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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주딱이 용사라는 크나큰 단서가 하나 추가되기는 했지만, 결국 흑제가 주딱에게 집착하는 결정적인 이유만큼은 알아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흑제가 마왕이고 주딱이 용사라는 사실이 흑제의 그 비정상적인 집착과 정확히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갤러리에 마침 모여있던 할 짓 없던 유저들이 머리를 맞대고 여러 가설을 내놓았지만, 결국 퍼즐을 완성하기 위한 조각이 모자란 상황이었다. 참고로 갤럼들이 내놓은 가설이란 대략 이러한 것들이 있었는데…

       

       [ㅇㅇ(023.708) : 너무 오랫동안 마땅한 적수도 없이 살아서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진 거 아냐?]

       [콜드슬립* : 그러니까 그냥 한바탕 싸우고 싶어서 용사를 도발하고 있다는 거야? 나름 일리가 있는데.]

       

       흑제가 자신과 대등하게 싸울 새로운 도전자를 찾고 있는게 아니냐는 ‘마왕 전투민족설’.

       

       [ㅇㅇ(114.603) : 내 생각은 조금 다름. 아무래도 마왕이 삶에 미련이 없어진 거 아냐?]

       [에반데용* : 이제 그만 슬슬 죽고 싶어져서 자기 모가질 날려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 거지.]

       

       흑제가 너무 오래 산 나머지 슬슬 묫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는 ‘마왕 자살기도설’.

       

       [제발신생날로먹게해주세오* : 어차피 어둠의 종자답게 음습한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화룡점정* : 저새낀 그냥 용사가 괴로워하는 걸 즐기는 게 틀림없다니까?]

       

       흑제가 주딱을 순수한 악의로 골탕먹이고 있다는 ‘그야… 재밌으니까설’.

       

       [지나가던선비* : 어쩌면 그냥 용사를 아내 삼고 싶은 걸지도 모르지. 혼자 수천 년은 살았으니 슬슬 옆구리가 시린 걸지도.]

       ㄴ[수상할정도로돈이많은* : 뭐? 용사가 여자라고???]

       ㄴ[제발신생날로먹게해주세오* : 니들 너무 용사물을 많이 본 거 아냐? 원래 용사는 계시를 내리는 신에 따라 성별이 갈려. 남신이면 남자 용사, 여신이면 여자 용사. 용사가 다 남자라는 건 편견이라고.]

       ㄴ[ㅇㅇ(001.068) : 용사물에도 여자 용사 많은데. 대부분 그렇고 그런 작품이라 그렇지.]

       ㄴ[ㅇㅇ(001.124) : 그럼 신이 무성이면 어떻게 되는데?]

       ㄴ[제발신생날로먹게해주세오* : 그 경우엔 아무 성별이든 골라잡으면 돼. 대신 신이 용사랑 같은 성별로 고정되어버리긴 하지만.]

       ㄴ[섹무새* : 마왕과 용사의 조교굴복타락야스 ㅗㅜㅑ ㅗㅜㅑ]

       

       흑제가 주딱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큿 죽여라설’ 등등.

       

       온갖 가설이 등장해 사람들의 토의를 거쳤지만, 결국은 이렇다 할 명확한 결론 없이 토의가 끝나고 말았다. 애초에 용사는 그렇다쳐도 행위의 주체인 흑제에 대한 정보가 의외로 부족하다는 것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수상할정도로돈이많은* : 그러고 보면 정작 흑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다들 잘 모르는군.]

       [제발신생날로먹게해주세오* : 원래 자기 과거에 대해선 그닥 썰을 푼 적이 없었으니까, 그 자식.]

       [지나가던선비* : 그나마 흥미를 가지고 이야기하던 건 대체로 마법 관련 주제였고.]

       

       갤러리의 고인물들도 흑제가 터무니없이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괴인 것, 마법에 대한 조예가 갤러리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깊은 것, 주딱에 대해 이유를 알 수 없는 강한 집착을 보인다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그다지 아는 게 없었다. 그야 본인이 말을 안 하는데 알 도리가 없기는 하지.

       

       그렇게 갑론을박이 끝나고, 갤러리가 여느 때처럼 저마다 자기 할 말만 떠들어대는 분위기를 되찾은 직후.

