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

       *

        

        

        대장 ‘휴고’는 아까부터 번쩍번쩍 빛을 내는 신호기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이거 고장났나?”

        

        

        이고르비치 역에 문제가 생길 경우 도주를 위해 큰맘 먹고 만들어둔 비싼 마력 신호기였다.

        

        그게 지금 규칙적인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대강 1분에 한 번 꼴로.

        

        위기 신호는 세 번 연달아 누르라는 것이었다. 실수로 눌러도 그런 신호가 전달되진 않으니까.

        

        그런데 신호는 어김없이 한 번씩만 깜빡였다. 고장난 모양이었다.

        

        

        “에라이, 이거 진짜 비싼 물건이었는데!”

        “헤헤, 대장. 걱정 마십쇼. 어차피 다 회수 가능한 돈 아닙니까요.”

        “애들은?”

        “포지션에 딱 들어가서 지금 폭약 매설까지 끝냈습니다. 열차 오면 바로 터트리고 달려가서 화물칸 털고 빠지면 끝이에요! 넉넉 잡아도 15분이면 끝납니다요!”

        “좋아. 오, 열차 온다. 다들 준비해!”

        “예이!”

        

        

        저 멀리에서 열차가 증기를 뿜어대며 달려오고 있었다. 이고르비치 역까지 30분 거리. 도보로는 1시간 남짓한 거리다.

        

        열차가 쓰러진다고 해도 지원 병력이 도착할 때 까지 적어도 2시간은 넉넉한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터트려!!”

        

        

        휴고는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콰광!

        

        

        선로에 매설된 폭약이 일제히 터져나가며 대지가 덜덜 떨렸다.

        끼이익, 하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열차가 급히 제동하고, 곧 선로 바깥에서 천천히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가라! 다 쓸어와!!”

        “와아아아! 이제 우린 부자다!!”

        

        

        저 열차의 화물칸엔 금괴가 빼곡하게 실려 있다고 들었다. 대충 녹여서 왕실 낙인만 지워내 암시장에 유통하면 대체 그게 얼마인가.

        

        휴고는 흐흐 웃으며 고장난 신호기가 번쩍거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고는, 주머니에 쑤셔 박았다.

        

        이거 판 마법사 새끼한테 단단히 따져 물을 생각을 하며.

        

        

       *

        

        

       -콰과아아앙!!

       -끼이이이익- 콰드드드득!!

        

        

        선로를 벗어난 열차가 뒤틀리며 쓰러졌다.

        

        이반은 나무 위에 올라타 먼 발치에서 내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녀석이 하나, 부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하나.

        그 주위에 셋 정도라.

        

        

        ‘열차로 향한 건 열 명 쯤인가.’

        

        

        열다섯 정도의 인원이라 했으니 그럼 얼추 계산이 맞는다.

        이반은 나무 위에서 훌쩍 뛰어 내리며 곧장 권총을 들었다.

        

        

       -타앙-!

        

        

        “!!!”

        “!!?”

        

        

        저 멀리서 웅성이는 소리와 함께 도적들이 일제히 엎드리거나 나무 등치에 숨어들었다.

        초탄에 머리를 맞은 녀석 하나를 포함해서, 다섯 모두가 ‘사선감지’를 가지지 못했다.

        

        일정 이상의 수준에 도달한 강자들에겐 ‘투사 무기’가 통하지 않는다.

        

        용사 파티에 ‘궁수’ 따위가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화기를 발포하는 순간 ‘강자’는 탄환에 얽힌 ‘살기’를 감지하니까.

        

        손에 쥔 무기에 마력을 덧씌워 살기 따위를 없애는 것은 기초 중 기초. 그러나 탄환이나 화살처럼 손 밖을 벗어나는 순간 그런 조작을 할 수 없다.

        

        따라서 강자들은 결코 엄폐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격발음이 들린 방향으로 몸을 날려 상대를 처리하려 드니까. 격발음에 놀라는 것은 모두 약자들의 전유물이다.

        

        그러므로, 절멸부대는 권총을 소지하고 다닌다. 상대의 강함을 파악할 수 있을 뿐더러, 자잘한 교전에서 약자들을 처리하는 데에 이보다 훌륭한 무기가 적은 탓이다.

        

        

        “거기 어떤 새끼야!!”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녀석이 지휘관이다. 놈은 살려야 한다. 정보를 뜯어낼 가치가 있으니까.

        

        그러므로, 남은 녀석들은 굳이 살려둘 이유가 없다.

        

        이반은 나무 등치에서 몸을 떼어내 녀석들을 향해 한 발자국 걸었다.

        

        

        “쏴! 쏴!!”

        

       -타다다!!

        

        

        사선이 어지럽게 얽혔다. 그 사이로 휘적휘적 걸어가며 이반은 여유롭게 탄환을 장전했다.

        

        철컥, 약실에 탄환이 물리는 소리를 확인하자마자.

        

        

       -타앙-!

