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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 * *

       

       

       

       나로서는 이번 일로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 알아서 떨어져 나가길 바랐다.

       

       언제든 나를 납치한다거나, 또는 억지로 끌고 갈 때를 대비해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연기도 준비했다.

       

       그런데 말이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저희가 황녀님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든든한 방패가 되어 드리지요.”

       

       

       얘네들 왜 그러냐.

       

       

       “호오. 하지만 조건이 있겠죠?”

       “저희의 요구조건은 간단합니다. 이후 내전을 수습 후, 체코의 독립을 보장해주셔야 합니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아, 정말 울고 싶다.

       

       어차피 이거 내가 약속하지 않아도 알아서 될 일이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개 같이 찢기고, 독립한 체코에서 군단의 복귀를 바란다.

       

       그런 약속 따위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루어질 일이란 말이다.

       

       

       “더하여 저희가 체코에서 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체코에서 군부정권이라도 세우겠다고?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 그런 사람들이었나?

       

       

       “어려울 건 없습니다.”

       

       

       어차피 대전쟁이 끝나고 나면 체코는 독립하고 군단은 귀국하게 될 텐데, 내가 굳이 약속 안 해도 알아서 될 일 아닌가.

       

       

       “하지만 저 같이 아무것도 없는 어린 황녀를 믿으신다는 말입니까? 목숨을 걸어야 할 텐데요.”

       

       

       여기서 역사가 바뀌면 좀 그런데.

       

       비중은 나오지 않지만,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은 독립군에게 무기도 팔아넘겼다.

       

       물론 독립군만이 아니라 돈이 되면 여기저기 다 팔긴 했지만 하여튼.

       

       뭐 내가 한국인이어서 독립군을 생각한다.

       

        이런 건 아니고 역사의 변화에 내가 이바지한 것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문제지.

       

       그래. 그렇다면.

       

       너희가 어디까지 나를 도울 수 있는지 들어나 보자.

       

       

       “무슨 생각이 있으시니, 이렇게 당당히 맞서시겠다는 게 아닌지요.”

       “그렇긴 하죠.”

       “저희에게도 일러 주시지요.”

       

       

       하.

       

       이 새끼들 이젠 스스로 심부름꾼을 자처하겠다고?

       

       좋아, 그렇다면 어디 시켜나 보자.

       

       

       “안타깝게도 이곳은 의용군 수백이 전부입니다. 하여 군대를 모아야죠.”

       “그건 저희도 동의합니다. 저희 군단이 강하다고 하나 예카테린부르크의 방어를 위해서는 보강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희가 직접 이 예카테린부르크를 방어하기 위해 참호를 파고 노력은 해 보겠으나.”

       

       

       그래. 병력이 부족하단 말이지.

       

       백군의 콜차크가 있을 텐데, 병력이 부족하단 소리는.

       

       나보고 구심점이 되려면 나만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지.

       

       자기들만으로는 안 된다는 소리다.

       

       확실히 적백내전에서 백군은 외국군의 개입을 받았다며 독일과 협상으로 빠져 볼셰비키를 욕하던 사람들이 적군의 편이 되는 경우도 있다 들었다.

       

       음, 그럼 어쩔까.

       

       선택지는 좀 있다.

       

       다소 무리하더라도 곧 구성될 남러시아 정부의 안톤 데니킨과의 접촉도 가능하고. 그자도 구시대의 회귀를 원하니 나와 합류하려 할 수도 있다.

       

       그쪽에 표트르 브란겔도 있고.

       

       그 외에도 좀 있지.

       

       

       “돈 지역의 카자크. 그들과 접선을 하려 합니다. 돈 공화국이라고 했죠. 독일의 지원으로 세워진 국가 말입니다.”

       

       

       돈 공화국은 남러시아 군대 돈 카자크에 의해 결성된 반빨갱이 공화국이다.

       

       아마 세워진 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분명 지도자가 표트르 크라스노프란 자로 나름 제국 시절부터 군에 몸을 담은 몸이다.

       

       한때 레닌을 진압하려다 패배하고 포로가 되었다가 볼셰비키에 충성한다는 구라를 치고 튀어서 돈 카자크의 아타만이 되었다지.

       

       이미 빨갱이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니 나와 함께 할 수 있다.

       

       명색이 아타만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인데. 독일 제국이 지원했다지.

       

       크라스노프와 안톤 데니킨, 표트르 브란겔 등, 아마 몇 달 후. 그리 머지 않은 미래에 차리친 공방전을 펼친다.

       

       근 2년간이나 싸우다가 결국 패배하는데.

       

       

       “카자크족과의 접선을 노려달란 말입니까?”

       “그들은 차르의 창칼이 되는 조건으로 갖은 혜택을 다 받은 민족입니다. 그들 역시 볼셰비키가 러시아를 장악하는 건 원하지 않을 터.”

