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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오늘 피에르가 조카의 목숨을 노린다.

        자작의 목숨을 구하고 은혜를 입힐 기회였다.

         

        적이라고 해봤자 피에르 한 명뿐.

        그는 평범한 상인 캐릭터였다.

        전투능력은 별 볼 일 없었다.

         

        한 가지 문제는 이 몸도 별 다를 바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10개의 데볼루트가 내가 가진 자원의 전부.

        이걸로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8개의 데볼루트는 남겨둬야 해. 만약의 상황에 자작의 치료를 위해 써야 하니까. 2개의 데볼루트만으로 어떻게든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이런 포인트는 원래 근육 강도, 조직 경도, 세포 재생력 같은 기초 능력치에 투자하는 게 RPG의 정석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에서나 통하는 이야기.

         

        이곳은 시간이 급한 현실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장 쓸모가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피에르가 행동한 다음에 움직여야 한다.’

       

        시간이 되기 전에 자작의 침실로 쳐들어가봤자, 변태라는 오해에 확신을 더해 줄 뿐이다.

        피에르의 속셈은 그가 행동에 옮기기 전까지 증명할 단서가 없었다.

         

        문제는 데볼루트 2개로 이 감옥을 어떻게 빠져나가느냐는 건데…….

       

        -코오……코오…….

         

        맞은편 감옥에서는 엘라가 간이침대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나에게 등을 돌리고 누웠는데, 어느새 이쪽으로 몸을 틀어 있다.

         

        원더스타인에게 당당하게 구는 태도 덕분에 어른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 곤히 잠든 모습을 보니 평범한 소녀에 불과했다.

       

        “단원 관리.”

         

        화면이 눈앞에 떠올랐다.

         

        TTT의 것과 유사한 인터페이스.

         

        서포트 캐릭터를 관리하는 ‘파티 관리’ 창은 ‘단원 관리’ 창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나는 상태창에 떠오르는 단원들 목록 중에 제일 위에 있는 항목을 눌렀다.

       

         

        이름: 엘라

        나이: 16

        호감도: 0 (다음 보상: 호감도 15)

        칭호: 부단장

        직업: 맹수조련사

        -[구돌이]: 비둘기

        -[찍순이]: 생쥐

        특성

        : [없음]

         

         

        프로필 창도 서포트 캐릭터의 그것과 유사했다.

        결국, 단원들의 호감도를 올려야 나한테 도움이 된다는 건데…….

       

        이게 말처럼은 쉽지 않을 거 같다.

        원더스타인이 쌓아온 이미지가 있어서…….

       

        그나저나……비둘기와 생쥐를 기르고 있었군?

        맹수조련사라는 이름치고 초라한 동물들이다.

         

        그러나 감옥을 조용히 빠져나가는 데에는 사자나 코끼리보다 더 유용할 터.

         

        나는 상태창을 통해 시간을 확인했다.

        이것이 있는 이상 무거운 회중시계 따위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시간은 밤 11시를 넘겨 있었다.

        이제 슬슬 움직일 때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철창 가까이 다가갔다.

         

        간수는 이미 1시간 전에 휴게실에 들어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여기는 교도소가 아니고, 우리도 중죄인이 아닌데, 밤새워 경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철창을 콩콩 두드렸다.

       

        “엘라 양.”

        “우웅…….”

         

        엘라는 몸을 뒤척였다.

        그러나 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엘라 양?”

        “우웅……. 싫어요오……. 쫌만 더 잘래요오…….”

       

        엘라가 눈을 비비며 어린애처럼 칭얼거렸다.

        한쪽 뺨에 늘어 붙은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엘라 양, 일어나세요.”

        “아, 좀만 더 자자니까…….”

         

        눈을 뜬 그녀는 입을 쩝쩝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곧 자신이 어디 있는지, 누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는지 깨달았다.

        그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아이 씨……. 뭐야, 당신……. 잘 자고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단잠을 깨워서.”

        “흥.”

         

        그녀는 나를 흘겨보더니 하품을 했다.

         

        “몇 시인데 그래?”

        “11시 15분입니다.”

        “열한……? 내가 그렇게나 오래 잔 거야?”

         

        엘라가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시간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없었다.

        이곳은 지하 감옥이다. 낮이나 밤이나 별 다를 바 없었다.

         

        “아침이라 아니라 아직 밤입니다. 엘라 양이 잠든 지 3시간밖에 안 지났어요.”