        

        “끄으으윽?!!”

        

        

        하나.

        

        다시 철컥. 탄창에서 탄환이 튕겨 올라와 물리는 소리.

        

        

       -타앙-!

        

        

        하나.

        다시, 철컥, 타앙. 철컥, 탕-!

        한 번 격발할 때 마다 사선 하나가 사라진다.

        

        훈련 받은 요원들은 설령 ‘사선감지’를 익히지 못했더라도, 결코 몸을 드러내고 사격을 하지 않지만.

        

        녀석들은 그런 훈련조차 받은 적 없는 것인지 이반이 혼자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튀어나와 탄환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훈련의 차이, 경험의 차이, 재능의 차이.

        

        미간에 탄환을 박아 넣은 네 구의 시체와 덜덜 떨고 있는 덩치 큰 사내 하나.

        

        

        “너, 너어어…!!”

        

        

        사내는 얼굴을 구기며 총을 버리고 칼을 뽑아 들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총알이 맞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니까.

        

        

        “누가, 누가 보냈냐!! 어엉?! 어디서 이런 개 같은…!”

        

        

       -타앙-!

       -깡!

        

        

        녀석이 칼을 뽑자마자 칼면을 쏘아 맞췄다. 그 충격에 녀석은 칼자루를 놓친 채 손목을 붙잡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느꼈으니, 녀석은 새파랗게 얼굴이 질리며 덜덜 떨기 시작했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인가?”

        “어엉…? 그, 그래! 너, 너 내가 똑똑히 기억했어!! 두고봐! 내가….”

        “다행이군. 이제부터 잘 떠올려야 할 거야.”

        

        

        이반은 이 녀석에게서 열차 테러를 사주한 놈들을 알아낼 것이라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일을 벌일 조직이 꼬리를 그렇게 쉽게 남겨두었을 리가 없으니까.

        

        그러므로, 처음은 인상착의.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단서가 될 만한 것들부터.

        

        걸음걸이, 태도, 그 당시 입고 있던 옷.

        혹시나 있었다면, 눈에 띄는 문신이나 장신구.

        말투나 억양까지.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대답해라.”

        

        

        이반은 도끼를 뽑아 들며 낮게 말했다.

        

        죽일 생각은 없다. 이 녀석은 아마도 튜토리얼 보스일 것이고, 그건 주인공의 몫이니까.

        

        그러나 다치게 하는 것은 상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반은 ‘사람의 기능’을 손상하지 않고도 다치게 만드는 방법을 무수히 많이 알고 있었다.

        

        9시 35분.

        

        열차 테러가 일어난 지 10분이 되는 시간.

        열차 테러 원흉 저지 성공!

        

        

       

       *

        

        

        “아야아…!!”

        

        

        에시디스는 이마를 부여잡고 끙끙거렸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가신들이 특등석 전체를 대절해버린 탓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휙휙 흔들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으엑?”

        

        

        그녀는 지금 창을 딛고 서 있었다. 그녀가 방금까지 앉아서 졸고 있던 의자가 그녀의 옆에 길쭉하게 누워 있었다.

        

        이건 열차다. 열차의 의자는 옆으로 누울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그녀는 간신히 열차가 뒤집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으으, 아파… 저기요? 저기 아무도 없어요-?”

        

        

        그녀는 끙끙 신음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우르르 달리는 소리나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는 들렸지만, 열차 사고로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비명 소리 같은 것은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건… 이건.

        

        

        “마적!!”

        

        

        에시디스는 화들짝 놀라며 입을 가렸다. 열차를 급습하는 마적들이 종종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이런 열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다고…!

        

        

        “아니지! 내가 있잖아!!”

        

        

        에시디스는 깜짝 놀라며 몸을 웅크렸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이건 그냥 주접이지만, 놀랍게도 이번 사건에서 에시디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어쩌지, 어쩌지…!”

        

        

        아무도 따라오지 말라고, 누가 따라오면 진짜 의절할거라고 소리치고 나온 바람에 수행원 하나 없는 상황.

        

        에시디스는 머리가 새하얗게 굳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악기 가방을 끌어 안았다.

        

        다행히 열차가 뒤집어지는 상황에서도 바이올린은 멀쩡했다.

        

        

        “다행이다! 흑, 너 망가지면 어쩌나 했어….”

        

        

        그녀는 부드러운 손짓으로 가방을 열어 조심스럽게 바이올린을 살살 쓰다듬었다.

        그리고 곧, 바이올린의 넥을 꽉 쥐고 거꾸로 들었다.

        

        마치 쇠파이프처럼. 아니, ‘도끼’처럼.

        

        음악인들에게 악기란 생명과 같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지금 에시디스는 자신의 생명을 휘두르며 싸울 각오를 다졌단 뜻이었다.

        

        목숨을 건 ‘사상 최강의 음대생’ 지금 열차 테러 상황 해결에 돌입!

