심히 보냈다.

    플레이어의 지식으로 알고 있던 노하우를 적극 살려 경험치를 쑥쑥 올리니, 검술과 궁술 기능의 위력이 부쩍 물이 올랐다.

     

    나, 조금 강할지도?

    아카데미 입학 전에는 검술이나 궁술로 어디 가서 부족하다는 소리는 절대 안 들을 정도는 된다.

     

    “오크노디 아가씨께서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기프트 아카데미는 세계제일의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는 시설. 만 20세 이하라면 누구나 접수를 받습니다.”

    “우. 그 정도는 저도 알거든요?”

    “그럼 아카데미의 입학시험 접수자가 워낙에 많은 탓에 입학시험을 치를 자격을 시험하는 자격시험의 존재에 대해서도 아시겠군요.”

     

    물론이다마다.

    자격시험이야말로 입학을 위한 1차 시험이다.

     

    <입학시험의 자격시험 이벤트>

    대륙 제일의 아카데미에 입학하고자 하는 당신.

    아카데미에 도전할 최소한의 자격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입학시험의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입학시험 티켓을 배부하는 시험관을 찾아가 각 시험관이 요구하는 시험을 치르고 합격의 증표로 티켓을 받으십시오.

     

    혈혈단신이라면 정보를 모으는 것부터 돈이 잔뜩 깨지고, 거기까지 가는 길에 또 다시 돈이 깨진다.

    괜히 뒷골목에서 헌혈알바나 생동성알바, 임상실험알바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곳에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정말 안전한 일 불안전한 일 가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지원금 금화100개의 부유한 웰빙 스타터 오크노디에게 알바란 먼 세상 이야기.

    그냥 열심히 훈련만 했다.

     

    “이 근방에서 찾아갈 수 있는 시험관은 셋입니다. 둘은 티켓 여러 장을 지닌 하급시험관, 하나는 티켓 수십 장을 지닌 상급시험관입니다.”

    “그럼 당연히 상급시험관이죠!”

    “시험의 난이도를 묻지 않는 자신감이 당차시군요.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으십니까?”

     

    헹, 하급? 중급?

    그런 티켓 한두 장이나 끽 해야 열장 내외인 시험관들의 시험은 초보자나 중수들을 위한 컨텐츠.

    나 같은 고인물들에게는 정말 아무거나 티켓‘만’ 얻는 그런 장소는 효율이 떨어진다.

     

    “상급시험관은 어디에 있대요?”

    “세계십대명소. 세상을 떠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여행자들이라면 죽기 전에 꼭 들러야 하는 장소라 불리는 리스트에 기재된 해발 12500m의 고산 <신들의 정원>입니다.”

    “헤에.”

    “자신감이 넘치시는군요.”

    “걱정 말아요. 저, 오크노디라고요?”

    “자신감만 놓고 보면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시군요.”

     

    다행히도 시작지점에서 신정산은 그리 멀지 않았다.

    찾아갈 수 있는 시험장은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로 한정된다.

    돈이 썩어 넘치면 비행정을 타고 다니면서 쉬운 시험장을 찾아다닐 수도 있지만 그건 100금화로 시작한 귀족파파루트에서도 부담스럽다.

    1000금화쯤 얻는 대귀족루트라면 모를까.

     

    ‘편법도 있기는 한데.’

     

    통 크게 금화를 플렉스 해서 티켓을 사는 방법도 있지만, 고작해야 입학시험이다.

    티켓의 시장가는 금화10개.

    가짜티켓을 얻을 확률을 감수해가면서 거금을 들이는 건 너무 억울하다.

    확정적으로 안전한 티켓을 얻을 가격은 금화100개.

    지원금 다 토해내야 된다.

    고인물 체면이 있지, 어림도 없는 소리다.

     

    ‘이번 회차는 숙련작이 잘 됐어.’

     

    집사의 보살핌을 받으며 수련에만 매진할 수 있어서 검술과 궁술이 크게 올랐다.

    메이드를 수련에 이용한 덕분에 숨기와 은신 기능도 예사롭지 않은 상승세를 보였다.

     

    “거듭 당부하지만 완드술은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까지 봉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입학시험의 자격시험 같은 긴 이름 대신 플레이어나 NPC들이 부르기로는 티켓시험.

    운빨요소가 미쳐 날뛰는 이 시험에도 당연히 확률로 결정되는 운빨요소가 있다.