        “밤 11시? 어쩐지 몸이 무겁더라.”

         

        그녀가 기지개를 피자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 밤중엔 왜 깨운 건데?”

         

        엘라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머리를 긁었다.

         

        “여기서 나가야겠어요.”

        “뭐?”

        “그러기 위해서는 엘라 양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대답하세요. 간수가 깰 수도 있습니다.”

         

        엘라는 입구 쪽을 훔쳐보더니 창살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나가자니? 그, 그러니까 탈옥하자고?”

        “네. 다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지금 나가야 합니다.”

        “무슨 다급한 일이……아니, 잠깐. 당신 역시 여기 사람들을…….”

         

        나는 재빨리 그녀를 안심시켰다.

         

        “엘라 양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반대입니다. 이곳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죠.”

        “도, 돕는다고? 또 무슨…….”

         

        엘라의 얼굴이 더욱 험악하게 변했다.

         

        역으로 치솟는 그녀의 적대감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곧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원더스타인의 ‘돕는다’는 말의 의미.

        원작에서 원더스타인은 사람을 도와준다고 나서서는 온갖 끔찍한 개조를 일삼았다.

         

        엘라는 그동안 원더스타인 옆에 있었다면, 그런 피해자들을 많이 봤을 것이다.

        내 말을 오해할 만했다.

         

        “이곳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 밤, 자작의 목숨이 위험해요. 지금 가지 않으면 늦습니다.”

         

        최대한 절박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으나, 고유 특성 ‘웃는 남자’는 내 안면근육에 대한 통제권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내 입에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엘라의 얼굴에 의심이 더 짙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망할 놈의 웃는 남자!

         

        그녀를 설득하는 건 무리였다.

        나는 다른 방식을 쓰기로 했다.

         

        “후후, 그럼 제가 힘을 쓸까요? 사람 몇 명이 다치는 것이 좋다면야…….”

         

        원더스타인이 작정하고 힘을 휘두르면 이딴 쇠창살 따위는 문제도 아니다. 저택 하나를 통째로 몰살시켜 버릴 수도 있었다.

         

        물론 내게 그런 힘 따위는 없지만…….

        애초에 나를 불신하는 상대로 솔직한 설득보다는 이런 거짓 위협이 더 잘 먹혔다.

         

        “악마 자식…….”

         

        엘라는 혐오감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봤다.

        원더스타인에 대한 분노와 경멸이 느껴졌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찍찍

         

        하얀 생쥐였다. 이름이 찍순이라고 했던가?

         

        엘라는 쥐를 손바닥 위에 얹고 놈을 향해 뭐라고 속삭였다.

         

        쥐는 엘라의 말을 알아듣는 듯 가만히 경청하다가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그녀는 엘라의 다리를 마치 미끄럼틀처럼 타고 내려와 창살 사이로 재빨리 빠져나갔다.

         

        내가 앉아 있는 감옥의 각도 때문에 쥐가 간수실로 들어가는 것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쥐가 과연 열쇠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우리 둘 다 말없이 찍순이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는 그때.

         

        -땡그랑

         

        열쇠뭉치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동시에 코 고는 소리도 멈췄다.

        엘라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들킨 건가?

         

        간수의 기침 소리가 몇 번 뒤따라 들렸다.

         

        엘라는 초조한 듯 장갑 낀 손을 꼼지락거렸다.

        영리하지만 찍순이는 그래봤자 쥐였다.

        사람이 한 번 지그시 밟아주면 그대로 즉사다.

         

        쥐가 죽기라도 한다면 나는 또 엘라의 원망을 하나 더 쌓게 됐다.

        그건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냥 데볼루트를 쓸 걸 그랬나?’

         

         

        특성: 지건(指鍵)

        적용 부위: 손가락

        효과: 손가락 하나를 유동성의 젤라틴 형태로 바꿉니다. 열쇠 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어 3분 동안 기다리면, 살이 구멍에 차오르면서 열쇠로 쓸 수 있습니다. 원상태로 복구하려면 손가락을 20분간 주무르십시오.

        요구 자원: [데볼루트 2]

         

         

        고작 데볼루트 2개를 투자해 만능열쇠를 얻는다면 썩 괜찮은 거래였다.

        사용방식이 괴랄하긴 하지만.

         

        그러나 위층에서 어떤 상황과 마주할지 모르는데 함부로 자원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는 엘라를 믿어야 했다.

