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6

        

       연한 갈색의 단발머리, 선홍색의 맑은 눈망울. 기억 속 항상 자리매김 하고 있던 자신감 있는 미소 대신 내려앉은 불안과 우울.

         

       “우, 우진아.”

         

       자신감 없고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백우진은 어렵잖게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예화구나.”

         

       뭐가 그렇게 불안해서 벌벌 떨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백우진은 그녀가 썩 반가웠다.

         

       그도 그럴 것이, 백우진이 되기 전 지구에 있을 때 이 망할 소설을 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표지에 걸린 그녀의 일러스트가 아주 예쁘장하게 뽑혀 있었기 때문이다.

         

       “좋네, 음음.”

         

       이상형에 가까운 외모에 잠깐 아쉬움을 느꼈지만 이내 털어냈다. 피가 섞였다고 하기 어렵지만 이토록 반겨주는 형의 반려가 될 지도 모를 이에게 감정을 품을 순 없으니.

         

       “괘, 괜찮아…?”

       “그럼, 괜찮지. 잠깐 죽을 뻔하긴 했는데 지나가는 약초꾼 어르신 도움으로 잘 넘겼지.”

       “주, 죽을 뻔했다고?”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죽을 뻔했지만, 이토록 잘 살아서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으로 최대한 가벼운 말투로 얘기했건만.

         

       “미, 미안해….”

         

       다짜고짜 사과를 전하는 그녀의 모습에 백우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 번 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없는데?’

         

       아무리 봐도 그녀가 자신에게 잘못한 일은 없었다. 설령 있더라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 일들은 전부 이 세계를 떠난 ‘백우진’이 가지고 떠났으니.

         

       “뭐가 미안해? 네가 잘못한 게 있었나.”

       “내가, 내가… 흑! 너를 더 챙겼어야 했는데…!”

         

       그런 거였나.

         

       생각해 보면 임무를 떠나기 며칠 전부터 그녀는 백무혁을 만나기 위해 떨어져 있는 시간이 같이 있는 시간보다 길어졌었다.

         

       그로 인해 백우진은 지 혼자 그로기 상태에 빠져선 식음도 전폐하듯 하다가 나선 임무에서 결국 산적에게 옆구리에 도끼빵을 맞았다.

         

       ‘아니, 애초에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

         

       아무리 15년을 함께 한 소꿉친구라고 해도 한몸을 공유하는 것도 아닌데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함께 있는 시간보다 긴 건 당연한 게 아닌가.

         

       “야, 네가 내 보모도 아니고 어떻게 일일이 챙기냐? 네 잘못은 하나도 없으니까 그만 뚝.”

       “흐윽…, 흑! 우진아아….”

         

       콧물을 훌쩍이며 두 팔을 뻗어 달려오는 신예화.

         

       백우진은 자연스럽게 몸을 옆으로 비켜선 뒤 그녀의 목에 팔을 걸었다.

         

       “아?”

       “야.”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이자 그녀의 몸이 일순간 부르르 떨리는 듯했다.

         

       “나 없는 동안 형이랑은 진도 좀 나갔냐?”

       “무, 무슨 소리야….”

         

       딱 봐도 아무런 진전도 없는 듯했다.

         

       답답한 녀석 같으니. 하드웨어가 좋은데 왜 쓰지를 못하는 건지.

         

       “야, 일단 들이대.”

       “뭐, 뭐를…!”

       “뭐든 들이대란 말이야.”

         

       백우진은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유혹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남자는 일단 너처럼 예쁜 여자가 들이대면 넘어가게 돼 있어.”

       “예, 예뻐? 내가…?”

         

       소꿉친구에게서 처음 들어보는 예쁘다는 말에 그녀의 얼굴이 임계점을 향해 나아가듯 더욱 새빨갛게 변했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대. 네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어필… 아니, 확실하게 각인시키란 말야.”

       “내, 내가 가진 장점이 뭔데?”

         

       백우진은 음흉하게 웃으며 그녀의 귀에다 입을 더욱 가까이 가져갔다.

         

       “가슴.”

       “야, 야아!”