     

    ‘의외로 시험관은 랜덤이 아니지.’

     

    대신 시험관이 내어주는 시험이 랜덤.

    어떤 시험을 줄지는 현장에 가서 시험관이 직접 시험을 낸 뒤에야 알 수 있다.

     

    ‘신정관의 시험관이면… 시시하지는 않겠네.’

     

    티켓시험, 조금은 기대되기 시작했다.

     

     

    * *

     

     

    “챙겨갈 짐은 정말 이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거면 충분해요.”

     

    집사는 마뜩찮은 얼굴로 내 짐가방을 쳐다봤다.

    보존식과 모험도구, 구급치료약 등으로 도배된 정석적인 모험가세트.

    그와 더불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무기.

    이것이 내가 지닌 전부였다.

    ‘아가씨’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렇지만 내게도 양보할 수 없는 선이 있다.

     

    “안고 자는 테디베어 곰인형 베개라든지 거추장스러운 리본머리띠라든지. 그런 영문 모를 아가씨 전용 아이템은 귀찮고 짐만 되거든요?”

    “주인님께서 슬퍼하실 겁니다.”

    “흥. 훈련이라면 열심히 할 수 있지만 소녀취향에 어울리는 건 사절이에요.”

     

    몸은 소녀가 되었을지라도 마음만큼은 남자.

    하루아침에 TS 된 채로 게임세계에 빙의당한 처지이지만 정말로 소녀처럼 살 생각은 없다.

    소녀이기 이전에 플레이어.

    내게는 그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

    남자였던 시절의 나를 기억할 방법은 이제 이것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바로 극한의 효율충.

    룩딸 따위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냉혹한 기본복장, 모험가세트(여)다.

     

    “잘 어울리십니다. 아가씨.”

    “고마워요, 리프.”

     

    메이드 리프는 입에 바른 말만 하는 집사와 달리, 듣기 좋은 말만 해준다.

    덕분에 자주 의지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만 간식을 넙죽 받아먹을 수 있으니 전혀 손해가 아니다.

    아, 오늘 사탕은 입 안에서 조금 톡톡 쏘네.

    별사탕 컨셉인가?

     

    “어차피 아카데미에 들어가면 교복을 받잖아요.”

    “주인님께 보고용으로 올릴 사진이 필요합니다.”

    “……그거 되게 비쌀 텐데.”

     

    마법의 존재로 인해 과학의 발전이 늦어진 세계.

    마법의 힘으로 만들어진 마도구 <사진기>는 촬영횟수에 제한이 달린 어마어마한 사치품이다.

    그런 고급품을 고작 딸아이의 옷차림을 보는데 사용하겠다니, 이번 아버지는 어지간히도 극성인 딸바보구나 싶었다.

     

    ‘하긴 조나 정도로 굉장한 집사를 곁에 붙여줄 정도면 보통 귀족아버지는 아니겠네.’

     

    지원금으로 금화100개를 쾌척하는 귀족에게 사진기쯤이야 뭐가 대수랴.

     

    “딱 한번만이에요.”

     

    마차가 쉬어가는 정거장.

    정말로 테디베어 곰인형과 리본머리띠를 사온 집사 때문에 동석한 승객들이 큭큭 웃었다.

     

    “휘유~ 귀엽잖아, 아가씨.”

    “애한테 추파 던지는 거 아니야, 이 아저씨야.”

    “바드양반, 동화 세 닢 드릴 테니 주접떨지 말고 노래나 한 곡 불러주쇼.”

     

    구석에서 말없이 은근히 다리를 훔쳐보는 털보사냥꾼도, 관광을 하러 온 등산객 부부의 귀여운 아이 취급도 부담스럽다.

    눈을 마주친 음유시인도 자꾸만 윙크를 날린다.

     

    “그럼 이번에 들려드릴 곡은…… 하얀 피부의 소녀.”

     

    아 제발.

    수치플레이 멈춰!

     

     

    * *

     

     

    만 20세 이하의 한 가닥 한다는 사람들은 전부 모인 시험장.

    신정산 초입에 자리한 여관에는 시험관을 만나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매년 드는 생각이지만 티켓시험은 정말 인기가 많군요. 몸 좀 가볍다 싶은 탐험가나 힘 있는 루키 모험가들은 다 모였어.”

    “아저씨는 스무 살도 넘었는데 여긴 왜 왔어요?”