        정확히 말해 그 찍순이라는 쥐를.

         

        1분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몇 배는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드르렁, 드르렁.

         

        간수는 다시 잠들었다.

        그것을 기다렸던 듯 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리한 녀석이군.

         

        열쇠가 땅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보다는 훨씬 작은 소음이었다.

         

        쥐는 엘라의 앞에 입에 문 열쇠뭉치를 내려놓았다.

         

        “잘했어. 착하지. 나가면 해바라기 씨 줄게.”

         

        우리는 조용히 감옥을 빠져나갔다.

         

        자작의 방을 찾는 건 쉬웠다.

         

        게임에서 ‘에어드라’의 흔적을 추적하는 방법과 같았다.

        바닥에 바퀴가 끌린 자국을 탐색하는 것이다.

         

        폐허가 된 게임에서와 달리 저택은 깨끗이 관리되고 있었지만, 십수 년의 세월 동안 누적된 흔적을 숨기기란 쉽지 않았다.

         

        바퀴 자국은 어느 한 방향으로 집중되었다.

        거기가 아나이스의 침실일 것이다.

         

        어려운 것은 경비와 하인들의 눈을 피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엘라의 힘은 여기서도 유용했다.

        쥐와 새를 정찰용으로 써서 저택 사람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눈을 피하며 우리는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복도.

         

        우리 둘은 그 그림자 속에 서 있었다.

        주변에 등도 없고, 창가에 비치는 불빛도 없는 곳이었다.

        숨죽이고 서 있으면, 바로 앞에 누군가 지나간다 해도 쉽게 우리를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어두웠다.

         

        휘이잉-

         

        복도는 상당히 추웠다. 아직 이른 봄이라 그런지 일교차가 컸다.

        스산한 바람이 계속 발을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엘라는 양팔을 부둥켜안고 으슬으슬 떨었다.

         

        “이제 몇 분 남았어?”

        “20분이요.”

        “아직 5분밖에 안 지났다고?”

         

        엘라가 입을 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쏟아져 나왔다.

        건장한 나조차 춥다고 느낄 정도인데 엘라같은 소녀야 오죽할까.

         

        흠흠, 호감도 작업이나 좀 해 볼까?

         

        나는 입고 있던 정장 재킷을 벗어서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어……?”

         

        엘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두 눈동자는 경악과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이러면 좀 따뜻해질 거예요.”

        “뭐, 뭐 하는 수작이야!”

         

        엘라는 내가 덮어주는 재킷을 벗어 던지려고 몸부림쳤다.

       

        “쉿, 쉿. 조용히 좀 하세요.”

        “야! 이……읍!”

         

        나는 소리를 빽 지르려는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벗어나려는 그녀와 제압하려는 나.

        그렇게 우리 둘은 서로의 몸을 밀고 당기며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녀의 저항은 금방 진압되었다.

        비록 아무런 개조도 되지 않은 몸이라 해도 성인 남자와 10대 소녀의 체격 차가 있었다.

       

        “이이, 이거 안 놥읍읍……!”

        “조용히 좀 하래도요.”

         

        한쪽 팔로 그녀의 양팔과 허리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러자 그녀는 남은 두 다리로 내 정강이를 꽝꽝 걷어찼다.

         

        욱신거리는 고통에 눈물을 흘리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웃는 남자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후후, 이거 참 아픈데요.”

         

        마치 사람을 조롱하는 듯한 웃음소리.

        내가 들어도 비열한 악당 같았다.

         

        그녀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를 노려봤다.

         

        “읍읍읍!”

        “조용히 하신다면 풀어드리죠.”

        “읍읍!”

         

        역시나 설득은 무리인가.

        나는 목소리를 착 깔고 속삭였다.

       

        “엘라 양, 그러다가 누가 오면 목격자들을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으으.”

         

        그녀는 원망 가득한 눈길로 나를 노려봤다.

        내 경고가 먹혔는지 몸부림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역시 원더스타인은 악당.

        협박이 특효약이다.

         

        나는 팔에 힘을 뺐다.

         

        “동의한 겁니다?”

        “으…….”

         

        구속에서 풀려난 엘라는 곧 나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그리고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나의 손이 닿았던 얼굴 부분을 닦아냈다.

         

        “대체 무슨 수작이야?”

        “시끄럽게 구니까 그렇죠.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나는 빙긋 웃어 보였다.

         

        엘라는 기분 나쁜 듯 날 노려봤다.