         

       그녀의 가슴은 무척이나 컸다.

         

         

       * * *

         

         

       주말 사이, 1학년 생도들을 가르치는 교수진과 부관주는 어제 벌어졌던 소동에 대해 회의를 나누기 위해 모였다.

         

       “염철진 교수.”

       “예.

       “보고하시오.”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회의실 중앙에 앉아 있던 무뚝뚝한 얼굴의 사내였다.

         

       염철진.

         

       과거 무림맹에서 활동하던 1급 첩보 무사였으나 임무 수행 도중 커다란 부상을 입고 일선에서 은퇴한 후,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학관의 이론 교수로 재직 중인 사내였다.

         

       “어제 백우진이 잡아온 산적들을 조사한 결과, 모두 인근에 위치한 산의 산적들인 것으로 파악 되었습니다. 잡혀온 순서에 따라 경로를 역추적해본 결과 실종되었던 영암산에서부터 평지가 아닌 산을 넘어 이곳 학관까지 도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부관주의 입에서 침음성이 새어나왔다.

         

       일류 무사만 무려 열에 달하는 탐색대가 백우진을 찾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갔다. 애초에 영암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마을 위주로 조사를 하라고 지시한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

         

       “산적들의 수는 정확히 66명, 5개의 산채를 부순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특이 사항으로는….”

         

       염철진의 말끝이 흐려졌다. 자신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를 보고 있음에도 이걸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뜸들이지 말고 말해보게.”

       “예…. 66명의 산적들 대부분은 삼류 수준으로 그다지 별 볼일 없는 수위를 지녔습니다만, 그중 한 명은 인근 관아에 현상 수배가 붙은 일류 초입 수준의 실력을 지닌 것으로 파악이 되었습니다.”

         

       일류.

         

       사실 말이 일류지 기인이사들이 넘쳐나는 무림에서 목에 힘주고 살아가기엔 너무나도 미약한 경지다.

         

       허나, 이를 상대한 사람이 백우진이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침묵하고 있던 부관주의 입이 열렸다.

         

       “백우진은 이류 수준이라고 들은 것 같소만.”

       “예, 맞습니다.”

       “목숨을 잃을 뻔한 과정에서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은 건가.”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그가 일류에 올라섰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게 된다. 체계적으로 무공을 배운 일류 무인과 마구잡이로 배운 일류 수준의 산적 간에는 무시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니.

         

       부관주는 어제 잠깐 마주친 백우진의 모습을 떠올렸다.

         

       ‘묘한 녀석이로다.’

         

       한바탕 흥이 난 얼굴과 몸짓을 하면서도 그 눈동자는 침잠하여 제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지금까지 이류에 머물러 있었다는 게 좀처럼 믿기지가 않았다.

         

       “어제 백우진이 내게 부탁 하나를 하였소.”

       “예? 어떤….”

       “산적들을 잡아온 공로를 인정하여 수행 점수를 받고 싶다더군.”

       “잡아온 산적들 대다수가 삼류 또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라 공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다만….”

         

       염철진은 잠시 말을 끊으며 부관주의 안색을 살핀 뒤, 말을 이었다.

         

       “일류 수준의 산적을 잡은 것은 공로로 인정할 만하니, 중급 임무 수준인 4점을 부여하면 적절하다고 판단됩니다.”

       “음.”

         

       부관주는 검지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백우진 생도를 불러오게.”

         

         

       * * *

         

         

       무인들이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바로 운기조식이다.

         

       운기조식은 무인의 근간이다. 내공을 쌓고 신체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하여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다.

         

       그래서 백우진은 아침부터 호리병을 깠다.

         

       “햐, 내공을 쌓아야 하니 정말 어쩔 수가 없네.”

         

       주선으로부터 배운 음주선공은 다른 심법과는 그 궤가 다르다.

         

       술에 담긴 기운을 돌려 단전에 쌓는다. 그러니 필수적으로 술을 마셔줘야만 했다.

         

       “크으, 이거 참.”

         

       낮술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데 억지로 마셔야 하다니.

