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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첫날의 두유 완판은 솔직히 충격적이었지만,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재고를 워낙 적게 가져다 놔서 그런 거겠지.’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 달리 두유는 내 예상 이상으로 잘 팔렸다.

       갈 때마다 매진이라거나 한 건 아니었으나, 내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팔리고 있었다.

       

       심지어 요즘엔 엄마와 길을 돌아다니면 알아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두유 광고에 나온 아이 아니에요?”

       “와, 우리 동네에 살았구나.”

       “진짜 귀엽다! 근데 뭔가 광고랑은 느낌이 다르네요?”

       

       막 진짜 연예인이라도 된 것처럼 사람들을 몰고 다니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나를 알아본 몇몇 아줌마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래, 아직은 겨우 그 정도였다.

       

       “서연아! 엄마가 드디어 두유 잔뜩 사 왔어!”

       “……엄마 많이 드세요.”

       “무슨 말이니! 그렇게 맛있게 두유를……, 아, 설마 두유도 싫어했어?”

       

       엄마는 새삼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처럼 나는 우유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야, 비리잖아!

       그나마 저지방은 먹을 수 있었지만, 우유는 절대 좋아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두유는 그보다 낫지만……, 순수하게 콩이 싫어서요.”

       “어머나. 우리 딸 연기 장난 아니네. 엄마는 딸이 두유 엄청 좋아하는 줄 알았어.”

       

       그야 맛있게 먹는 연기였으니까.

       싫어한다고 맛없는 연기를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무슨 세 박스나 사왔데.’

       

       아무튼 엄마 혼자 저 가득 쌓인 두유를 다 먹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국 나도 먹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근데, 서연이도 확실히 싫어하는 게 있네.”

       “……뭐어.”

       

       나는 굳이 답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면 전생에는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특히 이런 우유 같은 것을 싫어하는 티를 내면, 된통 무시 당했다.

       최근, 이런 티가 자연스레 나오는 것을 보면 그런 기억들이 완화된 거겠지. 

       

       ‘연기 때문인가?’

       

       아니면, 여자가 되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유야 내가 어찌 알겠는가.

       

       “엄마는 서연이가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전부 알고 싶으니 다 말해줘야 해?”

       “네.”

       “참, 서연아.”

       

       두유 박스를 한 곳으로 밀어둔 서연은 잠시 주변을 살펴 아빠가 없는 걸 확인한 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 감독님한테 연락 왔는데, 혹시 서연이 TV 광고, 더 찍어볼래?”

       “광고요? 하지만 오디션 보기 귀찮은데…….”

       “그게, 조 감독님 말로는 이번 CF를 좋게 본 광고주가 몇 분 있나 봐.”

       

       연기력이 뛰어난 아역은 귀하지만, 그렇다고 못 구할 정도는 아니다.

       애초에 연기력이 부족한 아역은 키즈 모델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으니, 애초에 ‘아역’을 맡은 시점에서 어느 정도 연기를 할 수 있는 아이라는 거다.

       

       예를 들면, 오디션장에서 마주쳤던 이지연과 같이.

       

       “왜 저예요?”

       “그야 이번 두유 광고 때문이 아닐까?”

       

       두유 광고라…….

       확실히 전생보다 훨씬 파급이 있었던 건 분명했다.

       

       ‘뭐어, 다양한 연기를 해봐서 나쁠 건 없지.’

       

       이전에 CF로 들어온 돈은 전부 내 통장에 들어왔다.

       액수는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이 세계에서 내가 처음으로 번 돈이었기에 제법 뿌듯했다.

       

       “좋아요.”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CF라고 해봐야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연기를 하는 건 어찌 보면 버튜버와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어서, 솔직히 재밌는 부분도 있었다.

       

       내가 버튜버를 하고 싶은 건, 전생에 내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던 것도 있지만.

       전혀 다른 내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으니까.

       

       ***

       

       그렇게 주서연.

       6살이 된 지 석 달.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치원에 가게 됐다.

       이건, 전생까지 합쳐서 처음인 부분이다.

       

       전생에는 딱히 유치원 같은 곳을 다닌 적 없었으니까.

       

       ‘음.’

       

       알록달록한 원아복을 입은 아이들 틈에서, 나는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유치원 입학식.

       멀지 않은 곳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엄마가 보였다.

       

       ‘……집에 가고 싶은데.’

       

       당연한 말이지만, 난 또래의 아이들과는 그다지 감성이 맞지 않는다.

       심지어 나를 본 아이들은 슬슬 피하는 구석도 있었다.

       대체 왜지?