       

       

       차르정 앞에서 차르의 개가 되는 조건으로 세금 감면 그런 거 있지 않던가? 그 외에 자치 수준의 혜택을 받은 카자크들이 과연 볼셰비키를 반길까. 그러니 돈 공화국 같은 것도 생기고, 유독 볼셰비키를 위협한 것이 아닐까.

       

       해서 내가 하는 말은 아주 개연성이 없는 게 아니다.

       

       백군의 중심은 알렉산드르 콜차크지만 내가 살아남은 이상 이런 전개도 가능하지 않을까.

       

       

       “일리가 있군요.”

       “그리고 음.”

       “말씀하시지요.”

       “이왕이면 백군들에게도 알려주세요. 나에게 협력해라. 두마를 설치하겠다라고. 입헌군주정을 실현하겠노라고. 그게 싫다면 공화국도 좋고. 일단 나를 구심점으로 볼셰비키를 무찌르자고 말입니다. 편지도 써드리겠습니다.”

       

       

       니들이 원하는 나라를 세워라. 다만 빨갱이만은 싫다.

       

       이렇게 해 두면 그만이지.

       

       어차피 로마노프가 천명을 잃은 이상. 입헌군주정조차 힘들지도 모른다.

       

       입헌군주정은 그나마 왕실이 존중받기 마련인데, 로마노프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으니,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거다.

       

       나로서도 그런 주목받는 자리는 싫고.

       

       하다못해 뒷수습은 해 두고 뒤로 물러나 부귀영화나 누려야지.

       

       

       “내전이 끝나고 권력을 내려놓으시겠다는 겁니까?”

       “걱정 하지마십시오. 가이다 장군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겁니다. 애초에 저 역시 볼셰비키만을 무찌르길 바랄 뿐. 이제 와 로마노프가 다시 권력을 쥔다.느니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협상국에도 전해야 합니다. 군수물자등은 괜찮은데, 군사적 지원은 절대 안 된다고 말입니다. 여기저기 홍보해야 합니다. 당장 내전이 급하니 독일이든 협상국이든 가리지 않고 받겠다고.”

       “병사 하나가 아쉬울 때가 아닙니까?”

       

       

       병사 하나가 아쉬워도 물릴 건 물려야 한다.

       

       당장 일본 놈들이 지금 시베리아를 비롯한 러시아 극동 영토를 이참에 처먹고 싶어서 난리일 텐데.

       

       무엇보다도 외세를 불러들였다. 맞서 싸워야 한다! 이런 논리로 볼셰비키가 날뛰는 것을 막아야 한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빨갱이들이 러시아인들의 지지를 크게 얻었으니. 안 그래도 부족한 백군 처지에서는 최악이다.

       

       

       “당장 일본 놈들이 시베리아에 군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내전을 승리하고 나면 그놈들이 얼마나 거드럭대겠습니까? 더군다나 저 볼셰비키들은 선전할 겁니다. 황녀가 내전에서 이기려고 외세를 불러들였다! 맞서 싸워야 한다! 라고 말이죠. 선동은 그놈들의 전문 기술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나마 체코 슬로바키아 군단은 여기저기 날 뛰는 놈들이라 명분을 갖다 붙일 수도 있고. 대외적으로는 독립적인 세력으로 포장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이것도 수용했다.

       

       이쯤이면 아 시발 때려치울까 하고 납치하고 돌아간다거나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 외로 나를 확실히 돕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이러면 곤란한데.

       

       그래. 어디 너희가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 * *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은 본격적이었다.

       

       예카테린부르크에 참호를 파는 것을 도왔고, 아나스타샤를 따르는 광신도들에게 무기까지 넘겼다.

       

       의용군들을 훈련까지 시켰다.

       

       여기에 덩달아 나도 훈련했다.

       

       

       “황녀님이 직접 훈련을?”

       “설마 나가서 싸울 생각이신가?”

       

       

       이 작은 몸으로는 어떻게든 자신을 지키려면 방법이 없거든.

       

       당연히 아나스타샤 팬클럽 광신도들은 나를 바라보며 감탄을 했다.

       

       내가 나가서 싸울 거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 뭐 나쁘지 않지. 당장 나가서 싸우는 것도. 그러다 죽은 척 시체들 사이에 묻어가 빠져나가는 것도-

       

       그렇게 생각하다가 나는 다시금 이 몸이 황녀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정체불명의 여자가 다니기에 이 러시아땅은, 시베리아는 너무 혹독하기 짝이 없지 않을까.

       

       이것도 가능성의 일부일 뿐.

       

       일단 당장의 목적은 여기서 맛깔나게 빨갱이들의 뺨을 후려치는 것이다.

       

       생각보다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 어지간히도 내 말을 잘 들어 먹는 바람에 정말로 내전을 백군의 승리로 돌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각보다도 지금 사정이 몹시 나쁜 건 아니다.

