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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예술가에 대한 후원이란 ‘창작 활동’을 꾸준히 해달라는 격려다.

       

       이는 단순히 팬심으로 인한 조공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얼른 다음 작품을 보여달라는 협박에 가깝다.

       

       

       ‘생활고 때문에 창작 활동에 지장이 생긴다고? 돈 줄게. 써.’

       

       ‘기복으로 인해 수입이 불안정하다고? 돈 줄게. 써.’

       

       ‘창작물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돈 줄게. 써.’

       

       

       무척 단순화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이와 다르지 않았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산물을 ‘상품’이 아니라 ‘작품’이라 부르지만, 진정 힘 있는 자들은 진정으로 예술을 ‘소비’하는 것이다.

       

       그러니 황자로부터 후원을 받은 나도 집필 활동을 이어가야만 했다.

       

       사실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이 세계에 ‘전생’의 작품들을 더 풀 생각이었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황자와 나의 목적은 다르지 않았다.

       

       

       “신작을 출판해야겠다…!”

       

       .

       .

       .

       

       새하얀 종이 앞에 앉아 만년필을 굴린지 30분째.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갑자기 창작 욕구에 눈을 떠서 고유한 작품을 창작하려고 하는 건 아니었다.

       

       

       “어떤 작품을 써야할지 모르겠네….”

       “도련님이 쓰시는 작품이라면 뭐든 대단한 명작이 나올 겁니다!”

       

       “어어, 고마워.”

       

       

       명작이 나오기는 하겠지. 전생의 명작을 표절할 테니까.

       

       그런데 어떤 작품을 표절해야할지 모르겠다.

       

       

       “시온. 만약 네가 독자라면 어떤 소설을 보고싶을 것 같아?”

       “네? 어, 그게, 돈키호테처럼 유머러스하면서도 감동적인, 그런 소설을 보고싶을 것 같습니다.”

       

       “뭐, 그게 일반적인 반응이겠지.”

       “예?”

       

       “그런 게 있어.”

       

       

       떠오르는 작품은 많았다. 안나 카레니나, 어린 왕자, 레미제라블… 아예 SF를 풀어버리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을 테다.

       

       하지만, 단순히 전생의 문학을 그대로 표절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내 목표는 ‘재미있는 소설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레퍼런스가 되어줄 수 있는 ‘장르적인’ 소설이 필요했다. 순수문학은 그 이후에 꽃을 피워도 충분하다.

       

       

       “추리 소설을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추리 소설이라면… 탐정이 주인공인 그런 겁니까? 조금 난해할 것 같습니다.”

       

       “아니, 음, 장르적인 의미에서 미스터리 소설이나 스릴러도 괜찮고.”

       “예?”

       

       

       모든 (장르적인) 소설은 ‘추리’, ‘판타지’, ‘로맨스’의 세 가지 플롯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기사문학은 ‘영웅의 여정’이라는 판타지적 플롯과 ‘고결한 레이디를 지키는 기사’라는 로맨스적 플롯의 결합이다. 이러한 근본적 플롯은 모든 소설의 뼈대가 된다.

       

       그리고 이 시대에 가장 부족한 플롯을 찾자면 당연하게도 ‘추리물’이었다.

       

       복선과 반전, 서스펜스와 미스터리, 의문과 해답, 추적과 분석. 이러한 추리물의 플롯은 근대 합리주의 사상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내가 쓰려면 보통 일이 아니란 말이야….”

       

       

       문제는, 이 세계에는 마법과 신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있는 ‘셜록 홈즈’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같은 추리소설을 이 세계에 적용하려면 이야기를 뿌리부터 뜯어고쳐야했다.

       

       

       “부담을 느끼시는 겁니까?”

       “부담이라면 부담이지.”

       

       “후원금 때문에 그러신가봅니다.”

       “그것도 그거인데….”

       

       

       황자를 생각하니 또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여자’라고 여기는 제국의 제3 황자. 사소한 단서들 덕분에 남자라는 사실을 눈치채기는 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영락없는 여자였다. 목젖도 없었고, 목소리도 가늘었다.

       

       그리고 ‘영혼’에 대한 꽤 선진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선진적이라서 만약 교회에 들킨다면 이단으로 몰릴 정도로 말이다.

       

       

       “시온 너는 영혼이 뭐라고 생각해?”

       “영혼…말씀이십니까? 으음, 불멸하는 정신이자 생명…이라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영혼과 육신의 관계에 대해서는?”

       “개성을 가진 영체로서 육신과 결합하여 완전한 형상을 이룬다… 맞습니까?”

       

       

       시온의 대답은 종교적이었다.

       

       아마 이 세계 사람들 대부분이 이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태생부터 영혼과 육신의 완전한 결합을 이루지 못한 황자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것이 황자가 불신자라거나, 냉담자라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황자는 스스로의 경험을 근거로 나름의 종교적 해답에 도달해있었다. 영혼과 육신의 결합이 불완전하기에 더 아름답다는, 낭만주의적인 해답이다.

       

       

       “내 입장에서는 어느 쪽도 옳은 말이란 말이지….”

       

       

       정신과 육신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것은 호르몬, 성향, 사회화 등 복합적인 층위에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심각한 방식으로 어긋나기도 한다.

       

       어떤 층위에서는 ‘남성’에 속하는 사람이, 어떤 층위에서는 ‘여성’에 속한다고 스스로를 정의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정신이나 본능이라고 퉁치는 건 사실 하나가 아니니까… 음?”