       내가 딱히 뭔가를 해코지한 것도 아닌데.

       

       “쟤 눈이 무서워…….”

       “그치?”

       

       속닥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눈.

       으음, 눈이라.

       

       ‘조……금 그렇긴 하지.’

       

       이 부분은 납득 되긴 했다.

       비교적 색소가 옅어 붉은빛이 도는 홍채는 확실히 이질적이다.

       그리고 가끔, 유독 빨갛게 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것도 다시 태어나며 생긴 무슨 능력 같은 건가.’

       

       모르겠다.

       다시 태어나게 해줄 거면 설명서도 좀 첨부해주던가.

       그 흔한 상태창 없이 태어난 탓에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너어!!”

       

       그때, 아이의 높은 고음이 울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누군가가 내 옷깃을 확 잡아당겼다.

       

       “역시 너네! 뭐야, 왜 네가 여깄어!!”

       

       사납게 소리치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그래, 분명…….

       

       “……이지연?”

       “뭐야, 내 이름 알아?”

       “오디션장에서 봤잖아.”

       

       물론, 이름은 전생에서 들었던 기억 때문이다.

       

       “흐, 흐응. 그러셔?”

       

       설마 내가 이름을 기억할 줄은 몰랐는지, 지연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솔직히 나는, 오히려 얘가 나를 기억하는 게 신기했다.

       

       “너야말로 까먹었을 줄 알았는데.”

       “뭐? 내가 그걸 어떻게 잊어. 그래, 그…… 굴욕!”

       

       애가 아역 일을 좀 해서 그런가.

       다른 애들보다 어휘 능력이 남다르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곧 반년이 넘는 일을 기억한다고?’

       

       단순히 기억이 좋다는 걸 떠나서 집요할 정도다.

       반년이나 지난 일에 이렇게까지 화를 낼 수 있다는 점에도 나는 내심 감탄했다.

       

       “하지만, 너도 다른 광고 나왔잖아.”

       “뭐야, 봤어?”

       

       당연히 TV에 나왔으니까.

       

       ‘심지어 전생보다 좋은 광고에 나왔었지.’

       

       이번에 이지연이 출연한 건 두유 광고가 아니라, 어린이 장난감 광고였다.

       어린이 장난감 광고는 보통 아역들도 몰리는 편이라 용케 들어갔다 싶었다.

       얘는 모르겠지만, 내가 큰 도움을 준 셈이다.

       

       “……흐음. 좋아. 용서해줄게.”

       

       대체 뭘 용서해준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지연의 얼굴이 단번에 의기양양해졌다.

       

       “두유 광고보다 내가 찍은 장난감 광고가 더 좋은 거라고 엄마가 말했거든? 알겠지? 이제 내가 이긴 거야.”

       

       대체 혼자 어떤 승부를 벌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또박또박 잘했지만, 확실히 아직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유?”

       “아, 그러고 보니 나 쟤 TV에서 봤어!”

       

       그런데 하필 지연이 말한 ‘두유’라는 말에 몇몇 아이들이 반응하는 게 느껴졌다.

       물론 이거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어머, 쟤 두유 광고에 나온 애네요?”

       “확실히 예쁘긴 하다. 근데 이미지가 좀 다른데?”

       “활발한 애인 줄 알았는데.”

       

       유치원 입학식을 뒤에서 지켜보던 엄마들도 덩달아 내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놈의 두유 광고를 뭐길래 이렇게 많이 본 거람.

       

       사실 이건, 아이들의 건강에 신경쓰는 어머니들이 모인 자리였기에 더더욱 그런 면이 있었다.

       이 시절 아이들은 하루종일 TV에 붙어있으니 광고를 보았을 테고, 어머니들은 어머니들대로 아이들의 몸에 좋은 우유나 두유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읏.”

       

       힐끗 지연에게 시선을 주자, 녀석은 자존심이 상한 듯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리곤 마치 자신도 알아봐 달라는 듯 내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덕분에 내 눈도 괜히 핑핑 도는 느낌이었다.

       

       ‘제발 그만해.’

       

       물론, 알아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10분 후, 유치원 입학식이 시작하는 그 순간까지도.

       

       ***

       

       「저희가 진짜 조 감독님에게 맡기길 잘했습니다」

       “아닙니다. 다들 노력한 덕이죠.”

       「배우 선정이 정말 좋았어요. 김정하 배우도 그렇고, 그 아역도 정말 대단하더군요.」

       

       가람드림 쪽의 광고팀 팀장의 말에 조민태는 어색하게 웃었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면 이름이나 좀 외우지 그래?’