        

        

       

       *

        

        

        드로안 왕국이 에이나르 대왕에 의해 통일되기 전.

        그리고 마왕이 발호해 인류 전체가 위협을 받기도 전.

        

        그 전까지만 해도 드로안 왕국은 ‘야를’이라는 부족장들이 난립한 전국시대를 지나 왔다.

        

        도끼와 칼과 혀(주로 상대 부모에 대한 친절한 안부인사를 위해 쓰인다.)로 시산혈해를 만들던 이 미치광이 살육 집단엔 특이한 계급이 있었으니.

       

         

        야를의 가신. 허스칼.

       

       

        

        허스칼 계급은 종종 다른 국가의 ‘기사’ 계급과 동치되곤 하나, 세부적으론 다르다.

        

        주군과 가신의 입장에서 쌍무적 계약관계를 수립하는 기사들과 달리 허스칼은 오직 충성과 능력만을 조건으로 본다.

        

        기사에겐 급여와 토지가 보상으로 주어지지만, 허스칼에게 주어지는 것은 ‘충성심’ 뿐. 이들은 자잘한 전리품과 식대를 제외하곤 보상을 받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혈연이 아니어도 ‘형제’로 받아들여 같은 집에서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침대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밤일까지 같이 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리고 에이나르 대왕에게도 그런 ‘동생’들이 많았으니.

        

        

        “허억… 헉…!!”

        

        

        한 중년 사내가 숲자락 끝에서 헐떡이고 있었다.

        

        사내는 저 멀리에서 전복된 기차를 맨눈으로 노려보며 기함했다.

        

        

        “어떤 썩을 것들이 내 조카르으으으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조카가 지금!! 저기 타고 있다!!

        

        사내는 광포하게 고함치곤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

        

        

        ‘따라오는 게 제 눈에 띄면 진짜 의절할거에요!’

        

        에시디스가 에이나르에게 그런 말을 했을 때, 에이나르는 드로안의 위대한 전사 답게 이 수수께끼를 풀어낼 정답을 알아챌 수 있었다.

        

        

        ‘아하, 눈에 띄지 않으면 되는구나!’

        

        

        믿을 만한 놈들은 다 에시디스를 조카로 여기며 아끼고 있었으므로, 어지간히 변장한다 하더라도 같은 열차에선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다음 열차편에 보내자니, 열차를 타고 국경을 홀로 나선다는 것 자체가 걱정되는 상황에서.

        

        역시 에이나르 대왕은 드로안의 위대한 전사 답게 이 수수께끼를 훌륭히 해결했다.

        

        

        ‘아하, 열차를 따라갈 수 있으면 되는구나!’

        

        

        따라서, 에이나르 대왕은 자신의 ‘동생’들을 불러모아 근엄하게 물었다.

        

        

        “우리 에시 지켜줄 사람 손?”

        ““형니이이임!!! 절 보내주십쇼!!!””

        “두 다리로 열차 따라갈 수 있는 진정한 전사 손?”

        ““저 여깄습니다요 형님!!!””

        

        

        드로안의 위대한 허스칼들은 일제히 손을 번쩍번쩍 들며 괴성을 내질렀다.

        근육으로 가득 찬 40대 덩어리들이 마치 먹이를 바라는 새끼새처럼 입을 벌리며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 괴이한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에이나르 대왕은 근엄하게 물었다.

        

        

        “그럼 얀스크 대학 입학할 수 있는 사람만 손 들어보자.”

        “…!!”

        

        

        얀스크 대학은 입학 시험이 어렵다. 실기나 면접이야 뚫을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필기는 무리라고 판단한 허스칼들은 우수수 손을 내렸다. (부끄러워 하진 않았다. 지식은 전사의 미덕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내는 그 와중에도 손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이제부터 너는 체대 신입생이다.”

         “예, 형님!! 목숨을 다해 에시를 지키겠습니다!!”

         “좋아. 가라, 형제여.”

         “예, 형님!!!”

         

         

         그것이 두 달 전의 일. 얀스크 대학 입학시험이 있던 11월에 남들 몰래 크라실로프에 잠입했던 이 사내는 놀랍게도 입학시험 필기를 당당하게 통과하고 체대에 합격한다. (최저성적을 간신히 턱걸이하고 실기평가에서 신기록을 세웠다는 뜻이다.)

         

         슬프게도 성 얀스크 대학은 입학 제한 연령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1월의 어느날, 이틀 동안 쉬지도, 잠들지도 않고 열차를 따라 질주한 한 사내가 헐떡이며 멈춰섰다.

         

         열차 전복을 2km 밖에서 육안으로 확인한 그 사내는, 직선 거리에 있는 모든 나무를 으스러트리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사상 최강의 체대생, 지금 사상 최강의 음대생을 구하기 위해 열차 테러 사건 현장에 돌입!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에시디스는 ‘삼촌’들을 징그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나이죠.

    차회분은 내일 저녁 7시에 옵니다!!

    다음화 보기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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