       

       소비에트가 어째서 황실을 빨리 처형하려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예카테린부르크로 병사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아마 이것도 소비에트의 방식이 단순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인지. 비록 죄를 지었다하나 황제 일가를 처참하게 살육한 소문을 들은 탓에 자기들도 남 일이 아니라 여긴 건지 몰라도.

       

       예카테린부르크로 몰려드는 부유층이나 그쪽 파벌의 군대가 꽤 늘어나게 된 것이다.

       

       

       “오늘 카자크 군대 수백 명이 황녀님과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카자크만이 아니라 왕당파 제국군까지 예카테린부르크의 황녀 아나스타샤의 깃발아래로 몰려들었다.

       

       이게 다 체코슬로바키아군단 덕이다.

       

       어디서 자꾸 꾸역꾸역 오는 건지 몰라도. 주워 오는 것도 아니고 자꾸 데려와서 뭐 그 덕에 점점 세력권을 확장할 수 있었다.

       

       적군도 한타싸움을 준비하는 건지 에카테린부르크 주변 도시에서까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마 남러시아 쪽 애들이나 체코슬로바키아군단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아니, 확실히 그놈들 때문이다.

       

       그 열차 타고 이것저것 주우러 다니고. 아마 서방측에도 알려졌을 테지.

       

       

       “흠. 역시 물자가 문제인데.”

       

       

       백군이 진 이유는 사실상 군벌집단에 여러 성향이 나뉘어 서로 주도권 싸움을 한 탓도 있으나, 주요 지역이 적군의 손에 있던 것도 있다.

       

       그나마 이건 주변국의 지원을 받게 되면 좀 달라지긴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의 간섭을 배제해야겠지.

       

       슬슬 미끼를 놈들이 있지 않을까?

       

       열강이 언제 움직일까.

       

       생각하던 그때, 예카테린부르크의 수비병들이 급하게 나한테 보고하러 들어왔다.

       

       

       “황녀님. 볼셰비키 놈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볼셰비키 놈들이 몰려온다.

       

       솔직히 올만 하긴 한데. 생각보다 빨리 온다.

       

       

       “볼셰비키 놈들이?”

       

       

       임시로 만든 참호로 가서 저 멀리 볼셰비키의 군대를 먼 산을 바라보는 것처럼 가만히 바라봤다.

       

       꼴에 위엄을 과시하고 싶은지 노동자의 깃발을 앞세웠다.

       

       대충 봐도 엄청나게 많은데.

       

       아, 이거 조졌네.

       

       몰려오는 숫자 봐라. 정말 어마 무시하게 많다.

       

       전차라도 있어야 무엇이든 해볼 텐데.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기관총도 있으니 진짜 악착같이 틀어막으면 될 거다.

       

       체코군단도 있고.

       

       문제는 기껏 규합한 내 광신도들이 겁먹고 이탈하는 것인데.

       

       내가 직접 나서서 병사들을 독려하는 수밖에.

       

       황녀가 앞으로 나서는데 뒤에 처박혀 있을 병사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 몸의 원래 주인 아나스타샤의 아버지 니콜라이 2세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황녀님 이곳은 저희가 맡을 것이니.”

       

       

       체코군단이 나보고 뒤로 빠지라 하지만.

       

       어림도 없다.

       

       여기까지 왔으면 나도 막가는 거지.

       

       

       “아닙니다. 이들은 나를 믿고 총을 들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앞세우고 나 혼자 뒤에서 지휘할 수는 없겠죠.”

       

       

       나는 예카테린부르크 수비대 앞에 섰다.

       

       얼굴들을 보니 이제 막 소년 티를 벗어난 청년도, 제국군에  구른 것처럼 보이는 중년읜  남성도. 이제는 머리에 서리가 내린 백발의 노병도.

       

       청년부터 노인까지 수비병을 이루는 나잇대는 다양했다.

       

       모두가 겁을 먹은 듯 눈을 떨고 있다.

       

       저 거대한 붉은 물결과 싸울 생각에 겁이 나겠지.

       

       나를 따르는 것과 별개로 목숨의 위기가 닥치면 어쩔 수 없다.

       

       사람이란 그런 존재거든.

       

       자기 목숨이 중요하다.

       

       그것도 자기들이 충성을 바친 존재가 목숨을 걸 가치가 없는 존재라면 더더욱.

       

       이 몸의 아버지인 니콜라이 2세가 그러했고.

       

       지금, 이들은 어린 황녀인 나를 믿어야만 했다.

       

       총 하나 쏘지 못할 것 같은 여자애를 믿어야만 한다.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도박인지. 대가리 깨진 놈들도 모르지는 않을 거다.

       

       나는 그들에게 나를 믿어달라고 호소해야만 한다.

       

       살기 위해서. 적어도 끔찍한 그런 미래를 막기 위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옆동네에 연재할 때는 제목이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연참은 할 수 있으면 해볼게요!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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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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