       

       몇 번이나 ‘주서연’이라는 이름을 일러주었음에도 그는 굳이 외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하기야, 아역의 이름을 외우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

       

       「덕분에 매출이 한 번에 일곱 배가 뛰었습니다. 전부 감독님 덕이죠. 그러니 다음 광고도 꼭 저희와 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절대 섭섭지 않게 해드릴 테니까요.」

       “네, 물론이죠. 제가 여유만 생기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휴, 감사합니다.」

       

       그렇게 광고팀장과의 전화통화를 끊은 조민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잘도 하겠다.’

       

       페이도 후려치고, 배우 이름도 못 외우는 이들과 다시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이 일로 김정하와 서연의 이름을 톡톡히 알렸다는 게, 그나마 큰 성과라 할 수 있었다.

       

       재능 있는 배우와의 인연은 감독에게 정말 소중한 일이다.

       조민태는 김정하나, 주서연이 꼭 훌륭히 성장해주길 바랐다.

       

       언제가 그가 찍을 영화를 위해서 라도.

       

       “요전에 찍은 광고가 썩 괜찮더구나.”

       

       그때, 그런 조민태를 지켜보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이제 머리가 하얗게 물들기 시작한 그의 아버지가 서있었다.

       조방훈.

       

       히트작을 여럿 남긴 유명한 감독이자 조민태의 우상.

       딱 하나, 속상한 점은 자신의 아버지가 단 한 번도 천만 영화를 찍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특히 그 애. 네가 뽑은 게냐?”

       “예. 오디션 때부터 평범한 애는 아니었습니다.”

       “흐음.”

       

       조방우는 아들의 말에 턱을 쓸었다.

       이제 다섯 살. 아니 여섯 살이라 했던가.

       

       “편집되지 않은 영상을 보니, 확실히 흠이 보였지.”

       “하지만, 감정 연기가 이상할 정도로 좋더군요.”

       “마치, 메소드 연기…… 같이?”

       “네.”

       

       메소드 연기는 양날의 검이다.

       한번 다른 역할에 진득하게 빠지면 몇 달을 고생하는 배우도 흔했다.

       

       서연은 분명 배역에 흠뻑 빠지는 타입이다.

       연기를 보면 그랬다.

       

       하지만, 또 메소드라 하기엔 너무나 쉽게 그 감정에서 벗어났다.

       

       “그건 아마, 여러모로 미숙하거나.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다.”

       “다른 이유요?”

       “그래.”

       

       물론 말을 이렇게 하는 조방우도 그 이유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애초에 서연이 제대로 찍은 영상이라 해봐야 광고 딱 하나일 뿐이다.

       

       “만약, CF가 아니라…… 제대로 된 연기를 해본다면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게다.”

       “네?”

       

       아들이 발굴한 재능 넘치는 아역.

       조방우는 그 CF를 몇 번이나 돌려보았다.

        이 아이는 단순한 CF가 아닌, 보다 본격적인 연기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이대로 광고만 찍는다면 실력이 기형적으로 발전하게 될 테지.

       특히, 배움이 빠른 어린 시절이라면 자칫 나쁜 버릇이 생길 수도 있었다.

       

       “새로운 CF를 추천해준다고 했던가? 그 일은 언제 쯤 끝나는 게냐?”

       “대략 한 달 후일 겁니다. 이제 촬영 들어갈 거라서요.”

       “흐음, 한 달 후라.”

       

       광고는 촬영 후, 편집과 날짜 협상 기간이 훨씬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촬영 자체는 금방 끝나겠지.

       

       그렇다면, 마침 괜찮은 일이 하나 있었다.

       

       “사극 하나, 내가 괜찮은 오디션을 하나 알고 있다.”

       “……예?”

       “그 아이가 원한다면, 특별히 내 이름으로 추천을 넣어보마.”

       

       보통 이런 경우는 없었다.

       다만 아들이 신경 쓰는 아이인 것 같아서.

       광고로 두기엔 아까운 재능 같아 한번 말을 꺼내 본 것이었다.

       

       “사극이라면, 혹시…….”

       “그래, 이번에 KMB에서 방영 예정인 가상 사극이 있다더군. 이름이 아마…….”

       

       

       잠시 고민하던 조방우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태양을 숨긴 달’, 딱 그런 이름이었다.”

       

       만약 서연이 그 이름을 들었으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태양을 숨긴 달」

       

       마지막 화 최고 시청률이 40퍼센트.

       국민 사극 반열에 들어섰던 사극의 제목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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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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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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