    “하하. 나이 먹은 사람들이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아가씨? 당연히 구경이죠. 저야 물론 가장 아름다운 참가자인 아가씨를 응원한답니다?”

     

    신정산으로 향하는 도중에 내린 다른 손님들과 달리, 마지막까지 지루한 마차여정을 함께 했던 바드가 손을 입가에 가져갔다가 키스를 날린다.

    처음에는 아동성애자가 아닌가 싶어서 기분 나쁜 아저씨였지만 길고 지루한 여행길에서 바드의 소중함을 깨닫고는 보는 눈이 달라졌다.

    <빠른여행>이나 <스킵>이 없는 세상에서 마차에 탄 바드는 관객 수만 명을 거느린 인기가수 뺨치는 인싸 그 자체다.

    긴 마차여행의 지루함을 달래줄 바드가 아니었다면 침묵 디버프를 거는 것 마냥 불편한 집사와 메이드 때문에 다들 괴로워 미쳤겠지.

     

    ‘뭐, 그것도 바드 아저씨가 수작을 벌이다가 한 방 맞은 뒤로는 찬물 끼얹은 꼴이 됐지만.’

     

    아무리 그래도 술 먹고 실수인 척 어깨동무를 하는 개수작을 부리려던 것까진 못 감싸주겠다.

    손부터 나간 조나 때문에 지금도 바드 아저씨의 한쪽 눈은 판다처럼 거멓게 물들었지.

    집사의 무서움을 깨달은 다른 손님들이 산 입구부터 죄다 내려버려서 분위기가 말도 아니다.

     

    “아가씨는 마음이 너무 헤픕니다. 이야기나 노래를 주워 파는 떠돌이 바드 따위에게 너무 호감을 품지 마십시오.”

    “뭐 어때요. 덕분에 심심하지 않고 좋았는데.”

     

    대충 마주 손 인사를 해주고 바드를 떠나보내니 리프가 슬쩍 걸음을 옮겼다.

     

    “어디가요?”

    “잠시 볼 일이 있습니다.”

    “같이 다니면 안 돼요?”

     

    왠지 모를 불안감에 메이드스커트를 잡고 그리 말하니, 리프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운 좋은 녀석…”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같이 가시죠.”

     

    리프 씨는 쾌활하게 생기셨으면서 막상 말수는 엄청 적으시다니깐.

    종종 작게 중얼거리는 모습도 사교성이 없어 보인다.

    혼자 두기엔 조금 불안한 타입의 메이드다.

     

    “사람이 많군요.”

    “원하신다면 제가 대신 줄을 서겠습니다. 모처럼의 여행이니 잠시 관광이라도 즐기시는 건 어떠십니까.”

     

    북적북적.

    맛집이라면 미쳐 날뛰는 사람들마냥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대기줄.

    뱀처럼 똬리를 튼 모양새에 정신이 어질어질해진다.

    리프의 사회성 개선에 대한 결의가 무너질 정도로 줄만 봐도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딱 봐도 하루 이틀 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게 생겼다.

     

    일단 사람이 뭉쳤다 하면 별 생각 없이 뒤에 섰다가 영문도 모르고 노점상 꼬치구이에 도착해서 화를 내는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니다.

    결국 꼬치구이를 사고 돌아가는 부분에서 노점상 아저씨의 실력이 조금 감탄스럽다.

     

    “엄두도 내지 마십시오.”

     

    시선을 눈치 챈 집사가 엄포를 놓았다.

     

    “길바닥에서 흙탕물이나 먹고 자라던 쥐새끼를 구운 고기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있는 한, 저런 불량식품을 아가씨의 입에 넣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조나 집사님은 너무 깐깐해요. 그런 식으로 따지고 다니면 밖에서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무것도 없다고요.”

    “그럼 앞으로도 제가 해드리는 음식만 드시면 되겠군요.”

    “치. 평생 저랑 같이 있을 것도 아니면서.”

     

    조나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굳이 빗대자면 딸아이가 자라면 외간남자와 결혼을 하고, 자신의 품을 떠날 것을 깨달은 아버지의 얼굴이라고 할까.

    조금 미안해져서 슬쩍 손을 잡았더니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린다.

     

    꼬옥

     

    표정으로는 싫은 척 다하면서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지는 설탕공예품을 건드리듯이 조심스럽게 손을 잡아주는 집사.

    남자 츤데레는 역겹다고들 하지만 우리 집사라면 조금은 귀여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호감작의 달인 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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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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