        얼굴을 다 닦은 그녀는 나에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이리 내.”

        “뭘요?”

         

        그녀는 대답하는 대신 내 한쪽 손목을 잡아들었다.

        그녀의 입을 막았던 손이다.

        손바닥은 그녀의 입김과 침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기분 나빠.”

         

        엘라는 손수건으로 내 손을 감싸더니, 물기를 닦기 시작했다.

        손가락 마디마디 꼼꼼히도 닦았다.

         

        그러고는 나 보란 듯이 젖은 손수건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네놈의 손이 탄 것은 다시 쓰기 싫다는 의사의 표현.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고작 재킷 하나 덮어준 것으로 이렇게 미움받을 줄은 몰랐네요.”

        “당신이 호의로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잖아. 뭘 원하는 거지?”

         

        날카롭게 나를 쏘아보는 그녀.

         

        호감도 좀 얻으려고 그런다! 왜!

         

        하고 싶은 말을 꾹 삼키고, 나는 뻔뻔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다른 뜻은 없었어요. 그냥 엘라 양이 추워 보여서 그런 겁니다.”

        “웃기고 있네. 춥기는 무슨……. 그냥 좀 쌀쌀한 거지. 필요 없어. 가져가.”

       

        엘라가 다시 재킷을 벗으려 하자, 나는 그녀의 어깨를 차분히 눌러 세웠다.

         

        “입고 있으세요.”

        “안 춥다니까 그러네. 무슨 수작이야?”

        “수작 같은 거 없어요.”

        “웃기지 마.”

        “아니면, 또 한바탕 난리를 피울 건가요? 제가 힘을 좀 더 쓸 수도 있는데요.”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위협적으로 속삭였다.

        언제라도 이 저택 사람들을 모두 짓이겨 버릴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아서.

         

        이럴 때, 원더스타인이 짓는 미소는 아주 사악해 보이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엘라는 나를 흘겨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악마 자식.”

        “감사 인사는 잘 들었어요.”

         

        엘라는 재킷을 거칠게 여민 다음 나에게서 등을 휙 돌렸다.

         

        정장 재킷은 그녀의 허벅지까지 내려올 만큼 그녀에게 컸다.

        아까보단 훨씬 따뜻해 보였다.

        떨림도 멎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고마워하기보다 오히려 경계하고 있었다.

        이따금 힐끔힐끔 돌아보는 그녀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상태창을 열어보니 호감도 역시 0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원더스타인이 쌓아온 업보인가?

         

        그녀의 적대적인 태도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나마 말을 트고 지내는 그녀도 저런데, 다른 단원들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

        고민 좀 해봐야겠군.

         

        그때, 하얀 무언가가 복도에서 이쪽으로 달려왔다.

         

        -찍찍

         

        정찰을 보냈던 찍순이였다.

         

        “누가 온다.”

         

        엘라가 재빨리 쥐를 잡아 주머니에 넣었다.

        복도 저편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난 아무 소리도 못 들었대도.”

        “아니야. 그건 분명 사람 목소리였어.”

         

        순찰하는 병사들이다.

        아마 우리의 실랑이를 들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등으로 복도 구석구석을 비추며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어쩌지?”

        “일단 피하죠.”

        “……좋아.”

         

        엘라는 내가 내린 결정이 병사들의 모가지를 비트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안심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반대편 복도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행여나 빛이 비치는 쪽에 몸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며.

         

        하지만 불운하게도 우리는 또 다른 순찰조와 마주쳤다.

         

        그렇게 경비의 수색을 따돌리느라 우리는 저택을 거의 한 바퀴를 돌아야 했다.

        자작의 방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다.

       

        상태창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0시 14분.

         

        다행히 퀘스트는 아직 활성화되어 있었다.

         

        나는 문을 열었다.

         

        끼익.

         

        방 안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아나이스, 피에르, 시녀.

         

        시녀는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잠들어 있었고, 피에르는 막 방을 나서려던 참에 나와 마주친 듯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아나이스는 바닥에 쓰러진 채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보아하니 살아있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아직 늦지 않았죠?”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자작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게임 공략 파트 때문에 서사가 부족한 거 같아서 한 화 더 올립니다.

    후회 태그는 확실히 의도하고 붙인 게 맞고, 언젠가 나오긴 할 겁니다..ㅎㅎ

    최대한 열심히 써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챕터1은 아직 정리하는 중이긴 한데 10화에서 끝날 것 같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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