       

       

       이런 주제를 다룬 소설을 분명 읽었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 소설이 분명.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그 순간, 어떤 기묘한 확신이 나를 지배했다.

       

       이거다.

       

       

       “…시온.”

       “예, 도련님.”

       

       “자료 조사 준비해.”

       

       .

       .

       .

       

       [나는 윤리와 지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인간의 영혼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결론에 가까워졌다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추리소설이다.

       

       지킬 박사의 친구 어터슨이, 지킬과 엮여있는 ‘하이드’라는 기묘한 인물을 추적하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였다. 나는 이 소설의 ‘해답’을 알고있었기에 작품을 집필하는 방식 또한 ‘해답’에서 ‘의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형태가 되었다.

       

       지킬과 하이드의 정체가 밝혀지는 해답편을 먼저 쓰고, 그에 대한 복선들을 나중에 하나둘씩 추가한 것이다.

       

       하이드가 저지른 용서할 수 없는 범죄, 하이드의 불길함이 작중에서 노골적으로 묘사되는 장면, 하이드에 대한 주변인들의 증언. 그렇게 하나둘씩 ‘복선’과 ‘의문’을 추가하니 곧 제대로 된 추리소설의 형태가 되었다.

       

       

       “이거 재미있네.”

       

       

       그렇게 완성된 퍼즐을 가장 먼저 읽는 것은 이번에도 나의 충실한 시종 ‘시온’의 몫이 되었다.

       

       시온은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내가 건넨 원고 뭉치를 받아들었다.

       

       

       “이번 소설은 분량이 꽤 적군요.”

       “돈키호테처럼 많은 에피소드를 넣을 필요가 없으니까.”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스타일은 굳이 구분하자면 하드보일드에 가깝다.

       

       하이드의 범죄는 건조하고 거칠게 묘사된다. 주변인들의 몸서리치는 반응과 대비되는 거친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기묘한 두려움을 느끼도록 만든다.

       

       시온은 이번에도 바닥에 주저앉아 원고를 읽어내렸다.

       

       의자에 앉아서 읽어도 괜찮을 텐데, 흥분한 탓에 주변을 살필 겨를조차 없던 모양이다.

       

       

       “….”

       

       

       미친듯이 좌우로 움직이는 눈동자만 봐도 소설에 흠뻑 빠져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간중간 흠칫 몸을 떨기도 했다.

       

       그 반응이 꽤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빤히 구경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아…?”

       

       

       시온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예상치 못한 사실을 들었을 때에, 살짝 충격받은듯한 그런 탄식이었다.

       

       그제서야 원고에서 눈을 뗀 시온이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다시 원고로 눈을 돌리며 소설을 마저 읽어내렸다. 남은 분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시온이 소설로 다 읽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원고를 덮은 시온이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탄식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같은 사람이었다니….”

       “꽤 충격적인 반전이었지?”

       

       “정말, 전혀 예상 못했습니다. 아니,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충분히 짐작할 법한 단서가 있었는데, 왜 철석같이 다른 사람이라고 믿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악마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게 추리소설의 묘미지.”

       

       “…소설을 읽는 내내, 죄를 짓는 기분이었습니다.”

       

       

       시온은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사람처럼 넋 나간 모습으로 고백했다.

       

       

       “불쾌하고, 두렵고, 가슴 한 구석이 찝찝한데… 묘한 신비에 사로잡힌… 마치 금서를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불길한 비밀이 궁금해서라도 다음 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금서를 읽어본 적이 있나보네?”

       

       “아, 아뇨! 만약 금서를 읽는다면 이런 기분이었을 것 같다는 뜻입니다!”

       

       

       팔까지 휘저으면서 거세게 부정하는 게 살짝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재미있었어?”

       “예! 아마 오늘 밤 내내 이 소설의 결말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결말 얘기하고 다니면 안 된다?”

       “물론입니다! 무덤까지 비밀로 가져가겠습니다!”

       

       

       좋아.

       

       이제 출판만 하면 된다.

       

       .

       .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출판 소식은 금방 제국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돈키호테의 작가라는 이름값 덕분에, 돈키호테 1부를 출판했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초판본이 전부 팔려나갔다.

       

       

       “이봐, 이번에 호메로스 작가가 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읽었나?”

       “아아. 아직 시간이 없어서 못 읽었다네. 이번에도 굉장한 명작이라지? 특히 마지막 반전이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추리소설이 유명해지는 순간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었으니.

       

       

       “그렇다니까! 마지막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사실 동일인물이라는 게 밝혀지는데, 몸에 소름이─.”

       “이 새끼가?!”

       

       

       바로 스포일러였다.

       

       

       “결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복선-반전’, ‘의문편-해답편’ 구조를 가진 추리소설입니다. ‘지킬’과 ‘하이드’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 자체가 소설의 마지막 반전이거든요. 워낙 유명한 작품인 탓에 그 ‘반전’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서, 이제는 의미가 없는 반전이기는 하지만요.

    어떻게 보면 유명한 추리소설의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스포일러 때문에 반전이 반전처럼 안 느껴진다는 게….

    그래서 뮤지컬같은 2차 창작에서는 마지막 해결편(지킬 박사의 수기)을 중심으로 지킬 박사의 고뇌와 하이드의 변화에 집중해서 다루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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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자는 없었지만, 많은 분들이 근접한 답을 말씀해주셨네요. 셜록홈즈(추리소설이라는 장르), 변신(변신 신화라는 서사), 파우스트(종교적 윤리와 지성이라는 소재) 전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유사한 측면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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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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