       

       [공지]

       

       

       돌연 새로 올라온 공지에 갤러리의 모두가 관심을 기울였다.

       

       

       [작성자 : 빛의정의*]

       [제목 : 새로운 완장을 모집합니다.]

       [최근 갤러리를 관리할 완장을 추가로 뽑을 필요를 느꼈습니다.

       하여 지원자를 받고자 하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공지에 댓글을 달아주십시오.

       유동 유저분들은 지원이 불가능합니다. 신청은 5분 동안 접수하겠습니다.]

       

       

       새로운 완장을 구한다는 주딱의 공지였다. 아마 주딱이 부재할 때마다 분탕을 치는 흑제의 존재 때문에 갤을 관리할 완장을 더 뽑는 것이겠지.

       

       그러나 공지의 조회수가 1천에 육박할 때까지도, 댓글은 단 하나도 달리지 않았다. 무서울 정도의 침묵, 완장이 되기 싫다는 갤럼들의 단호한 의지가 느껴졌다. 어차피 나야 아직 고정닉 가입도 안 했고 해서 남일처럼 지켜만 보고 있던 그때였다.

       

       [ㅇㅇ(001.068) : …? 그러고 보니 완장은 자발적으로 신청하는 거랬는데, 그럼 지금처럼 아무도 안 하려고 하면 어떻게 됨?]

       

       매우 타당한 내 의문에, 유동 동지는 이렇게 답했다.

       

       [ㅇㅇ(023.708) : 뭐, 그야…]

       

       공지가 올라온지 정확히 5분이 지난 그 순간.

       

       [ㅇㅇ(023.708) : 지원을 안 하곤 못 배기게 하는 거지.]

       

       누군가의 절규가 갤을 울렸다.

       

       

       [작성자 : ㅇㅇ(602.515)]

       [제목 : 주딱 시1발련아]

       [이게 무슨 짓이야 빨리 차단 풀어!!!!!]

       [(사진 첨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의문의 유동은, 다름이 아니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하하호호 웃으며 갤질을 즐기던 고닉 ‘콜드슬립’이었다. 그가 올린 짤에는 고정닉 계정의 차단 통지 메시지와 차단사유가 짤막히 실려있었다.

       

       [ㅇㅇ(602.515) : 파딱 안 받으면 영구차단이라니 말이 되냐? 이건 폭거다!]

       

       ‘차단사유 : 파딱 받고 스스로 풀든가’라고 적혀 있는 계정 정보창에 ‘콜드슬립’은 거품을 물며 항의했지만.

       

       [빛의정의* : 꼬우면 파딱 받으시면 됩니다. 죽어도 받기 싫으면 눈팅만 하시든가.]

       

       기어이 유동 IP마저 차단해버린 주딱의 폭거 아래 처참히 진압당해버렸다. 고닉도 유동도 봉인당한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글과 댓글 쓰기를 포기하고 갤을 구경만 하든가, 아니면 흑제처럼 VPN 유동분신술을 쓰는 것 둘 중 하나밖에 없는데.

       

       [ㅇㅇ(023.708) : VPN은 아무나 뚫나? 마법이든 정보계 초능력이든 최소한의 수준은 갖춰야 시도라도 할 수 있는 게 VPN인데.]

       ㄴ[ㅇㅇ(001.068) : 그럼 그냥 갤에 글 안 쓰고 눈팅만 해도 되는 거 아님?]

       ㄴ[ㅇㅇ(023.708) : 자기 일 아니라고 막말하네. 너 같으면 대체재도 없는 유일한 커뮤니티에서 벙어리로 지내고 싶겠냐? 차라리 더러워서 파딱 받고 말지.]

       

       확실히 그의 말대로였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결국 콜드슬립은 파랗게 물들어버린 딱지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콜드슬립* : 씨발! 내가 노예라니! 무급글삭노예라니!!]

       ㄴ[ㅇㅇ(023.708) : (대충 나만 아니면 된다는 짤)]

       ㄴ[수상할정도로돈이많은* : 최후의 냉기마법은 자기자신이 파래지는 것이다…!]

       ㄴ[화룡점정* : 냉법쉑 주딱한테 깝치더니 호감스택 폭발했죠? ㅋㅋㅋㅋㅋㅋㅋ]

       

       분을 삭히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문득 불과 몇십분 전의 대화를 떠올려버리고 말았다.

