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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세상이 원소로 이루어져 있는 건 『상식』이잖아⋯⋯?”

       

       중세 판타지에서 평생을 살아 온 대마법사의 반응이었다.

       

       “있잖아, 그건 말이 안 돼. 만물의 최소단위가 원소가 아니라면⋯⋯ 원소 마법들은? 화염구랑 얼음창은? 왜 어떤 마법사들은 화염 마법을 잘 다루지만 대지 마법은 죽어도 못 다루는 건데?”

       

       그에 대한 내 대답은 당연히 ‘모르겠다’ 였다.

       마법이라는 건 지구에서 상상 속으로만 존재하던 개념이지 않나. 

       

       내가 전직 물리학과 박사였으면 모를까, 평범하게 직장 다니던 내가 현대 과학의 힘을 빌어 마법의 근본 원리에 대해 통찰해내는 일은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었다.

       

       세상이 사실 초콜릿이에요 라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 표정이던 마탑주는, 조곤조곤 반박했다.

       

       “그리고, 세계가 다르면 물리법칙도 다를 수 있어. 정령계만 해도 대륙과는 전혀 다른 법칙을 갖고 있는 걸. 우리 세계는 안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건 확실히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내 우주에서는 난다.’ 유명한 대사 아닌가.

       지구에서의 여러 상식들이 이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애초에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 아니던가. 

       

       심지어 신이나 악마가 실존하는 듯 하고, 직접적으로 힘을 내려받는 사제나 악마소환사가 있는 마당이다.

       지구와는 다르게 땅이 평평하다던가, 우주가 무지막지하게 커다랗지 않고 작고 소중한 행성계 사이즈라던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보았고, 섣부르게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실험을 해 봤었다. 이세계에서 지구의 과학상식이 어디까지 적용되는가, 를.

       

       “거의 다 맞더라고요.”

       

       “진짜?!”

       

       “물론, 제가 그런⋯⋯ 연구 쪽은 아니어서. 할 수 있는 간단한 것들만 실험해 본 건데요.”

       

       과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유명한 실험들 말이다. 막대기의 그림자로 행성이 둥근지 아닌지 알아보기라던가. 우주배경복사 감지하기라던가. 막대기에 결정 생기게 만들기라던가.

       몇 가지 실험은 재료를 구하느라 애를 먹기는 했지만, 마탑으로 들어오는 지원금은 무적이고 신이었다.

       

       미스릴같은 마법이 포함된 것들을 제외하고는 과학 상식이 연전연승했다. 

       대륙이 둥근 행성이라는 것도 알아낼 수 있었다.

       

       “대륙은 평평하지 않았던 거구나⋯⋯!!”

       

       “계산상으로는 반지름 7500km쯤 되는 행성이었는데, 심심풀이 삼아서 해 본 거라 정확하지는 않고요.”

       

       “바다 끝에는 낭떠러지와 무한한 공허가 있던 게 아니었어⋯⋯.”

       

       나도 이세계 전생 이후 시골에서 부모님이랑 감자 농사를 지을 시절에, 

       동네 사제로부터 빵을 나누어 받으며 그런 이야기를 들었었다.

       

       어둠의 신과 빛의 신이 나누어서 인간을 창조하고 어쩌구저쩌구.

       그 이야기 중간 즈음에는, 대지는 평평해서 바다를 타고 나가면 공허 속으로 곤두박질 친다는 내용이 있었다.

       

       마탑주는 생각이 많아졌는지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 소리를 냈다. 상식이 정면으로 부정당해서 곤혹스러운 모양이다.

       저 조그마한 머리에 현대 지식을 쏟아부어서 과학타락 시키고 싶은 욕망이 싹텄지만, 인내했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라 TRPG를 좋아하는 환상 마법사니까.

       

       사실, 지구가 평평하니 둥그니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우리는 조금 다른 포인트에 집중해야 했다.

       

       “정말로 그런지, 어쩌면 제가 착각하고 있는 건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말이에요. 그래도 재밌지 않나요?”

       

       “⋯⋯응?”

       

       여기에 나비를 불러내는 환상 마법이 있다.

       

       한 번도 나비를 본 적 없는 아이가 만들어내는 환상 마법과, 수십년간 나비를 키우던 어른이 만들어내는 환상 마법은 커다란 차이가 난다. 어른 쪽이 이긴다.