         

       고개를 젓는 백우진의 입가에는 지우지 못한 미소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술이 몸 안으로 들어가자 그 안에 담겨 있던 기운들이 빠져 나와 음주선공의 요결을 따라 신체 내부를 돌아다니다 단전에 차곡차곡 쌓였다.

         

       “으음.”

         

       호리병 한 병 분량의 술을 말끔히 비워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술이 모자란 게 아니라, 마신 술로부터 쌓인 내공의 양이 문제였다.

         

       음주선공은 술이라면 가리지 않고 그 안에서 기운을 뽑아낸다.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술이냐에 따라 그 양이 달라진다는 점일까.

         

       “어디 좋은 영초나 영단 없나.”

         

       주선이 말하기를, 가장 좋은 술은 영물의 내단이나 영초 또는 영단을 넣어 만든 별주(別酒)라고 했다.

         

       술에 섞어 나눠 마시면 혹여 먹다가 탈이 날 수도 있는 기운을 아주 편안하게 흡수할 수 있고, 잘 숙성되면 오히려 더 높은 효과를 낼 수도 있다던가.

         

       문제라면 영물의 내단, 영초는 온갖 산이란 산을 다 뒤져도 하나를 찾으면 대박일 정도로 희박하고, 영단은 구파일방의 대문파에서나 제조하여 자기들끼리 하나둘씩 나눠 먹는다는 점이었다.

         

       보통 소설 속으로 들어간 빙의물 주인공들을 보면 소설 내용을 떠올려가며 기연을 독식하고 그러던데,

         

       “뭘 봤어야 떠올리지….”

         

       보다가 화딱지가 나서 접은 소설이었다. 그나마 읽었던 부분들 중 최신 연재분을 생각해보면 분명 늦가을 즈음에 열린 용봉지회라는 비무제에 주인공이 출전한다는 것이었다.

         

       “용봉지회에 상품이 걸려 있었지…?”

         

       이는 백우진의 기억 속에 있던 정보였다.

         

       1학년 말에 열리는 용봉지회. 그곳에서 용의 별호를 얻는 후기지수에겐 특별한 상품이 수여되고, 그중에는 영약도 포함되어 있었다.

         

       “좋아, 좋아.”

         

       우선 첫 번째 목표는 그것으로 할까.

         

       목표도 정했겠다, 기분 좋게 술 한 모금 더 들이키고 있을 때였다.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며 호리병을 허리춤에 매단 뒤,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청의 무복을 입은 사내가 무뚝뚝한 얼굴 표정을 한 채 서 있었다.

         

       “백우진 생도인가?”

       “예.”

       “부관주님의 호출일세. 본관 3층 회의실로 가게.”

         

       말을 마친 사내는 볼일은 끝이라는 듯, 등을 돌려 멀어져갔다.

         

       혼자 남은 백우진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아니….”

         

       황금같은 주말에 사람을 불러내는 건 대체 어느 나라식 예법이란 말인가.

         

       “아, 여기 중국이지 참.”

         

       납득했다.

         

       깔끔한 흑색 무복으로 환복한 뒤 기숙사를 나섰다.

         

       넓은 연무장을 가로지르자 몇몇 시선이 이쪽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백우진의 실력은 1학년 중에서도 최하위 수준이었지만 학관 내 명성은 웬만한 상위권 생도 못지않았다.

         

       “면룡(面龍)이랬나.”

         

       생김새 하나만큼은 훌륭하여 이를 조롱하기 위해 붙여진 별호였지만, 백우진은 그 별호가 썩 마음에 들었다.

         

       “나쁘지 않아.”

         

       무공 실력이야 언제든 키울 수 있다.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죽기 직전까지 구르면 벽 한두 개는 넘는다.

         

       얼굴은 그게 안 된다. 과거 판타지 세계에서 환골탈태까지 경험했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더라.

         

       그렇게 시선을 만끽하며 연무장을 지나 본관으로 향하는 길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백 가가.”

         

       백우진의 앞에 유화연이 나타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조회수가 2000을 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앞으로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읽으시면서 잠시나마 즐거우셨다면 선작, 추천, 댓글 부탁드립니다,,,!

    내일 또 연재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