       

       ***

       

       [수상할정도로돈이많은* : 그렇게 생각하면 완장도 예상 외로 할 만할지도 몰라. 물론 난 안 할 거지만.]

       ㄴ[ㅇㅇ(001.068) : ㄹㅇㅋㅋ]

       ㄴ[ㅇㅇ(023.708) : ㄹㅇㅋㅋ]

       ㄴ[콜드슬립* : ㄹㅇㅋㅋ]

       ㄴ[빛의정의* : ……]

       

       ***

       

       조용히 모든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주딱의 모습을 떠올리니 그만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근데 이거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하지 않나?

       

       [콜드슬립* : 아니 근데 유동 두 놈은 그렇다 치고, 먼저 말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내가 처맞은 거?]

       

       내가 느낀 위화감을 그 또한 느꼈는지 의문을 표하자, 당사자가 나타나 태연하게 답했다.

       

        [수상할정도로돈이많은* : 왜냐하면 나도 한때 주딱이었거든.]

       ㄴ[콜드슬립* : 뎃?]

       ㄴ[수상할정도로돈이많은* : 어지간해선 완장이었다 은퇴한 사람들한텐 강요 안 하니까. 그러게 누울 자리를 잘 보고 웃었어야지. 앞에 사람이 있다고 방심하면 쓰나.]

       ㄴ[콜드슬립* : 이런 개씹]

       ㄴ[콜드슬립* : (내가 또 적폐들의 유희에 당했구나 콘)]

       

       

       결국은 그 또한 아직은 고이지 못한 상대적 뉴비였던 것이다. 분을 삼키며 완장 업무를 인수받으러 끌려가는 그를 구경하며 나는 말했다.

       

       

       [ㅇㅇ(001.068) : 근데 저렇게 강압적으로 파딱을 시켜도 되는 거임? 자발적 지원이란 거 다 구라였음?]

       ㄴ[ㅇㅇ(023.708) : 갤을 관리할 인원이 너무 적으면 수질이 순식간에 흐려지니까 어쩔 수 없지.]

       ㄴ[수상할정도로돈이많은* : 어차피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자기 일 아니니까 오히려 좋아하거든. 무급노예 하나 늘어나는 거니까.]

       ㄴ[화룡점정* : 그리고 솔직히 제발로 파딱 지원하는 놈들은 대부분 완장 권한으로 개짓거리하려는 분탕이 대부분이라. 오히려 저게 더 안전하긴 해.]

       ㄴ[ㅇㅇ(001.124) : 사실 쟤도 겉으로만 싫어하지 속으론 은근히 즐기고 있을걸? 귀찮은 거랑 별개로 분탕 대가리 깨는 건 그만큼 재밌는 게 없거든.]

       ㄴ[제발신생날로먹게해주세오* : 어차피 끌려갈 거 갤에서 관심도 한번 질펀하게 끌고 말이야.]

       ㄴ[섹무새* : 윗입과 아랫입이 말하는 게 다른 솔직하지 못한 노예야스 ㅗㅜㅏㅗㅜㅑ]

       

       즐겁게 팝콘을 뜯는 고인물들의 반응에 나는 한 가지 큰 교훈을 얻었다.

       

       적어도 고닉을 팔 거면 주딱 앞에선 절대 깝치지 말자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모레아님 4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댓글과 후원이 너무나도 든든합니다!
    매번 댓글 알림을 확인할 때마다 날아갈 거 같은 기분이에요. 여러분 덕에 글을 쓸 의욕이 샘솟네요!

    참고로 표지는 ‘그 사이트’ 대문짝들에서 이리저리 잘라와서 기워붙였습니다! 사실 이렇게 연재를 해보는 건 처음이라 표지 같은 건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이 많네요. 이대로 연재에 박차를 가하다 보면 언젠가는 표지도 그럴싸한 걸로 하나 구해와야 할 텐데, 아마 앞으로의 중대한 숙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이걸로 완장편은 끝, 다음화는 아마 념글편이 되겠네요! 내일 또 뵙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Gallery for Loners After Dem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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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FLAD 종말 후 외톨이 갤러리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community for the last people who survived on Earth. This is ‘The Lonely Gallery After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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