       환상은 얼마나 구체적인지, 어느 정도로 믿는지에 따라서 위력이 증가하는 것이다.

       

       단순히 기사 한 명의 환상을 불러낼 때도 그렇다.

       

       그저 ‘성문을 지키고 있는 기사’는,

       ‘성문지기 기사, 고향에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소꿉친구가 있음, 현재 방앗간지기 딸내미와 썸을 타는 도중인데, 근래에 소꿉친구가 상경해 와서 옆집에 살게 되어서 곤란함.’ 에게 이길 수가 없다.

       

       요컨대 설정딸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환상 마법에 써먹을 수 있지 않겠어요?”

       

       “오오으⋯⋯.”

       

       생각이 많아질수록 환상은 강하다. 내가 환상 마법사로써 전인미답의 마법을 개척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지식들이 폭 넓은 설정딸을 가능케 해서인지도 모른다.

       

       온 세상은 소재다.

       

       창가에 흐르는 빗방울에서도 TRPG의 소재를 끄집어 낼 수 있다.

       이웃의 노크 소리 하나를 가지고도, 스릴러에서부터 연애물까지 모든 장르가 싹을 틔운다.

       

       ‘모르는 것인가, 이건 어쩌구다──’ 라는 현대지식 뽕을 느끼고 싶었던 것도 맞지만.

       그보다는 자색 마탑주에게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러니까 머리 아픈 표정을 짓기 보다는, 재미있는 소재를 얻는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해서요.”

       

       “그, 그래도 우주가 그렇게 크다는 건 좀 무섭달까, 인생이 전부 허무해지는 기분 안 들어⋯⋯?”

       

       “인류가 탐험할 곳이 끝내주게 넓다는 뜻이니까, 오히려 설레지 않나요? 자자, 다음은 생물 코너로 가 보죠. 하고 싶은 말이 되게 많거든요.”

       

       ===============================================================

       

       이놈의 빌어먹을 중세는 더러운 게 제일 문제였다.

       

       병균의 존재를 알지 못 하니 씻는 것도 가끔 씻고, 먹는 것도 대충 먹고⋯⋯.

       매일 시냇가에 가서 씻는 나를 보고, 중세 가족들이 유난이라고 얼마나 면박을 주던지.

       

       하지만 이제는 반격의 때다.

       중세 판타지에 위생 관리라는 이름의 독을 풀 것이다.

       

       “이것은 현미경입니다. 작은 것들을 크게 볼 수 있는 물건이죠.”

       

       “⋯⋯그리고?”

       

       “이것은 자색 마탑주의 속옷인데요. 혹시 클린 마법을 며칠에 한 번 사용하세요?”

       

       자색 마탑주는 저 불경한 환상을 이 세계와 함께 찢어버려야 하나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래도 내가 철면피로 나오자,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했던 듯.

       

       부끄럽기는 한데, 자신이 왜 부끄러운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이, 일단은 일주일에 한 번인데.”

       

       나는 그 대답에 이마를 탁 쳤다. 그리고 현미경 슬라이드에 팬티를 세팅한 뒤, 스스로의 죄악을 한 번 들여다보라고 권했다.

       마탑주는 고개를 기울여 현미경에 눈을 가져다대었고, 펄쩍 뛰었다. 오이를 갑작스럽게 발견한 고양이처럼.

       

       “으, 으엑⋯⋯ 징그러워, 이 이상하게 꿈틀대는 슬라임 덩어리들은 뭐야⋯⋯?”

       

       “아아, 모르는 건가── 그것은.”

       

       “마, 말 똑바로.”

       

       마탑주는 손가락 위에 무시무시한 힘을 모았고, 나는 공손해졌다.

       

       “그것은 미생물입니다. 말 그대로 작은 생물이라는 뜻인데요.”

       

       “⋯⋯나, 나 놀리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바깥에서도 진짜로 있는 거지? 이거.”

       

       “네. 감기나 피부가 간지러운 증상, 콧물이 나고 열이 오르는 증상 등, 몸이 아픈데 저주는 아닌 것들은 다 병균 때문이에요. 미생물 중에서 나쁜 녀석들이죠.”

       

       “병균⋯⋯.”

       

       “이 친구들은 더러운 곳에서 번식을 합니다. 안 씻은 피부 위, 세탁 안 한 옷감 위, 청소 안 한 연구실 위⋯⋯.”

       

       “⋯⋯⋯⋯!!”

       

       마탑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레가 붙은 것처럼 자기 옷을 손바닥으로 털어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 떨어질 리가.

       

       “클린 마법을 옷에서 슬슬 냄새 날 때 즈음에 한 번 쓰시는 모양인데요. 그 때 쯤이면 아주 바글바글 할 거에요. 바글바글.”

       

       “그런 표현 쓰지 마⋯⋯!!”

       

       “이게, 하루에 한 번 씻으셔야 하는 이유입니다. 손도 자주 씻어야 하는 이유고요, 제가 과민반응을 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더러운-”

       

       “알았어, 알았다니까!”

       

       자색 마탑주는 진심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꾸 몸을 꼼지락댔다.

       숨 쉬는 법을 자각하면, 그것을 잊을 때까지 신경 쓰게 되는 것처럼.

       

       마탑주도 자기 피부를 기어다니는 작은 친구들의 존재를 알자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확신할 수 있다. 이걸로 마탑의 청결 멤버가 하나 더 늘었다.

       

       “차, 차라리 몰랐으면.”

       

       “몰랐으면 더러웠겠죠.”

       

       “수, 숙녀한테 더럽다고 하지 마!”

       

       “다음은 전쟁 병기를 보러 갈까요.”

       

       ===============================================================

       

       영화관 스크린에 컴퓨터를 연결해서 영상 자료를 보여줬다.

       

       총.

       

       “⋯⋯마법을 안 배우고도 쓸 수 있는 거지? 이러면, 평범한 사람들끼리 자주 싸울 것 같은데⋯⋯.”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나요? 영지의 모든 농민들이 총으로 무장하고 전쟁을 건다든가 하면.”

       

       “금색 마탑의 『금속 일그러짐』한 방이면 다 고철이 될 걸⋯⋯?”

       

       역시, 총이 그렇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람이 노력하면 걸어다니는 중전차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보니.

       

       그렇다면 미사일은 어떨까.

       

       “마법사가 주둔하고 있다면 방어할 수 있겠지만, 작정하고 생산한다고 하면⋯⋯.”

       

       핵.

       

       “⋯⋯혹시 네가 살고 있던 세계는, 그,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고 싶은 미치광이 마법사들 뿐이었니?”

       

       “음⋯⋯.”

       

       “상식적으로, 실수하면 모든 게 잿더미가 될 수 있는 병기는. 그, 악신을 부활시키려는 흑마법사나 마찬가지잖아?”

       

       “그렇죠?”

       

       “그런데⋯⋯ 옆 나라에서 악신을 부활시킬 수도 있으니까, 혹시 모르니 우리도 악신을 부활시킬 준비를 하자⋯⋯ 이렇게 됐다는 거지?”

       

       “그렇⋯⋯네요?”

       

       “혹시 네가 살고 있던 세계는,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고 싶은 미치광이 마법사들 뿐이었니?”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부정할 수 없었다.

       인류의 광기란, 이세계인에게 ‘너희 미친 마법사냐’ 소리를 들을 정도였던건가.

       

       “과학이라는 게 발전했을 때 이런 게 나오는 거라면, 모든 사람이 무지 속에서 살아가는 게 나은 건지도 몰라⋯⋯.”

       

       마탑주가 무시무시한 거대 문어를 목격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대마법사의 머릿속에서 우민화 정책 같은 게 튀어나오기 전에, 나는 다음 코스로 안내했다.

       

       

       “마지막으로, 제가 살던 곳으로 가요.”

       

       “살던 곳?”

       

       “네. 마지막은 제 과거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들어주실래요?”

       

       마탑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혹시 몰라서 한 번 더 물어봤다.

       

       “재미 없을 것 같으면 스킵해도 되는데.”

       

       마탑주는 환상으로 불러 낸 국자로 내 정수리를 콩 찍었다.

       내빼지 말고 털어놓으라는 의미 같아서, 나는 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 화는 아무래도 좀 템포가 처질 것 같아서 가능하면 2연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2연참에 실패한다면, 내일 모레에 봐 주십시오⋯⋯.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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